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떠나는 고양이가 늘고있다
정규훈 / 문화인 / 1994년 7월
평점 :
품절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니 정말 제목 잘 골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집 떠나는 고양이가 늘고 있다93쪽에 있는 시의 제목으로

 

(전략)

길들여진 터전을 미련없이 버리고

처자식 노부모 안면몰수 외면하고

집떠나는 고양이족이 늘고 있다.

 

쾌락을 위해 몸버리고

돈을 위해 도덕을 버리고

버리고 버리다 버려지는 인생

(중략)

돈버리며 유학가서 사람버려 돌아오고

돈버리며 관광가서 신세망쳐 돌아오고

도는 돈에 사람 돌아

잘도 돈다 지화자!

 

에헤라, 더러운 세상 판쓸이나 맞으랴!

에헤라, 더러운 인간 싹쓸이나 당하랴!

 

 

하는 풍자시이지만 다른 작품들이 전하는 고독사랑이라는 이미지를 잘 전달한다.

 

 

시집은 사랑하는 이를 향한 노래로 시작하는데, 사랑에 빠진 이들의 마음을 노래하거나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정신병자라고도 한다) 그대를 나의 주인으로 맞아 몸종처럼, 언제나 그대를 맴도는 잠잠한 열기로 죽어지고저(욕망의 불꽃 중)라고 이야기 하는 등 사랑하는 마음을 달콤하지는 않으나 다정한, 담담한 어조로 노래한다.

 

육체적 사랑(말더듬기 혹은 살더듬기)보다는 누군가의 눈에 고이는 눈물, 그 누군가도 모르고 있을 눈물의 의미까지 닦아주는 것이라 이야기 하는 시인은 결국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는 사랑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새벽안개처럼 스러지기 전에 그대가 돌아오리라 기대하는(그대, 그래도) 갈망이기도 하며 결핍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의 말 대로 헤어짐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사랑처럼 말이다,

헤어짐과 사랑을 노래한 시인은 이제 고독한 도시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서울에는 혼자사는 사람도 많고

혼자타는 차도 엄청 많더라..

(중략)

사람 많은 서울에 말뚝박고 살자니

그게 어디 할 짓이여!? (서울생활 중)

 

저자가 바라본 도시는 많은 사람 속에서 기다려도 전화 한 통 오지 않는(공휴일)

어디를 파보아도 썩어질 욕심만 굳어있는 굳혀 있는(발굴조사) 곳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살고 있는 시인 역시 이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서

 

정신없이 뛰다가

무심코 잊혀지는 사람

바로 나

(이럴 줄 몰랐는데 중

 

 

 

내꿈이 끝나는 곳에

운명이 있었다.

나의 운명이 끝나는 곳에

저주가 있었다.

저주가 끝나는 곳에

나의 십자가가 있었으며

십자가 위에는

신의 성난 눈빛이 있었다.

아직도 돼지꿈을 꾸는 나의 객기는

신의 개죽음을 즐기고 있는가?

(101쪽 돼지꿈과 개죽음)

 

리스먼이 말한 대로 고독한 군중으로의 삶에 지쳐가는 현대 사회, 그리고 인간 근본의 저주를 해결한 신의 고귀한 희생과 사랑도, 그러한 신의 공의에서 비롯된 분노도 나의 돼지꿈 보다 앞서지 못하는 물질 만능 사회에 대해 분노한 시인이 대안으로 찾은 것은 변하지 않는 자연과 옛날 시골의 정, 고향. 그리고 인간 사이의 사랑이었다.

 

물론 이 결론이 불충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건 사회학자나 교육자 등이 해야 할 일이고, 시인은 그런 사회를 노래하여 단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변화를 주었다면 역할을 다했으리라.

 

문학은 결핍을 노래하지만 결핍에서 그치지 않고 지향점을 노래한다. 그런 면에서 이 시들 역시 전문적인 시인들 같은 참신한 표현은 부족해도 한 시대 속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노래들이리라.

 

    

덧!

고양이를 문지르면 없어집니다.  라고 적혀있는데 오래되어서 그런지 문질러도 안 없어진다. 시대 변화로 집을 안 떠나서 그런가? (캥거루족? ^^;;) 

    

사람의 손이 미치는 곳
어디를 파보아도
썩어질 욕심만 굳어있다.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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