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서글프고, 화가 났고, 답답했다. 채 100년이 되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은 책 속고우진 같은 인물들이 현재 우리나라의 기득권이자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영표 같은 사람이 있다면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쓰디쓴 과거의 문제가 해결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피눈물이 났다. 내 증조할아버지 역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신 독립유공자 시기 때문이다. 물론 그분을 본 기억은 없다. 내가 2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분노와 울분이 일어났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김원범 장군의 오른팔로 활약한 조부 문진섭장군의 손자인 문영표는 현재 보훈처 처장이자, 국민 공화당 비례대표 공천을 준비 중이다.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있던 문영표는 보훈처 처장에 내정된 후, 독립유공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평가도 좋아졌다. 비례대표 공천 때문에 노심초사 중인 때에 메일이 한통 온다. 그 메일 덕분에 그의 공천심사는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근데 메일을 보낸 사람이 궁금했다. 주소와 이름만 적혀있는 메일 덕분에 도움을 받긴 했지만,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찝찝함이 남았다. 서정석.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달동네에 기울어가는 집에 살고 있는 서정석은 폐지를 모아 파는 걸로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괜스레 엮이고 싶지 않았다. 얼마 후 그는 영표를 찾아온다. 정석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독립유공자 조사를 해달라며 정보를 주고 간다. 서정석의 아버지인 서삼석은 금태도 출신이었다. 집안에서 금어가 된, 금태도. 조부 문진섭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증조부인 문성철은 친일파이자 금태도의 대지주였다. 소작농들에게 80%의 소작료를 받는 것에 섬 안에 큰 데모가 일어나고, 결국은 40% 선으로 낮추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던 것은 영표도 알고 있었고, 삼석의 아버지인 서태수가 그 일에 주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표는 정석의 일을 조사하기 시작하지만, 북부지검 부장검사인 고우진이 들이닥쳐 서정석 일에 손을 떼라는 압박을 넣는다. 하지만 영표는 보좌관인 최준태와 금태도로 향한다.
금태도 대지주인 문성철의 아들 진섭과 두 번째 대지주 박주만의 딸 차정은 혼약을 한 상태였다. 소작료 때문에 섬 안에 소작농들은 항의운동을 일으켰는데 이 일의 주동자는 금태도의 천재로 불린 고재준과 그의 동생인 고재덕, 삼석의 아버지인 서태수였다. 재준과 진섭은 지식인들로 그들은 모두가 차별 없이 사는 세상을 꿈꿨다. 들불처럼 일어난 소작농들의 항의에 목숨의 위협을 받던 주만과 차정은 삼석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차정은 삼석에 의해 벌써 두 번이나 목숨을 건졌다. 소작료를 내리고 난 후,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들을 처치하기 위해 주만은 깡패들을 통해 재덕을 살해한다. 하필 그 장면을 목격한 차정과 삼석. 풀려난 재준은 숨진 동생 재덕의 시신을 보게 되고, 아픈 어머니 또한 아사한 상황을 보고 절규하며 사라진다. 또한 사건의 입막음을 위해 차정과 진섭과 함께 삼석까지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상황이 쉽지 않다. 진섭과 차정은 독립운동의 주동자가 되고, 그 일로 수감된다. 고문귀로 불리는 마쓰우라 히로 순사부장 앞에 서는 이들은 끔찍한 고문의 현장을 목격하고 두려움에 떤다. 차정의 차례가 되었고, 삼석은 차정 대신 자신이 고문을 받겠다고 나선다. 화가가 꿈이었던 삼석은 그렇게 두 개의 손가락을 잃는다. 진섭의 차례가 된다. 두려움에 떨던 진섭은 고문관의 정체를 알고 경악하게 되는데...
과거의 이야기가 풀어지며 진실이 밝혀진다. 책의 내용은 과거 이정재와 전지현 주연의 영화 암살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썼던 인물들이, 권력과 돈, 생명의 위협으로 인해 동료들을 배신하고 오히려 이중 스파이이자 일제의 앞잡이로 변한다. 영화 암살도, 이 책도 소설이 아니다. 실제 일제 앞잡이이자 독립군을 잡아 고문한 그들이, 해방 이후 다시 정권을 잡으며 여전히 지배층으로 군림한다. 오히려 독립군이나 독립유공자의 자녀들은 부모의 부재에 교육은커녕 먹고 살 길조차 쉽지 않았고, 일부는 사회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내쳐지기도 한다. 고문귀 마쓰우라에 의해 혀가 뽑히는 고문을 당한 강성웅의 아들인 강진휘가 아사 직전의 상태로 발견된 상황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있다. 당시 반민특위로 고재준이나 문진섭 같은 친일파들이 처단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 계속 씁쓸함을 자아낸다. 물론 소설 속에는 현실과 다르게 조금이나마 해소되긴 했지만 말이다.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의 과거는 청산되지 않고 있다. 누가 친일파였는지는 현재로는 알 수 없다. 왜 조상의 친일의 죄를 자신에게 묻냐는 고우진의 독백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의 치졸한 과거는 언제 청산될 수 있을까? 읽을수록 서글프고 씁쓸함이 가득해지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