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여인들 - 역사를 바꾼 가장 뛰어난 여인들의 전기
김후 지음 / 청아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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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에 크나큰 공로를 남겨서든, 모든 사람들이 치를 떨만큼 악랄한 짓을 저질러서든, 역사라는 줄기에 이름을 남기는 건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것이 당연히 바람직한 것이지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후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불멸의 여인들>에는 그렇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인들이 등장한다. 달기와 측천무후같이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들은 물론, 이사도라 던컨이나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이 뛰어난  재능을 가져 모든이들의 칭송을 받았던 인물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특징은 역사 속 여성들을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묶었다는 점이다.
1. 팜므파탈 형 여성 :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치명적인 여인들인 동시에 악마적인 여성상을 가지고 있는 여인들. - 달기, 포사, 왕소군, 서시, 양귀비, 클레오파트라 7세, 심프슨 부인, 비잔틴 제국의 황후 테오도라
2. 아마존 형 여성 : 여전사와 같은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여성들  -  토스카나의 마틸다, 브리타니아의 부디카, 샤를로트 코르데, 로자 룸셈부르크
3. 어머니 형 여성 : 어머니의 이름으로, 아내의 이름으로 남자들에게 반격한 여성들 - 올림피아스, 엘레오노르, 여태후, 성신황제 측천무후, 서태후
4. 혁명가 형 여성 : 사회적 가치에 투쟁을 시작한 여성들 - 히파티아, 상관완아, 마르그리트, 조르주 상드, 루 살로메, 이사도라 던컨
5. 구원자 형 여성 : 남성경쟁자들을 압도하는 능력으로 세상을 구한 여성들 -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이사벨라 여왕, 에카테리나 1세, 옐리자베타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다루는 인물들이 워낙 많아서 지루하지는 않다. 오히려 한 인물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없어서 살짝 아쉬울 때가 있었다. 세계사와 역사를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한명 한명의 여성 아이콘에 대한 간략한 전기를 읽는다는 느낌이었다. 찾아보기도 편리하게 되어 있어 자료집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장할만한 가치는 있어보이는 책이다.  

하지만 저자도 서문에서 밝힌바는 있지만 대한민국의 여성 인물이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  작년에 출간되었던 <여왕의 시대>야 국외저자의 작품이라 그럴 수 있다 했지만 국내저자가, 그것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 대한민국의 여성 인물 하나 넣지 않았다는 점은 성의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이나 진성여왕의 자료가 부족해 기술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 책이 꼭 여왕만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과 조선시대에도 이 책에 등장한 인물들 급과 비슷한 주목할만한 여인들이 많지 않았을까하는 하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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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못 된 세자들 표정있는 역사 9
함규진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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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산>이 시작했을 때 1,2회를 다운 받아가며 열심히 보았던 기억이 난다. 어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와 영조와의 관계를 풀어가기위해 눈물을 머금고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의 무고함을 고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넓디넓은 궁궐 앞마당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뒤주. 근처에는 그 누구도 얼씬 거리지 말라는 영조의 어명을 어기고 어린 정조는 아버지에게 음식을 전하기 위해 몰래 다가가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그리고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 갇혀 반역을 도모했다는 역모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갔다.

역사 속에는 어찌보면 억울하게, 세자이기 때문에 갖은 수련과 힘든 시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되지 못한 사도세자와 같은 인물이 있다. 제목만으로도 그 안타까움과 억울함이 전해지는 <왕이 못 된 세자들>은  일찍이 왕의 자리를 약속 받았지만 끝내 옥좌에 오르지 못한 조선시대 12명의 세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표정있는 역사>시리즈의 9번째 책이기도 한 이 책은 이 전의 책들이 주류의 입장이 아닌 비주류의 관점에서, 새로운 관점과 독특한 해석으로 많은 역사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것처럼 조선 역사 속에서 '세자', 그것도 '왕이 되지 못한 세자'에 초점을 맞춘것이 특징이다.

조선왕조는 통틀어 27명의 세자가 있었고, 그들 중 절반 가까운 12명이 왕이 되지 못한채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살해되거나 폐위된 경우가 다섯, 병사한 경우가 여섯, 왕조가 멸망해버린 경우가 하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형이었던 양녕대군, 뒤주 안에서 죽음을 맞은 사도세자 외에도 최초의 세자였던 이방석, 소현세자 이왕,  아버지와 함께 폐위된 폐세자 이질, 이황 등 12명의 불운했던 세자들의 쓸쓸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권력의 제 2인자라는 화려한 이름 안에 갇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세자들의 일상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린 나이에 세자라는 이름을 받아 각종 오락이나 취미생활은 원천봉쇄되었다. 마치 지금의 고시생 수준이랄까? 하루 세번 유교 경전 공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부왕을 보좌하는 역할로 각종 연회와 예식에 참석해야했으며, 대소신료들과 부왕 사이에서 눈치도 봐야했으며 때로는 각종 음모와 비방에 휩쌓여 맘고생도 해야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자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세자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세자들의 삶은 정말로 비슷한데 하나같이 답답하고 힘들어 하고 있었다.

조금 독특했던 부분이라면 양녕대군에 관한 이야기였다. 양녕대군은 동생에게 옥좌를 양보하기 위해 일부러 미친짓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었고, 워낙 뛰어났던 동생이었으니 정말로 그러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에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실록에는 충녕대군을 험담하는 양녕의 모습이 보이고 있으며, 양녕의 비행을 소문내는 충녕의 장인 심온의 모습도 보인다는 것이다. 당시 부왕이던 태종은 호탕하고 진취적인 스타일의 군주보다는 문(文)에 뛰어난 군주를 원하고 있었다. 태조부터 무(武)의 기운이 강한 군주들이 내려와 이제는 안정된 나라를 꾸릴 왕이 필요했던 것이다. 즉 그는 시대의 흐름에 밀린 것이지 본인이 스스로 거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는 때로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화려한 궁 속에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던 왕이 못 된 세자들의 삶은 하나하나가 소설같다. 모든 것을 가진듯하지만, 정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진 것이 없는 세자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더 비참한듯 보인다. 실록과 함께 독특한 관점으로 써내려간  <왕이 못 된 세자들>.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더욱 가슴이 아파오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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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킹 베를린 - 천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소니아 로시 지음, 황현숙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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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오전 11시 그림 위에 쓰여진 "퍼킹 베를린"
한글을 봤을 때는 무슨 뜻인지 잘 와 닿지 않았지만, 그 위에 함께 쓰여져 있는 영문을 보자 '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서부터, 그리고 호퍼의 그림 속에 있는 나체로 창 밖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에서부터 이 책의 내용은 심상치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텔라, 여기는 왜 사람들이 라디오에서 계속 섹스에 대해 얘기하는 거야?  
모든 방송에서 계속해서 퍼커, 퍼커, 퍼커(Verkehr, Verkehr,  Verkehr)라는 말이 들려."
그녀가 영어로 내게 물어왔다. 레나와 나는 하도 웃어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웃음을 참아가며 나는 그녀에게 독일에서는 베르케르(Verkehr, 접촉)라는 단어를 자동차나 도로와 관련해서도 쓴다고 영어로 설명해주었다.

- p. 240

 
   

 

이건 소설이 아니다. 저자 자신이 베를린에서 겪은 이야기를 쓴 실화다.
이 책의 저자인 소니아 로시는 베를린에서 매춘부로 살았다. 
열아홉에 고향 이탈리아를 떠나 유학을 온 소니아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가 빠듯하자 매춘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터넷 채팅을, 그러다 안마시술소, 퀴키 클럽 등 성매매 업소를 전전하며 돈을 번다. 빠듯한 학업에 짧은 시간에 돈을 벌 수 있는 이 일에서 손을 떼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을 읽기전에 베를린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2002년부터 새롭게 시행된 법에 따르면 베를린에서 성매매는 합법이다. 새로운 성매매법에 의하면, 성판매자와 성구매자 사이의 거래는 '계약'으로 인정된다. 업소경영과 장소 임대도 처벌받지 않는 적법한 영업행위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베를린의 매춘은 일종의 '섹스 워커(sex worker)'다. 소니아처럼 매춘을 전문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파트타임처럼 매춘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다. 스텔라가 한 매춘 업소에서 만난 독일어가 서투른 미국인 친구와 하는 이야기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퍼커라는 단어와 베르케르라는 단어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는 부분 말이다.   

소니아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자신도 "매춘부로 태어나지 않았고, 매춘부가 되리라 생각하도 않았다"고 말한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친구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이 알려질까 거짓말을 해가며 전전긍긍하던 그녀가 그녀의 매춘 생활의 모든 것을 담은 이 이야기를 풀어 놓은 이유는 뭘까?

돈이 주는 순간의 달콤함이 그 업에서 발을 뺄 수 없게 만드는 중독성을 경고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생존은 있으나 생활은 없는, 자신의 영혼을 잠식시키는 일임을 알려주기 위함일까?
 

[책 속에서]
#1
만약 내가 학교를 떠난다면 내 인생도 그렇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루한 일과 형편없는 보수를 받는 직업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며
밤에는 피곤에 절고 휴가는 정원에서 보내는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세게여행도, 뭔가 지적인 욕구도 없이 돈 걱정만 내내해야 하는 삶.

#2
"누구와 교제를 한다는 것은 주식투자를 하는 것과 비슷해요."
내가 설명했다.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한다 해도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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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쇄살인 -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범죄 수사와 심리 분석
표창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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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이라는 말만 떠올리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이다. 음침한 배경과 계속해서 나는 전기톱소리, 거기다 빠져나올 수 없는 연쇄살인마의 손길까지, 90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 앉아 있는 내내 힘이 들었던 영화였다.
 
더 무서운건 이 영화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실재 1970년대 미국 텍사스에서 무려 33명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가 있었다. 이 사건은 30년 동안 트라비스 마을의 경찰서의 먼지쌓인 서류함에 있다가 발견된 것이다. 범죄 현장인 유윗 저택에서는 1300개가 넘는 증거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 책을 보았던 건 한창 강호순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때이다. 7명의 여성을 납치하여 살해한 연쇄살인범.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 때문에 잊혀졌던 유영철도, 사이코패스라는 말도 신문과 인터넷을 뒤덮을 정도로 유행했다. 미국의 경우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기록이나 그에 관련한 자료가 많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연쇄살인에 관한 그렇다할만한 책이 없었다. 그 지점에 있어 경찰관 출신인 저자가 연쇄살인, 엽기범죄 등 각종 범죄와 살인자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연구한 이 책은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의 연쇄살인>은 1970년대에서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 연쇄살인사건에 관한 일종의 보고서다. 연속해서 살인을 저지르면 연쇄살인범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연쇄살인범을 재정의하고, 연쇄살인범이 생겨나게 되는 이유를 개인적, 사회적인 요인 등을 연쇄살인범의 프로필을 통해 분석해본다. 그리고 시대별로 사회를 경악시켰던 연쇄살인에 대한 살인일지(?) 및 경과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아직까지 사례와 자료가 부족해 범인의 윤곽조차 그리기 힘들어하는 우리 사회에 이 책은 의미있는 작업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든다. 연쇄살인을 단순히 호기심과 화제성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닌, 왜 연쇄살인범이 양상될 수 밖에 없었고, 왜 그들의 범죄 행위를 예방할 수 없었는지, 이 사례집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밤에 읽으면 <살인의 추억>을 보는 듯한 오싹함이 드니 꼭 낮에 읽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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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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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클로즈 앤 퍼스널>영화를 보면서 기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폭동이 일어난 감옥에서 생생하게 그 현장을 전하는 기자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체험한 것을 전하는 기사라면 그  현장감이 더 생생할 것이며,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더 세세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기자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콘텐츠라 생각했다.

체험르포를, 그것도 본인의 몸의 색깔을 바꿔가며 쓴 작가가 있다. 바로 <블랙 라이크 미>의 저자이자 언론가, 인권운동가라 불리는 존 하워드 그리핀이다. 백인인 존 하워드 그리핀은 흑인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기 위해 스스로 피부 색을 바꿨다. 1959년 피부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백반증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을 먹고 닷새 동안 자외선에 온몸을 쪼여 피부를 검게 만들었다. 흑인이 곱슬머리는 만들 수 없어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다. 

   
 

완벽한 변신이었다. 하지만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저 변장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의 육체 속에 갇혀 버렸다.
나랑은 조금도 비슷한 구석이 없고 아무런 친밀함을 느끼지 못하는 다른 존재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 p. 34

 
   

<블랙 라이크 미>는 피부색을 바꾼 저자가 흑인사회에서 겪은 일들의 매일을 일기로 기록한 책이다. 1959년 흑인으로서 미국 남부를 여행하며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그는 피부색만 바뀐 것 뿐이었지만 사회는 그를 180도 다르게 대했다. 커피숍에도 들어갈 수 없었으며, 화장실도 함부로 쓸 수 없었고, 버스를 탈 때는 백인들이 다 탄 다음에야 탈 수 있었다. 백인 여성과는 눈을 맞추면 안됐고, 아무리 힘들어도 길가에 앉아서 쉴 수 없었다. 흑인은 설령 특별한 용무가 없더라도 계속 움직여야했다. 혹시라도 인도 연석에 앉아 있으면 순찰차가 지나가면서 거기서 뭘 하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간혹 그에게 호의를 보이는 백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백이면 백 그에게 흑인사회의 성(性)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백인들이 가진 일종의 흑인 사회에 관한 성판타지를 만족시켜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존 하워드 그리핀은 이렇게 위선에 가득찬 백인사회에 분노한다. 난잡하고 도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흑인이라고 하면서, 사실은 그들이 더 비도덕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한 백인 남성과의 대화에서 울분을 토하는데, 그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흑인 여성은 무조건 자신과 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신에게 몸을 바치지 않으면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자신이 호의를 배푸는 것처럼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했다.

   
 

반감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내가 속한 백인들이 증오의 시선을 보낼 수 있고 사람들의 영혼을 시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슬펐다.
또한 자기들이 키우는 가축에게는 주저 없이 권리를 인정해 주면서도 인간에게서는 이 권리를 함부로 빼앗는 점이 슬펐다.
- p.133

 
   


흑인 사회는 말한다. 백인들은 자신들에게 일등 시민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기회가 없다고. 그들은 우리가 돈을 벌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결국 수입이 없어서 세금을 많이 낼 수도 없게 해 놓고, 자기들이 거의 모든 세금을 내니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일을 처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고. 그러한 사회 분위기가 어린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고, 더 이상의 기회를 잡을 수 없게 하고 그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존 하워드 그리핀이 이 체험 르포를 쓴 것은 1959년으로 벌써 50년이 지났다. 이 책에 나온 것을 지금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지위로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뉴스에서 KKK단의 습격 소식이 들리고, 흑백갈등으로 일어나는 총격 사건이 일어난다. 자신이랑 종족이 다르다고, 혈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학대하고 밀어낸다. 이 책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다. 그점에서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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