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거절술 - 편집자가 투고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
카밀리앵 루아 지음, 최정수 옮김 / 톨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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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나 들었을 거절의 새롭게 보기(재미있게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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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거절술 - 편집자가 투고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
카밀리앵 루아 지음, 최정수 옮김 / 톨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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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양한 거절들] 

프랑스아카디 상앙토닌 마예 아카디 비 상을 수상한 작가가 지금까지 받아왔다는 99개의 출판 거절 편지를 모아놓은 책이라는데, 일단 재미있다.

 

거절의 이유는 다양하다. 작가의 자질이 없어보이니 다른 직업을 찾으라 비난하거나, 혐오스럽다며 종이를 더럽히지 말라고 질책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부디 용기를 내시라고 격려 하거나 (이 낙관주의 편지는 제3자가 봐도 너무나 다정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23번 계속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황당한 이유들]

이런 일상적인 거절들부터, 해당 작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겸손, 또는 당연히 자신들을 버리고 다른 더 큰 출판사와 계약하리라는 상대의 망상으로 인한 거절이나. 음란한 장면이 안 나와서문제는지적, 또는 사상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거나 말이다. (노동자여 단결하라! 또는 무정부주의, 만세!) 와 같이 아주 다양한 종류의 비난과 거절이 나온다. 원고를 잃어버린, 당황스럽지만 일상적인 모습도 더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베트남어가 압권이었다. ^^;;]

 

 [그러나 누구나의 삶] 

그런데 이렇게 재미있는 몇몇 편지를 제외하면, 이 거절들, 분명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 학창시절이든, 사회생활에서든 어떤 방식으로는 들었을 거절들. 그래서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이 편지들에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고서가 교수님들에게, 또는 윗선에서 거절당하거나, 비평 받을 때, 혹은 내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남들에게 비판받을 때 그 유형을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 소설 거절술법위 안에 들어간다. 혹은 페미니즘이나 마르크스주의처럼 어떤 사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을 비난하는 모습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페미니즘이 그른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146쪽을 보면 페미니스트가 작품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 [남장을 하고 남자를 이해하는 과장에서 여성혐오주의자가 될 뻔 했다는 노라 빈센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성 평등을 위한 페미니즘은 옳으나 양쪽 보두 더 넓은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점은 공산주의에도 해당 되겠지.)

그래서 더 끌리게 된다. 나만 이런 거절당한 게 아니구나! 나만 그런 혹평 받은 게 아니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

편지를 읽다보면 내가 만든 결과물로 인해 받게 될 비판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던 일들에 대해 다시 도전해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착오편을 보면 일반 철물점 주인이 잘못 배송된 작가의 원고를 받고 쓴 편지가 나오는데 책 말미에 보면 그 이후 철물점 상인이 작가의 책가 감동해 쓴 소설이 출판에 성공했다는  편지가 나온다.) 아니라면 적어도 웃으며 읽었던 이 책을 통해 앞으로 듣게 될 비난을 조금 더 초연하게 듣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까지도 얻었다면 충분히 의미 있든 독서일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거절당하고 비난받았을, 거절과 비난을 앞으로도 수없이 받게 될 예비 작가에게, 그리고 거절당해 낙심하려는 이들에게, 오늘도, 내일도 심혈을 기울인 모든 작품이 거절당할 모든 이들에게도... 저자는 말한다.

 

부디 용기를 내시.”.

 

 

 


젊은 무명작가 앞에 도사리고 있으나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하는, 당신이 방금 읽은 편지들과 같은 위험으로부터 당신을 구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그리하여 이것을 나의 유작이자 문학에 대한 유일한 공헌으로 여겨주시길.

199쪽 맺는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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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떠나는 고양이가 늘고있다
정규훈 / 문화인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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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니 정말 제목 잘 골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집 떠나는 고양이가 늘고 있다93쪽에 있는 시의 제목으로

 

(전략)

길들여진 터전을 미련없이 버리고

처자식 노부모 안면몰수 외면하고

집떠나는 고양이족이 늘고 있다.

 

쾌락을 위해 몸버리고

돈을 위해 도덕을 버리고

버리고 버리다 버려지는 인생

(중략)

돈버리며 유학가서 사람버려 돌아오고

돈버리며 관광가서 신세망쳐 돌아오고

도는 돈에 사람 돌아

잘도 돈다 지화자!

 

에헤라, 더러운 세상 판쓸이나 맞으랴!

에헤라, 더러운 인간 싹쓸이나 당하랴!

 

 

하는 풍자시이지만 다른 작품들이 전하는 고독사랑이라는 이미지를 잘 전달한다.

 

 

시집은 사랑하는 이를 향한 노래로 시작하는데, 사랑에 빠진 이들의 마음을 노래하거나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정신병자라고도 한다) 그대를 나의 주인으로 맞아 몸종처럼, 언제나 그대를 맴도는 잠잠한 열기로 죽어지고저(욕망의 불꽃 중)라고 이야기 하는 등 사랑하는 마음을 달콤하지는 않으나 다정한, 담담한 어조로 노래한다.

 

육체적 사랑(말더듬기 혹은 살더듬기)보다는 누군가의 눈에 고이는 눈물, 그 누군가도 모르고 있을 눈물의 의미까지 닦아주는 것이라 이야기 하는 시인은 결국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는 사랑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새벽안개처럼 스러지기 전에 그대가 돌아오리라 기대하는(그대, 그래도) 갈망이기도 하며 결핍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의 말 대로 헤어짐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사랑처럼 말이다,

헤어짐과 사랑을 노래한 시인은 이제 고독한 도시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서울에는 혼자사는 사람도 많고

혼자타는 차도 엄청 많더라..

(중략)

사람 많은 서울에 말뚝박고 살자니

그게 어디 할 짓이여!? (서울생활 중)

 

저자가 바라본 도시는 많은 사람 속에서 기다려도 전화 한 통 오지 않는(공휴일)

어디를 파보아도 썩어질 욕심만 굳어있는 굳혀 있는(발굴조사) 곳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살고 있는 시인 역시 이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서

 

정신없이 뛰다가

무심코 잊혀지는 사람

바로 나

(이럴 줄 몰랐는데 중

 

 

 

내꿈이 끝나는 곳에

운명이 있었다.

나의 운명이 끝나는 곳에

저주가 있었다.

저주가 끝나는 곳에

나의 십자가가 있었으며

십자가 위에는

신의 성난 눈빛이 있었다.

아직도 돼지꿈을 꾸는 나의 객기는

신의 개죽음을 즐기고 있는가?

(101쪽 돼지꿈과 개죽음)

 

리스먼이 말한 대로 고독한 군중으로의 삶에 지쳐가는 현대 사회, 그리고 인간 근본의 저주를 해결한 신의 고귀한 희생과 사랑도, 그러한 신의 공의에서 비롯된 분노도 나의 돼지꿈 보다 앞서지 못하는 물질 만능 사회에 대해 분노한 시인이 대안으로 찾은 것은 변하지 않는 자연과 옛날 시골의 정, 고향. 그리고 인간 사이의 사랑이었다.

 

물론 이 결론이 불충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건 사회학자나 교육자 등이 해야 할 일이고, 시인은 그런 사회를 노래하여 단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변화를 주었다면 역할을 다했으리라.

 

문학은 결핍을 노래하지만 결핍에서 그치지 않고 지향점을 노래한다. 그런 면에서 이 시들 역시 전문적인 시인들 같은 참신한 표현은 부족해도 한 시대 속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노래들이리라.

 

    

덧!

고양이를 문지르면 없어집니다.  라고 적혀있는데 오래되어서 그런지 문질러도 안 없어진다. 시대 변화로 집을 안 떠나서 그런가? (캥거루족? ^^;;) 

    

사람의 손이 미치는 곳
어디를 파보아도
썩어질 욕심만 굳어있다.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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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떠나는 고양이가 늘고있다
정규훈 / 문화인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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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아닌자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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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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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집에 대한 서평을 슬 때면 조심스러워 진다. 차라리 시 몇 편에 대한 서평만을 쓴다면 내 느낌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한 권의 시집에 대한서평은 쓰기가 조심스럽다. 여기 나온 모든 시가 내가 시집을 읽으며 느낀 감정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한 작품만 뽑기에는 다른 작품이 아쉽다. 그래서 그냥 주관적으로 정리 하고자 한다.

 

먼저 이 시집에 나온 시 대부분은 연 구분이 없다. 그래서 마치 혼자 읊조리는 듯이 느껴진다.

 

 

세상의 냉혹함과 차가움을 충분히 느낀 소년

이미 세상의 모든 일을 원래 일어날 일들이었습니다.”(커피를 쏟다 중)라며 거리를 두거나,

빛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나를 지나쳤을 뿐 어차피 내 손목이나 내 사랑은 안중에도 없었다. (빛이 나를 지나가다)

 먹고 먹히는 데 이유는 없다

 

신념이 필요 없는 이유는 충분하다(태평성대 중)

 

이렇듯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과, 그런 세상 속에서 결국은 일어나는 일들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못 차갑다.

 

 신성한 모든 것이 세속적이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회사에서 시말서를 쓰는 일상적 모습, 인생에 그 이상의 것은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새로움이 사라지고, 기대도 사라지고, 사랑에도 아프지 않고, 비굴할 만큼 비굴해지고 오만할 만큼 오만해진 저자가, 아무 것도 아닌 시를 위해, 아무 것도 아니길 바라며(휴면기 중) 다시 시로 나아오는 노래는 그래서 슬프다.


하지만 그런 세상속에서도 여전히 푸른 소년이기를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버린 저자가, 허무하다 외치는 시인이 자신을 나쁜 소년으로 표현한 것처럼, 우리 속에 있는 아직 세상에 발 담그지 않은 소년, 세속에 물들지 않아 세상에서 배척받는 나쁜 소년으로서의 모습이 그러한 아무 것도 아닌, 세월 속에서, 시간의 흐름 안에서 고독함 속에서 푸르게 남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것이야. 이렇게 말했구나…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빌헬름 스테켈[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재인용])

 

고결하게 죽지 못했으나 죽을 수 있었던 시절을 그리며, 이제는 세속에 물들고 아무 것도 아니게 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 그게 삶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시의 시인은 그러한 성숙함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떤 고결함에 머물고자 울부짖고 있다. 그런 모습은 좋게 보면 각박한 삶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으나 다른 면에서 보면 다른 면을 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 아쉽고 괴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세상과 타협한 것은 삶에서 충분히 느끼고 있으니 이렇게 타협하지 않으려 애쓰는 작품을 보는 것에 더 신선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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