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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는 경영학과를 나왔다. 작가는 모름지기 문창과나 국문과를 나와야 하는 줄 알았던 내게 김영하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난 분자생물학과를 나온 심윤경이 멋진 소설로 데뷔했을 때, 덜 놀랄 수 있었다.
김영하는 재주있는 이야기꾼이다. 평단에서 그의 평가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은 기본적으로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늘 재미있는 소설을 들고 우리 곁으로 오는 그가 좋다. <빛의 제국>은 단 하루 동안 한 가족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391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하루 동안 커버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기우였다. 처음에는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중반에 접어들며 서서히 이야기에 빠져든 난 다음 장면이 궁금해 쉴새없이 책장을 넘겼다. 이렇듯 논리 정연하게 이어지는 소설을 쓰려면 얼마나 내공을 쌓아야 할까. 이야기를 풀어가다 조금만 막히면 등장인물을 죽이거나 외국으로 보내버리곤 했던 나로서는 등장인물에게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부여하는 그의 재능이 부럽다.
인상깊은 대목 하나. “역사상 유명한 스파이는 모두 실패한 스파이다. 최고의 스파이들은 절대 발각되지 않고, 조용히 은퇴해 노후를 즐기다 죽는다(345쪽).”
그리고 공감하는 대목. “당신 마음속엔 고통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이 있어. 자기 고통을 절대화하고 그것만 최고인 줄 아는 이기주의자. 독선주의자. 당신은 그래, 파쇼야.(349쪽).”
내가 김영하에게 동의하지 않는 대목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현재 우리나라인데, 지금 정부를 가리켜 ‘좌파 정부’라고 했다는 거였다. 과거 안티조선에 대해 김영하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 나는 역시나 그와 내가 사회를 보는 눈이 다르다는 걸 재확인하게 되었는데, 소설가야 소설을 재미있게만 쓰면 되겠지만, 그래도 좌파와 우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은 있어야지 않을까 싶다. 명망 있는 작가가 이러니 시민들 전체가 좌우 개념을 헷갈려하는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