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_ <상처받지 않을 권리>, 머리말 중에서

 
화려한 네온사인이 밤인지 낮인지를 분간할 수 없도록 밝게 거리를 비추고, 그 거리를 일명 신상을 쫙 빼입은 여성이 명품 가방을 들고 걸어간다. 여기에 돈과 권력, 매춘이 더해지고 인간의 불안, 허영까지 가미되면 우리의 자본주의가 탄생한다. 자본주의라는 달콤한 체제는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환상의 나라를 만들어주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매혹적이면서도 무시무시한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을 선물했다. 그것도 그 근본을 알 수 없는 욕망. 진실로 내 안에서 나온 욕망인지, 타자화 된 만들어진 욕망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욕망 말이다.

심리학이 환영받고, 각종 심리치유서가 읽히는 것도 이러한 욕망에 상처받은 인간들을 보다듬어주기 위해서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 역시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고,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다만 그 방법이 심리학이 아닌 인문학이다. 자본주의적 삶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의식하기 어려운 상처를 일깨우는 학문인 인문학을 통해 치유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삶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그것을 노래한 시인이나 소설가들, 혹은 자본주의적 삶의 내적 논리를 이론적으로 포착하려 했던 철학자들의 생각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는 것이다. 

이 책에는 총 네 명의 문학가와 네 명의 철학자가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이상과 게오르그 짐멜은 돈과 도시를 통해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보들레르와 벤야민은 유행과 도박, 매춘을 통해 강박과 망상에 대해서, 투르니에와 부르디외는 불안과 허영을 통해 소외와 혁명의 논리를, 유하와 보드리야르는 쇼퍼홀릭과 워커홀릭을 건강한 노동에 대해 말한다. 네 명의 문학가들이 당대의 모습과 자본주의적 삶에서 생겨나는 원초적인 감정들과 삶의 모습를 통해 그 느낌을 살려준다면,  네 명의 철학자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문학적인 시각을 통해 사유 지평을 넓혀준다. 구체성과 추상성이, 현실과 이상이, 감정과 사유가 맞아떨어지는 독특한 구조인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내용을 더 깊숙이 이해할 수있게 하는 구성이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이유 모를 소외감, 일에 대한 강박과 성공에 대한 찬양.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느껴오는 많은 좌절감은 결국 욕망과 허영의 감정 때문이었다. 보드리야의 통찰은 인간에게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려는 욕망 혹은 허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벤야민은 그러한 것들이 백화점이라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발생된다고 말한다. 유하는 그러한 허영심이 압구정동이라는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체를 만들었고, 이상은 그러한 도시 속에서 도시인들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다. 

표지에 등장하는 바비인형의 모습이 지금의 우리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자신이 주목받는다는 도취감, 그리고 주목받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가 암묵적으로 교차하는 공간. 강렬한 소유 욕망 때문에 삐뚤어진 모습으로 발현되는 도박과 매춘이 난무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강박과 소외, 허영과 사치를 부리는 우리들.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인문학적으로 곱씹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는 그 지점에 있어 여전히 머릿 속을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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