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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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문제에 관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전도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2차가해는 물론이고, 가해자의 잘못보다 피해자의 탓을 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비단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대만 소설가의 책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속에도 같은 상황이 펼쳐지니 말이다.

변호사 판옌중은 얼마 전 고위 공직자인 친구 추전샹에게 부탁을 하나 받는다. 아들 추궈성의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추궈성은 청소년인 나나와 성관계를 맺었고, 그로 인해 나나의 엄마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거액의 합의금을 통해 일을 마무리했지만, 추궈성은 불만이 가득하다. 나나라는 아이를 통해 들은 바로는 나나의 엄마가 자신을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추궈성의 이야기를 들은 판옌중은 철없는 친구 아들의 말에 혀를 내두른다. 그날, 아내 우신핑이 사라진다. 우신핑은 어디로 간 것일까?

사실 판옌중은 과거 재벌의 딸인 옌아이써와 결혼하여 딸 판쑹뤼를 낳았다. 하지만 그녀의 사치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진흙탕 싸움 끝에 그녀와 이혼을 한다. 판쑹뤼의 학원 선생인 우신핑과 사귀게 된 판옌중. 부모는 이미 돌아가셨고, 하나뿐인 오빠와는 연락을 하고 살지 않는 그녀는 결혼식을 원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아이를 낳지도 않겠다는 의중을 옌중에게 건넨다. 물론 옌중은 그녀의 반응이 반가웠다. 그렇게 두 번째 결혼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우신핑이 사라진 것이다. 우신핑이 다니는 학원에 간 판옌중은 근무하는 직원으로부터 그녀가 매달 병원 진료를 이유로 연차를 쓰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얼마 전 엄마가 찾아왔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그동안 그가 알고 있던 이야기와 너무 다른 이야기에 옌중은 모든 것이 의심스럽기 시작한다. 전처와의 이혼 중 폭행 사건이 도마 위에 올랐던 터라 경찰의 신고하는 것 조차 고민스러운 옌중. 신핑의 엄마라는 사람과 통화를 하지만, 신핑에 대해 악의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신핑과 옌중의 결혼 사실조차 모르는 그녀는 오히려 돈을 요구하는데...

직업이 변호사인지라 옌중은 신핑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찾아간다. 진실을 향해 나아가면서 신핑을 둘러싼 각종 이야기들이 튀어나온다. 자신의 아들보다 꿀리는 며느리가 늘 탐탁지 않은 옌중의 엄마 리펑팅을 비롯하여 변호사 남편을 가진 신핑에게 질투를 느끼지만 신핑 부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며 그녀의 불행에 흥미를 느끼는 젠만팅을 포함하여 책 속에 어느 누구도 상처 입은 피해자를 향해 마음을 쓰지 않는다.

옌중이 발견한 신핑의 이야기 안에는 성폭행에 대한 과거가 담겨있다. 오드리, 즈싱과 신핑은 절친이었는데, 그들 사이에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신핑은 과거 친구인 쑹화이안의 오빠 쑹화이구로 부터 강간을 당했고, 그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만 오히려 모든 화살은 신핑을 향하게 된다. 신핑이 쑹화이구를 좋아했었고, 그녀의 몸가짐이 정숙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은 쑹화이구의 집안을 망쳤다는 이유로 신핑을 비난하고, 신핑은 누구에게도 위로는커녕 상처만 받는다. 친구인 오드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성폭행 한 코치가 지역 유지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꽃뱀과 성폭행범. 도대체 이 이중잣대 중 어느 것이 진실일까? 왜 사람들은 사건 그 자체의 진실이 아닌, 다양한 선입견과 관점, 자신의 생각들을 통해 진실을 가려버리는 것일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생각하는 진실을 가지고 상처 입은 피해자에게 이중 삼중의 가해를 하는 것일까?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스라이팅과 피해자에게 마치 피해를 당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식의 발언들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피해자는 피해자고, 가해자는 가해자다. 가해자의 잘못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 그 또한 범죄고, 가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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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팔로우 리벤지 스토리콜렉터 105
엘러리 로이드 지음, 송은혜 옮김 / 북로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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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다는 속담이 있다. 솔직함이 자신의 브랜드라고 늘 외치는 한 인플루언서의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난다.

나 역시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서평을 위한 인스타여서 개인의 일상을 담기보다는, 지극히 서평만 올리고 있지만... 일상이 올라가지 않는다 하지만, 서평 몇 개만 읽어도 나란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될 듯싶다. 아무래도 책에 대한 감상을 쓰다 보면 내 경험이나 생각들이 자연스레 같이 섞이기 때문이다. 한두 다리만 건너도 요즘 개인 정보(가족관계나 연령대, 관심사 등)를 찾는 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쓴 글들 안에 그런 개인의 정보들이 노출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에미 잭슨과 댄 부부 역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자의든, 타이든 그녀를 찾아낼 수 있는 정보를 어렵지 않게 찾아내는 걸 보면 무서운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만 팔로워를 가진 파워 블로거이자 인플루언서인 에미 잭슨은 육아 인플루언서다. 4살 된 딸 코코와 태어난 지 8주 된 아들 베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인 그녀. 원래 패션잡지 에디터였던 그녀는 임신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다. 아이를 낳은 후 그녀는 일상을 SNS에 공유하기 시작한다. 멋있게 꾸민 완벽한 일상이 아닌, 다크서클 가득하고 어질러져 있는 집안과 울며 떼쓰는 아이들이 있는 평범한 일상을 말이다. 어느 순간 마마 베어라는 그녀의 닉네임은 브랜드가 된다. 여전히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을 공유하고, 그녀의 글에 달린 댓글과 DM에 열심히 답을 해주는 그녀. 하지만 그 모든 일상은 조작되고 꾸며진 일상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그녀의 남편이자 소설가인 남편 댄 뿐이다. 하지만 현재 삶을 이루어가는 모든 자금이 에미에게서 나오기에, 그 사실을 함구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 둘 일상을 공유하다 인플루언서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녀는 인플루언서를 염두에 두고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팔로워가 백만 명인 그녀를 통한 광고효과 역시 어마어마하다. 가령 어떤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그녀는 밑밥을 깐다. 그 제품이 필요하도록,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필요한 제품을 자연스럽게 인스타에 노출시킨다. 갑자기 믹서기가 고장 났는데, 빌려주실 분 계시나요? 혹은 좋은 제품 추천해달라는 글을 올리면 그날 오후에 다양한 종류의 믹서기가 집 앞에 도착하는 식이다.

그런 그녀의 일상을 지켜보는 팔로워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씩 에미의 일상을 침투해간다. 에미가 사는 곳을 알아내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사진 유리창에 반사되어 찍힌 펍의 이름을 확인하면 되니 말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에미와 댄 그리고 범인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등장해서 더욱 몰입감 있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인스타그램이라는 매체가 주된 소재로 사용되어서 그런지, 더 실제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인지라, 에미에게 환호하고 공감하는 엄마들의 사연과 왜 그들이 에미의 글에 집착과 좋아요를 함께 보내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어찌 보면 에미와 에이전시는 그럼 엄마들의 마음과 상황을 교묘히 이용해 상당히 큰돈을 벌었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자면 그렇게 많은 엄마들이 에미의 글과 사진에 공감과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일상 속에서 엄마들의 외로움과 힘든 일상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거리들이 많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보이기 위한 멋진 사진에도 현혹될 수 있지만, 반대로 꾸미지 않은 듯 꾸민 가상의 현실이 더 현혹되기 싶겠다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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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Schatten 2023-01-13 0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개인정보 공개 안 하고 싶지만 정말 글을 쓰다보면 다 묻어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서평보다는 그림을 올리는데 그림을 그리는
위치나 배경이나 아예 사진 정보에도 위치가 저장돼 올라가니깐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추출하는 프로그램을 쓴다면 얼마든지 위치 파악이 가능할 거 같단 생각도 한 적 있어요. 왜 스팸웹페이지 같은데에 보면 사진이 한번이라도 공개됐었으면 3분 사이에 비공개로 돌린 계정도 아이디 검색만으로도 현재 비공개 사진이 무섭도록 검색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이야기 정말 무서울 것 같네요. ㅠㅠ
 
지워진 우리들의 날
이호성 지음 / 모든스토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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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서글프고, 화가 났고, 답답했다. 채 100년이 되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은 책 속고우진 같은 인물들이 현재 우리나라의 기득권이자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영표 같은 사람이 있다면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쓰디쓴 과거의 문제가 해결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피눈물이 났다. 내 증조할아버지 역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신 독립유공자 시기 때문이다. 물론 그분을 본 기억은 없다. 내가 2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분노와 울분이 일어났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김원범 장군의 오른팔로 활약한 조부 문진섭장군의 손자인 문영표는 현재 보훈처 처장이자, 국민 공화당 비례대표 공천을 준비 중이다.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있던 문영표는 보훈처 처장에 내정된 후, 독립유공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평가도 좋아졌다. 비례대표 공천 때문에 노심초사 중인 때에 메일이 한통 온다. 그 메일 덕분에 그의 공천심사는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근데 메일을 보낸 사람이 궁금했다. 주소와 이름만 적혀있는 메일 덕분에 도움을 받긴 했지만,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찝찝함이 남았다. 서정석.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달동네에 기울어가는 집에 살고 있는 서정석은 폐지를 모아 파는 걸로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괜스레 엮이고 싶지 않았다. 얼마 후 그는 영표를 찾아온다. 정석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독립유공자 조사를 해달라며 정보를 주고 간다. 서정석의 아버지인 서삼석은 금태도 출신이었다. 집안에서 금어가 된, 금태도. 조부 문진섭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증조부인 문성철은 친일파이자 금태도의 대지주였다. 소작농들에게 80%의 소작료를 받는 것에 섬 안에 큰 데모가 일어나고, 결국은 40% 선으로 낮추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던 것은 영표도 알고 있었고, 삼석의 아버지인 서태수가 그 일에 주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표는 정석의 일을 조사하기 시작하지만, 북부지검 부장검사인 고우진이 들이닥쳐 서정석 일에 손을 떼라는 압박을 넣는다. 하지만 영표는 보좌관인 최준태와 금태도로 향한다.

금태도 대지주인 문성철의 아들 진섭과 두 번째 대지주 박주만의 딸 차정은 혼약을 한 상태였다. 소작료 때문에 섬 안에 소작농들은 항의운동을 일으켰는데 이 일의 주동자는 금태도의 천재로 불린 고재준과 그의 동생인 고재덕, 삼석의 아버지인 서태수였다. 재준과 진섭은 지식인들로 그들은 모두가 차별 없이 사는 세상을 꿈꿨다. 들불처럼 일어난 소작농들의 항의에 목숨의 위협을 받던 주만과 차정은 삼석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차정은 삼석에 의해 벌써 두 번이나 목숨을 건졌다. 소작료를 내리고 난 후,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들을 처치하기 위해 주만은 깡패들을 통해 재덕을 살해한다. 하필 그 장면을 목격한 차정과 삼석. 풀려난 재준은 숨진 동생 재덕의 시신을 보게 되고, 아픈 어머니 또한 아사한 상황을 보고 절규하며 사라진다. 또한 사건의 입막음을 위해 차정과 진섭과 함께 삼석까지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상황이 쉽지 않다. 진섭과 차정은 독립운동의 주동자가 되고, 그 일로 수감된다. 고문귀로 불리는 마쓰우라 히로 순사부장 앞에 서는 이들은 끔찍한 고문의 현장을 목격하고 두려움에 떤다. 차정의 차례가 되었고, 삼석은 차정 대신 자신이 고문을 받겠다고 나선다. 화가가 꿈이었던 삼석은 그렇게 두 개의 손가락을 잃는다. 진섭의 차례가 된다. 두려움에 떨던 진섭은 고문관의 정체를 알고 경악하게 되는데...

과거의 이야기가 풀어지며 진실이 밝혀진다. 책의 내용은 과거 이정재와 전지현 주연의 영화 암살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썼던 인물들이, 권력과 돈, 생명의 위협으로 인해 동료들을 배신하고 오히려 이중 스파이이자 일제의 앞잡이로 변한다. 영화 암살도, 이 책도 소설이 아니다. 실제 일제 앞잡이이자 독립군을 잡아 고문한 그들이, 해방 이후 다시 정권을 잡으며 여전히 지배층으로 군림한다. 오히려 독립군이나 독립유공자의 자녀들은 부모의 부재에 교육은커녕 먹고 살 길조차 쉽지 않았고, 일부는 사회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내쳐지기도 한다. 고문귀 마쓰우라에 의해 혀가 뽑히는 고문을 당한 강성웅의 아들인 강진휘가 아사 직전의 상태로 발견된 상황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있다. 당시 반민특위로 고재준이나 문진섭 같은 친일파들이 처단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 계속 씁쓸함을 자아낸다. 물론 소설 속에는 현실과 다르게 조금이나마 해소되긴 했지만 말이다.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의 과거는 청산되지 않고 있다. 누가 친일파였는지는 현재로는 알 수 없다. 왜 조상의 친일의 죄를 자신에게 묻냐는 고우진의 독백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의 치졸한 과거는 언제 청산될 수 있을까? 읽을수록 서글프고 씁쓸함이 가득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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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 타인 지향적 삶과 이별하는 자기 돌봄의 인류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28
이현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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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계획 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게 운동과 다이어트가 아닐까 싶다. 건강해지기 위해서도 있지만, 소위 말하는 몸짱이나 날씬해지고 싶은 생각이 다수를 차지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특히 타인의 시선에 상당히 민감한 것 같다. 마치 생의 과업처럼 몇 살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취업 후 승진뿐 아니라 나이가 되면 연애, 결혼, 임신, 출산, 둘째 출산 등은 명절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나 역시 결혼이 늦은 편이었는데, 매년 명절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들었다. 문제는... 그렇게 듣기 싫었던 소리를 나 또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 한다로 넘기기에는 우리 사회 전체의 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28번째 서가명강의 주제는 인류학이다. 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제목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타인지향적" 삶의 문제를 지적한다. 여기서 타인지향적은 내가 앞에서 말한 바로 그 문제다. 명절 잔소리들과 같이 누구에게나 따라붙는 인생 과업들을 포함하여, 후덕해 보이는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각종 언어와 비언어적 손가락질들, 정상가족(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이르는 말)의 범위를 벗어나는 가족들을 향한 편견들 말이다.

물론 건강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는 것은 참 좋은 현상이다. 문제는 단적으로 그런 외모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마치 도덕적으로 엄청난 죄나 치부를 가지고 있는 듯한 사회 분위기에 있다. 책 속에는 헝거의 작가 록산 게이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비만한 사람은 왜 편견 속에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가? 그녀는 어린 시절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후,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찌운다. 문제는 그녀의 몸을 향한 주변의 반응이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사람들의 행동들은 그녀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사실 록산 게이의 이야기뿐 아니라 책 속에는 여러 상황의 예시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몸의 주체인 내 의견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내가 좋은 것, 내가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 주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주체가 된다. 그렇기에 나는 철저히 차별, 배제, 혐오, 불안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주체를 빼앗긴 나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주체를 빼앗긴 나는 타인의 주체 또한 빼앗는다. 그런 사회적 시선이 사회 분위기가 되었다. 앞에서 말한 정상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 내에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세계에 소개되었다. 빠른 시간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러다 보니 놓친 것들이 생겨난다. 그중 하나가 사회적 장치의 부재였다. 사회적 장치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은 가족을 통해 보호장치를 마련하게 되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이 가족 안에서 이루어진다. 문제는 가족주의, 연고주의, 학연주의 등 패거리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그렇다 보니 그 범주 밖의 것은 적으로 간주하게 된다. 젠더 문화는 어떤가? 여성 혐오로 인한 묻지마 범죄,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범죄나 데이트 폭력의 범죄들을 비롯하여 세대 간, 젠더 간 갈등으로 인한 사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다양성의 인정과 주체의 회복 그리고 관용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다.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각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령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가족의 형태뿐 아니라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차별 없는 지원이 필요하다. 다문화가정, 한 부모 가정, 노인 가정, 1인 가정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진 가족들 말이다. 프랑스의 경우 법률혼이 아닌 사실혼 관계의 동거가족들을 위한 시민연대계약을 도입했다. 그 제도 안에서 지원을 받게 되자 출산율이 증가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타인의 판단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체인 자신의 생각을 가지는 것, 타인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을 줄이는 것도 그에 대한 방안이 될 것이다.

책을 통해 나 역시 참 타인지향적인 눈과 내 눈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재단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달리 자살률이 높은 대한민국. 새해에는 서로를 향해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않고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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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1-10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욕망을 탐하기엔
저의 욕망도 제대로 채우
지 못한다는... 쿨럭 -

너무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개미나라 경제툰 - 만화로 배우는 돈의 원리 한빛비즈 교양툰 21
무선혜드셋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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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주 전공인 행정학과 함께 복수 전공으로 경영학을 배웠다. 경영학 안에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던 전필 과목이 바로 경제학이었다. 미시. 거시 경제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회계와 경제 과목을 배우며, 등장하는 용어들에 머리가 좀 아팠던 기억이 있는데 십수 년이 지나고 다시 마주한 용어들은 상당히 반가웠다. 그것도 개미나라라는 가상의 곤충 왕국을 통해 경제를 배우다니! 이런 걸 꿩 먹고 알 먹는다 하는 것 아닐까?

책 안에는 총 30개의 내용이 등장한다. 흔히 우리가 자주 접하는 용어인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주식과 선물시장, 공매도, 채권 등의 전문용어들을 만화로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 상황을 통해 용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기에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들도 함께 읽을 수 있겠다. 중간중간 픽 터지는 유머는 물론 덤이다.

개미나라 경제툰의 시작은 바로 돈이다. 돈은 어떻게 만들어진걸까? 그리고 돈이 생기면서 시장과 은행이 등장하고, 회사와 주식이 등장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제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할 수 있다. 용어뿐 아니라 경제사까지 훑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에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경제의 흐름에 눈이 뜨일 것 같다. 사실 오랜만에 보는 용어뿐 아니라 어설프게 알고 있는 용어들까지 차분히 정리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초반에는 용어를 중심으로 설명했다면, 중반이 넘어가면서 경제사의 사건들이 등장한다. 1920년대 세계 대공황이나 뉴딜정책, 금본위제 폐지와 달러,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경제의 발전에 따라 등장했던 문제들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버블이나 세금, 무역과 관세 등 우리나라의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이루어지는 것을 개미나라와 꿀벌나라, 흰개미 나라 등을 통해 설명한다. 만화로 설명하기 어려운 첨삭은 각 주제의 아래쪽에 따로 설명하고 있다. 정리라기보다는 흐름을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글로 보면 될 듯하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사자성어가 있다면, 과유불급과 새옹지마다. 1920년대 세계 대공황을 앞두고 미국의 경제는 탄탄대로였다고 한다. 무엇을 해도 돈이 굴러오는 덕분에 해이해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경제의 성장이 극에 달하면 당연히 내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 이치인가 보다. 그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상승하면 그에 따라 경제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초반에 단순한 경제 흐름과 달리, 현재의 세계 경제는 서로 큰 영향을 주며 서로를 상승시키기도 하지만,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무역 덕분이다. 그래서 아무리 저명한 학자의 경제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키는 없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기본적인 세계경제의 흐름을 살펴본 1권에 이어 2권도 등장한다 하니, 다음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통해 경제를 가까이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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