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상해졌다. 선을 한번 봐달라고 할 때마다 조건을 제시해가며 아쉬운 듯 부탁을 하시더만, 좀 달라지셨다. 지난주 언젠가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면서 "연락해서 만나라"라고 하시기에, 변기 위에다 쳐박아 뒀다. 그런데 엊그제 그 쪽지를 발견하더니 "너 이거 왜 아무데나 궁글리냐? 빨리 전화해서 만나!"라고 하신다. 사정해도 봐줄까 말까인데, 왜 그렇게 된 걸까? 오늘 밥을 먹을 때도 "너 아직도 연락 안했냐?"고 윽박지르시는 걸 보면, 앞으로는 강경책을 펴기로 했나보다. 아니면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었던가... 그래도 어머니는 진짜로 날 생각하신다. 난 그걸 안다.

엊그제 매형, 매제와 술을 마실 때, 그 둘은 일관되게 내가 결혼해야 한다는 걸 역설했다.
"니 나이가 몇이냐. 시간이 많은 게 아니다. 지금 애 낳으면 걔가 스무살 될 때 니가 도대체 몇 살이냐?"
매형은 내게 어떤 여자를 원하냐고 했다. 평소의 소신대로, "첫째는 유머감각이구요, 둘째는 미모요"라고 했더니 코웃음을 친다. "니가 아직 철이 안들었구나. 유머감각? 그게 중요하냐? 제일 중요한 조건은 애를 잘낳는다, 가 되어야지!"
매형과 내가 4살밖에 차이가 안난다는 게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대목. 지금이 무슨 농경시대도 아니고, 애를 잘낳는 게 어떻게 조건이 될 수 있담? 매형은 유머감각을 폄하하지만, 둘이서 재미있게 수십년을 살려면 내 유머가 통하는 여자여야지 않겠는가.

난 말했다. "사실 그 조건이라는 것도 여자가 없을 때나 하는 소리지, 한눈에 반할 여자를 만난다면 그딴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면서 난 이렇게 덧붙였다. "강남역 근처를 오가니 제가 첫눈에 반할만한 여자가 무진장 많더군요. 제가 지목하는 여자로 소개 좀 시켜주시면 안될까요? 그럼 제가 어떻게든 노력해서 결혼할께요"
결혼을 하라고 채근하던 매형과 매제는 그 다음부터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한참 있다가 매형이 이런다.
"내가 그런 여자들을 너한테 소개해줄 능력이 되면, 내가 바람을 피우지!"

생각해 보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은 많았다. 내 친구들만 해도 "너도 결혼해야지!"라는 말을 숱하게 했지만, 막상 "여자 좀 소개시켜 줘!"라고 하면 화장실에 가야 한다느니, 집에 전화를 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화제를 바꾸기 일쑤였다. 그러니 여자를 계속 조달해 주면서 "결혼하라"고 외치는 어머니야말로 진정 나를 사랑하는 것이지 않는가.

모든 비판이 다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대안 없는 비판은 대부분 공허하다. 빚을 못갚아서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한 사람한테 "빨리 빚 갚아라!"고 말하는 것이 폭력이듯, 남자가 없어서 시집을 못가는 여자한테 "결혼하라!"고 독촉하는 것도 폭력일 수 있다.  그리고, 혼자라고 해서 너무 불쌍한 눈으로 보지 말자. 결혼하고 싶은데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솔로는 공존보다 자유를 선택한 사람들이고, 그 두 가치 중 어느 하나가 더 우월한 것은 아니니까. 내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다. "난 민이 니가 부러운 날이 일년 중 360일밖에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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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6-28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군요. '대안없는 비난은 공허하다'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구체적이고 생동감넘치는 사례를 들어주신 분은 처음인듯 싶습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재치가 있군요.

갈대 2004-06-2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도 아직도 애인 못 만들었냐고 볼 때마다 묻는 친구들에게 반격을 가해야겠네요.
이렇게요. "어, 없어...-_-;;"

머털이 2004-06-28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주일 전에 저보다 1살 많은 사촌 누나 결혼식에 갔다온 이후로 저는 결혼 예찬론자가 돼 버렸습니다. 너무 부러워 보였거든요 크크..

비로그인 2004-06-2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20보다 30에 가까워지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고, 거기다 애인도 없으면 부모나 주변 어른들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도 걱정을 해요.
어른들은 그러다 노처녀로 늙어죽는게 아니냐고 사회학적으로 걱정을 하고,
친구들은 지랄꼴림증에 걸린다며 생물학적으로 걱정을 하죠.
이런게 있어요, 친구와 내가 만나던 자리는, 친구에게 남자가 생기면 친구와 나와 그리고 친구의 그가 함께하는 자리가 되고 말죠. 왠만하면 그런 자리엔 안 끼기도 하지만,
솔로의 옹졸함같은걸로 내비칠까 두려워 합석을 하노라면,
(물론 대부분의 친구 애인은 술값도 내고 친절하고 배려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조금 쓸쓸해요.
친구를 잃었다...뭐 이런 거창한 말은 아니고 친구와의 시간을 잃었다...이정도의 쓸쓸함은 말이 되겠어요.
애인이 있는 친구는 (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부분) 언제나 여자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애인을 동반해요. 애인동반. 이라고 사전통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제나 슬그머니 남자들을 데리고 와서는 내내 남자의 옆구리에 착 감겨있곤 하죠.
사실 친구와 친하다고 친구 애인과도 친한것은 아닌데.
게다가 우리들끼리 평소에 즐겨하던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그 재미난 이야기들을 하다간 조용히 화장실로 호출되곤 해요.
이제 문제학생처럼 불려나가는 것도 지겨워 시종일관 웃는 낯짝으로 간간히 그들의 러브스토리에 맞장구나 치며 먹기나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것을 터득했어요.
오빠(혹은 그애)한테 맛있는 거 사달랠까?-
애인을 부르기전 그녀들은 죄다 이렇게 말해요.
물론 친구를 사랑하는 애인들은 친절하고 잘 사주고. 고맙죠.
그런데 사실 무슨 어린이도 아니고, 남자들한테 쫄랑대서 얻어먹는게 체질적으로 싫은 저는, 오빠- 우리 맛있는거 사죠- 식의 혀짧은 소리를 내는 친구 옆에 서 있노라면 제가 약간 멍청해 보일때도 있어요.
같이 저녁이나 먹자- 고 말해도 될것을 왜 굳이 '오빠 우.리. 맛있는거 사죠.' 라고 말할까요.?
그렇게 맛있는거 사주는 오빠- 와 함께 7세아동처럼 쩝쩝거리며 먹고 있다보면 또 한가지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는데, 그건 커플들이 싱글에 대해 갖고 있는 커다한 선입견입니다.
그들은, 저같은 사람, 즉 솔로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들같은 이상적인 연애생활을 꿈꾸지만 주말밤이면 같은 처지의 여자들끼리 토할때까지 술을 마시고 일요일에는 세수도 않은채 등이 아프도록 방바닥을 뒹굴며 재방송 드라마나 보면서 여가를 보낼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목에서 피가 끓토록 극장도 가고 책도 보고 개랑 운동도 하고 일도 열심히 한다고 말해봤자,
끝까지 다 듣고는 결국 이렇게 말하죠.
"오빠친구 한번 만나볼래?"
저는 주말에 강남이니 종로니 어디든 번화가에 나가는 것이 참 싫어요.
얼마나 많은 커플들이 어깨와 어깨로 압박을 해 대는지
사실 길을 더 많이 막고 있는것은 분명 2인1조인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더럽게 사람이 많냐고, 누군가 불평을 할 때마다 조를 맞추지 못하고 단독경기중인 내가 괜히 찔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좀 오래되서 친구들이 기억해줄까 모르겠지만,..
전 커플이었을때도 애인과 있다가 친구를 만나러 가게 되면 혼자 가요.
친구가 나를 보자고 할땐 나만 보자는 말이지 남친까지 부록으로 같이 보잔 말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할말이 있어서 불렀는데, 부록까지 같이 나오면 할말이 들어가 버린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애인을 친구들에게 돌아가면서 소개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요.
그건 이 남자와의 관계가 깊지 않아서 혹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왜 사귀면 친구들에게 모두 소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자연스럽게 친해질수 있는 기회를 갖는게 훨씬 좋죠.
취기만 돌면 오빠-에게 전화를 걸고 사랑을 시험하듯 그를 우리들의 자리로 부르는 꼴은 정말 싫어요. 우루루 몰려가서는 술을 진탕 마시고 남자가 술값을 모두 계산하는 것을 당연하다는듯이 지켜보고 있다가 그렇게 얻어먹고는 집에 돌아와서 전화 수다를 떨며 남자가 별로네, 니가 아깝네, 하는 말을 늘어놓는것도 진짜 웃기는 일이에요.
저는요,
이 모든 제스츄어가 결국은 커플문화에 대한 지나친 부담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봐요.
남자, 혹은 여자를 소개해서 인정을 받아야 모임에 데려올수 있고, 그렇게 쌍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관방에서 자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되어 버린 것이 오히려 삶을 더 쓸쓸하게 하는 것 같아요.


sunnyside 2004-06-2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어머니는 정말 마태우스님을 사랑하시는 겁니다. 저희 어머니는 잔소리만 하시고 늘 그 '대안'이 없으시거덩요. 자력갱생하라, 가 모토죠. 그동안 제가 너무 큰소리를 쳐 왔나 봅니다. 지금도 입만 여시면 "남자를 트럭째 대령한다며~"라고 구박을 하십니다. -.-

starrysky 2004-06-28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보다 더 길고 절절한 야광별예술가님의 댓글에 압도당하며, 백번 천번 옳으신 말씀이라 감히 부르짖어 봅니다. ^-^
마태님은 요새 좀 고달프시겠어요. 이러다가 곧 알라딘 전체 메일로 청첩장이 날아올지도.. 호호. 넘했나?

비로그인 2004-06-2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왜저렇게 길게 썼죠? 수다가 병이에요. 혹은, 엄청 쌓였나봐요-_-;;;
요새 친구들이 결혼한다고 난리들을 떨어서..여기와서 말이지만 혼수니 뭐니 얘기 듣기도 진짜 귀찮아요 소근소근;;

stella.K 2004-06-29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미가 참 멋있군요. 마태님 글, 참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나고 멋있습니다. 근데 정말 마태님 짝은 어디 계신건지 궁금해요. 빨리 나타나셨으면 좋겠어요.
전 배우자에 대해 생각해 보긴 합니다만, 누굴 만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와 어떤 관계를 갖을 것이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전 신뢰, 존중,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는 이것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거죠. 너무 이상적인가? 그래서 저도 못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지요. 흐흐.

stella.K 2004-06-2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추천하기 안했다. 정신 머리하군...마태님 합니다. 추천!

sweetmagic 2004-06-29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니까 ... 대안 없는 비판은 비판이 아니라는 말씀 맞지요 ^^ ?
공존 그리고 자유....님 주위 분들 결혼을 마태님 생각처럼 공존의 개념이 아니라,
참 자유를 구현을 위한 방법으로 권하시는 건 아닐까요 ?
원래... 자유란 것이 혼자 있을 때 보다 함께 있을 때 구현하기 어려운거 아니겠습니까 ?
공존 속의 자유 , 그런 자유라는 사실을 좀 더 실감나게 느껴보라는 거..아닐까요 ? ^ ^
더불어......어떤 한 분에게, 재치 만점, 매력 덩어리 이신 님이 그 축복의 장이 되어 주라는
말씀이시도 하겠죠. 님...아이는 생산의 개념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님의 스승이 될테니까요.....
어머님의 대안은 아마 님께서 참다운 자유를 누리시고, 삶을 더 깊이 있게 배울 스승을 맞이할 터를 제공할 누군가를 찾으시는 것 인가 봅니다. 현실에 그냥 안주하지는 말아 주옵소서,,,, ^ ^ ...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것이 대안들, 그저 제안에 머물지 않도록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마태우스 2004-06-29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윗매직님/와, 님은 언제나 옳은 말씀만 하셔서 반박할 수가 없어요. 흠흠. 밑에서 세번째 줄, "누군가를 찾으는"-이게 말이 됩니까. 음하하하.
스텔라님/추천 감사해요. 감칠맛이라, 지나친 칭찬은 상대를 자만하게 하죠. 저, 자만할래요^^
쥴님/님의 글을 읽으니 모든 일의 배후에는 음모가 있다는 생각이... 모성을 강조한 것도 전사를 양산하기 위한 히틀러의 음모라는 구절을 읽은 기억도 납니다.
야광별예술가님/코멘트를 추천할 수 없어서, 박수로 대신합니다. 짝짝짝. 참고로 야광별예술가님은 제가 아는 분입니다. 아주 멋지지요. 이분 서재에 가보심 이런 말이 씌어져 있어요. "여기다 글 남기면 패버릴 거예요!" 후후, 진짜 멋지지 않습니까.
스타리님/고달프려고 하다가도 님의 코멘트를 보니 즐거워집니다.
서니사이드님/자력갱생 얘기 들으니 웃음이 절로 납니다. 그렇군요, 저희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군요^^
머털이님/오래지 않아 결혼하실 것 같다는 예감이...
갈대님/멋진 반격을 해주세요! 사람의 관심이 왜 그의 사상과 철학같은 게 아니라, 애인 있냐, 이런 것에만 국한되는 걸까요.
사요나라님/말씀 감사합니다. 님의 코멘트는 절 참 기분좋게 만들어 주는군요.

플라시보 2004-06-2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도 야광별 예술가님의 코멘트에 뻑이 갔습니다. 저거이 어찌 추천하는 길은 없을까요?^^

ceylontea 2004-06-2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광별 예술가님.. 코멘트.. 동감입니다..
그리고 마태우스님... 결혼하셨으면 좋겠는데... 소개라... 흠흠...눈을 씻고... 함 찾아봐야겠어요..

클리오 2004-06-29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같은 (일하는? 공부하는?) 공간에 남자를 함께 두고 있는데요.. 주변에는 온통 솔로예요.. 제가 남자보다 조금 선배거든요.(나이가 아니라, 공부시작한지..) 다른 사람들에게 같이 보인다고 하기 싫어서, 혼자 밥을 먹든지 아님 혼자 집에 가든지 놔두는데요. 사람들은, 맨날 그 사람을 불러서 같이 술을 먹자(불편할 거면서..), 혼자 밥 먹게 해서야 되겠냐, 같이 가자.. (첨 약속도 아니면서..)... 는 등... 물론 그 사람들은 배려한다고 하겠죠.. 그게요, 홀로 서려고 해도 여자의 뒤에는 늘 그 남자가 보이나 봅니다. 그 남자에게는 저의 이야기를 별로 묻는 사람이 없는 것 같거든요. (아니면, 저보다 여자가 절대다수 많은 이 공간에서 그 남자가 훨씬 인기가 많은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다시 해봅니다. ^^)

마태우스 2004-06-30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lio님/인간관계는 참 어려워요. 거기다 남녀관계까지 합쳐지면...으으...
실론티님/싫어요, 전 알라딘과 결혼했다구요!
플라시보님/당근 없습니다. 제가 너무 냉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