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자기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운명이 자신을 선택한다고 믿는 것이지요.
이곳에서 당신이 보는 것은 분실되었거나 잊힌 수 세기 동안의 책들이지요.
영원히 파괴되거나 침묵을 지키도록 선고받은 책들이며, 기억과 당대의 영혼을 보존하거나 혹은 이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불가사의를 간직한 책들이지요.
_ <천사의 게임1> , 200쪽


 

'잊힌 책들의 묘지'에 발을 들여놓은 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이곳에 처음으로 오는 사람은 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책 중에서 원하는 책을 선택할 수 있다. 단 한 권이다.  둘째, 책을 선택하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존할 의무가 있다. 그 기간은 평생이다. 셋째, 그 책을 가져간 당신은 원하는 곳에 책을 묻을 수 있다. 단, 둘째 조항을 잊지 말것! 다비드 마르틴이 잊힌 책들의 묘지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그 엄청난 책 묘지의 파수꾼이 한 경고였다.

다비드 마르틴은 작가의 꿈을 꾸는 가난한 소설가다. 가난과 고통 속에 어린시절을 보낸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셈페레씨가 운영하는 서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꿈을 꾸며 희망을 발견하고 책의 무한한 세계에 빠져든다. 그에게 책은, 특히 셈페레씨로부터 선물받은 <위대한 유산>은 평생의 친구다. 그가 <위대한 유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 책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구타를 견뎌내는 장면은 책에 대한 그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가난한 작가일 뿐이다. 돈을 벌어야만 했다.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글을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삼손이라는 필명으로 책은 일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 출판사 편집자와 <저주받은 사람들의 도시>라는 책을 썼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크리스티나를 위해 그녀의 스승이자 자신의 스승인 비달의 초고를 가져다 줄거리를 다시 짜고, 작중인물들의 감정을 폭발시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롭게 탈바꿈한 소설을 만들어낸다. 모두가 마르틴의 머리 속에서, 그의 손 끝에서 탄생한 작품이지만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날 프랑스인 편집인인 안드레아스 코렐리에게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책을 써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독자들의 마음과 영혼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이 담긴 작품을 써달라며 거액을 제시한 것이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 하나도 없던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예전부터 길을 지나다니며 눈여겨 보던 '탑의 집'을 계약해 그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마르틴의 주변에서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비밀이 가득한 탑의 집과, 정체가 불분명한 편집인 코렐리, 그리고 잊힌 책들의 묘지까지 갖가지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천사의 게임>은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문학적인 표현이 곳곳에 숨어있는, 책에 관한 한 권의 완벽한 문학이다. 곳곳에 책에 대한 찬양의 표현이 배치되어 있으며, 신이 아닌 책을 믿고 평생을 살았던 셈페레의 서점은 낭만을 불러일으키며, 소설을 써내려가며 고뇌하는 마르틴의 모습은 한 작가를 아는 유일한 길은 그가 남겨놓은 잉크의 흔적을 통해서 뿐이라는 진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스릴러를 읽으며 밑줄을 그어본 적인 처음이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천사의 게임>, <바람의 그림자>의 작가)은 <천사의 게임>에서 주인공 마르틴에세 '모든 이의 마음과 영혼을 바꾸어 놓을 힘을 지닌 책'을 쓰게 요구했지만, 이미 그는 <천사의 게임>을 통해 소설 속 주인공에 투영된 자신의 바람을, 자신의 꿈을 이룬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책의 결말보다는, 전개 과정 속에 등장하는 책에 관한 다양한 단상들, 책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나름의 방식들, 책으로 소통하는 세상의 모습이 더 인상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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