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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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 전에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우동 한 그릇, 그 책을 지금 다시 읽었다. 판본은 바뀌었지만 내용이 달라졌을 리 없고, 다시 읽은 이 책은 조금 새롭게 다가온다.

가난하게 살아온 가족들에 대한 음식점 주인의 배려와, 힘든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함께 견뎌낸 가족의 모습, 이 모습은 던져주는 주제는 없으나 세상에 있는 여러 아름다운 모습들 중 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모습을 책을 소개하는 여러 글들이 말하는 “가난한 시대에 있었던 감동적인 이야기”로 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소박한 인정이 가져온 큰 감동”으로 소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물론 이어령 선생님의 지적처럼(축소지향의 일본인 참고) 우리와는 다른 문화가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그래도 감동은 남는다.

 

 

 

그런데, 사실 더 헌신적이라면 헌신적일 수도 있는 ‘마지막 손님’은 몰입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먼저 ‘나까가와’가 조금은 ‘비현실적인 악역’으로 보인다. 자신의 진짜 생각이 어떨지라도 그가 사람과 관계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면, 일의 실상이 그의 말처럼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비즈니스'라 해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계산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작가가 ‘어떤 사람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은데, 이렇게 좋지 않은 성격을 나타내는 전형적 인물은 어쩐지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여기 나온 사건만으로 보면 잘 끝났으니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대해 10년 전에는 알지 못했던 문제점도 보인다.

책에서는 마지막에 윗 사람이 주인공의 배려와 헌신을 인정해주자, 나까가와가 주인공의 가치관을 인정했는데, '과연 이런 미담은 어떤 높은 사람의 인정이 있어야 빛을 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안 좋은 느낌도 남는다. 

 

그래서 앞서 나왔던 주인공의 행동들은 모두 감동적이었으나, 나까가와가 변화되거나, 모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기업의 높은 사람'이 인정해주고 감동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조금 씁쓸하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담긴 따스함 만큼은 보편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디서나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부분적으론 문화적 차이가 있어서 이해가 안 되는 곳도 있지만, 긴 시간동안 사랑 받아온 작품이 가지는 남을 위한 헌신과 배려가 주는 그 감동, 그 마음은 깊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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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사본의 진실 - 초기 교회의 비밀을 담은 쿰란의 문서
마이클 베이전트 외 지음, 김문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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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책 http://dss.collections.imj.org.il/ 가면 다 읽을 수 있는 사해사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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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6300 2023-02-1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독교는 원문이 없다고 말하면서 쿰란문서도 원문이 아니라고 바득하며 성경은 하나님이 준 원문으로 착각하는게 아이러니... 그런 개같은 논리가 개독들이 뇌가 없다는 증거를 스스로 증명하는샘.

마루와다솜 2024-05-15 12:17   좋아요 0 | URL
당연히 쿰란의 사해사본도 원본 성경은 아닙니다.

주전 586년에 남유다까지 모두 멸망했는데 주전 250년~주후1세기 경에 만들어진 사해문서 역시 원본은 아니죠.

본문비평까지 설명할 자신은 없는데.. 지금의 번역본들은 사해문서와 레닌그라드사본, 알레포 사본, 그리고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경 등 여러 문서들을 대조, 분석해서 진행합니다.

(사해문서가 최고 사본이지만 부분적으로만 남아있고, 알레포사본은 마소라사본 가운데 가장 정확한 사본이지만 일부가 소실되었습니다. 레닌그라드사본은 오자나 필사상의 오류가 많은 사본이지만, 구약 성경 전부가 보존되어 있고요. 70인경은 그리스어 번역본이지만, 그 번역자들이 참고한 자료는 사해사본, 혹은 그 이상의 사본이기에 참고합니다.

그래서 BHS 성경은 전부가 남아있는 레닌그라드 사본을 기반으로 다른 사본을 비교,대조하여 본문비평한 결과를 반영하고 있고 , 예루살램 크라운 성경은 알레포 사본에 기반해 다른 성경 추가 및 참고 했습니다.

사해문서는 아무래도 남아있는 양이 얼마 안 되어

사해사본 영어 번역본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비기독교인 학자인) 게자 버마스의 역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않는 학자이니 참고하시길...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13331248


다 공개되었던 문서들인데... 너무 음모론에 빠지신듯

히브리어 보고싶으시면 (신학자라 인정 안 하실 것 같아 소개 안 했는데..) 제임스 찰스워스 등이 영어 번역과 함께 출간한

The Dead Sea Scrolls. Hebrew, Aramaic, and Greek Texts with English Translations

시리즈가 유명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서라는 삼국사기 편찬 연대가 주후 1145년이고, 그나마 남아있는 사본은 1512년 개각한 목판으로 1573년 찍은 사본만 남아있을 뿐, (주전 1세기까지 안 가도) 주후 천년으로만 가도<중세죠>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역사서는 없습니다..ㅠㅠ

(유기.신집/ 국사 등의 서양의 중세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역사서 소실 . 혁거세, 동명왕, 비류, 온조, 등 삼국의 시조가 활동하던 시기가 예수님 시대와 비슷하니, 지금 말하는 사본이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몽실 언니 - 반양장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 창비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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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의 글들은 일반 동화들과는 달리 어른이 되어 읽는데도 조금 어려운 감이 없지 않다. 단편은 단편대로 생각할 것이 많지만 이번 장편은 동화를 읽는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주인공이 아이일 뿐, 오히려 "소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 책을 읽고나니 둘의 차이를 구별하는건 너무 어려운 문제가 되어버렸다.)

 

우리내 식민시절의 끝자락과  6.25를 살아오신 우리의 할머니(할아버지 포함)들의 모습을 글로 그려낸 몽실언니는 어떤 고상한 개념이나 주제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이 겪는 가난과 고통, 이별과 방황, 그리고 개인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 주인공은 어떤 고상한 관념이나 이상향을 보여주진 않는다. 다만 저는 다리로, 누군가를 용서해가거나, 선한이들의 고통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들보며 울 수 있는, 그런 작은 존재일 뿐.

 

동화에서 주인공은 어찌보면 무능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당시 삶의 모습이었으며, 주인공이 느끼는 울분과 슬픔, 그리고 그 속에 있던 작은 기쁨은 자신들의 잘못 없이 어떤 흐름에, 물결에 쓸려서  '막막할 수밖에 없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일 것이다..

동화가 외부의 압력으로 단절 되어서인지 이야기의 결말 부분은 조금 모호하다. '희생을 통한 자기 존재 가치 발견'이라는 주제가 보이는 '강아지 똥'이나 그외 다른 동화들에 비해서도 이 책이 가지는 확실한 주제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작가가 그려내는 몽실이의 사회(시대)는 정말 암울 했으며, 그런 삶 앞에서의  막막한 감정에도  소녀는(몽실이는) 이겨왔고, 동생들을 지키고, 자녀들을 돌보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 동생들 역시 어려움은 있었으나 결국은 버림받음과 이별 등 여러 어려움을 거치며, 여기(지금, 오늘)까지 살아왔다.

 

이것이 우리의 할머니,할아버지들 삶의 모습이었고, 힘든 걸음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 몽실이와 난남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삶을 버텨왔을 모습으로 생각하면 한편으론 그들의 삶 자체를 두고서도 고개가 숙여진다.

[6.25당시에도 돈 많은 사람들은 의료 혜택을 받는데 우선권이 있었던 점이 동화 속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상위1%의 사람들은 이런 세월을 겪지 않았을 확률이 높지만, 당장 우리의 할머니들만 봐도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동화가 그리는 이 사회의 문제는, 각 단체를 구성하는 개인이 악해서도 아니며, 그들 모두가 나쁜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살펴야 할까.......

 

그 전에,  몽실이와는 다른 조건이고 훨씬 편한 세상이이지만,  나 역시 서로에게 열린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겠지.....  참 어렵다..

 

저자의 말이 생각난다.

 "동화가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가 아니지요. 좋은 글은 읽고 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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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희 지음 / 드림북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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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체 칩이라기 보다 그 시스템을 조정하게 될 정권을 알리고 싶다, 전쟁을 부르고 지나친 기독교적 마인드로 예루살렘을 회복하며 평화와 협상을 가장하는 절대 권력의 그가 적그리스도인 사실을 알리고 싶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단12:4
빠른 왕래는 시간이 압축되어 천년 동안 될 일이 하루, 또는 1분에 다 되는 속도다, 따라서 역사도 빨라지고 압축되는 것이며 지식의 폭이 넓고 빨리 많은 것을 아는 뜻이다, 실로 천년 같은 하루를 살고 있다.  <저자의 말 중>

 

 

책 소개에도 나와있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단순히 '미래를 예언'하기 위해 쓰인 소설은 아닐 것이다. 실재 이 소설의 이야기 처럼 북한의 침공이 있을 수도 있고, 그저 평화롭게 통일 되어 먼저 복음이 전파될 수도 있다. 즉 그녀의 이야기는 부분적으론 환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인 인체 칩과 그 시스템을 조정할 정권, 그리고 믿는자에게 요구되는 모습 등을 놓고 볼 땨, 이 이야기는 앞으로 있을 사실을 각색한 것으로 지금 안락한 신앙, 기복적 신앙에 머물러 있는 우리에게 주는 경고 일 수 있다.

 

따라서 부분적으로는 이 소설의 서술에 부족한 점이 많으나(예를들면 주인공이 아이와 함께 잡힌 뒤 해독약을 이용해 해독하는 장면이 있는데, 난 아직도 그 해독약을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하다.) 전체 주제로 볼 때는 다른 책들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을 위해 고난 받을 수 있는가?"

 

 

우리나라에 있는 교단들 중에는 마지막 때에 있을 "짐승의 표에 의한 핍박"을 비유적인 것으로 보아 실재 일어나지는 않는 것으로 보는 교단이 많다.(주로 다니엘서를 근거로하여, 재림 직전 단 한번의 '전 우주적 혼란'은 인정하지만 짐승의 표와 같이 재림 전에 일정한 기간을 두고 일어날[그 기간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환난을 인정하진 않는 교단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신체 이식 칩이 "이마"나 "손(팔 포함)"에 이식된다는 사실을 보거나[계시록 13:16],  결정적으로 이 칩이 화폐를 대신하여(정확히는 신용카드와 유사한 기능) 매매에 관련 되기 때문에[13:17] 저자의 말처럼 주의할 필요가 있다.

 

 

계14:9~13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 소설을 통해 단순하게 읽었던 이 구절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모두 이겨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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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십대 기회의 십대
폴 트립 지음, 황규명 옮김 / 디모데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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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한편으론 청소년들을 위한 책일 것 같지만 실은 십대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님들을 위한 책이다. 성경적인 양육을 위해 부모들이 가져야할 마음가짐과 같이 "신앙적인 가정"에서 필요한 양육 자세들을 말하고 있다.

 

'부모의 마음에 있는 변화를 가로막는 우상은 무엇인가?' '십대 자녀들에게 우리가 가져야할 최종적인 목표는 뮤엇인가' 처럼 신양적인 내용들이 우선하여 눈에 띄며, 자녀들을 양육하는 과정에 내려야할 적절한 훈육의 방법과 함께, 자녀들이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경우에 해줄 수 있는 조언이나, 개방형 질문의 예시처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도 많이 있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 책이 기초하고 있는 듯 보이는 권면적 상담의 약점 또한  나타나는데,(일반 상담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지만) 자녀의 문제가 다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상관 없겠지만, 만약 ADHD나 아스파거(아스퍼거) 등이 경미하게 온 경우처럼 질병 자체를 모르고 성인이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상담으론 할 수 없는 경우의 진단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히 효과를 보이는 10대 초반의 어린 아이에 대한 바람직한 훈육['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같은 방송에도 많이 나오는 내용] 등에 대해선 나오지 않는다. 내가 볼 때는 일반 심리학과 의학도 아이의 변화에 어느정도 도움을 주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그런 내용은 설명이 부족하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심리학적으로도 옳은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하지만, 심리학적인 설명이나 내용은 전혀... 아니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의학과 심리학에 기초한 좋은 자녀 양육 서적이 많은 지금, 이렇게 '성경적'관점에서 자녀 양육에 대한 이야기는 던져주는 의의가 크며, 기독교 신앙이 있는 가정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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