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선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남들처럼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살기를 바라신다. 난 그간 만들어놓은 조직을 관리하느라 이미 결혼, 심지어는 연애도 불가능한 인간이 되어 버렸는지라, 아직도 포기를 안하신 어머님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지난번 한번만 보고 그만두려 했는데, 엄마의 간절한 부탁에 마음이 움직여 버렸다. 그래, 한번만 더 뛰어주자.
지난번의 선이 벤지의 복지 향상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의 선은 순전히 효도 차원이다. 나이는 까먹었고, 직업은 수의사란다. 엄마의 말이다. "수의사니깐 벤지를 이뻐해줄 것이야!" 하지만 안과의사라고 눈병이 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지 않듯이, 병원에서 지겹게 개를 봐오던 그녀가 늙고 나만 좋아하는 벤지를 이뻐할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이럴 거다. 이왕 하는 거, 잘해보라고. 혹시 아주 이쁜 애가 나오면 내가 달라질지도 모르지 않냐고. 물론 그건 아니다. 그리 높지 않은 내 눈을 만족시킬 미모는 주위에도 많다. 게다가 내 나이에, 첫눈에 반한다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말한다. 조직관리와 결혼생활을 병행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내 조직의 규모를 감안하면 그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할 거 다 하면서 하는 결혼생활이, 그러니까 매일같이 술에 떡이 되어 들어와 얼굴 한번 볼 새가 없는 생활을 '결혼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래도 결혼할 마음이 있을 그 여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물론 난 아주 예의바르게 행동할 것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유머를 총동원해서 그녀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어찌보면 이런 게 더 잔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난번에 선본 여자가 아직도 내 전화를 기다린다는데-물론 중간에서 하는 얘기겠지만-너무 잘해주면, 그래서 혹시 내가 그녀의 마음에 들어버리면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내가 맘에 안든다 해도, 나처럼 하위 5%의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채였다"는 것도 영 불쾌한 일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아무리 해도, 난 오늘 그녀에게 잘해줄 것이다. 누군가에게, 특히 여자에게 못한다는 건 내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