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갈 때, 사람들은 아는 병원을 가려고 한다. 직접 알지 못한다해도, 친구나 친척이 말이라도 한마디 해줄 수 있는 병원을 원한다. 이렇게 된 이유가 의사들이 그다지 친절하지 못했고, 모르는 사람에게 바가지를 씌워서 그런 것일지도 있겠지만, 이왕 가는 거 좀더 대접을 접받고자 하는 한국 사람의 특성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병원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식당, 하다못해 나이트나 단란주점을 갈 때도 다른 사람 이름을 팔곤 하니까.

전국 병원의 30%와 친분이 있다는 나 역시 병원 청탁을 많이 받는 편이다. 아는 병원을 소개해 줘서 의사와 환자 모두 내게 고마워한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을 거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있는데 내게 안좋은 기억만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병원 소개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 따른다. 소개를 해준 환자가 나를 대신해서 그 병원에 간다는 사명감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1) 아는 치과를 소개해 달라고 해서 죽마고우를 추천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진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친구의 여동생이 병원에 갔었는데, 비싼 치료를 받고도 돈을 안내고 도망쳤다. 친구로부터 "야, 걔는 왜 돈도 안내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신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아는 난 죽고만 싶었다.

2)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한달에 버는 돈이 2억이니 5억이니 하는 소문이 나도는 그 성형외과 원장은 내가 조교일 때 우리 교실에서 학위를 했다. 그가 박사과정에 입학할 때 내가 조금 도움을 줬던 기억에, 아는 성형외과가 없냐고 친구가 물었을 때 덜컥 추천을 했다. 따라가진 못했고 그냥 편지만 써 줬는데, 그 의사는 명문으로 점철된 내 편지를 보고도 별 감동을 하지 않았고, 친구에게 시큰둥하게 대했단다. 그 뒤로 난 너무 잘나가는 병원은 피한다. 하기사, 지금은 내가 아는 성형외과만 해도 열군데가 넘으니 그에게 부탁할 일은 없을 것 같다.

3) 깜찍하기 짝이 없는 내 여동생이 등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딸이 결막염에 걸려 고생을 하기에 내 친구인 미녀의사를 소개해 줬다. 그리고는 금방 후회했다. 그날부터 동생은 내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어째 나아가는 흔적이 없다"느니 "얘가 아파서 운다"느니 난리를 피웠으며, 내가 안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걸 알자 미녀의사의 휴대폰을 가르쳐 달란다. 몇통화나 걸었는지 끔찍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눈이 다 낫기까지 사흘간 미녀의사는 미모에 걸맞지 않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내가 오죽 미안했으면 사이즈가 큰 리치몬드 케이크를 사가지고 그녀의 병원을 찾았을까. 그래도 동생이니까 몇 번 더 다른 병원을 소개했지만, 그러고나서 언제나 난 죄인이 되었다.

4) 내가 아는 여자애가 전화를 걸어 치과를 소개해 달란다. 근처에 병원이 많음에도 소개를 해달라는 건 사실 싸게 해달라는 소리, 난 1)에 나왔던 죽마고우에게 전화를 걸어 좀 싸게 해주면 안되냐는 부탁을 했다. 그러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 친구에게도 진료비를 받는 어떤 원칙이 있을게다. 내 어머니라든지 동생이라든지 하는 경우라면 좀더 많이, 친구면 조금 덜, 이런 식으로 말이다. 250만원의 진료비에서 내 친구가 제시한 금액은 220만원, 친구 딴에는 30만원이나 깎아 줬지만 여자애는 그게 불만인 것 같다. 내게 전화해 "더 깎을 수 없느냐"고 묻고, "진료는 잘 하냐"고 다그친다. 다른 데를 좀더 알아보겠다는 그녀에게 난 "더 좋은 데 있으면 그리로 가라"고 좋게 말했지만, 그녀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중간에 낀 난 불편해진다.

대개의 경우 병원 소개는 내가 빚을 지는 행위다. 내가 진료를 해준다면 내 맘대로 하겠지만, 그럴 능력이 없으니 친구에게 보내야 하고, 결국 빚을 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난 병원 소개를 계속할 것이다. 나중에 그 친구에게 덕을 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원래 인간 관계란 게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일테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어찌되었건 좋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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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4-07-23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1등..! 우어어어어~~ 마태님 우리는 운명인 것이었어요..!

하얀마녀 2004-07-2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좋은 상황의 가운데에 끼어서 마음이 많이 상하셨겠어요. 마태우스님은 순전히 호의로 했던 행동이었을 텐데. 언젠가 그 따뜻한 행동이 마태우스님에게 큰 힘이 될거라 믿습니다.

하얀마녀 2004-07-2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멍든사과님 여기서 또 뵙네요 ^^

아영엄마 2004-07-23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서 누구, 또는 어디를 추천한 뒤에 잡음이 생기는 것은 중간에 낀 사람 입장에서는 참 곤란한 일입니다.. 중간에서 양쪽에 의사 전달이 잘 되도록 애를 쓸 수 밖에... 저는 님에게 병원 소개 부탁 안할께요...^^

미완성 2004-07-2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라는 건...정말 소개팅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낀 주선자가 할 짓이 아닌 것같아요.
그런데도 마태님은 꿋꿋하게 그 힘겨운 중간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시는군요.
역시 아름다운 정신의 소유자셨어...*.*
님의 인기에는 쌍꺼풀말고도 역시 커다란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었었었어요...

마태우스 2004-07-2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아니어요. 그럴 때가 있다는 거지, 늘 그런 건 아니랍니다.
하얀마녀님/안좋은 기억만 써서 그렇지 실제로는 좋은 일도 많았어요. 인생사라는 게 다 그런 거지요.
멍든사과님/그러게요. 저도 운명을 조금씩 믿게 되는군요.

미완성 2004-07-23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마녀님 또 뵙네요 오홋홋.
역시 부지런한 분이셔 오홋홋. 우리 알라딘에 취직하면 안되나요요요?? ㅠㅠ
(마태님 죄송합니다아~ (__) 헤헤^^*)

조선인 2004-07-2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그런 경우도 당할 수 있군요.
흠흠... 그리고 오랜만에 딴 소리.
예전에 치석제거한다고 학교 앞 치과에 갔더니
어금니가 다 썩었다고 죄다 금니를 박아야한다고 하더군요.
대략 단가가 125~150만원.
어마어마한 비용 청구에 놀란데다가 썩었다는 이가 안 아픈 게 이상해서
친구 소개로 다른 치과에 갔습니다.
굉장히 친절한 분이었고, 어렸을 적 씌운 아말간(?)일부가 변색했을 뿐이라며 새로 해주고,
치료비까지 극구 사양하시더이다.
그냥 가기 찜찜해 음료수 2상자를 간호사에게 대신 안기고 나왔는데 정말 그러길 잘했지,
그후 치료비 대신 소개팅 시켜달라는 끈질긴 청탁을 거절할 명분이 없을뻔했지 뭡니까.

호랑녀 2004-07-2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사의 여동생인 나!

언니에게 전화해서, 언니 우리딸 눈이 나쁘대. 언니 언제 한가하지? 그럼 딸내미 보낼테니 언니가 그 옆 병원 안과에 좀 데려가. 안경도 맞춰야 하면 맞춰주고...ㅠㅠ

오빠에게 전화해서,
오빠 우리 시아버님 오빠네 병원 가신대. 오빠 안 바쁘면 오빠가 접수 좀 해줘. 바빠? 그럼 누구한테 부탁할 사람도 없어? 노인네 두분이서 가시는데 어떡해. 내가 믿을 곳이 오빠밖에 없잖아...ㅠㅠ

지금쯤 우리 언니오빠 어딘가에서 페이퍼 긁어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반성합니다.

털짱 2004-07-2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사흘을 밤새고 잠시 차마시고 들어왔습니다. 새 글이 많아서 기뻐요.^^
제 위로 글 남기신 많은 분들도 너무 반갑습니다.
덩말덩말 보고싶어거든요.(최지우버전)

머털이 2004-07-2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태우스님을 대신해 왔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병원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소개 부탁 드려도 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털짱 2004-07-2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귓속말로)어디 성형외과예요?

sunnyside 2004-07-2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 라섹수술할 때 그냥 제가 알아봐서 안과에 갔답니다. 아는 사람 추천으로 갔다가 만에 하나 잘 안되었을 때, 그 사람을 원망하게 되진 않을까 해서요.. (잘했져? ^^;;;)

머털이 2004-07-23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 윽~ 제 아픈 곳을 그렇게... 맞아요. 툭 튀어나온 광대뼈도 깎고 싶구요 쌍꺼풀도 만들고 싶구요 스킨 케어도 하고 싶네요... ㅎㅎ

paviana 2004-07-23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다란 리치몬드 케익이라...님이 얼마나 미안하셨는지 짐작이 가네요..
아~ 먹고파라 리치몬드 케익....

ceylontea 2004-07-23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친구중에 종합병원에 간호사로 10년 넘게 근무한 친구가 있습니다..
제 가족뿐만 아니라.. 제 주변에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이 무엇인가 물으면 항상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봅니다... 사실 그게 그 친구에게 부담인 것을 알지만...

마냐 2004-07-2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소개받아 치과에 갔습니다. 사랑니 2개 뽑고 어제는 스켈링도 했죠. 그 의사선생님 칼럼을 제가 '교정'본 인연도 있다지만...암튼, 공짜로 해주신다 하셨슴다....흑흑. 두번째 갈 때는..고르고 골라 책 두권 들고, 화과자 선물세트 들고 갔고...스켈링 하러 간 날에는 쿠키세트 들고 갔슴다...소개받으면 좋긴 한데....이런 부작용이....

한 10년전부터 인연을 맺은 L피부과. 친하게 지내다보니, 저는 물론 공짜(아토피 환자는 3000원짜리 환자임다..)인데, 문제는 제 소개로 가는 사람들도 다 공짜....결국, 제가 부담되서 소개를 못하겠더군요...이 병원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는데..다들 '넘 비싼 병원'이라 뭐라 하더군요...저는 그분들의 '초심'을 계속 신뢰합니다..

sweetrain 2004-07-24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종합병원 원장님의 조카인 탓에...--+ 상당히 의료비 절감혜택은 받고 있지만, 좀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흠 같은 의미에서, 전직 모 경찰서장님이 외삼촌중 한분이시라, 또 편하면서도 부담이 되고...^^

marine 2004-07-2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병원에 있어 보면 소개 안 받고 입원하는 게 이상할 정도랍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인간 관계가 이렇게 넓은지, 심지어 안내 데스크 직원이 딸의 친구 언니라는 것도 연줄로 내세우더라구요
뭔가 자기에게는 특별하게 대해 주길 바라는 것 같아요
비보험 진료의 경우는 진료비 감면도 바라는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