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축구스타 로타 마테우스가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제가 내일은 수업도 있고 스케줄도 좀 밀려서 마태우스와 마테우스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글을 한편 썼습니다. 마테우스, 잘 다녀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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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곤혹스럽다.
나 자신도 그리 좋은 연구자는 아니기 때문인데,
그래도 비밀댓글로 질문을 남긴 그 젊은 친구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겠기에 몇 자 적어본다.
1. 나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논문의 대부분은 수동태다.
“새를 가져왔다”라면 “I took the bird"라고 쓰는 대신
“The birds were transported to the laboratory"(새가 실험실로 옮겨졌다)라고 써야 한다.
“Further study is needed"(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같은 표현도 마찬가지.
그러니 논문을 잘 쓰기 위해선 평소에도 주어를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저 회사를 내가 만들었다”라고 하지 말고 그냥 “저 회사를 설립했고”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훌륭한 연구자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2.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아이디어가 대단한 연구로 둔갑하는 일은 실제론 거의 없다.
그 대신 논문을 많이 읽고 생각을 해야 좋은 연구계획이 만들어진다.
그러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해서 당장 실험을 하기보단
차분히 기다리며 그 연구가 괜찮은지, 다른 누군가가 한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좋은 생각이 났을 때 이런 말을 해보자.
“지금은 때가 아니다. 기다려 달라.”
3. 남 탓을 잘해야 한다.
실험은 원래 잘 안돼야 정상이다.
운전은 열 번 잘하다 한번만 실패하면 끝장이지만,
실험은 매번 실패하다 한번만 성공하면 된다.
문제는 실패만 하다보면 좌절해서 연구를 때려치우기 십상이라는 것.
그래서 진정 훌륭한 연구자는 실패를 할 때마다 자신의 능력부족을 탓하기보단
남 탓을 잘 해야 실험실에서 오래 버틸 수 있다.
아무리 해도 결과가 안나올 때 3년 전에 그만둔 전임자를 탓할 수 있다면,
자신의 부주의로 실험실에 불이 났을 때 애꿎은 청소 아줌마 핑계를 댈 수 있다면,
그는 좋은 연구자가 될 기본적인 심성을 갖춘 사람이리라.
4. 군대를 안가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추신수 선수의 군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야구에서 2년이 얼마나 중요한 기간이냐고 강변한다.
연구라고 다를 게 없다.
한창 일할 때 군대에 2년 가 있다 오면 아이디어도 다 사라지고
손의 섬세함도 다 무뎌진다.
노벨상 수상자인 퀴리부인을 비롯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군대를 가지 않은 반면,
징병제가 실시되는 우리나라에선 한명도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못받았다는 사실은
군대가 연구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말해준다.
영장이 나오면 숨을 크게 들이켜 기관지를 확장시킨다든지
총구멍과 접한 쪽 눈을 감는다든지
하여간 어떤 방법을 쓰든지 군대를 가지 마시라.
군대는 연구의 무덤이니까.
5. 의리가 있어야 한다.
어느 대학에서 연구의 대가를 모셔올 때 그 대가만 달랑 오는 법은 없다.
그 사람과 같이 팀을 이뤄 연구를 하던 모든 사람들이 같이 온다.
심지어 같은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까지 다 데려온다.
이게 연구판에선 당연한 일인데,
그가 다른 대학으로 옮길 때도 다들 우르르 몰려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연구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의리를 기르자.
6.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학술지 중 최상위 학술지로 유명한 게 바로 <네이처>다.
네이처지에 논문을 내면 무조건 흘륭한 연구자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네이처에 논문을 내기 위해선 평소 자연(nature)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관심만 가져서 되는 게 아니라
주위에 개천이 있으면 막아 보기도 하고,
바닥을 뒤집어 보기도 하는 등 자연사랑을 몸소 실천에 옮기다 보면
네이처에 논문을 실을 날도 머지않아 올 것이다.
7. 말싸움에 능해야 한다
학문의 세계에선 싸움이 잦다.
시라소니는 주먹으로 싸움을 하지만
학자들은 연구결과와 거기서 도출한 이론으로 말싸움을 하는데,
지기라도 하면 다음날이면 소문이 쫙 난다.
그런 소문이 쌓이면 결국 연구계를 떠나야 하기에
연구자에게 말싸움 능력은 필수다.
주먹 싸움은 누가 봐도 결과를 알 수 있지만
말싸움은 우기기에 따라 진 사람이 이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훌륭한 연구자는 자신의 오류가 입증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오해다”라며 돌파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가 초중고 애들이라 할지라도 방심하지 말고 조져야 한다.
8. 돈이 많아야 한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연구했다는 얘기는 한물간 전설이고
요즘은 비싼 기계와 비싼 시약을 써야 좋은 논문이 나온다.
돈이 많아야 연구도 잘하는 시대가 된 거다.
사람 DNA의 전체 서열을 분석하는 기계는 한번 돌리는 데 3천만원,
열 명만 하려해도 3억이 든다.
그걸 다 연구비로만 조달할 수는 없다
대치동이나 도곡동 같은 금싸라기 땅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돈을 써가면서 연구할 수 있다면 훌륭한 연구자의 조건을 갖춘 거다.
9. 자기만의 성을 만들어야 한다
열심히 연구하는데 잡상인들이 자꾸 들어와 설치면 실험이 잘 될 리가 없다.
그래서 훌륭한 연구자는 자기만의 성을 갖기 마련이며,
퀴리부인 같은 경우는 연구실 주위에 컨테이너를 쌓아 잡상인들을 막은 일화가 있다.
대충 이 정도가 좋은 연구자가 되는데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 싶다.
좀 더 생각하면 몇 가지가 더 나오겠지만,
일단 이 정도 자질만 갖춰도 <네이처>는 무난하리라 본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떠올랐을지도 모르지만,
만일 그랬다면 그건 정말 오해다.
이 글은 단지 좋은 연구자의 조건을 나열한 것일뿐, 그 이상의 정치적 해석은 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