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복
리샤르 콜라스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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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야, 볼프강, 확실하지 않은 길이라면 처음부터 가지 말아야 해.

맹세는 명예의 문제거든.

주일 프랑스 대사관 공보담당관인 나 R.C는 프랑스 종군기자인 에밀 몽루아로 부터 소포를 받게 된다. 그리고 소포를 보낸 후 에밀 몽루아는 사망한다. 그는 할복을 했는데, 그의 시신이 발견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가 인 편으로 보낸 상자 안에는 수첩 36개가 들어있었고, 그 안에는 편지 한 통이 담겨있었다. 자신이 죽은 이유와 자신의 삶에 대해 쓴 것이었다.

사실 에밀 몽루아의 본명은 볼프강 모리스 폰 슈페너다. 프랑스 귀족 출신 어머니 에메랑스는 피아노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독일로 유학 보낸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메랑스는 독일인 의학생인 볼프강 폰 슈페너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모리스는 남부럽지 않게 부유한 생활을 한다. 사실 모리스의 아버지는 나치 독일의 자부심을 가진 의사였고, 할아버지 역시 약품을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그 약품이 유태인 수용소로 알려진 아우슈비츠에 공급되었다.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독일은 제2차대전을 벌인다. 베를린의 살던 모리스의 아버지는 자신의 집 지하에 벙커를 만들어서 폭격에 대비한다.

한편, 우울증에 시달리고 친구도 없는 모리스를 위해 비슷한 나이의 한 소년이 친구로 집에 오게 된다. 프랑스어를 쓰는 유대인 출신의 키가 큰 아이의 이름은 에밀이었다. 에밀을 통해 조금씩 주변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되는 모리스. 아버지의 대학 동기인 일본 사무라이 출신의 의사 겐소쿠가 초대를 받는다. 그리고 일본 대사관이 폭격을 받아 모리스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 겐소쿠의 방은 모리스의 옆방이었다. 두 방이 연결된 비밀 문 덕분에 모리스는 몰래 겐소쿠의 방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렇게 둘 사이에는 비밀이 생긴다. 겐소쿠는 모리스에게 일본 금화 동전을 하나 선물한다. 훗날 일본에 있는 자신의 아들 겐자부로와 친구가 되어달라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연합군에 의해 일본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폭격이 있어 겐소쿠의 가족들이 다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후 겐소쿠는 모리스의 집에서 할복을 하게 된다. 모리스의 아버지 앞으로 편지를 남긴채 말이다. 모리스는 겐소쿠의 죽음을 가장 먼저 목격한다. 그리고 그가 자살을 한 이유가, 사무라이이자 조국 일본의 충성해야 하는 사명과 의사로서의 사명의 충돌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이 베를린도 소련 연합군에 의해 큰 폭격을 받고, 전쟁의 말미에 집으로 들어온 아버지가 자살을 종용하다가 결국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 또한 자살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에밀과 함께 지하 벙커로 도망친 모리스는 겨우 살아남는다. 지하 벙커에서 지내다 밖으로 나온 에밀과 모리스는 자신의 집 거실에서 자고 있던 군인 3명을 마주하게 된다. 프랑스어를 쓰는 그들이 프랑스인 용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과 함께 프랑스로 도망치고자 한다. 도망 중, 지뢰를 밟은 에밀이 사망하고 혼자 남겨진 모리스는 최대한 사람을 피해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오두막 앞에 쓰러진다. 마음씨 착한 주인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린 모리스는 같이 도망쳤던 프랑스 군인이 적어준 주소를 가지고 그를 찾게 되고, 브종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클레베로 신분세탁을 한 그를 따라 에밀 몽루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기자가 되고 6.25전쟁을 취재하러 한국으로 향하는데...

책 안에는 참 많은 세계의 전쟁 이야기가 담겨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베트남전쟁과 우리나라의 6.25전쟁도 만날 수 있다. 에밀은 직. 간접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다. 그리고 전쟁이 남긴 끔찍한 상황들을 직접 목도하고 스스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아버지가 전쟁의 가해자의 입장에 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에밀은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랬기에 그는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

과연 에밀은 겐소쿠와의 약속을 지켜낼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좀 염려가 되었다. 에밀이라는 인물이 독일인이고, 간접적이지만 마루타와 같은 생체실험과 연관이 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리에게는 예민할 수 있는 6.25전쟁과 이념에 관한 내용이 책의 반을 차지한다. 물론 좀 작위적인 설정이 담겨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사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다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볼프강, 확실하지 않은 길이라면 처음부터 가지 말아야 해.

맹세는 명예의 문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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