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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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클로즈 앤 퍼스널>영화를 보면서 기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폭동이 일어난 감옥에서 생생하게 그 현장을 전하는 기자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체험한 것을 전하는 기사라면 그  현장감이 더 생생할 것이며,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더 세세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기자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콘텐츠라 생각했다.

체험르포를, 그것도 본인의 몸의 색깔을 바꿔가며 쓴 작가가 있다. 바로 <블랙 라이크 미>의 저자이자 언론가, 인권운동가라 불리는 존 하워드 그리핀이다. 백인인 존 하워드 그리핀은 흑인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기 위해 스스로 피부 색을 바꿨다. 1959년 피부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백반증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을 먹고 닷새 동안 자외선에 온몸을 쪼여 피부를 검게 만들었다. 흑인이 곱슬머리는 만들 수 없어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다. 

   
 

완벽한 변신이었다. 하지만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저 변장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의 육체 속에 갇혀 버렸다.
나랑은 조금도 비슷한 구석이 없고 아무런 친밀함을 느끼지 못하는 다른 존재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 p. 34

 
   

<블랙 라이크 미>는 피부색을 바꾼 저자가 흑인사회에서 겪은 일들의 매일을 일기로 기록한 책이다. 1959년 흑인으로서 미국 남부를 여행하며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그는 피부색만 바뀐 것 뿐이었지만 사회는 그를 180도 다르게 대했다. 커피숍에도 들어갈 수 없었으며, 화장실도 함부로 쓸 수 없었고, 버스를 탈 때는 백인들이 다 탄 다음에야 탈 수 있었다. 백인 여성과는 눈을 맞추면 안됐고, 아무리 힘들어도 길가에 앉아서 쉴 수 없었다. 흑인은 설령 특별한 용무가 없더라도 계속 움직여야했다. 혹시라도 인도 연석에 앉아 있으면 순찰차가 지나가면서 거기서 뭘 하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간혹 그에게 호의를 보이는 백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백이면 백 그에게 흑인사회의 성(性)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백인들이 가진 일종의 흑인 사회에 관한 성판타지를 만족시켜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존 하워드 그리핀은 이렇게 위선에 가득찬 백인사회에 분노한다. 난잡하고 도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흑인이라고 하면서, 사실은 그들이 더 비도덕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한 백인 남성과의 대화에서 울분을 토하는데, 그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흑인 여성은 무조건 자신과 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신에게 몸을 바치지 않으면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자신이 호의를 배푸는 것처럼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했다.

   
 

반감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내가 속한 백인들이 증오의 시선을 보낼 수 있고 사람들의 영혼을 시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슬펐다.
또한 자기들이 키우는 가축에게는 주저 없이 권리를 인정해 주면서도 인간에게서는 이 권리를 함부로 빼앗는 점이 슬펐다.
- p.133

 
   


흑인 사회는 말한다. 백인들은 자신들에게 일등 시민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기회가 없다고. 그들은 우리가 돈을 벌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결국 수입이 없어서 세금을 많이 낼 수도 없게 해 놓고, 자기들이 거의 모든 세금을 내니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일을 처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고. 그러한 사회 분위기가 어린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고, 더 이상의 기회를 잡을 수 없게 하고 그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존 하워드 그리핀이 이 체험 르포를 쓴 것은 1959년으로 벌써 50년이 지났다. 이 책에 나온 것을 지금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지위로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뉴스에서 KKK단의 습격 소식이 들리고, 흑백갈등으로 일어나는 총격 사건이 일어난다. 자신이랑 종족이 다르다고, 혈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학대하고 밀어낸다. 이 책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다. 그점에서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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