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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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이 서재를 장기간 비웠을 때, 그분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로 대변인을 자처한 적이 있다. 뭔가를 바라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분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책을 세권이나 선물했다. 이 미담이 알려지면서 누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자기 서재를 팽개친 채 서로 대변인을 맡겠다고 다투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선물로 받은 세권 중 <책 죽이기>를 읽었다. <김대중 죽이기>, <노무현 죽이기>등 ‘죽이기’가 들어간 책은 대체로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데 비해 이 책은 아주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깨끗이 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책들이 비난을 하는 초반부는 그저 그랬지만, 책의 제작과 유통 과정을 그린 88페이지부터 폭소가 터지기 시작했다. 책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은 평론가가 실상은 책도 읽지 않았고, “이 소설은 완벽한 실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혹평한 것을 광고 카피에서 “이 소설은 새로운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로 편집하고, 많이 팔리는 책만 읽는 독자를 위해 처음 찍는데도 1쇄가 아닌 3쇄, 4쇄라고 표기하는 행위 등 출판계에서 횡행하는 갖가지 작태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문학상 수상에 관련된 부분은 너무 웃겨서 다음과 같은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푸후, 하고 웃다가 침이 튀었고, 낄낄거리며 웃다가 다 나았던 목 디스크가 도졌다. 기차에서 소리내어 웃다가 보니 다른 사람이 다 나만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지은이는 유고 사람인데, 그쪽의 출판계도 우리나라와 아주 비슷한가보다.


지은이는 책의 입을 통해 “손가락에 침을 발라 가면서 책장을 넘기는” 행위를 꼬집고, “여백에 (낙서를) 휘갈기는 막무가내형 낙서광”을 비난한다. 여백에 낙서하는 게 생활화된 나로서는 뜨끔한 대목이다. 그렇긴 해도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옮겨 다니는” 걸 “매춘부가 된 것 같은 심정”으로 표현하는 대목이나, 서점 내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부분, 도서관에 꽂힌 책이 불행하다는 구절 등에는 동의할 수 없다. 책의 목적은 지식의 공유인데, 여러 사람이 봐주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책의 저자는 전자책의 등장으로 책이 사망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불법 다운로드가 보편화된 요즘에도 관객들이 웅장한 스크린에 압도당하려 극장을 찾듯이, 독자들도 종이책의 편리함을 외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언제 어느때고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고, 결정적으로 누워서도 읽는 게 가능하다. 책을 베고 잘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책은 싫어할지 몰라도 여백에 낙서를 하고 줄을 칠 수 있다는 것 역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종이책의 장점이 아닐까. 시대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도 난 종이책이 앞으로도 지속되리라 본다. 600년의 역사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막을 내리지 않을 것이며, 그러기를 나도 바란다. 좋은 책을 주신, 그래서 몇시간 동안 웃을 수 있게 해주신 그분-냉정한 듯하면서도 열정적인-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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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8-11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그래서 ..그래서...저에게는....목을 조심하셔요...^^

마태우스 2004-08-11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연로하신 파란여우님, 아까 주무신다고 해놓고선........ 오르페우스 때문에 삐져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군요, 역시!

마태우스 2004-08-11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릴케에 약하지요. 아, 님은 언제나 저보다 한발짝 더 아시는군요. 릴케라, 릴케... 호호, 제가 님 서재에 모든 걸 폭로해 버렸습니다.

파란여우 2004-08-11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하셨습니다...이번에도 님의 성급함이 또 드러났다고 알라딘에 소문이 쫘~ 악..하하하..흐뭇!! 그나저나 목이나 신경 잘 쓰셔요...진심어린 조언입니다^^

마태우스 2004-08-11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목 걱정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이 워낙 굵으니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4분의 3쯤 쓴 글이 있는데, 더이상 여기 있다간 낼 출근을 못할 것 같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아영엄마 2004-08-11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모니터로 단편 몇 개 읽는데 눈이 무척 아프더군요.. 전자책이 나왔다고 해서 종이책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전 종이책이 더 좋거든요.. 냉정적이면서도 열정적으로 읽을 수 있잖아요~~^^

마태우스 2004-08-11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그럼요, 우린 천상 종이책 세대지요. 마지막 멘트가 아주 멋지십니다. 뭔가 복선을 깔고 계시는 듯한....

starrysky 2004-08-11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볼까 말까 고민했는데 마태님 리뷰를 보니 꼬옥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아, 멋진 리뷰에 달릴 수 있는 너무나 모범적인 댓글 아닌가.. 써놓고도 스스로 뿌듯하다. 음.)

마태우스 2004-08-11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울적해하시던 스타리님, 제 서재에서 뵈니까 너무 반갑습니다. 전 그저 스타리님이 잘 되기만을 빌어요. 기운 내시구요!

아영엄마 2004-08-11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이에 답글을.. ^^ 스타리님~ 저도 이 책 보고 싶으네요.. 일전에 책 제목을 언뜻 보긴 한 것 같은데..이 책이랑 <서재결혼시키기>인가 그 책도 읽어보고 싶은 책 중의 하나..

미완성 2004-08-11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할 수밖에 없잖아요! 으어어어어어어어~~~~~~

마태우스 2004-08-11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사과님이다----------- 반갑습니다. 마침 자려던 참인데, 잘 주무시라고 인사드리고 싶었거든요.
아영엄마님/갑자기 걱정이 되옵니다. 저만 재미있으면 어쩌죠??

starrysky 2004-08-11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어머님, '서재 결혼시키기'는 꼬옥 읽어보세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책에 뺨을 마구 비비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얘기들이 많이 실려 있거든요. 뭐, 책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시시껄렁한 신변잡기 정도로 보이겠지만요.. ^^

미완성 2004-08-1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두 안녕히 주무셔요~ 더워서 꿈이 토막토막나지 않길 바랄께요----

아아, 아영엄마님과 별총총님 덕분에 또 책에 대해 좋은 책 한 권을 더 알게 됐네요. 이 새벽의 커다란 수확! 감사합니다--

밀키웨이 2004-08-11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런 것이었습니까?
어쩐지...왜들 서로 대변인을 자청하시나..참 인간성들 좋으시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간미의 극치를 달리시는구나 했더니만 이런 야사가 있었을 줄이야!

2004-08-11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랑녀 2004-08-11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종이책을 전자책이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저는 별로 그렇게 보지 않는데, 최소한 저는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볼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미국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전자책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도 하던 걸요?
많은 출판사에서 전자책을 대비하고 있다고는 하던데...
흠, 흥미있겠네요. 빌려봐야지.

다연엉가 2004-08-11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 책을 보면서 알라디너분들을 많이 생각했어요. 침묻히고 구기고 우린 책을 죽이고 있더군요.ㅋㅋㅋㅋ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이 종이만 하겠어요? 아무리 컴터가 좋아도 종이에 끈적이는 것 만 하겠어요? 제가 생각하면 이 책의 끝 부분 같은 시대는 결코 오더라도 인기가 별로 없을 것 같아요.^^^^특히 우리들에게는요.

2004-08-11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갈대 2004-08-1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에코 할배가 미네르바 성냥갑에서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수 없다고 못박아 말했습니다. 가끔 그 자체로 너무나 완벽한, 그래서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발명품들이 있는데(예를 들자면 망치, 연필, 자전거, 바퀴 등등) 종이책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이죠^^

2004-08-11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4-08-1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알라디너들은 밤에 미친다'는 새로운 명제가...
암튼, 저 책을 통해 또 한번 마태우스님과 '소통'하는 영광을 안게 될듯...ㅋㅋㅋ

마태우스 2004-08-1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저도 어젯밤에 리뷰 올리러 들어갔다가 놀랐어요. 아는분들이 너무 많더군요^^
갈대님/흐음, 종이책도 완벽한 발명품이군요. 근데 저 연필은 안쓰는데....
책울님/호호, 님도 저랑 같은 세대시라니깐요. 종이책에 길들여진..... 근데 컴퓨터만 보고 자란 애들이 있다면, 그래서 수업도 다 컴으로 한다면 전자책이 더 선호되지 않을까요? 알라딘도 시범적으로 전자책을 만들고 있던데...
호랑녀님/호랑녀님도 제가 느꼈던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재미 없으면 어쩌나...
시아일합운빈현님/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제가 늘 궁금했는데요, 님 혹시 여자분이십니까??? 제가 남녀는 확실히 안다고 자부했는데...
밀키웨이님/부끄럽습니다. 사실 저만 그렇지, 다른 분들 중에는 순수한 맘으로 그랬던 분들도 계실 겁니다.

stella.K 2004-08-1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줄은 많이 치죠. 줄 안 치면 내 책 같지가 않아서요...저 책, 재밌을 것 같긴한데, 전 성격상 뭐든 비참하고 비관적으로 그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그런 식으로 그려 웃음을 유발하는 건 더더욱...그래서 선듯 손이 안 가네요.
그래도 '600년의 역사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막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마태님 말은 멋있었어요.
책을 베고 주무시는 마태님 모습 보고 싶네요. 너무했나? ㅋ.

부리 2004-08-1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야, 내가 추천 했다. 추천이 없다고 어찌나 난리를 피우는지....

marine 2004-11-09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빠가 책에 낙서하거나 쫙 펴서 읽는 걸 아주 싫어하셔서 어렸을 때 아빠 책 읽으려면 손때 묻을까 봐 무지하게 조심하던 생각이 나네요 지금은 그 많은 책을 다 저한테 물려 주신다고 해서 마음껏 줄도 치고 음식 먹으면서 흘려도 아무 부담없이 보지만요^^ 전자책이 등장해도 종이책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거라 믿어요 북아트도 하나의 디자인 영역으로 자리잡는 만큼, 책의 형식이 주는 기쁨은 여전히 유효할 것 같아요 그래서 또 서재를 꾸미는데 열심이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