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문답 - 조선 최고 지식인의 17가지 질문
김태완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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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지식인의 17가지 질문"이라는 커버의 문구는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식인'이라는 부제로는 율곡선생님의 커다란 인물됨을 표현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느끼기 때문이었다.  "우리 겨례의 진정한 지성인"이라고 문구를 바꾸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양에는 지식인들이 많았다. 서양 철학자의 대부분은 지식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양의 수많은 철학자들을 우리가 알고있고 그들의 생각을 알고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결여된 것이 있다. 바로 민본사상이다. 민본은 애민, 휼민, 보민을 기본으로하고 있다. 한마디로 '민본'은 백성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있어야 성립되는 말이다. 학문을 하는 이유가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사상은 백성을 위한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기보다는 인간의 이익에 우선적인 목적을 두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이는 지배계층과 피 지배계층에대한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종교마저도 남의 것을 빼앗고 수탈하고 잔혹하게 죽이거나 인간을 사냥하는데 사용하지 않았던가...이것이 서구 사상의 실체라고 말한다면 과연 그 누가 아니라고 부인할 것인가... 

서구의 사상가들이나 학자들은 학설과 원리 혹은 법칙들을 참 많이도 가지고 있다. 현대의 과학은 그런 법칙이나 학설들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학설과 원리 혹은 법칙들을 활용한 현대 과학문명이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오로지 한가지이다. 부의 축적, 타인에 대한 지배이다. 근본적인 바탕이 되는 철학 자체가 민본에 있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방증인 셈이다. 또 누 누가 이를 부인할 수 있을 것인가...  

흔히 서구의 노블리스오블리제를 강조하는 현장을 종종목격한다. 우리는 그들의 노블리스 오브제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녕 알고 있어야 한다. 그 목적은 백성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자신 스스로를 위한 구호였음을.... 

서구인들의 자연관은 또 어떠하던가...인간의 위한 목적으로 보고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마음껏 이용하고 활용하는 대상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자연은 지배의 대상이며 정복의 대상이다. 서구인들에게 자연은 오직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조선의 자연관과 좋은 비교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서구적인 사상과 철학이 철저히 간과했던 '민본 사상'은 특히 우리 선조들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대다수가 민본을 마음으로 외친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표적인 사상가가 조선 초기의 정도전이요 중기의 조광조와 율곡 이이이다. 율곡선생님과의 문답은 과연 진정으로 인간이 무엇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가를 가르친다. 바로 인간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고전이 어떻게 본질적으로 다른지를 알게해주는 최고의 고전이 아닐 수 없다. 서양의 인간관과 자연관과는 한국의 그것들이 어떻게 다른지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의 율곡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율곡선생님은 당시 본의 아니게 동인들에 의하여 서인으로 분류되었고, 당파의 이해에 연연하지 않은 몇 안되는 분이었으며 그럴 이유도 없었던 분이었다. 당시 나이는 아래였지만 동인이었던 서애 유성룡등과 그 뜻을 함께하는 일들은 사료에서도 흔히 발견되고 있다. 서애 유성룡 역시 동서인의 범주를 뛰어넘던 지성인 중 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지식인이라고 하면 다양한 연구와 학습, 그리고 그 결과물인 팩트들을 바탕으로  마인드를 바로세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인의 한계는 그곳에 머물고 만다. 결코 지성인에 도달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율곡 선생님은 정의롭고 백성을 위하며 당파를 넘어서고 이해를 뛰어넘는 사고와 실천을 행했던 분이다. 지식을 뚸어넘어 자신의 바른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분인 것이다. 그토록 강경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대미수공법을 주장하셨다. 동인 유성룡은 서인인 율곡의 훌륭한 뜻을 받들어 대미수공법을 추진했다. 그후 김육선생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천에 옮겨지게 되는데 이는 율곡선생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리고 내려 전달된 덕분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율곡선생님께서 지성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성인은 다양한 팩트를 기저한 지식인의 요소에 자신의 신념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하나 더 가진 인물이다. 그 "실천의 용기"가 바로 지식인과 지성인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정의해준다. 지식이 이무리 많더라도 용기를 가지지 않고는 행동할 수가 없다. 율곡선생님은 그런 용기를 가지고 백성을 위해 살았고 백성을 위해 실천하며 일생을 보내신 분이었다. 겨레의 큰 스승이자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 책은 조금이나마 우리의 큰 스승인 선생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기회를 준다. 이 책이 선생님을 모두 다 알 수 있도록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백성을 위한 정책과 국방은 물론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던 많은 부조리함들의 변화를 요구하며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등을 스스로의 목소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선생님의 생각을 보다 더 잘 알고 싶다면 성학집요를 읽어보는 것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성학집요는 선생님의 철학과 사상을 집요한 것으로 왕에게 남긴 자신의 육성이다. 시대적으로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선생님의 육성을 책으로나마 만날 수 있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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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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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의 그림을 제대로 읽어주어야할 의무가 나에게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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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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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있다. 그저 바라만 본다고 그림을 읽는 것이 절대 아님은 이 책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되었다. 읽기를 그 얼마나 잘했는지... 아니, 혹 미처 읽지 못했더라면 나는 그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그림을 모르고 지나쳤을지...읽으면 읽을 수록 그림에 대한 나의 무지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2권의 첫 내용은 당시의 임금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던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이다. 단원의 스승인 강세황 선생님과 함께 그린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송하맹호도는 사실 동갑이면서 같은 화원이었던 고송 이인문께서 소나무의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 저자의 명쾌한 설명은 무척 인상깊게 다가온다. 고송께서 따로이 그렸다는 '벽라송월도'와 직접 대조를 하면서 설명했다. 낙관의 첫 두 글자가 '표암'이 아니라 고송의 자인 '문욱' 이 적혀있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입장은 단원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려 했던 저자의 일생의 노력의 결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는 또 어떠하던가...저자 특유의 해석은 마상청앵도의 가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마상청앵도를 읽어내는 저자의 뛰어난 관찰은 읽는 내내 감동적이어서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나에게 그 얼마나 커다란 실수"였을지를 절감하게 해주었다. 그림이 주는 감동과 저자의 깊은 설명을 글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려움이 있을 뿐.... 

다음은 정선의 '금강전도'이다. 워낙 유명해 그동안 수없이 보아온 그림 중 하나였지만 과연.... 다만 화성 겸재 정선의 그림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 할 수 없이 헤아리기 힘든 메시지를 담고 있을 줄이야....주역의 대가였던 겸재의 금강전도에는 우리의 나라 뿐 아니라 우주의 섭리를 주역으로 금강 전도를 통하여 표현했다. 아마도 읽기에 가장 어려운 그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오행의 원리를 약간 아시는 분이라면 목.화.토.금.수.의 원리만으로 기본적인 사항을 이해할 수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심오함을 가지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물론 나는 주역의 괘원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저자의 설명을 수차례 읽었지만 마음으로만 공감이 갈 뿐 머리로는 따라가지 못했다... 주역의 괘를 이해하시는 분이라면 그 얼마나 좋은 도서일까...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는 왜인들에게 빼앗긴 고려의 불화와 더불어 자랑스러운 한국의 대표 그림 중 하나일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매화 쌍조도는 그림에는 전문적이지 않았던 다산선생님의 진솔한 마음이 담긴 그야말로 어린 마음이 가득담긴 서화이다. 애잔한 그 마음이 지금도 매화향기처럼 풍겨온다... 다산 선생님이 그리울 뿐이다... 

민영익의 '노근묵란도'는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빼앗긴 자의 설움을 고스란히 담았다. 강제 병합을 시름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통한의 약탈당한 나라를 가슴에 뭍고 세상을 하직했다. 그의 노근묵란도는 나라를 잃은 자의 피롤 토하는 심정을 담고 있으되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기개를 동시에 담고 있으니 이 그림을 제대로 읽어주는 것은 후세들이 할 일일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처음에는 독립운동에 나섰으나 후에는 최악의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한 주제도 되지 않는 최아무개에게 오세창 선생께서 그럴 줄 모르고 넘기는 바람에 화제를 달아버려 그 비애가 가슴이 아플 뿐이다.  

  비록 그림에 무지하기는하나 우리 그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하나 둘 씩 읽어가는 즐거움을 그 어떤 즐거움에 비견할 바는 아닌 듯하다. 그림을 읽는 다는 것은 우리의 혼을 읽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음을 비로소 깨닫게되었다. 이미 타계하신 저자께 깊이 감사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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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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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과서는 왜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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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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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롭운 책들을 읽은지 꽤되어간다. 동양의 미술과 서양의 미술을 함께 읽어가는 즐거움은 아마도 미술에 관심을 두고 하나 둘씩 책을 읽어가는 즐거움을 느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서양의 그림과 동양의 그림은 그 발상이 다르고 그러므로 관점이 전혀 다르다. 생각이 다른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결과물이 주는 차이점은 온도차가 너무나 달라 이토록 다르단 말인가...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서양의 그림은 관찰자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화가 자신이 중심이되고 모든 그림의 대상은 자기중심에서 출발하는 투시도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이 투시도법은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 곳에서 출발하게 한다. 단조로울 수 밖에 없다. 물론 서양의 화가들은 서양의 철학을 자신만의 필치로 담아냈다는 점이 동양의 그림과 차이점이며 동시에 공통점이라는 점을 염두에두고 읽어낸다면 성공적인 그림읽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동양의 그림은 관찰자가 많다. 즉, 시점을 다양화하였는데 그 이유 또한 동양적인 사고에서 출발한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 주역에 통달한 경우라면 하늘과 땅의 자연의 이치와 오행의 원리를 담아 그림을 그린다. 겸재 정선의 금강산 전도가 그 대표적인 예라하겠다. 동양 그림의 시점은 자신을 벗어나 타인이 되기도하고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또 아래에서 올려다보기도하며 중간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나아가 우주의 관점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점을 한폭의 그림에 올올이 담아낸 화가들이 바로 우리의 화가들이었다. 이는 서양의 그림이 주는 투시도법과는 매우 다른 투시법이라 할 수 있다. 

서양화이든 동양화이든 그림을 바라보는 기본은 읽기이다. 독화의 묘미를 놓치고서는 그림을 보고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는 독화이기 때문이다. 시점을 읽어내고 그림을 그린이와 마치 하나가 되는 마음으로 서로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하듯 그렇게 독화를 이해하는 것이 그림의 필수적인 감상이다.  

우리의 교과서는 왜 이런 우리 그림의 우수함을 전달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동양화와 서양화를 가르치는 교과서에서는 이러한 그림의 감상법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의 미술 교과서는 너무 이론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나머지 학생들의 흥미를 유도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우리 그림의 특성이 분명 서양화의 그것과는 다르다. 민족의 정체성을 더욱 배워 서구의 그것과 구별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매우 좋은 매체는 미술일 것이다. 우리의 것을 제대로 알고 서구의 것을 안다면 우리의 것을 애지중지하는 앞으로의 세대들에게서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소중함을 일 깨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몇몇 관심이 있은 사람들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시대의 사고를 벗어나 이제는 그 폭을 넓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오주석의 이 도서는 매우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읽어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우리의 한국인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은 우리의 그림이 아주아주 훌륭하기에 더욱 클수밖에 없다. 결코 읽어서 후회하지 않을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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