
공자는 나이 40이 되고나니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는데,
마흔을 넘기고 나니 유혹에 더 흔들린다고 고백한 남성 지인들이 많다.
나만 해도 마흔살이 되면 욕망이고 뭐고 다 사라지고 한숨이나 쉬면서 살 줄 알았지만,
이게 웬걸, 예쁜 여자를 보면 좋아하는 건 지금이 더하다.
게다가 테니스를 같이 치는, 50이 다 된 언니들을 봐도 가슴이 뛰니,
마흔을 불혹이라기보단 ‘혹(惑) 그 자체’로 바꾸는 게 좋을 듯하다.
물론 이건 수양의 차이에서 비롯되지만,
또 다른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당시의 마흔살과 지금의 마흔살은 안드로메다만큼의 차이가 있으며,
수명이 짧았던 당시는 마흔살이 ‘노인’으로 분류됐다면
평균 수명이 80을 넘긴 지금의 마흔살은 결혼, 출산, 창업 등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
과학기술의 발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남자고 여자고 다들 햇볕을 받으면서 농사일을 했다면,
지금은 자외선이 차단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고,
피부에 좋은 음식을 먹는지라 노화가 상대적으로 늦게 찾아온다.
내가 아는 어떤 미녀는 연 1억원을 내고 피부관리를 받는다는데,
그런 분이 공자 시대에 살았다면 공자가 마흔이 불혹이니 하는 말을 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시대착오적으로 나이를 따지는 만화가 있는데,
극장판이 15개나 나올 정도로 인기만화인 <코난>이 그 주인공이다.
시대가 바뀐 지금도 40대만 되면 아주 늙은 아저씨로 표현을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밀실의 와인창고’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아니 42세면 나보다도 젊은데, 저럴 수가 있을까?

<발렌타인의 진실>에 나오는 인물이다.
뭐 이런 사람은 있을 수 있겠다만,
굳이 구렛나루를 기르게 함으로써 나이가 많게 보이는 장치를 곁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영화 현상소의 비밀>에 나오는 인물.
이 사람이 나랑 한 살 차이인데, 아버지라고 해도 믿겠다!

<4대의 포르세>의 인물로, 역시 내 아버지라 해도 어색하지가 않아 보인다.
이런 만화가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아, 마흔이 넘으면 노인이구나” 같은 생각을 심어주는데,
그러다보니 그네들이 자라서 20대가 되어도 아저씨 하면 “구리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코난의 각성을 촉구한다.
* 내가 이 글을 쓴 건 20대랑 못놀아서 섭하다, 이런 차원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