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태양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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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소.

인간은 로봇과는 달리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면 공격성을 드러내는 법이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서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잖소.”

2056년 온 세계는 기후 재앙으로 끔찍한 지경에 이른다. 이미 녹아버린 빙하로 인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나라도 상당수가 되다 보니, 그로 인한 난민들을 받아들여주는 나라와 난민 입국을 불허하는 나라가 생겨난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 이후 계속되는 전염병은 또 다른 바이러스로 진화하고 공격성을 심하게 지닌 검게 탄 피부에 빨간 눈을 가진 좀비들이 대한민국 곳곳을 점령하게 된다.

한 아파트에서 한 남자가 깨어난다. 머리가 아프지만, 아무런 기억이 없다. 그나마 로봇 폴리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는 터라, 폴리를 불러 현 상황을 확인한 남자는 자신이 한 달 만에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AI 개발자인 박기범 박사. 그는 우선 자신을 수술했던 윤 박사를 통해 자신의 상태에 대해 듣게 된다. 아내인 고영희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때 연결된 전화에서 영희는 미국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좀비들의 창궐로 현재 모든 교통수단들은 멈춰있는 상태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현재 다니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출발하는 배뿐인지라, 기범은 그 배를 타고 가기로 한다.

뇌 수술을 받은 기범은 자신의 연구가 성공했는지를 알고 싶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AI 네트워크를 연결해 보지만, 계속 실패를 거듭하고, 함께 연구한 세계 각국의 연구진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기범의 쪽지에 답을 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자신의 차에 있는 USB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내려갔다가 한무리의 좀비 떼어를 보고 겨우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 그날 밤. 기범이 사는 아파트에 온라인 주민 회의가 열리게 된다. 자신이 문을 열어서 좀비가 들어온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탐탁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던 차에, 아파트 보안요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같이 미국으로 떠나자는 연락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같이 떠날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유는 좀비로부터 도망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란다. 나이 많은 노인과 챔피언, 아이와 아이 엄마까지 총 6명은 겨우 아파트를 벗어나 부산으로 향하지만 가는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이미 출생률의 감소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좀비 떼어의 등장으로 사망률이 출생류를 훨씬 앞지르는 상황이 된다. 이 와중에 미국 대통령 대니얼은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뜻을 김성혁 대통령에게 밝힌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무기와 군인들을 넘기면 대한민국 국민이 미국으로 건너오는 것을 수용하겠다고 한다. 물론, 그들과 함께 박기범 박사가 같이 입국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한편, 부산으로 출발한 이들은 일본의 화산 폭발과 지진, 쓰나미 등으로 유일한 배편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보안요원이라 말했던 김승만은 사실 한국항공 민항기 조종사로 180여 명이 항공기를 타고 미국으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무리에게 전한다. 하지만 민항기를 훔치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기범과 전직 국방부장관 출신인 노인 정창수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하지만, 폭풍우 속에서 김승만과 세계적인 프로그래머 마크툽 김지섭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다. 결국 이들은 함께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하지만, 좀비 떼어의 출현으로 이들의 이동은 큰 어려움에 직면하는데...

“얻는 거? 우리가 지금 뭘 얻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당신들이 1년 365일 틀어놓는 에어컨 때문에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졌어.

일자리를 잃은 내 가족들은 전기 요금을 감당할 수 없어 에어컨도 켜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에 익어갔고 말이야.

하루만이라도 시원한 곳에서 푹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밤 기도했지만, 우리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40도가 넘는 열대야가 계속됐어.

낮이고 밤이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뜨거워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우리들의 처지를 당신들이 아느냐고!

우리가 얻고 싶은 건, 그저 사람답게 사는 거… 그냥 삶뿐이야.”

사실 책을 읽을수록 이 모든 상황의 진실이 밝혀진다. 인과응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올여름도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의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었다. 나 역시 집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에어컨을 계속 켜고 살았으니 말이다. 이들의 울부짖음 앞에서, 50도가 넘는 평균기온 속에서 결국 끔찍한 재앙을 마주한 우리의 모습이 그저 소설 속 한 장면으로 치부하기에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기후변화가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소.

인간은 로봇과는 달리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면 공격성을 드러내는 법이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서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잖소."

"얻는 거? 우리가 지금 뭘 얻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당신들이 1년 365일 틀어놓는 에어컨 때문에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졌어.

일자리를 잃은 내 가족들은 전기 요금을 감당할 수 없어 에어컨도 켜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에 익어갔고 말이야.

하루만이라도 시원한 곳에서 푹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밤 기도했지만, 우리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40도가 넘는 열대야가 계속됐어.

낮이고 밤이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뜨거워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우리들의 처지를 당신들이 아느냐고!

우리가 얻고 싶은 건, 그저 사람답게 사는 거… 그냥 삶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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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 흔들리는 삶을 위한 괴테의 문장들
임재성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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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항상 껍질을 벗고 새로워져야 하며, 항상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려고 해야 한다.

한층 새로운 자아를 만들기 위한 변화를 평생 동안 멈추지 마라.”

한참 쇼펜하우어 열풍이 불고 있다. 이 책은 괴테의 문장들이 담겨있지만, 니체와 쇼펜하우어도 등장한다. "인간이 되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라는 제목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는데, 한편으로 내가 받아들인 그 의미가 맞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책의 제목을 내가 느낀 식으로 다시 붙여보자면, 삶을 산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라고 붙이고 싶었다. 문제는 힘든 일입니다로 끝나면 안 된다는 데 있다.

삶이란 것 자체가 원래 고통이라고 쇼펜하우어는 누누이 외친다. 하지만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아닌 괴테의 책인 이유가 다음에 있다. "그럼에도 삶이 지속된다면 희망은 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 남아있던 것이 희망이었듯, 괴테 역시 삶에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또 오늘 하루를 버텨야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무척 피곤하기 때문이다. 출근 준비와 두 아이의 등교, 등원 준비를 동시에 한다. 시간이 부족하기에, 내 입에 들어갈 무언가를 넣을 시간을 과감히 뺀다. 차례차례 아이들을 보내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나면 온몸이 땀 범벅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한다. 늘 문을 열고, 불을 켜는 일은 내 몫이다.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하고 오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점심시간이 되고, 쫓기듯 오후 업무를 하고 다시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둘째의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둘째를 픽업하고, 학원을 마치고 오는 큰 아이까지 데리고 오면 야근이 시작된다. 먹이고, 씻기고, 치우고, 내일 보낼 것들을 챙기고, 큰 아이 숙제를 봐주고 나면 밤이다. 가끔은 내가 선택한 삶에 답답함을 느낀다. 뭐 하나만 튀어나가도 삶 전체가 뒤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더 강박적으로 스케줄에 맞춘다. 아이들의 다른 반응(목욕하기 싫다거나, 반찬 투정을 하는 등)에 나도 모르게 격한 반응이 오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

종교와 의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고통"의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고통의 문제가 사라지는 순간, 제일 먼저 사라질 것은 종교와 의학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고통은 필요악일까?

어리석게도 인간은 고통 속에 있을 때라야 비로소 자기 내면을 직시한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되었지?’,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라며 자조 섞인 의문을 던진다.

고통의 이유를 발견하려는 몸부림이다.

아이러니다. 고통 앞에서 인간은 성장한다. 그렇기에 고통은 계속 존재한다. 적어도 이 한마디가 뼈 때리는 나름의 위로가 되었다. 책 안에는 이런 문장들이 상당수 있다. 마음에 닿는 문장들을 적다가 책 전체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기에, 이보다 더 진하고 깊은 맛은 직접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았던 괴테는 과연 이런 내 괴로움을 알까? 속속들이 같은 경험을 하진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또 끄덕여지고, 눈물이 나는 건 책 안에 글귀에서 위로를 받아서가 아닐까 싶다. 한 줄 건너 한 줄에 또 멈춘다. 다행이라면 그냥 방관하고, 포기하고, 주저앉지 않도록 다독인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내 삶을 채찍질하기 보다, 다른 시각을 선사해 준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1. 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분

2. 자살 충동에 휩싸이는 분

3. 하루하루 버틴다는 기분으로 살고 있는 분

삶이 늘 행복하고, 매일 꽃길만 걷고 있다면 오히려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쓴맛이 나는 삶을 겨우겨우 헤엄치듯 살고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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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
고은지 지음, 장한라 옮김 / 엘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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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훨씬 더 큰 전쟁이라는 숲속에서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전쟁의 나뭇가지를 딛고 서 있었다.

무언가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느낌에, 성호는 인숙의 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가장 내밀한 도덕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p.47

 이슈가 되고 있는 작품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읽었다. 한국 밖으로 나가 살아본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한국을 떠난 주인공들이 외국에서 겪는 각종 인종차별의 모습들이 안타까웠다. 왜 이 책을 읽기 전에 파친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고은지가 드라마 파친코의 작가진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기대가 커서였을까? 중반부까지는 혼란스러웠다. 한 집안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 나니, 또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 생각보다 많은 인물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그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찾아내는데도 정리가 필요했다. 덕분에 초반에 몰입하기가 좀 힘들었다. 한국의 시대상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대놓고 사건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아픈 숫자들이 등장하기에 숫자만 봐도 당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가령 1980년(광주민주화운동), 1995년(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세월호 참사)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요한과 단둘이 살던 인숙은 성호를 만난다. 변변치 않은 형편의 성호는 인숙을 만나기 위해 간 곳에서 우연히 인숙의 아버지 요한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첫인상부터 썩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성호였지만, 인숙과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요한에게 할 정도로 인숙을 사랑했다. 물론, 인숙 역시 그랬다. 결국 둘은 결혼을 허락받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요한의 행방불명과 죽음. 요한의 죽음은 정말 당혹스러웠다. 군사정권과 독재를 넘어서자 또 다른 군사정권이 등장한다.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요한은 잡혀가고, 고문을 당하고 다행히 풀려난다. 하지만 풀려나자마자 뛰었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죽는다. 요한을 총으로 쏜 교도관들은 자신의 죄를 무마하기 위해 요한이 공산주의자로 보였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껴 맞춰 그의 죽음을 은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성호와 결혼을 한 첫날밤. 성호는 다음 날 미국으로 떠난다고 통보를 한다. 그리고 그와 첫날밤을 치른 후 성호는 막 결혼한 신부 인숙과 어머니 후란을 두고 떠난다. 졸지에 시어머니와 같이 살게 된 인숙은 임신을 하게 되고, 만삭에도 닭을 잡으며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아들을 출산한 인숙은 5주 된 헨리와 시어머니 후란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여전히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짓을 한다. 왜 그러는 걸까? 도대체 왜!!! 어떻게든 아들과 며느리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며느리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하지만 남편 성호는 그런 시어머니를 제지하기 보다 그냥 방관한다. 그 모든 말은 온전히 인숙이 감당해 내야 한다. 인숙과 성호에 대를 이어 헨리와 아내 제니 그리고 하루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사 곳곳의 이야기들과 닿는다. 


미국에서 만난 로버트는 바로 인숙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로버트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강제징용, 제주 4.3사건과 6.25전쟁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성호로부터 방치된 인숙이 유일하게 쉼이 되는 인물이 바로 로버트였다.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나라에서도, 또 넓은 세계 속 우리의 입지에도 진전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국을 떠났을 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한국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p.233

 현대사 속의 굵직하고 끔찍한 상처들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역사의 순간들을 관통하는 인물들은 그 안에서 그 모든 상처들을 몸으로 체득한다. 어느 누가 아프지 않을까? 묵묵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맞을까? 상처를 방관하고 포기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그래서 더 가슴 아프고 슬프기도 했다.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일등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또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 깊은 여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들은 훨씬 더 큰 전쟁이라는 숲속에서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전쟁의 나뭇가지를 딛고 서 있었다.

무언가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느낌에, 성호는 인숙의 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가장 내밀한 도덕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 P47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나라에서도, 또 넓은 세계 속 우리의 입지에도 진전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국을 떠났을 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한국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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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꽉 잡는 한자 어휘 365 - EBS 대표 국어 강사 강용철 선생님의
강용철 지음 / 비타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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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뭐냐고 묻는다면 문해력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사실 별반 관심이 없던 이 단어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다분히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때문이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로부터, 요즘 초등학생 아이들이 수학 점수가 안 나오는 이유가 수학을 못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서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부랴부랴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을 사서 아이와 함께 풀어봤다. 생각해 보면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와 문제의 난이도 면에서 그리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왜일까? 오히려 우리 때는 지금처럼 도서관도 많지 않았고, 집에 전집을 들이지 않는 이상 책을 마주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왜 우리 아이들은 문해력의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일까?

다분히 영상매체의 영향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만하다. 늘 빨리빨리 바쁘게 넘어가는 영상에 길들여져 있기에,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이해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우리 말의 상당수를 구성하고 있는 한자어를 공부하는 것은 문해력을 기르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책 안에는 매일 한 페이지 분량의 한자어가 등장한다. 한자의 음과 뜻, 그리고 단어의 실제 뜻을 풀어서 설명해 준다. 이 단어를 사용한 문장과 실제 한자를 써볼 수 있는 칸도 있다. 사실 이 책은 한자를 외우고 공부하는 책보다는,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한자단어들을 좀 더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한자 공부 책이라면 써볼 수 있는 칸을 더 많이 만들어둘 테지만, 그렇다면 아이들 입장에서 한자 공부 책으로 혼돈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또 공부가 되어버리니 방치될 여지가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중반부에 등장하는 관련어 목록과 실력 쑥쑥 QUIZ다. 해당 단어와 관련 있는 활동을 통해 단어의 의미나 뜻, 사용방법을 좀 더 가까이 배울 수 있다. 가령 93번째 단어인 신분의 경우는 자신의 미래 명함을 만들어보는 퀴즈가 등장한다. 아이 입장에서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심심(甚深-심할 심, 깊을 심) 한 사과 역시 문해력의 문제로 불거진 것이라 생각한다. 심심의 한자 뜻을 알았다면, 문제의 여지가 안되었을 사건이다. 책 안에도 충분히 헷갈릴 수 있는 상황들이 "문해력으로 성장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가령 금일 급식 공지에서 금일을 당일(오늘)이 아닌 금요일로 이해하고, 고지식하다는 말을 소위 말하는 FM이 아닌 지식이 높다(高)로 이해한 친구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실제 뜻을 아는 사람은 웃어넘길 수 있는 유머로 보이겠지만, 글쎄... 이래서 문해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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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복
리샤르 콜라스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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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야, 볼프강, 확실하지 않은 길이라면 처음부터 가지 말아야 해.

맹세는 명예의 문제거든.

주일 프랑스 대사관 공보담당관인 나 R.C는 프랑스 종군기자인 에밀 몽루아로 부터 소포를 받게 된다. 그리고 소포를 보낸 후 에밀 몽루아는 사망한다. 그는 할복을 했는데, 그의 시신이 발견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가 인 편으로 보낸 상자 안에는 수첩 36개가 들어있었고, 그 안에는 편지 한 통이 담겨있었다. 자신이 죽은 이유와 자신의 삶에 대해 쓴 것이었다.

사실 에밀 몽루아의 본명은 볼프강 모리스 폰 슈페너다. 프랑스 귀족 출신 어머니 에메랑스는 피아노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독일로 유학 보낸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메랑스는 독일인 의학생인 볼프강 폰 슈페너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모리스는 남부럽지 않게 부유한 생활을 한다. 사실 모리스의 아버지는 나치 독일의 자부심을 가진 의사였고, 할아버지 역시 약품을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그 약품이 유태인 수용소로 알려진 아우슈비츠에 공급되었다.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독일은 제2차대전을 벌인다. 베를린의 살던 모리스의 아버지는 자신의 집 지하에 벙커를 만들어서 폭격에 대비한다.

한편, 우울증에 시달리고 친구도 없는 모리스를 위해 비슷한 나이의 한 소년이 친구로 집에 오게 된다. 프랑스어를 쓰는 유대인 출신의 키가 큰 아이의 이름은 에밀이었다. 에밀을 통해 조금씩 주변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되는 모리스. 아버지의 대학 동기인 일본 사무라이 출신의 의사 겐소쿠가 초대를 받는다. 그리고 일본 대사관이 폭격을 받아 모리스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 겐소쿠의 방은 모리스의 옆방이었다. 두 방이 연결된 비밀 문 덕분에 모리스는 몰래 겐소쿠의 방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렇게 둘 사이에는 비밀이 생긴다. 겐소쿠는 모리스에게 일본 금화 동전을 하나 선물한다. 훗날 일본에 있는 자신의 아들 겐자부로와 친구가 되어달라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연합군에 의해 일본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폭격이 있어 겐소쿠의 가족들이 다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후 겐소쿠는 모리스의 집에서 할복을 하게 된다. 모리스의 아버지 앞으로 편지를 남긴채 말이다. 모리스는 겐소쿠의 죽음을 가장 먼저 목격한다. 그리고 그가 자살을 한 이유가, 사무라이이자 조국 일본의 충성해야 하는 사명과 의사로서의 사명의 충돌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이 베를린도 소련 연합군에 의해 큰 폭격을 받고, 전쟁의 말미에 집으로 들어온 아버지가 자살을 종용하다가 결국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 또한 자살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에밀과 함께 지하 벙커로 도망친 모리스는 겨우 살아남는다. 지하 벙커에서 지내다 밖으로 나온 에밀과 모리스는 자신의 집 거실에서 자고 있던 군인 3명을 마주하게 된다. 프랑스어를 쓰는 그들이 프랑스인 용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과 함께 프랑스로 도망치고자 한다. 도망 중, 지뢰를 밟은 에밀이 사망하고 혼자 남겨진 모리스는 최대한 사람을 피해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오두막 앞에 쓰러진다. 마음씨 착한 주인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린 모리스는 같이 도망쳤던 프랑스 군인이 적어준 주소를 가지고 그를 찾게 되고, 브종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클레베로 신분세탁을 한 그를 따라 에밀 몽루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기자가 되고 6.25전쟁을 취재하러 한국으로 향하는데...

책 안에는 참 많은 세계의 전쟁 이야기가 담겨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베트남전쟁과 우리나라의 6.25전쟁도 만날 수 있다. 에밀은 직. 간접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다. 그리고 전쟁이 남긴 끔찍한 상황들을 직접 목도하고 스스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아버지가 전쟁의 가해자의 입장에 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에밀은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랬기에 그는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

과연 에밀은 겐소쿠와의 약속을 지켜낼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좀 염려가 되었다. 에밀이라는 인물이 독일인이고, 간접적이지만 마루타와 같은 생체실험과 연관이 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리에게는 예민할 수 있는 6.25전쟁과 이념에 관한 내용이 책의 반을 차지한다. 물론 좀 작위적인 설정이 담겨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사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다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볼프강, 확실하지 않은 길이라면 처음부터 가지 말아야 해.

맹세는 명예의 문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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