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파이어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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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은 질문밖에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오히려 왜 자기가 그런 꼴을 당해야만 하는지 묻지.
그건 결국 자기가 저지른 짓을 깨긋이 까먹었다는 이야기야."
"그놈들에겐 죄책감 같은 것도 없다는 건가? 후회나 공포, 자기혐오 같은 것도?"
"없지." 단호한 대답이었다.
_ <크로스파이어1>, 111쪽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범이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에게 죄책감이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또 그들에게는 살인의 특별한 목적이 없다. 치정이나 원한에 의한 복수가 아닌, 살인자체가 목적이 되고 그냥 살인을 즐기는 거다. 살인을 순전히 재미로 여기고 범행을 저지른다.  <모방범>의 범인이 그랬고, <나는 지갑이다>의 범인 역시 그랬다. <크로스파이어>에 나오는 살인범들 역시 그렇다. 여고생을 차로 치어 죽이며 그 과정에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여고생들을 보며 즐거움을 느낀다. '스포츠 킬링'이라고도 부르는 이런 살인자들의 범행은 범행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일종의 쾌락 살인인 셈이다. 그래서 더욱 무섭다.

<크로스파이어>는 미야베 미유키가 제기하는 무차별 살인, 쾌락 살인에 한가지 더 의문을 제기한다. 바로 이들을 처단할 수 있는 권리가 인간에게 있는가이다. 이 소설 속에서 소녀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일종의 스포츠 킬링을 즐기는 범죄 집단은 청소년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형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이들은 법의 심판도 받지않고, 죄책감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이는 살인 사건 조차 잊은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염화 능력의 소유자 아오키 준코는 그들을 자신이 처단한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이러한 능력을 가지게 된 데는 이런 처단에 대한 당위감이 있다고 여기는 거다. 
 
아오이 준코가 짝사랑하고 있던 다다의 여동생이 연쇄살인집단에 의해 희생당하고 이를 지켜보던 준코는 본격적으로 사회적 악(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자들)을 저지르는 자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처단하기 시작한다. 준코는 염력으로 불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힘으로 다다를 대신해 복수를 하려고 한다. 한편 원인 모를 연쇄방화사건을 쫓는 형사 이시즈 치카코는 준코의 뒤를 쫓으며 준코 뿐 아니라 이런 초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릴적 바로 눈 앞에서 갑자기 몸에 불이 붙어 죽은 동생의 범인을 쫓는 마키하라를 만나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초능력자의 등장에 사실 적잖은 당황을 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에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읽었던 전작 <모방범>과 <나는 지갑이다>와 같은 전형적인 사회적 미스터리 스타일을 생각했다. 한 사건을 둘러싸고 얽힌 여러 이해관계들을 보여주며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그런 것을 기대했는데 전혀 예상 밖이었다. 옮긴이 후기를 보니 그녀의 작품에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은 아닌듯하다.  그녀의 첫 소설 <용은 잠들다>, <데드 존>에서 이미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번 <크로스파이어>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그들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으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사회적 적응을 하지 못하는 그들의 애환을 주로 담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책의 후반부 기누가사의 목소리로 아오키 준코와 같은 초능력자가 사회를 대신해 범죄자를 제거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아사바 게이이치(흉악범)는 일반인들에게 있는 것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특이 능력자가 될 수 있었죠. 반대로 아오키 준코는 일반인들에게 없는 것을 지니게 되어 특이 능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같은 부류의 인간이죠. 결과적으로 둘 다 똑같이 위험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 다 살인자가 된 거죠." 스토리의 전개보다, 내용의 통쾌함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결말이다. 영화로도 개봉된 작품이라고 하니 영화로도 만나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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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두 기자, 그들의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색
알리샤 C. 셰퍼드 지음, 차미례 옮김 / 프레시안북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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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셸 파이퍼 주연의 영화 <업 클로즈 앤 퍼스널, 1996>은 내게 '기자'에 대한 강렬한 꿈을 심어주었던 영화였다. 미셸 파이퍼의 꿈은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것. 본인의 데모 테이프를 여러 방송국에 보내고, 우연히 로버트 레드포드의 눈에 띄어 그곳에서 기상캐스터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실수 만발의 그녀이지만 열정 하나는 그 누구보다 강하게 품고 있던 신참이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키워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미셸 파이퍼는 취재차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고, 뜻밖에 그곳에서 죄수 폭동이 일어나 교도소에 갇히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로버트 레드포드의 도움과, 그녀 만의 침착함과 기자적인 기질을 발휘해 역으로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는 르포를 진행하게 되고 그녀는 그 기사로 인해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사건의 현장에서, 역사적인 순간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제일 먼저 사건을 접할 수 있다는 것. 이 세상의 부조리와 숨겨져 있던 보석 같은 진실들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기자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자들.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를 끊임 없이 대항하는 불멸의 저항자들. 여기 그런 기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자들이 있다. 바로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신참 기자였던 이들은 미국 내 최고 권력자 닉슨 대통령을 상대로 싸웠고, 서서히 밝혀지는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정치 사상 초유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역사를 만들었다. 

   
  우드워드는 처음에 입사했을 때 야간 경찰담당을 맡았어요. 하지만 우드워드는 내가 그 일을 맡긴 모든 다른 기자들처럼 지저분하고 힘든 일을 맡겼다고 불만에 가득 차서 나가지 않더군요. 우드워드는 거기 나가면서 언제나 신문 한 부와 여분의 커피를 한 잔 더 가지고 다녔고, 경찰관들 사이에서 자기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점점 신뢰를 쌓았지요."  _ 해리 로젠펜드, 당시 <위싱턴 포스트> 수도권 뉴스담당부장

그는 핼버스탬에게 자기는 원래 구직자의 지원서 뒤에 따라오는 기사 클립들을 결코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사 재작성에 유능한 데스크는 어떤 기사든 별처럼 빛나는 문장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아이작스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그들의 머리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날카로운 눈이 있는지를 살폈다. 번스틴은 분명히 그런 기자였다. "면접을 하러 왔을 때 그가 처음 한 말이, 자기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원한다는 거였어요." _ 스티븐 아이작스, 당시 <워싱턴 포스트> 사회부장
 
   


풋내기 기자 두 명. 스물아홉 살 우드워드와 스물여덟 살의 번스틴은 1972년 미국 최고 권력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상대로 싸웠다. 이제 이들의 이야기는 기자를 꿈꾸는 자들에게 전설이, 아니 신화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로도(국내에서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책으로도 출판되어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회자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책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역시 대통령을 권자에서 끌어내린 두 기자, 그들의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색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이 워커게이트 사건을 터뜨릴 당시의 미국은 오늘날과 같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가 많지 않았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좁은 미디어 환경 속에서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국민은 신문과 3대 텔레비전 뉴스에 의존하고 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사람들은 최근의 사건 전개 상황을 알기 위해 길모퉁이의 신문 가판대로 몰려갔고, 처음에는 <워싱턴 포스트>라는 신문사에 대중들의 눈길에 쏠렸지만, 서서히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이라는 이름이 두각되기 시작했다.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은 '우드스틴(우드워드+번스틴)'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밝혀내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의 일들, 그리고 두 사람 인생의 전말과 그들의 보도가 어떻게 현대 언론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이 세상에 밝혀지기까지 우드스틴의 전방위적인 노력과 그들을 지켜본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담았다. 그들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그들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는지, 그리고 닉슨 대통령을 끌어내린 뒤 그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전의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보다는 이 두 가지의 캐릭터에, 그들의 삶과 신념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 기술했다는 점이다. 살아온 성장배경도 기질도 정반대인 우드워드와 번스틴이 어떻게 의기투합 하게 되었는지, 서로에게 어떤 장점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서로를 자극하며 기자 정신을 지켜왔는지 등등이 흥미롭게 담겨있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을 둘러 싼 수 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사건의 전개가 함께 담겨있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해 더욱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하나가 바로 이들의 나이였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와 대항해 싸움을 시작했을 때 이들의 나이는 각각 스물아홉과 스물여덟. 스물여덟 번스틴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상대에게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지고 열정을 불살라 그들과 싸우고 있을 때, 대한민국의 스물여덟을 살아가소 있는 나는 어찌보면 별 것도 아닌 것들에 겁먹어 지레 포기하고, 지레 수긍하고 있었다. 번스틴은 "아예 핏속에 신문 잉크를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보였어요. 어떤 사람은 칼의 심장 박동이 신문의 속도에 맞춰서 뛴다고까지 말했지요."라는 평을 받았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일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그런 평을 받으며 살아왔는가를, 그런 열정 없이도 무언가를 이루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공유한 것도 있었다. 치열한 도전 정신.
그리고 두 사람 다 이유는 전혀 달랐지만 권력을 가진 모든 것에 강력한 의심과 존경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그들, 특히 우드워드는 모든 사물은 겉보기와 같은 경우가 거의 드물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_ <권력과 싸운 기자들>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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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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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빈칸을 채우시오.  

 _____________라는 소설을 만났을 때 나는 _____ 살이었다.
그러고 나서 6개월 안에 나는 ____________라는 작가가 쓴 다른 소설들을 모조리 읽어 치웠다. 

 
   

 이런 문제가 있었다. 나의 독서가 얼마나 의미있는 행태를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해 몇 가지를 시도해본다.  #1. <여섯 번째 사요코>라는 소설을 만났을 때 나는 26살이었고, 6개월 안에 온다 리쿠라는 작가가 쓴 다른 소설을 모조리 읽어 치웠다. #2.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소설을 만났을 때 나는 27살이었고, 6개월 안에 정이현이 쓴 다른 소설을 모조리 읽어 치웠다. #3.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라는 소설을 만났을 때 나는 27살이었고, 6개월 안에 기욤 뮈소라는 작가가 쓴 다른 소설을 모조리 읽어 치웠다. 이렇게 세 가지를 써봤는데 뭔가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까지 정말 이 사람의 작품은 최고야! 라는 책 혹은 작가를 못 만났다는 생각만 든다. 아직 내 인생을 구원할 책을 만나지 못했다.

 이 문제는 <노란 불빛의 서점>의 두번째 이야기, 나의 독서 편력에 나오는 거다. 독서에 관한, 책에 관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10년을 서점에서 일하고, 7년 동안을 출판사 외판원으로 살아온 유별난 책 사랑을 가진 루이스 버즈비의 책에 관한 에세이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과 서점, 출판사의 이야기는 물론, 서점이 좋은 이유, 책 값이 결코 비싸지 않은 이유, 책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 이유, 책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기쁨 등등 책과 관련된 풍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서점에 관한, 책에 관한, 출판업에 관한 역사적인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있어 그동안 몰랐던 흥미로운 사시들도 전한다.

"책이 너무 비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저자가 답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궁금했던 부분이라 특히나 재미나게 읽었다. 이해가 편하도록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영화표 한 장에 10달러, 2시간가량이 지나면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책은? 그 내용은 당신 것이 되고, 좋은 문단에 표시할 수도 있고, 틈이 날 때마다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1년 내내 신고 다니는 신발과 비교한다면? 이것 역시 책이 승리한다. 왜냐하면 훌륭한 책은 결코 유행에 뒤지는 일이 없으며, 책은 친구에게 빌려줄 수도 있고, 신발처럼 매일 사용하지는 않지만 책에서 얻는 그 내용의 생생함은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이다.

책은 참 조용하면서도 힘이 센 존재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고, 한 권의 책이 다음 책을 갈구하게 만들고, 자꾸만 서점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고, 그 서점에서 마음의 풍요로움과 안정을 찾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점에서 만난 수많은 독자들, 출판사 사람들, 작가들을 만나며 책의 힘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이 섰다. 책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내 생활과, 내 삶과 연관된 책 이야기는 더욱 매혹적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책 선물과 그 속의 낭만적인 헌사, 서점 옆에 꼭 있는 향긋한 커피향이 가득한 커피숍에서의 즐거운 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을 행복하게 바꾸어주는 서점 등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 말이다.  
 
드라마 <연애시대>를 보면서 서점에서 일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읽고 싶은 책이 항상 옆에 있고, 신간을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곳이고,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서가를 거닐다 멈춰 서서 여러 해 동안 다시 읽겠다고 작정하던 작가의 작품을 찾아내고, 장차 나에게 필요한 경제 지식이 담긴 책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책을 우연히 만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세상의 모든 진리와 즐거움이 가득한 곳, 서점이 미치도록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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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 사라진 릴리를 찾아서,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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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넬리의 스릴러 <실종>의 시작은 우연히 걸려온 전화에서 시작한다. 에미디오 테크놀로지의 대표이자 천재 과학자인 헨리 피어스는 잘나가는 비즈니스맨이자 과학자이지만 일에 파묻혀 정작 사랑하는 아내와의 관계는 유지하지 못한다. 더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아내와의 이별을 확정짓고 새롭게 보금자리를 꾸린 헨리 피어스. 새로운 전화선을 받아 전화를 놓기가 무섭게 전화가 계속해서 걸려온다. 하나같이 '릴리'라는 여성을 찾는 전화인데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를 떠본 헨리는 릴리라는 여성이 성인 사이트의 에스코트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에 이끌려 릴리를 찾아나서게 된다.

저널리스였던 경력 답게 마이클 코넬리의 글을 박진감이 넘친다. 그의 이력을 보니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범죄 담당 기자로 일하기도 했단다. 아마도 그의 상상력은 모두 그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웹사이트로 무서우리만큼 빠르게 진화하는 성인 사이트들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불법 매춘과 범죄. 전 세게로 뻗어있는 네트워크 때문에 더 종잡을 수 없는 범인들. 이 책에서 그러한 사회 악적인 존재들이 체게적으로 기생하고 세력을 넓혀나가는 모습이 묘사될 수 있었던 건 다 그의 취재력과 경험 덕분일거다.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던 영화가 있었는데 작년에 개봉했던 <테이큰>이다. 유럽여행을 떠난 딸과 통화를 하던 중 납치를 당한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스피드 있는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화면구성에 꽤 통쾌함을 선사하는 영화로 기억된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유럽 전역에 걸쳐 이루어지는 매춘의 암흑세계에 관한 묘사였는데, 조직적이고 악랄한 그들의 수법에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었다. 어떻게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함께! <실종>도 그러한 사회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 세계에서 유린당하고 삶의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단순히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뭔가 무거움이 남는 그런 책이다. 저널리스트가 <실종>을 써내려간 것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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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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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교양콤플렉스(많이 알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랄까?)에 이어 내게는 두번째로 큰 콤플렉스다. 기자의 꿈을 꾸던 대학시절 스터디 모임에 들어가 기자 시험을 준비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전부 날고 기는 글쟁이들이었다(게다가 박식하기까지). 그때부터 글을 쓴다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지고 때로는 두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비결이 궁금했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글쓰는 법에 관한 책은 참 많다. 그런데 유독 <천년습작>이(김탁환의 소설 한번 안 읽은 내게) 눈에 띄었던 것은 제목 옆에 나란히 쓰여있는 부제 때문이었다.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따듯한 글을 쓴다는 것. 독고다이 내 할말만 하는 글이 안닌 누군가의 공감을 사고, 마음을 살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어렵지만 꼭 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글쓰기이기에 덥석 책을 잡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찌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습작에 열심인 이들로부터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득해집니다. 아, 어쩌다가 나는 작가가 되었을까. 수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 저는 제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저를 작가로 만들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p16, 제1강 오리엔테이션:인용들 

 
   

<천년 습작>은 글쓰기에 관한 강의라기 보다는 그가 작가가 되기까지, 그의 글을 만들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책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 김탁환은 수많은 책들을 습작하며 '스토리'라는 것을 이해하고, '작가'라는 것의 본질을 깨달았으며, 작품을 구현하게하는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기반이 되어야 함을 공부했다. 이 책은 그렇게 그가 '글쓰기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던 수많은 책들과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때문에 다양한 책들의 인용이 등장하는 데 읽은 책이 등장할 때는 반갑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책을 읽을 당시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라 즐겁기도 했고, 다시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총 16강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선배 글쟁이가 글쟁이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그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강의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목차도 1강은 오리엔테이션이다. 강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작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매체에 대한, 등장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인상적이었던 건 작가가 되려면, 그 누구보다도 많이 읽고 사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학철학자이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시를 천천히, 오래, 반복해서 읽었는데, 그에게는 이리저리 곱씹을 자유가 있었기에 그가 남긴 시평들이 여러 가지 단어나 문장 중에서 고르고 또 골라 적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은 글쓰기의 스킬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정답기 없는 글쓰기 세상에서 저자 김탁환은 다만 자신의 글쓰기 방식을 보여줄 뿐이다. 김탁환의 스타일은 다른 작가들을 엿보고, 질투하고,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베껴 쓴 시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나 역시 김탁환의 <천년습작>을 엿보며, 질투하고,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베껴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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