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왔구나..."

할머니는 날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다.

딱이 할 말이 없었던 나도 할머니 손을 붙잡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김혜리 기자는 <영화야 미안해>에서 치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알츠하이머병의 가장 깊은 슬픔은 오랫동안 알고 사랑해온 사람이 곁에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간다는 사실에 있다. 그 슬픔은 망각의 강을 건너는 자가 아니라 이 편 기슭에 남는 사람의 몫이다"

내가 어릴 적 그렇게 배려심이 깊고,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시던 우리 할머니는

치매가 진행됨에 따라 웬만한 인내심이 없으면 돌보기 힘든 분으로 변했다.

어머니는 가끔씩 내게 전화를 걸어 "힘들어 죽겠다. 지금 나가신다고 난리다. 벌써 네시간 째인데, 내가 말리니까 저렇게 내 욕을 하는구나"라며 엉엉 우셨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할머니를 모시고 있었던 건 돈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 밤, 어머니는 더 이상 그렇게 살다간 안되겠단 생각을 하셨고,

결국 할머니는 일산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집에서 심심하게 계시느니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건만,

오늘 가보니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비교적 시설은 괜찮았고, 돌보는 사람도 좋은 분이셨지만,

할머니는 그곳이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귀가 어두운 탓인지 다른 사람들과도 전혀 어울리지 못했다.

"좀 좋아지면 곧 가마."라고 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는 겉으로 보기엔 그리 심각한 치매가 아니었다.

날짜 같은 건 잘 모른다 해도, 화장실 정도는 당신 스스로 가실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할머니는 제일 멀쩡한 분들이 있는 방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한 이틀쯤 지내니 그게 아니라는 걸 병원 측에서 깨달은 모양이다.

"원래 그렇게 잠을 안주무세요? 30분마다 한번씩 깨서 시끄럽게 해요."

그러면서 간병인은 방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싸온 짐을 풀었다 묶었다 십여차례 반복하는 걸 본 다른 할머니가 이러신다.

"아유 정신없어."

배가 고프다고 해놓고선 막상 밥을 차려드리면 "배불러서 안먹겠다"고 하는 건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요컨대 할머니는, 병원에서도 돌보기 피곤한 환자가 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할머니한테 인사를 드리고 병원을 나왔을 무렵

병원 측에서 전화를 했다.

"혹시 할머니 모시고 나가셨어요? 할머니가 안계세요."

날 찾겠다고 나가신 모양이다.

십여분 후 1층에서 할머니를 찾았다고 전화가 왔을 때,

난 "간병인한테 할머니를 부탁하고 가야지, 그러면 되냐"고 야단을 맞았다.

집에 오는 내내 난 김혜리 기자가 쓴 그 구절을 생각했다.


* 덧붙이는 말

전날 어머니가 병원에 갔을 때,

병실 분들한테 내가 의대 있다고 자랑을 하셨나보다.

오늘 다른 할머니 한분이 나보고 손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들끼리 이러신다.

"외대 다닌다던 그 손자분이구나."

"외대면 좋은 대학이지. 공부 잘했나봐."

졸지에 난, 외대생이 되었다.

뭐 그것도 나쁜 건 아니라 가만 있었는데,

거듭 말하지만 그 병실 분들은 다들 상태가 좋은 분들이었기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신 것 같다.



* 덧붙이는 말 둘.

사실 우리는 7월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할머니는 3급 판정을 받았는지라 순위에서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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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8-02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우리 나라에서도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인데, 저도 참 뭐라고 단정지어 얘기를 못 하겠더군요. 제가 환자로 입원한다고 할 때와, 식구중 누군가 환자가 있어 제가 돌봐야하는 입장이라고 가정할 때 드는 생각이 꼭 같지가 않다는게 솔직한 심정이거든요.
그나저나 할머님때문에 마음이 안 좋으시겠어요...

Mephistopheles 2008-08-02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교적 편안하게 3일간격으로 돌아가신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자식들 생각 끔직하게 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점점 좋아지셔야 할텐데 말입니다. 쩝..

바람돌이 2008-08-0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시할머님도 몇달 전부터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다행히 집 가까운 곳이라 자주 찾아뵐수 있는곳이기도 하고, 원래 집에 계셔도 워낙에 사람이 없으니 적적하시다가 병원에서는 옆에 사람도 있고 하니 좋다고 하시네요. 다른 어떤 병보다 치매는 참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는 병입니다.

최상의발명품 2008-08-03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한꺼번에 마태님 블로그에 있는 글을 읽었는데
할머니 얘기 많이 하신 기억이 나네요.
할머니께서 마태님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겠더라구요.
할머니 건강 좋아지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외대 얘기에 웃고 갑니다.^^

하루(春) 2008-08-03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님 상태가 좀 좋아지시길... 마음 아프네요.

그런데요. 김혜리 기자가 쓴 그 글의 영화가 혹 '노트북' 아닌가요? 갑자기...

순오기 2008-08-03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 얘기에 아침부터 짠했는데~~ 외대 애기에 푸하~~ 웃었어요.
그래요, 이렇게 아픈 마음은 빨랑 빨랑 풀고 살아야 돼요~~~
할머님도 고생하시고 어머님도 많이 고생하셨네요~~ ㅜㅜ
이젠 이런 게 다 남이 아닌 우리들 얘기에요, 곧 내게도 닥쳐올 일...

야클 2008-08-03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 생각에 맘이 아프겠구나... 힘내라 친구.

그리고 얼굴을 직접 보고도 "외대를 졸업했다던 손자"라고 안하고 "외대 다닌다던 손자" 라고 말씀들 하셨다고? 그새 대학생 얼굴로 회춘했나봐? 역시 결혼이 좋긴 좋군 ^^

비로그인 2008-08-03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웨이 프롬 허'를 봤더랬습니다. 아내가 치매에 걸렸고, 남편은 괴로워합니다. 마치 이 사람의 발가락, 무릎, 허리, 손가락, 팔목이 천천히 허공에 사라져서 마지막엔 껍데기조차 남지 않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언젠가 내가 그렇게 되면, 젊은 날 꽁꽁 숨겨두었던 모든 감정이 폭발하면, 그래서 모두를 피곤하게 만들면 어쩌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까지 버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겁이 났습니다.

요양소에 가시길 잘 하셨습니다. 모두가 지치게 되어(이런 말, 마음아픈 것이지요) 서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애정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할머니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니까요. 나아지시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게 안된다면, 상태가 더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2008-08-03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08-08-04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아는 지인의 친정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할머님을 간병하시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이야기를 소상하게 전해준적이 있었어요.길고 긴 병엔 남는 효자가 없다고 모든 식구들이 지치게 되고 나중엔 치를 떨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차라리 요양소가 더 낫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하긴 합니다만.....
암튼...할머님의 건강이 호전되셨음 좋겠어요.

마태우스 2008-08-04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나무님/맞아요 긴병엔 효자가 없죠.. 저희 엄니가 참 많이 고생했구나 싶었어요. 저희 아버님도 어머니를 많이 괴롭히셨는데, 할머니까지 그러시니 엄마가 힘드신가보더라구요. 오늘도 다녀왔는데, 다른 환자분들이 노골적으로 뭐라고 합디다. 새벽에 삼십분마다 일어나서 왜 다 자냐고 소리지른다고... 거기서 쫓겨나면 어쩌나 싶어요.
속삭님/님 닮아서 어여쁘더군요^^ 한 생명이 탄생한다는 건 어찌보면 신기한 일이지요. 그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더더욱 신기하구요. 힘내시길!
주드님/네 엄니도 버틸만큼 버티셨던 것 같아요. 근데 오늘 가봤더니 간병인이 할머니가 너무 힘이 센 게 문제라네요. ㅠㅠ 다른 방으로 옮길 것 같다고 얘기하더군요. 이를 어쩌면 좋을지....
야클님/의대에서 근무한다는 걸 의대 있다, 이렇게 표현하잖나. 내가 젊어보이는 걸 좋아해줘야 좋은 친구지!!! 지금 질투하는 거 다 안다^^
순오기님/맞아요 우리들 얘기가 될 수도 있지요. 근데 우리들은 그런 생각을 되도록이면 안하고 살려고 하죠... 제가 그리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흑, 사는 건 정말...
하루님/오옷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찾아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노트북이겠죠? 그 시기에 나온 치매 영화가 몇 안되니까... 어케 지내시는지 궁금!
최상의 발명품님/할머니가 절 참 예뻐해주셨죠. 제가 좀 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죠. 자식들은 다 그런가봐요. 그래서 자식이 쓸데없다는 거... 밤에 잘 주무시고 밥만 잘 드시면 좋겠는데..
바람돌이님/맞아요. 의식만 괜찮으시면 다른 사람들도 계신 요양소가 더 좋을 수 있죠. 할머니도 귀가 그리 나쁘지만 않았다면 좀 나았을 텐데... 하여간 갑갑해요..
메피님/어...3일 간격으로 돌아가셨다니, 금술이 좋으셨나봐요. 덕담 감사합니다 꾸벅
hnine님/저도 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쫓아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좋았어요. 근데 어머니 말씀 들으니까 진작 모셨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도 이제 내년이면 70이신데, 그간 너무 힘드셨죠... 나이듦이란 정말 슬픈 거 같아요.

sooninara 2008-08-07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정할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셨는데..정말 가정을 망치는 병이더군요.
지금처럼 요양원에 모시는 분위기가 아니였던때라 친정엄마가 엄청 고생하셨어요.
치매는 정말 전문요양원에 모셔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님은 정말 속상하시겠지만요.ㅠ.ㅠ

세실 2008-08-07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대 나온 사람 우리집에 있어요. ㅎㅎ
3급은 제외군요. 친구 시엄니도 요양원에 모셨는데 거의 실비만 내면 된다고 좋아하던데.....
에휴 맘 많이 아프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