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같이 밥을 먹다보면 피곤한 일이 한두개가 아니다. 당신 밥을 팽개치고 내게만 관심을 보이는 게 할머니의 컨셉인데, 내가 젓가락을 대는 반찬마다 내 쪽으로 밀어주시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국 좀 더 먹어라.”란 말을 평균 다섯 번쯤 하고, 그 중 두 번은 밥을 드시다 말고 내 국을 뜨러 가신다. 밥을 더 먹어라는 말도 그와 비슷한 횟수이니 도합 열번이다. 밥을 먹다말고 내게 오시더니 내가 아무렇게나 입는 잠옷의 깃을 세워준다든지, 갑자기 일어나더니 내가 먹지도 않는 반찬을 접시에 담아와 내게 내미신다. 생선을 안먹는다고 누차 말해도 할머니는 정성스럽게 생선의 살을 발라서 내 앞에 놓아주신다. 할머니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솔직히 피곤하다.


내가 기거하는 방을 정리해주신다며 내 물건을 없애 놓는 것도 할머니의 특기다. 한번은 내가 방바닥에 놔둔 열쇠가 없어져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찾은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까 할머니가 내 가방에 넣어 두신 거였다. 입으려고 꺼내둔 내 옷을 엄마 장롱에 넣어 두기도 하고, 구겨서 버린 찌라시와 광고성 편지들을 정성스럽게 펴서 내 머리맡에 놓아두시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엄마와 난 할머니가 일을 그만하고 당신 삶을 사시길 바라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뭔가를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신다. 그게 바로 당신이 살아오셨던 삶이니까.


내가 아는 아주머니 한분은 내년에 100살이 되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신다.

“밥상 거두고 나면 앉은 채로 금방 졸다가, 저녁상 차려서 갖고 가면 두리번거리다가 이러셔. 날 샜냐?”

우리 할머니가 TV를 안보는 것처럼, 그 시아버지도 TV를 안본 채 심심하게 하루를 보낸단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와 그분은 무척이나 대조적이어서, 그 시아버지는 손 하나 까닥 안한 채 하루를 보내신다. 오죽하면 점심을 차려놓고 가도 밥솥에서 밥을 푸는 게 싫어서 점심을 굶으실까.

“시아버지, 제가 시아버지 점심 때문에 아무 데도 못가야 해요?”라고 논리적인 설명을 해봤자 삐진 시아버지 마음을 풀 수가 없다.


난 할머니가 아무 일도 안하시길 바라지만, 막상 아무 일도 안하는 시아버지를 모시는 아주머니의 마음도 편하진 않다.

“젊어서부터 일은 안하고 몸관리만 해서 아주 건강하셔. 그 덕분에 시어머니랑 가족들은 아주 골병이 들었지.”

예천 양반 출신인 그분은 젊어서부터 아무 일도 안한 채 큰소리만 쳤단다. 시어머니가 죽어라 농사일을 하다가 돌아오면 “자네 이리 좀 와보게. 어서 내 다리 좀 주물러.”라고 하셨다니 할 말을 잃는다. 여름에 더울 때 더위에 지친 시어머니가 집에 와보면 모시옷을 입고 방안에 누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나. 그래서 시어머니는 “저 영감이 어서 죽어야 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데,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시어머니는 8년 전에 돌아가시고 만다 (그래도 88세까지 사셨으니 장수하신 거지만). 자신의 친구분이 목욕탕에서 죽고 난 뒤부터 공중 목욕탕을 안간다는데, 그 아주머니는 그걸 이렇게 표현한다.

“안씻어서 그렇지 아주 건강하다니까.”

아주머니의 말이다.

“내가 시아버지 모시는 걸 짐스럽게 생각하면 아마 하루도 못살 거야. 그냥 집에 가는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사니까 속이 편해.”


아무것도 안하시고 지금도 안하시는 시아버지, 아주머니는 그분이 시어머니를 고생시키는 걸 보면서 미워하기 시작했다는데, 지금 내 곁에 있는 할머니는 어릴 적 날 위해 헌신하셨고, 좋은 것도 많이 사주셨고, 지금도 나를 위해서 피곤할 정도로 배려를 하시는 분. 내가 할머니를 피곤해해서야 되겠는가. 할머니가 반찬그릇을 내게 밀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다시 할머니에게 밀곤 했던 오늘 아침이 부끄러워진다. 할머니, 말로만 이래서 죄송하지만....앞으로 잘할께요.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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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3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레이드 멘트 나왔네요, 앞으로 잘할께요....
지금처럼 하시면 될거에요.

레와 2006-12-3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님은 일을 하시는게 아니라,
단지 당신 삶을 살고 계신거 뿐인데..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오셨던 그분 삶을 받아 드리기가 싶지만은 않겠지요.

어떻게 보면 '포기'와 '수긍'이란 말이 같은 의미일지도 몰라요.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요.

지금도 충분히 효로 충만하세요. 지금처럼만 하세요!

아흥.. 힘들때마다 안길 수 있는 할머니 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프레이야 2006-12-3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한 마태우스님/ 할머님 오래오래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님, 새해엔 더욱 신명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모1 2006-12-3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님이 건강하시길 빌면서..승연님의 트레이드 멘트 나왔네요..란 말에 묘한 웃음(?)을 지으면 글남깁니다.

짱꿀라 2006-12-3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님이 오래오래 사셨으면 합니다. 건강도 하시구요. 마태우스님의 착한 마음씨가 저에게까지 전달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행복하시구요.

마노아 2006-12-31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만큼 하시는 분도 별로 없을 거예요. 님 멋쟁이!

moonnight 2006-12-31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처럼만 해도 일등 효손이십니다. ^^ 저도 새해엔 부모님께 더 잘 해 드려야 할 텐데.. 마태님 글에 부끄러워지네요.

무스탕 2006-12-3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께 엄마랑 다른 투정을 부리는건 누구나 마찬가지인거 같아요.
저도 할머니 살아계실때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불만도 있고 했었죠.
그렇지만 돌아가시고 나니 참 보고싶더라구요.
그냥 맘에서 우러나는대로 할머니를 대하시면 할머니도 아실거에요.
손주분의 귀한 마음을요...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손주분 달달 볶으세요~ ^^*

2006-12-31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7-01-0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님 서재에 답글 달았어요...
무스탕님/잘 못하고 후회하고...또 잘 못하고 후회하고.. 이런 삶의 반복인 것 같아요... 지금도 후회가 가끔씩 되는데 돌아가심 더하겠지요... 그러지 말아야 할텐데..
달밤님/새해 목표는 달밤님께 더 잘하는 거라는...^^
마노아님/아니어요...흑. 님이 아시는 것만큼 잘해야 할텐데...
산타님/부끄럽습니다. 착한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1님/동생이 아프셨을 때 님이 하시는 거 보구 가족이란 저런 거구나 부끄러웠어요...
배혜경님/전 아직 멀었습니다....많은 지도편달 바랍니다 꾸벅
레와님/막상 그 할머니 품이 있는데 전 잘 안기지 못하네요....지금 한번...
승연님/지금처럼 하면 넘 부족하죠...올핸 좀 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글구... 그게 제 트레이드멘트란 걸 눈치채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