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 죽어있는 일상을 구원해줄 단 하나의 손길, 심미안
피에로 페르치 지음, 윤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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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은 장난감이나 유행하는 물건, 사치품이 유치한 허섭스레기나 돈에 미친 공장 주인의 발명품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그것은 사랑을 도와주고, 감각을 정제하며, 죽은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향수에서 발레슈즈에 이르기까지, 반지에서 담뱃갑에 이르기까지, 버클에서 지갑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사랑의 전령을 마련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물건들의 세상은 정당하고 아름다우며 다양하다. 

_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중에서

 
   

 

영화 '아메리칸 뷰티'(샘 멘더스 감독, 2000년 개봉)는 미국 중산층의 몰락을 그리며, 감각적인 영상과 삶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이미지화해 보여주는 장면들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미국의 모든 영화상을 휩쓸었던 영화다. 많은 장면들이 뇌리에 박혀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 케빈 스페이시의 딸과 그 딸의 남자친구가 한 영상을 함꼐 보는 장면이었다. 딸의 남자친구는 항상 캠코더를 가지고 다니며 갖가지 장면들을 캠코더에 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집에 놀러온 여자친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줄게"라며 남자친구는 한 영상물을 보여준다. 그 영상물은 다름아닌 바람부는 길거리에서 흰 비닐봉지와 널부러져있는 낙엽들이 바람에 따라 휘날리는 모습이었고, 그 둘은 아무 말 없이 한동안 그 영상에 몰입한다. 

딸의 남자친구는 정신질환자였다. 아니, 실제 그가 정신질환자라는 증거는 없으나, 사회에서는 그를 정신질환자로 여긴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부끄러워하고 약을 강요하며 방에 가둬둔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였다. 그는 평범한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작지만 큰 능력은 그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심미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정신분석이론과 명상법을 결합한 종합심리요법인 사이코신세스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피에로 페루치는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에서 현대인을 구원할 유일한 길을 평범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심미안'에 있다고 말한다. 언뜻보면 어려워 보이는 말이지만 살짝만 바꾸어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쉽게 생각해 사랑에 빠지면 이 세상의 모든게 아름다워 보인다.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봐도, 시들어버린 장미 꽃을 봐도, 아무런 감정도 디자인 요소도 없는 연필 한 자루를 봐도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고 그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모든 일을 할 때 에너지가 샘솟고, 모든 이들과의 관계가 매끄러워지며, 언제나 즐겁다. '아름다움'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증상과 같다. 나의 삶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아름다움의 힘'을 말하고 있다. 신화와 역사, 예술, 과학 등 분야를 넘나드는 풍부한 사례가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그의 근거를 더욱 탄탄하게 해준다. 또한 그가 심리치료사로 활동하며 만났던 우리네와 같은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은 나 역시 그들과 같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던져준다. 그의 주장 때문일까? 그가 끌고가는 키워드들도 자주 쓰는 말들이지만 이상하리만큼 묘한 매력을 지닌 단어들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취향과 자아의 재발견, 치유와 구원, 관계와 공감 등 곳곳에 자리잡은 단어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독재정치는 아름다움에 의심을 품게한다고 한다. 전체주의 국가의 조각상을 보면 고대의 유명한 조각상들과 그 모습이 판이하게 다른데, 전체주의 국가의 조각상은 항상 경직되어 있고, 뻣뻣하게 굳은 채 가슴만 불룩 튀어나와 있고, 얼굴에서는 그 어떤 표정도 읽을 수가 없다. 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밀로의 <비너스>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정신과 육제, 행복과 고통의 표현의 풍부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의 자유를 빼앗기 위해 그들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도록 정신적 마비를 강요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때로는 이미 만들어 놓은 규범을 전복시키기도 하고, 닫혀 있던 사람들의 마음의 빗장을 열어 화해의 장을 열기도 한다. 우리를 요동치는 인생 앞에 끌어다 놓기도 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게끔 하며,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너 넓은 세상과 마주하게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정말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메시지 만큼 아름다운 묘사와 이야기들, 책 조차도 너무 아름다워 마음을 녹이는 책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심장의 떨림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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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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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자기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운명이 자신을 선택한다고 믿는 것이지요.
이곳에서 당신이 보는 것은 분실되었거나 잊힌 수 세기 동안의 책들이지요.
영원히 파괴되거나 침묵을 지키도록 선고받은 책들이며, 기억과 당대의 영혼을 보존하거나 혹은 이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불가사의를 간직한 책들이지요.
_ <천사의 게임1> , 200쪽


 

'잊힌 책들의 묘지'에 발을 들여놓은 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이곳에 처음으로 오는 사람은 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책 중에서 원하는 책을 선택할 수 있다. 단 한 권이다.  둘째, 책을 선택하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존할 의무가 있다. 그 기간은 평생이다. 셋째, 그 책을 가져간 당신은 원하는 곳에 책을 묻을 수 있다. 단, 둘째 조항을 잊지 말것! 다비드 마르틴이 잊힌 책들의 묘지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그 엄청난 책 묘지의 파수꾼이 한 경고였다.

다비드 마르틴은 작가의 꿈을 꾸는 가난한 소설가다. 가난과 고통 속에 어린시절을 보낸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셈페레씨가 운영하는 서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꿈을 꾸며 희망을 발견하고 책의 무한한 세계에 빠져든다. 그에게 책은, 특히 셈페레씨로부터 선물받은 <위대한 유산>은 평생의 친구다. 그가 <위대한 유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 책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구타를 견뎌내는 장면은 책에 대한 그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가난한 작가일 뿐이다. 돈을 벌어야만 했다.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글을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삼손이라는 필명으로 책은 일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 출판사 편집자와 <저주받은 사람들의 도시>라는 책을 썼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크리스티나를 위해 그녀의 스승이자 자신의 스승인 비달의 초고를 가져다 줄거리를 다시 짜고, 작중인물들의 감정을 폭발시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롭게 탈바꿈한 소설을 만들어낸다. 모두가 마르틴의 머리 속에서, 그의 손 끝에서 탄생한 작품이지만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날 프랑스인 편집인인 안드레아스 코렐리에게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책을 써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독자들의 마음과 영혼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이 담긴 작품을 써달라며 거액을 제시한 것이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 하나도 없던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예전부터 길을 지나다니며 눈여겨 보던 '탑의 집'을 계약해 그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마르틴의 주변에서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비밀이 가득한 탑의 집과, 정체가 불분명한 편집인 코렐리, 그리고 잊힌 책들의 묘지까지 갖가지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천사의 게임>은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문학적인 표현이 곳곳에 숨어있는, 책에 관한 한 권의 완벽한 문학이다. 곳곳에 책에 대한 찬양의 표현이 배치되어 있으며, 신이 아닌 책을 믿고 평생을 살았던 셈페레의 서점은 낭만을 불러일으키며, 소설을 써내려가며 고뇌하는 마르틴의 모습은 한 작가를 아는 유일한 길은 그가 남겨놓은 잉크의 흔적을 통해서 뿐이라는 진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스릴러를 읽으며 밑줄을 그어본 적인 처음이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천사의 게임>, <바람의 그림자>의 작가)은 <천사의 게임>에서 주인공 마르틴에세 '모든 이의 마음과 영혼을 바꾸어 놓을 힘을 지닌 책'을 쓰게 요구했지만, 이미 그는 <천사의 게임>을 통해 소설 속 주인공에 투영된 자신의 바람을, 자신의 꿈을 이룬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책의 결말보다는, 전개 과정 속에 등장하는 책에 관한 다양한 단상들, 책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나름의 방식들, 책으로 소통하는 세상의 모습이 더 인상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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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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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_ <상처받지 않을 권리>, 머리말 중에서

 
화려한 네온사인이 밤인지 낮인지를 분간할 수 없도록 밝게 거리를 비추고, 그 거리를 일명 신상을 쫙 빼입은 여성이 명품 가방을 들고 걸어간다. 여기에 돈과 권력, 매춘이 더해지고 인간의 불안, 허영까지 가미되면 우리의 자본주의가 탄생한다. 자본주의라는 달콤한 체제는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환상의 나라를 만들어주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매혹적이면서도 무시무시한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을 선물했다. 그것도 그 근본을 알 수 없는 욕망. 진실로 내 안에서 나온 욕망인지, 타자화 된 만들어진 욕망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욕망 말이다.

심리학이 환영받고, 각종 심리치유서가 읽히는 것도 이러한 욕망에 상처받은 인간들을 보다듬어주기 위해서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 역시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고,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다만 그 방법이 심리학이 아닌 인문학이다. 자본주의적 삶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의식하기 어려운 상처를 일깨우는 학문인 인문학을 통해 치유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삶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그것을 노래한 시인이나 소설가들, 혹은 자본주의적 삶의 내적 논리를 이론적으로 포착하려 했던 철학자들의 생각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는 것이다. 

이 책에는 총 네 명의 문학가와 네 명의 철학자가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이상과 게오르그 짐멜은 돈과 도시를 통해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보들레르와 벤야민은 유행과 도박, 매춘을 통해 강박과 망상에 대해서, 투르니에와 부르디외는 불안과 허영을 통해 소외와 혁명의 논리를, 유하와 보드리야르는 쇼퍼홀릭과 워커홀릭을 건강한 노동에 대해 말한다. 네 명의 문학가들이 당대의 모습과 자본주의적 삶에서 생겨나는 원초적인 감정들과 삶의 모습를 통해 그 느낌을 살려준다면,  네 명의 철학자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문학적인 시각을 통해 사유 지평을 넓혀준다. 구체성과 추상성이, 현실과 이상이, 감정과 사유가 맞아떨어지는 독특한 구조인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내용을 더 깊숙이 이해할 수있게 하는 구성이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이유 모를 소외감, 일에 대한 강박과 성공에 대한 찬양.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느껴오는 많은 좌절감은 결국 욕망과 허영의 감정 때문이었다. 보드리야의 통찰은 인간에게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려는 욕망 혹은 허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벤야민은 그러한 것들이 백화점이라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발생된다고 말한다. 유하는 그러한 허영심이 압구정동이라는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체를 만들었고, 이상은 그러한 도시 속에서 도시인들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다. 

표지에 등장하는 바비인형의 모습이 지금의 우리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자신이 주목받는다는 도취감, 그리고 주목받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가 암묵적으로 교차하는 공간. 강렬한 소유 욕망 때문에 삐뚤어진 모습으로 발현되는 도박과 매춘이 난무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강박과 소외, 허영과 사치를 부리는 우리들.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인문학적으로 곱씹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는 그 지점에 있어 여전히 머릿 속을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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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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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뮤지컬 루나틱은 '루나틱'이라는 정신병동에 온 세 명의 환자들의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실랄한 비판의 목소리를 던진다. 루나틱에 입원한 세명의 환자(나중에 한 명이 더 등장해서 총 4명이 되지만..)는 모두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젊은 청년은 사랑에 상처를 받아서, 할머니는 젊은 시절 남편과 지독히도 어려운 생활을 이어오다가, 그리고 한 아저씨는 자신의 지나친 아들 사랑에 아들을 잃고 미쳐서 병원에 들어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 그리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정신병원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정신 병원에 가둔 건, 아니 그들을 미치게 만들었던 건 그들 자신이 아닌 우리들이었다. 단지 우리는 (혹은 사회는) 그 책임을 피하고 싶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지 열지 않고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을 가두어 그들을 가두어 버린 것이다.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치는 자."
최기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눈을 피하지 못하도록 꽉 붙들었다.
"승민이가 어느 쪽인지 최 선생님은 잘 알아요. 그게 내가 아는 진실이에요."
_ <내 심장을 쏴라> 213쪽

 
   


 <내 심장을 쏴라>역시 <루나틱>과 같이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다.  이 책은 수리 희망병원에 갇힌(?) 주인공 수명과 승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들의 마음 속 깊은 상처와 치유의 과정, 그리고 병동에서 만난 여러 친구들과의 갖가지 재미난 에피소드, 우정, 감동 스토리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잘 버무러져 있는 소설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고, 자기 자신한테서마저 도망친 사람들. 어느 한 사람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공간에서 이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병원장은 2주에 한번 병원에 들러 서류에 도장만을 찍을 뿐이고 점박이를 비롯한 간호사들은 이들을 짐승만도 못하게 대한다. 그나마 사람 이름으로 불리는 최기훈만이(최기훈만 사람 다운 이름을 붙여 부르는 건 작가의 의도 때문이 아닐까? 수명의 눈에 그를 뺀 다른 사람들은 그냥 점박이, 전봇대 일 뿐이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주인공 수명과 승민의 우정은 수리 희망병원에 들어간 첫날 승민과 함께 병원에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고 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여러가지 어긋나는 점도 많지만 이 둘은 서로를 알아본다. 이들은 미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상처를 입고 세상에 마음을 닫아 버린거라고. 이들의 눈에 정신병원은 치료 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다. 규율에 순응 하는 것을 익히는 학습장이고, 반항은 지독한 궁지와 같은 말이라고. 도와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봐야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다는 걸...  수명은 승민의 사연을 알게 되고 승민이 실명의 위기에 놓이자, 승민의 꿈을 이루어주려 탈옥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성공한다. 둘이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 승민은 수명에게 시계를 쥐어주며 이야기한다. "이제 빼앗기지마. 네 시간은 네거야."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승민에게는 헤피엔딩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어쩌면 벌써 알고 있었던 걸 거다. 세상으로 돌아가도 다시 병원으로 보내질 것이 분명하고, 그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거. 자신의 편은 이 세상에 이미 단 한명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던 일을 하며 생을 마감한거다. 자신의 꿈이었던 세계 페러글라이딩 선수의 꿈을 꾸면서 말이다. 수명 역시 병원에서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 이전의 엄마의 죽음을 떠올리며 그것과 당당하게 마주하는 순간 저 밑 속까지 참았던 울분을 토해낸다. 승민이 수명에게 그것을 선물해 준 거다.  "와, 다 와. 날 죽여보라고, 자식들아!"라고 포효하던 승민은 정신병자가 아닌 그렇게 남들과는 다른 멋진 사람이었던거다.

<내 심장을 쏴라>는 1억원 고료라는 국내에서는 엄청난 고료를 주는 세계문학상(제 5회)을 수상한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의 평처럼 '거듭 탈출을 꿈꾸고 또 시도하지만 늘 그 자리에 머무는일상에 대한 은유처럼 소설은 진지한 의문을 가슴에 품게 만든다'. 하지만 초반부에 떨어지는 흡입력과(심사평에서는 초반 60쪽 가량이라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책의 1/2을 넘어서야 그게 가능했다), 그닥 새롭지 않은 소재, 그리고 가끔 갖가지 수사들로 늘어지는 문장들은 실망감으로 다가왔다. 세게문학상의 심사 기준은 가끔 나를 갸우뚱 하게 하지만(작년 <스타일>을 읽었을 때는 더 했다.) 그건 아직 내가 문학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라 자책하며 더 공부를 하는 수 밖에. 세상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세상이 원하는 것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만으로 정신병 환자 취급을 받는 이 세상이 한없이 두려워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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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사랑 -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헤르만 헤세 : 사랑, 예술 그리고 인생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 / 그책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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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장르와 분야를 떠나 내게 있어 책은 총 세 가지 정도로 구분된다. 첫째는 잡는 순간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읽어내려가는 책. 주로 소설이 여기에 속한다. 뒷부분이 궁금해 견딜수가 없기 때문에 종종 잠을 설쳐가며 읽기도하고, 출근길에 미처 못 읽고 남은 30여 페이지를 화장실에 몰래 가지고 들어가 읽기도 한다. 두번째는 밑줄 그어가며 되새김질 하며 읽는 책. 주로 철학, 역사, 경제분야의 책이 그렇다.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책, 여행서라도 문명과 다채로운 문화를 말하고 있는 책, 주옥같은 문장을 담고 있어 음미하며 읽어야만 하는 책들이다. 마지막은 바로 책꽂이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꺼내보는 책이다.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꽂히는 문장을 읽어내려가는 책. 성경과 같은 책(물론 난 무교지만 왠지 성경은 그렇게 읽을 것만 같다), 지금 바로 내 컴퓨터 옆에 있는 <참 서툰 사람들>과 같은 책. 그리고 <헤세의 사랑>과 같은 책이 그것이다. 

       이성이나 의지에 따라 사랑을 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사람들은 사랑을 감수할 뿐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다 바쳐 사랑을 견뎌낼수록 그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_ 파니 실러에게 보낸 엽서, 1932년 11월 13일

<헤세의 사랑>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생전에 남겼던 명문장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엮은 책이다. 독일의 주어캄프 출판사 편집자로 30여년간 헤세의 문학을 연구해온 폴커 미헬스가 그가 남긴 시와 소설은 물론, 신문 기고문, 아들과 연인, 친구 등에게 보냈던 수많은 편지와 메모, 일기 등의 흔적을 수집해 이 책을 엮어냈다. 때로는 한 문장이, 때로는 한 편의 에세이라해도 손색 없을 문장들이 빼곡히 담겨있다. 이번에 이 헤세와 관련된 책은 시리즈로 함께 나왔는데, 사랑 외에 <헤세의 인생>, <헤세의 예술>도 있다.  

개인적으로 헤세의 문학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사랑하는 이들과 주고 받은 편지의 내용은 그를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수레바퀴 밑에서>를 읽었을 때 (아마도 고등학교 1,2학년 때 였던걸로 기억한다) 헤세의 이야기와 문장은 내게 너무나도 버거웠다. 역시 난 고전이랑 안맞아!라며 억지로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헤세의 사랑>속 헤세를 상상해보면 한적한 독일의 어느 시골 마을의 멋진 중년 신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억지로 꾸민듯한 갖가지 수사를 붙이는 것이 아닌, 진솔함과 모든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내려가는 그의 모습이 책 속 문장들과 겹쳐진다.

어떤 의견과 감상, 비평을 덧붙이는 것 보다 기억에 남는 구절, 다시 읽고 싶은 구절을 담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언급은 마치고 싶다.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다면, 혹은 시작되는 사랑에 망설이고 있다면, 혹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한다. 

 

* 기억에 남는 책 속 문장
사람들은 가장 갖기 힘든 것을 가장 좋아한다.
_ <게르트루트>, 1907/08년, 23쪽

사랑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우며, 또한 진정으로 사랑하기는 얼마나 어렵고 아름다운 일인지 누구나 알고 경험한다. 사랑은 모든 진정한 가치들이 그렇듯이 돈으로 살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만족은 있으나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랑은 없다.
_ <내면의 부유함>, 1916년, 24쪽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는 타인에 대한 사랑도 불가능하다. 자기혐오는 과장된 이기주의와 똑같은 것이며, 결국에는 똑같이 지독한 고립과 절망을 낳는다.
_ <황야의 이리>, 1925~1927년, 47쪽

나이 든 남자가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성의 사랑을 받아들였다가 그 여성을 실망시킨다면 그것은 사회적 통념상 그 남자의 잘못이오. 나이 든 사람은 더 현명하고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오.
_ 루트 벵어에게 보낸 편지, 1922년 2월 26일, 67쪽

사랑할 의무는 없다. 단지 행복행 할 의무가 있을 뿐. 오직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세상에 존재한다. _ <마르틴의 일기 중에서>, 1918년,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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