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심부름을 했다. 이불을 싸가지고 여동생 집에 갔다주는 일이다. 평소 어머님은 나를 지나치게 아끼셔서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도 절대로 못시키시는데, 이불의 무게가 상당히 나가 어쩔 수 없이 날 시킨 거다.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 이불들은 여동생이 결혼할 때 우리가 장만했던 혼수였다. 여동생이 결혼한 게 99년이니, 무려 5년간이나 우리집 방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거다. 왜 그랬냐고? 여동생의 시댁에서 둘의 결혼 자체를 반대했으니까. 여동생과 매제는 남들 눈을 피해 우리집과 아무 연고가 없는 도봉동 성당에서 결혼을 했고, 거기 참석한 사람은 달랑 우리 가족들 여덟명 뿐이었다 (우리 아버님마저 병원에 입원 중이라 참석하지 못했다). 내가 처음 보는 쓸쓸한 결혼식, 그게 서러웠는지 여동생은 식이 진행되는 내내 울기만 했다.

그 집에서 여동생을 만나본 뒤 반대를 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봐도 내 여동생은 좋은 신부가 아니니까. 결혼을 하고나면 매제를 힘들게 할 스타일이니까 (실제로 힘들게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시댁의 반대 이유는 그렇게 합리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우리 집이 재벌이 아니고-난 재벌 2세지만 우리 아버진 재벌이 아니다-여동생의 출신지역이 문제가 되었다는 게 내가 아는 반대 이유다. 여동생은 서울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와 아버님의 고향이 'ㅈ'자로 시작되는 곳이었던 것. 극심한 반대 속에서 둘의 결혼은 표류했고,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책임감이 있는 매제는 끝끝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고, 그 댓가로 집안과 결별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지만, 그 반대는 꽤 오래 갔다. 첫애가 태어났을 때도, 돌잔치를 할 때도 그 집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시댁과 결별하면 편한 건 있다. 어려운 시댁에 평소 발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지만, 명절 때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은 점이다. 음식을 하거나 수발을 들 일 없이, 우리집에나 와서 전이나 몇점 집어먹고 가는 게 여동생의 명절생활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 기간 동안 둘의 마음고생은 상당했을 거다.

하지만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은 맞았다. "애 둘을 데리고 한번 오라"는 말로 시댁 측에선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 오랜 기간 무시당했던 며느리로서는 감격의 눈물을 흘릴 법도 하지만, 내 여동생이 누군가. 그녀는 "지난날에 대해 무릎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다"며, 그 손길을 거부했다. 그래서 시댁에 갈 때마다 매제 혼자서 조카를 데리고 가야 했다. 한번은 시댁에서 여동생 집으로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건 크게 봐서 여동생의 요구를 수용한 것일 테지만, 여동생은 여전히 완강했다. 시부모님이 오자 자기 방에 틀어박혀 한번도 나와보지 않았다고 한다. 나와의 술자리에서 매제는 그게 너무 서운하다고 말했지만, 어쩌겠는가. 다 자기 선택인데. 모르긴 해도 사돈 어른들은 여동생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당신들의 반대가 옳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왜 갑자기 이불을 갖다 줘야 하는지 난 모른다. 사돈댁에서 덮을 이불이 없었을 수도 있고, 나이가 드시니 고급스러운 이불을 덮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하여간 난 이불을 여동생 집에 갖다 줬고, 매제는 혼자서 낑낑대며 그 이불들을 본가에 실어나를 것이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둘이 잘 사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돈댁의 반대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한번 당하면 열배를 복수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동생으로서는 그 반대가 서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복수심을 가족에게까지 적용시킬 필요가 있을까. 평생 안보고 살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풀고 시부모님이 내미는 손길을 붙잡아야 하지 않을까. 화해에도 때가 있는 법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화해는 아예 불가능해진다. 여전히 완강한 여동생의 모습이 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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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6-20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와서 테니스를 못쳤습니다. 한창 코트를 누벼야 할 시간에 글을 쓰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군요.

가을산 2004-06-2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대단해요~!
이제는 화해하시기 바랍니다. ^^

로렌초의시종 2004-06-20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구나~^^ 아침부터 페이퍼를 올리시기에 무슨 일이 있으신거구나 했는데......^^; 그러고보니 마태우스님의 여동생이 결혼을 반대당한 이유는 제게도 남의 얘기는 아니군요. 저야 뭐 거의 포기 했습니다만, 저도 만약 결혼을 한다면 더 어렵겠지요^^; 뭐 마태우스님 여동생 이야기는 전에도 봤지만 그래도 적어도 이번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기는 하네요. 그래도 왜 사랑하는 남편이 정작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수모를 당하는 건 생각지 않을까요? 상처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니까 결혼했을 텐데 말이죠. 뭐 끝내 분명하게 사과할 줄 모르는 시댁 어른들의 자존심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죠. 적어도 누구도 누구를 비난할 수 없는 문제인 건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플라시보 2004-06-2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여동생분이 단단히 맺혔나 봅니다. 저도 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데 여자들 중에서는 결혼식을 괭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여러 사정상 식을 안올리고 그냥 살았던 부부들이 나중에 합동 결혼식 같은걸 하는데 전부 다 울더라구요. (물론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처 지나가서 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결혼식에 엄청난 신경을 쓰는것만 봐도 여자는 일생 일대의 한번 있는 일이고 결혼식이야 말로 어릴적 동화에서 본 공주가 될 수 있는 딱 한번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지간에 그래서 여동생에게는 무척 한맺힌 일도 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왕래를 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쁜 아기들도 있으니까요. 여동생이 너그럽게 지난날을 용서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제 자신은 그렇게 못할지도 모릅니다.)

파란여우 2004-06-2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과 저도 화해 합시다(?) 연로하신 마태님께서 다 이해 해 주실꺼죠?...잠시 비상근무호출이 와서 출근해 갖고 @%^$##&&*#!...^^..전 이만, 베드민턴 치러 나갑니다...

부리 2004-06-2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다음주 일요일도 비나 와라!!^^
파란여우님/마태우스와 화해하면 더 손해일걸요? 배트민턴 잘 치세요. 연로하실수록 운동이 중요합니다.

마태우스 2004-06-20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내가 더이상 나타나지 말랬지!
파란여우님/님이 내미는 화해의 배드민턴 라켓을 기꺼이 잡아드리겠습니다. 연로한 사람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죠^^
플라시보님/감사합니다. 님의 격려는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로렌초의시종님/그래요, 둘다 잘못이 있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양보해야 한다면, 제 여동생이 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어려워서 그렇지만...
가을산님/화해할 때가 되긴 했는데.... 즐겁게만 살아도 인생이 짧은데, 서로 미워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panda78 2004-06-2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여동생 분 시댁 어른들도 그러시지만, 여동생 분도 대단하십니다.. 남편을 봐서라도 그렇게까지 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중간에 낀 사람이 제일 힘들잖아요.

sweetmagic 2004-06-2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가 받은 상처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지요. 뭐, 자기만 손해죠.

starrysky 2004-06-2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제분이 불쌍해요. ㅠㅠ 굉장히 책임감 있고 착하신 분 같은데.. 아이들도 엄마랑 아빠, 친가 사이에서 불편할 텐데..

stella.K 2004-06-20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느끼는 거지만 글이 참 천연덕스럽고, 웃음이나요. 마태님 그 나이에도 귀여움(죄송)을 유지하는 비결은 뭔지...호호.
마태님 말마따나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면 화해도 어려운데, 지금이라도 동생분, 시댁하고 잘 지냈으면 좋겠네요. 과거 보단 앞으로 이어질 관계가 더 중요하잖아요. ^^

LAYLA 2004-06-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제분이 참 좋은 남편이신거 같아요..근데 시댁은 재벌2세인가요? 왜 돈에서 걸고 넘어지는지..- _ -;; 결혼은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게 제일 좋은거 같은데..아닌가요? ^^

마태우스 2004-06-2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시댁이 재벌2세는 아닌데요, 아들을 잘 키워서 그걸로 한몫 잡으려는 의도가...
스텔라님/귀여움이 제 컨셉이긴 하지요^^ 님께 통하는군요!
스타리님/처가와 본가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보다, 제 여동생 때문에 고생을 더 많이 하죠.
착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인데...
스윗매직님/님처럼 관대한 분은 아마도 잘 사실 것임을 님의 페이퍼를 보면서 늘 느낍니다.
판다님/책 잘 받았습니다. 각오는 되어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