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기도 The Maiden's Prayer

작곡가 ㅡ 테클라 봉다제프스카바라노프스카
(폴란드 국적의 작곡가 인지라  이름의 발음도 표기도 쉽지 않다)


'소녀의 기도'는 사실 나의 첫사랑이 아니라 다른 분의 첫사랑 이다. 남의 첫사랑을 왜 니가 왈가 왈부하는데? 따진다면 뭐라고 설명을 해야하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 첫사랑의 상대가 정말 멋지고 귀한 곡이라서 그렇다고 설명해야지 싶다. 명랑 소설 속 등장 인물의 맑고 또랑또랑하며 영롱한 그 첫사랑, 그 '소녀의 기도 The Maiden's Prayer' 말이다.


폴란드 태생의 작곡가 봉다제프스카는 태어난 출생 년도가 정확하지 않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829년 이라고도 하고 1834년 이라고도 한다. 불록(不祿)한 년도는 정확해 보이는 1861년으로 젊은 나이였다. 1829년 생이라면 32세, 1834년 생이라면 27세에 세상을 떠난 셈이다. 세 아이 혹은 다섯 아이의 엄마였다. [위키백과 참조] 너무 일찍 가셨습니다 ㅠ.


정확한 정보가 대부분 알려져 있지 않지만, 거의 200년 전에 태어난 작곡가가 현대의 대한민국 전국에서 들을 수 있는 피아노 곡을 썼던 것이다. 그녀는 30곡 혹은 35의 피아노 곡을 남겼다. 그러나 전쟁은 봉다제프스카의 곡들을 모두 소실시켰고, 유일하게 '소녀의 기도' 만이 현존한다. 만약 1859년 프랑스 음악 잡지가 그녀의 악보를 소개되지 않았더라면 이마저도 사라질 뻔 했다. 하마터면 우리는 대한민국이 이토록 애정해온 음악을 듣지 못할 뻔했다. (독일이 인류 역사에 손실을 많이 입힌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폴란드는 역시 피아노 곡의 나라이다. '바르샤바'라는 도시는 특히나 그러하다. 쇼팽의 도시이기도 한 바르샤바, 그 곳 출신으로 알려진 봉다제프스카 '소녀의 기도' 는 쇼팽의 피아노 곡들 만큼이나 대한 민국에 친숙한 음악이다.


에이~ 설마, 그럴리가!!  라고 반문하는 분들은 역시 들어는 봤지만 제목을 모르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광고 음악으로 이 곡을 아주 많이, 오랜 동안 써왔고 특히나 학교 종소리로 '소녀의 기도'를 넘어서는 시그널도 별로 없지 싶다.




[ 우선, 첫사랑의 주인공께 랑랑이 연주하는 이 멋진 곡을 전해드립니다 ]
 


맑고 또랑 또랑하며 영롱한 주제부, 건반은 투명한 물방울을 튕겨내어 햇빛에 반사시킨다. 반사시킨 물방울들이 향하는 곳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렇게 마음속에 눈부신 영롱한 빛을 반짝여주는 '소녀의 기도', 그 소녀가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지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기도는 이런 마음으로 해야하는 것일까... 기도의 내용은 이제 각자의 몫이다. 

그래도 안 들어봤다고요? 역시, 긴급전화 113 버튼이 유효할지도 모르겠다.



유투브를 찾아보니, 랑랑의 연주가 눈에 띈다. DG 반이로군... 어디 보자...하는데 스타인웨이가 빠르게 눈에 들어온다. 스토리는 여기서 삼천포로 빠진다. 솔직히 랑랑은 내게 호감가는 연주가는 아니다. 오버 액션이 쩌는 냥반이고 퍼포먼스가 작열한다. 또한 종종 악보를 가지고 논다. 악보를 자기 맘대로 주무른다. 나는 이 곡을 이렇케 칠꼬야!! 주물러도 정도껏이어야지 이 냥반아!!! 내게는 뭐 이런 부정적인 느낌? 이 있다.


실력은 부정할 수 없다. 13세에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청소년 부문 우승으로 그의 일대기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요즘은 DG와 계약한 모양이다. 아놔.....배가 살살 아파오네....ㅠ 


강남에 있는 유명 피아노 매장(대치동 어디라고 했는데...) 에 가면 약 3~4억 하는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  스타인웨이 '아라베스크' 는 3억을 가뿐이 넘긴다. 누군가는 '아라베스크' 그랜드 피아노가 전 세계 약 30대가 존재한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약 50대가 있다고 말하고 있어 누구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스타인웨이 모델명 D 274는 피아노의 장, 즉 길이가 274cm 라는 뜻이다. 폭은 157cm, 중량은 480kg 이라고 한다. 매년 5%씩 가격 인상을 인상한다고 하니 해가 갈수록 더 비싸질 것이다. 랑랑이 연주하고 있는 저 모델은 D 274일 것이다. 


연주자 랑랑이라는 냥반은 놀랍게도 10 억원이 넘어가는 피아노를 소유하고 있다.
그 피아노는 '블랙다이아몬드' 라는 이름을 가진 스타인웨이다. 랑랑이 디자인에 직접 참여했다고도 전하는 이 모델은 전 세계에 8대, 리미티드 모델이다.

어떤 이는 가치가 높아서 블랙다이아온드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모델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피아노의 건반 뚜껑이랬던가.... 다리라고 했던가.....아, 기억이 가물거린다. 여하튼, 제작 당시 피아노의 어디엔가 다이아몬드 장식을 한 것은 틀림이 없다.

 대중적으로는 야마하를 많이 쓰지만(특히 대한민국) 전 세계의 콘서트 홀 장악율은 스타인웨이가 95%로 압도적이다. (그런데, 피아노를 아주 잘 만들고 잘 팔아먹는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라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내노라하는 피아니스트들 대부분이 스타인웨이를 쓴다. 이미 돌아가신 피아노의 전설들인 미켈란젤리, 호로비츠, 글렌 굴드등도 스타인웨이 만을 고집했다. 현역들의 이름은 따로이 거론 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여사는 '어머, 내가 아니라 피아노가 연주를 하는거 같애!!' 라고 말할 정도로 스타인웨이에 매료된 피아노의 거장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고 이 정도의 심경을 토로하기는 했다 ㅠㅠ) 


어떤 분의 첫사랑, '소녀의 기도'를 찾아 보다가는 스타인웨이로 이야기가 흘러버렸다. 나의 이야기는 늘 삼천포로 가야 직성이 풀리는가...


오늘은 대수능을 치루는 날이다.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로 이 소녀의 기도를 들으며 수능을 치루는 수험생들도 있을 것이다.

수험생 여러분!!  열심히 공부한 만큼, 좋은 성적을 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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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13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멋진곡이 한때 대한민국에서는 쓰레기차 후진시 흘러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지요.명곡을 너무 홀대해서 미안했는지 이후 학교에서 끝나는 시간 차임벨로 많이 쓰였었지요^^

차트랑 2025-11-13 14:20   좋아요 0 | URL
쓰레기차 후진벨요?
뜻밖의 경고음으로도 쓰였는데,
그 사용처는 저의 상상을 넘어서는군요^^

일본, 대만등에서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고 하더니,
대한민국에서만 인기가 있었던게 아니었나봅니다.
이쯤되면
제가 몰라서 그렇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나라에서 유명했을 것 같습니다.

카스피 2025-11-13 17:10   좋아요 0 | URL
음 약간의 오류가 있었네요.다시 확인해 보니 쓰레기차 후진시 울려퍼진 클래식 명곡은 소녀의 기도가 아니라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란 피아노 곡이라고 하네요^^;;;

차트랑 2025-11-13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랬군요.
엘리제를 위하여, 이 곡을 쓰레기차의 후진음으로 썼다고해도
역시 저의 상상을 넘어서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피아노 곡의 용처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됩니다.
좋은 저녁되십시요 카스피님~
 

아무래도 불안해서 제목을 바꾸어봅니다, 소심.....) 



안녕하세요 꼼쥐님, 


우선은 놀라시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나쁜 뜻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일면식이 없는 처지이고 

더불어 단 1의 정보도 모르는 처지인지라 이렇게 글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업하신 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려면'에서 써주신 

아래 표현에 감동한 나머지 

댓글을 쓰려고 했으나 댓글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군요.



[ 새벽 냉기를 닮은 달빛이 시리게 쏟아졌다. 발에 밟히는 낙엽 소리가 수런거리는 달빛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달빛이 던지는 뜻 모를 대화가 좋아서, 바스락거리는 마른 낙엽의 속삭임이 좋아서 나는 번번이 가던 걸음을 멈춘 채 어둠의 그늘 속에서 꽤나 긴 시간을 보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까맣게 지워버린 채.]



한편의 시를 읽는 듯

소설의 밀도 높은 부분을 읽는 듯 하더니...

불현듯 

과거 제가 읽었던 작가 김인숙 님의 소설 '소현'을 읽을 때의 그 느낌을 고스란히 소환해내는군요...


작가 김인숙의 '소현'은 시로 쓴 소설 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주 신선한 충격을 준 작가였기에

아직도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김인숙의 소설을 읽을 때의 제 경험은 저의 독서 진도가 매우 느리다는 것이었지요.

슬로우 비디오로 읽는 느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밀도가 높은 글의 연속이어서 빠르게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고농도의 언어로 소설을 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꼼쥐님의 글 첫 번째 문단에서 그 감동을 다시 접하고는

저의 감동을 댓글로 전하려 했으나 하는 수 없이 이 방식을 통해 전해드립니다.


이래도 괜챃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행여 불편하시다면 댓글을 이용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꼼쥐님! 



그리고, 

음악 한 곡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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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회로에는 그것을 작동시키는 동기 혹은 계기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시골 마을에 새로 전입해 온 윤초시네 증손녀가 개울에서 던진 조약돌 하나가 소년이 아련한 첫사랑을 앓는 계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소년은 '이 바보!' 였기에 조약돌에 튕겨진 물을 맞아도 싼 어리숙이었다.


어째거나
  
대한민국에서 고전 음악 회로를 작동시키는 첫사랑 베스트 1위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이라고들 한다. 흔히, '입.문.곡.'이라는 얘기다.  아.... 연주를 들어보면 정말 이해가 간다. 황순원 '소나기'의 어리숙한 소년 주인공과는 달리 이 곡은 첫 눈에 반할 만한 매력을 가진 작품 중 작품이니 말이다. 이 곡은 '황제' 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회로 작동 첫사랑 베스트 2위는 아마도 비발디의 사계 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나는 베스트 1위가 아닌 2위와 연애를 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마다 첫사랑의 상대가 다르겠지만 비발디의 사계, 특히 '봄'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 국적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테레비와 라디오 광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곡이 바로 '봄 1악장' 이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친구의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시그널이 바로 이 곡 이다.  비발디 사계는 알고 보면 대한민국 전국구 음악인데.... 이쯤되면 사계의 본국에서보다 인기가 더 많은 곳이 대한민국이 아닐까 살짝 의심해본다. 이 모든게 사실은 펠릭스 아요가 이끌던 이무지치 덕분이다.  


'나는 못들어 봤는데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언컨데, "아니다!. 결코 그럴리가 없다! 당신은 분명 들어봤다!!  다만 그 곡의 이름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지경이 아닐까 또 한 번 살짝 생각해 본다. 심지어 돌아가신 나의 시골 할머니께서도 들어보셨으니 말이다. 불구하고, "저는 진짜 진짜 못들어 봤다고요~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긴급 버튼 113을 살며시 터치하시라. 아마도 력삼력 근처에서 살고있거나 리북에서 살다가 살짝 넘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요즘은 포상금이 얼마더라.....


고등학교 2학년 여름, 공립 도서관에 가는 길목에는 레코드 가게가 하나 있었다. 바운더리를 좀 더 넓히면 주변에 몆 개가 더 있었지만 그 가게는 나의 거래처였다. 원하는 노래의 제목을 종이에 적어 주면 사장님은 언제 찾으러 와라 했다. 날짜에 대어가면 나의 신청곡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는 사진관에서 36방 짜리 컬러 필름을 2개 쯤 사면 카메라를 빌려주던 그런 시절이었다. 학교 소풍 때, 친구들과 팀을 짜서 필름을 구하고 카메라를 대여하곤 했다.  사진관 사장님은 대체 뭘 믿고 그 비싼 카메라를 선뜻 학생들에게 내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조건은 딱 하나, 사진은 우리 집에서 뽑자~~  이거였다. 에헤~ 그럼, 딴데 어디라도 갈까봐요?)


하여튼 당시 분위기는 또  
일정 비용을 내면 원하는 곡을 선별하여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물론 지적 재산권 또는 저작권 등과 관련한 법규 혹은 인식이 아예 없던 시절에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은 아니고, 버스 운전 기사가 운행 중에 그 지독한 담배를 피던 시절었던 것이다. 그 담배좀 꺼주세요!!! 라고 말하는 어른 하나 없던 그런 시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


그 무더운 여름 날에도 그 가게를 무심코 지나치는데, 평소 와는 전혀 다른 음악, 낯설지만 정신을 올올이 사로잡는 음악이 그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왔다. 연주가 진행될 수록 현악기는 점점 더 격렬하고 뜨겁게 음악을 달군다. 어찌나 나를 긴장시키지 걸음을 멈추고는 그만 손에 땀을 쥐며 경청했다.

 

[ 이무지치의 창단은 펠릭스 아요(Felix Ayo 1933 년생) 이고 나의 첫사랑 악장이셨다. 위 악장은 안토니오 안셀미(Antonio Anselmi), 2019년 50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불록하셨다. 부디 영면하소서...]


나는 속으로, '저러다 현이 끊어지고 말지...' 음악에 감동했다기 보다는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 끊어질듯 외줄을 타는 듯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짧지 않은 시간, 나의 불안감 과는 달리 무사히 연주는 끝이 났다!! 그때서야 나는 전기에 감전된 듯 한 감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레코드 가게의 음악이 멈춘 후,  머릿 속에서 나의 음악이 다시 돌아기 시작했다.
불안에 떨며 듣던, 손 대면 금방이라도 베일듯 날카롭고 예리한 바이올린의 선율. 그 또렷하고 차갑게 날이 선 바이올린과 뒤에서 백업해주는 단원들의 웅장함이 나의 머릿속에 저장되어있다가는 다시 재생되고 있었던 것이다.



크게 복잡하지 않은 선율 덕분인지, 강렬하면서도 신선한 충격 탓인지, 방금 전에 들었던 그 음악은 나를 사로잡아버렸고 끊임없이 나의 머리에서 반복 연주 되었다. 연주가 가득 찬 머리에 현기증을 느끼며 한 참을 걷다가 나는 불현듯 아, 맞다!!  그 레코드 가게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얼굴을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뭐 한 가지 물어보는게 어려울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쫌 전에 그 낮선 음악은 뭡니까요? 라고 물었다.


사장님은 내 말 뜻을 잘 알겠다는 듯 음반 하나를 꺼내 들었다. LP 였다. 큼지막한 음반의 껍대기 위에 ' 비발디 4계 이무지치'라고 써있었다. 그 아래에는 '펠릭스 아요'라고도 써있었다. 그때서야 그토록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음악 시간에 교과서로 배웠던 그 비발디 선생의 '사계, 여름'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2주 후,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그 비발디 4계를 샀다.


나의 고전 음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상에 있는 온갖 종류의 음악을 모두 좋아하지만 비율은 고전 음악이 크게 앞선다. 물론 가곡과 가요(K POP)도 아주 좋아한다.


어째거나

이무지치는 그렇게 비발디 사계로  나 뿐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했던 것이다. 이무지치 이후 내노라는 연주가들이 비발디 사계를 앞 다투서 녹음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많고도 다양한 음원들이 쏟아졌다. 어떤 연주는 개가 짖는 소리를 음원에 끼워하기도 했다. 워낙 다양하고도 빼어난 수작들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가 쉽지 않은 지경이다.  그 중에는 나의 여신 정경화께서 연주한 음원도 있다.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의 신들린 연주는 오래도록 나의 전설인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요, 나의 여신님!!




사실 학교의 음악 환경은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었다. 아니 빈곤했다. 학교는 고전 음악 한 곡을 학생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플레이어 자체가 학교에는 구비되지 않았다. 음악 선생님들도 카세트로 베토벤 교향곡 혹은 모자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려주는 분이 없었다.


음악 교과서는 소나타 형식과 교향곡, 교향시, 협주곡, 삼 사 오중주, 화성과 대위법등에 대해서 가르쳤다. 그 내용들이 시험에도 등장했다. 그러나 막상 그 음악을 한 곡이라도 직접 들어본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참으로 딱한 음악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은 예술의 전당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온다. 교향곡과 협주곡 혹은 피아노 리사이틀을 들으며 현장 수행 평가를 이행하면서 말이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던가...


LP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어느 때 부터인가 매체의 대세는 턴 테블에서 CDP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대세를 따라 CDP 오디오를 구입해서 듣게 되었는데 이게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LP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 또한 무척이나 낯설었는데 원치 않는 소리였다. 한마디로 듣고 싶지 않은 이질감의 소리가 함께 전달되고 있었다. 낯선 이 금속성 소리는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이걸 계속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고민 하는 사이 CD들이 늘어가고, 휴대용 CDP도 나오면서 그렇게 대세는 완전 기울어졌다.


밀려오는 거대한 물결을 거스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금속성 음이 섞이지 않은 음으로의 귀환은 결국 이루어졌다. 지금은 그 금속성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의 귀가 오염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런 사정을 알기라도 하듯, 종종 LP반들이 나오곤 한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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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12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이면 황제네요.전 개인적으로 첫 사랑 하면 생각나는 곡은 폴란드의 작곡가 테클라 봉다제프스카바라노프스카가 작곡한 소녀의 기도입니다.왜냐하면 초딩 시절 읽었던 명랑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학생을 떠올리면서 되내였던 음악이 바로 소녀의 기도였기 때문이죠.그래서 첫 사랑하면 이곡이 바로 떠오르네요^^

차트랑 2025-11-12 08:45   좋아요 0 | URL

봉다제프스카 ‘소녀의 기도‘ 아주 아주 또랑 또랑하고 영롱한 연주로군요.
첫사랑을 받을 만한 아주 훌륭한 곡이라 생각합니다.

이 곡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이 역시 113 살짝 눌러주세요^^

그리고,
조만간 봉다제프스카 소녀의 기도를 업로드 해보겠습니다.
방문해주셔서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카스피님~!
좋은 하루 되세요~
 


서구인들은 쌀밥(cooked rice)의 찰진(sticky) 식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의 애틀란타 올림픽 때의 일이다. 한국 대표 선수들은 현지에서 제공하는 쌀밥에 적응하지 못했다. 끈기가 없는 쌀밥인지라 영 입맛이 나질 않았다. 선수단은 끈기 있는(sticky) 식감의 쌀밥을 제공해달라, 고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사실 이 요구는 주최측인 미국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쌀이 주식이 아닌 서구인들에게 밥 맛은 주요 관심사도 아니고 그들은 그런 쌀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미국인들에게, '어딜가나 쌀밥이 다 그렇지 뭐 (끈기없는 밥알들이 각자놀며 부스러지는), 찰진(sticky) 식감을 주는 밥이 어딧나?', 대략 이런 정도인데 이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밀가루가 주식이라 할수 있는 서구인들은 한국인들이 어떤 쌀밥을 주식으로 하고있는지 잘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인들이 솥으로 막 지어낸 쌀밥을 한 술 뜰때  느끼는 그 쫀득한 맛의 기쁨을 그들이 어찌 알수 있으랴. 대한 민국은 국내산 쌀을 공수해 선수들의 식단에 제공했다 (멥쌀도 찰기가 도는 밥맛을 내는 쌀이 바로 대한민국 쌀이다.)




[인간에게 마음을 빼앗긴 물의 요정 루살카는 자신의 아름답고도 사랑스러운 감정에 겨워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에 빠져버린 상대는 인간이다. 혼자 끙끙 앓고 있다가는 참으로 답답한 심정을 표현 할 방법이 없자 달이 뜬 밤에 달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한다. 이 노래는 달에게 부치는 그녀의 고백이다. 원어는 체코어이고, 영어 제목으로는 Song to the Moon 이라고 바꾸었다. 하프를 타는 손 마디 마디에 물의 요정이 물을 가르며 튕겨내는 듯한 전주가 정말 영롱하다. 

아, 루살카는 이름도 유명한 드보르자크에 의해 탄생한 오페라이다. 내용은 인어 공주에 버금가는 스토리를 가졌다. 어쩌면 더 비극적이고 슬픈 드라마 일지도 모른다. 루살카의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극 중 인물인 보드니크가 "인간은 죄악으로 가득 차있지!! 라고 말하자, 루살카는 반박한다, "인간은 사랑으로 가득 차있어!!! 라고. 정말 루살카의 말이 맞는 말이길....] 



각설하고, 사실은 찰진 쌀밥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악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 일이 이렇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국산 쌀밥이 주는 그 찰진 느낌의 성악가들이 있다. 성악가는 대부분 찹쌀아니냐, 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적인 견해일 뿐인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 가득 들어있는 그런 편견 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견해는 지극히 사적이지만 작은 진실성을 아주 약간은 담겨있기에 하는 말이라고 너른 양해를 구할 뿐이다. 오로지 사적인 견해에 따라 그 찰진(sticky) vocal을 가진 성악가가 누구냐 하면 바로 Lucia Popp 이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일정하면서도 찰지게 음을 뽑아내는 루치아 폽은 노래를 한 번 들으면 잊기가 쉽지 않다. 그녀의 소리는 내게 왠지 다른 차원의 소리로 들린다. 탄성있는 마법의 소리 말이다. 머릿 속으로는 끊어지지 않는 그래프를 연상시킨다.  또한 시적 용어가 아닌 물리적 용어로 사용할 때의 일련의 '텐션(?)' 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사실 그녀의 보컬을 나의 언어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너무 나도 아름답다....' 이런 표현은 아주 아주 진부하다. 마치 꿈속에서 들어본 듯한 소리.... 이 표현은 더 진부하다. 아... 수필 '산정무한'에서 정비석이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갈겨쓴 외마디가 떠오른다!! "언어란 얼마나 졸한 것이냐....". '산정 무한'에서는 실제로 언어가 졸한 것이 맞다. 그러나 나는 나의 언어 한계가 졸한 것이다. 어쨋든 루치아 퐆의 보컬을 나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ㅠㅠ 


안타깝게도 루치아 퐆은 환갑이 채 되지 않은 93년에 돌아가셨다.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남긴 음원들이 많이 있다. 당시의 음질은 최근 녹음된 음원들 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좋은 상태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느낌을 주는 가수가 있다. 박혜상은 루치아 폽이 그러하듯  마치 누에가 일정하게 실을 잣듯이 흔들림 없는 보컬을 뽑아낸다. 
박혜상의 소리는 자신의 안으로 파고들지 않고 밖으로(청자를 향해) 쭉쭉, 시원하게 퍼져 나간다. 고음의 딜레마를 극복한 것인가, 아니면 타고나기가 그러한 것인가! 담백하게 잣은 매끄러운 실은 고스란히 청자들의 눈에 들어온다. 청아함은 덤이요 안정감은 특징이다.


바이오그래피는 박혜상이 거장 혹은 전설들(리처드 보닝, 마릴린 혼, 르네 플레밍 ) 과 마스터 클라스를 가졌다고 쓰고 있다. 루치아 폽이 살아있어 그녀와 마스터 클라스를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커다란 아쉬움이 남는다.

sticky vocal 루치아 퐆에게 끝없는 경의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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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1-09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서구에서는 ‘찰지다‘는 느낌을 ‘끈적끈적하다‘ 라고 번역할 것 같네요. 찰진 목소리와 끈적끈적한 목소리는 하늘과 땅 차이군요.
인도 여행 중에는 날아다니는 밥알을 카레로 잡아 먹었습니다. ㅎㅎ

차트랑 2025-11-09 12: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잘 지내셨지요?
오랫 만입니다. 그리고 정말 반갑습니다!

그렇잖아도 말씀해주신 ‘찰지다‘ 를 어떤 표현으로 할까 고민을 꽤나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 고민을 이토록 경쾌하면서도 정확하게 찔러주는 분이 나타나실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표현 선택의 후보로 glutinous, chewy가 있었습니다.
고민하다가 두 가지 이유로 sticky를 선택했는데요.
한 가지는 애틀란타 올림픽 당시 해당 기사를 낸 현지의 언론이 sticky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그 현장 기사를 대한민국 기자가 소개를 하면서 sticky 라는 표현을 인용하여 기사를 냈다는 점이었습니다.

주식이 밀가루인 서양인들의 입장에서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glutinous 가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잘 아시다시피 밀가루, 귀리, 보리등에 함유되어있는 성분입니다.
그러나 쌀에는 들어있지 않은 성분인지라 선뜻 glutinous를 선택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건 순전히 저의 입장입니다^^
글루텐 알러지 반응로 황천길에는 3번 다녀왔고, 가볍게는 수도 없는 경험을 해서인지
글루텐에게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sticky는 정확한 표현이냐, 하면 그렇지도 못한듯 합니다.
접착제가 먼저 떠오르는 표현이면서도 감정적 유대 관계에 더 어울리는 표현이기 때문이고
더불어
말씀해주신대로 끈적하다는 함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찰기가 도는 쌀밥이 끈적한 것이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지 않겠어요? ^^

딱 떨어지는 마땅한 표현을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닌 경우들이 있는듯 합니다.
‘찰지다‘도 그렇구요.


한글은 영어보다 훨씬 더 다양한 표현을 가지있어서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시는 분들 참 애쓴다 싶습니다.


저의 서재에 왕림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잉크냄새님~!!
고맙습니다!
 


詩를 좋아하는 이 친구는 그 사이 시대의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 시대는 흔히 저항 시인들이 이름을 드날리던 시절이었다. 이름도 거룩한 이육사님과 윤동주님도 저항 시인의 대표이지만, 나의 시대는 그 이름이 드높았던 김지하를 시작으로 신경림, 강은교, 황지우, 김남주, 박노해, 정호승, 최승호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인들이 '민중 문학' 이라는 장르에서 활약하며 '시대 정신'을 추구했던 것이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절친이 주저하듯 나를 불러 세웠다. 그런데 말이다... 절친이 말끝을 흐리기길래, 말해보라이~ 했더니, 어느 선배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선배께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었다. 아....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 선배도 시를 쓰는 사람이었고, 조태일 시인처럼 늘 소주병을 나발불던 냥반이었다. 언제나 조마 조마한 불안감을 주던 선배.  얼굴은 시멘트 바닦에 긁혀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어쩌다 이리되었냐고 물으면 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제 밤에는 내 앞으로 전보대가 와락 쓰러지더니, 어제 밤에는 글쎄 아스팔트가 벌떡 일어서지 않겠니! 허 허 허!' 그랬다. 그 선배도 민주화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간 한 사람이었다. 시대가 그러했다는 얘기다. 이자리를 빌어 선배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부디 영면하소서...



수 많은 저항 시인 중에 시인 조태일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시인 조태일께서 글을 쓰며 시대정신을 발휘하고 있던 그 시대는 캠퍼스에 매케한 최루탄 냄내가 사라질 날이 없었고, 휴강은 밥먹듯이 이루어졌다. 과대표는 휴강 소식을 알리기 바빴다. 휴강한 학생들은 거리로 나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뿌연 연기 속에서 직격을 당해 목숨을 잃는 열사가 있었다. 최루탄에 직격당한 학생은 머리에서 피를 흘르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쓰러진 그 학생과 그 학생을 부축하는 동료, 그 한 장의 사진은 너무나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다. 최루탄으로 사람을 향해 직격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학생들에게 직격을 가했다. 이에 격분한 학생들 중에는 스스로의 몸에 인화물질을 끼얹고 분신을 한 끝에 사망하는 열사들도 있었다.


시대는 조태일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절실한 그 무엇을 갈망하게했다.
그 이름, 꽃보다 더 아름다운 그 이름, 민ㆍ주ㆍ화ㆍ!!!
민주화는 성은 민씨요 이름은 주화인, 사람의 이름 아니다. 그야말로 아름답고 눈물겨우며, 때로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마저 마다하지 않고 던진 민주화였던 것이다. 시인 조태일과 학생들은 독재를 향해 외쳤다, '자유를 자유케 하라!! 진리를 진리케 하라!!' 학생들은 자신들을 금남로의 정신으로 그렇게 무장했다. 특히 5월은 더욱 격렬했다.


당시 학생은 스스로를 '지성인'이라 생각했다. 지식인은 비겁하지만 지성인은 '용기를 가진 자' 라고 생각했다. 용기있는 자 만이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처럼 비겁한 자는 결코 용기를 내지 못했다. 고로 행동도 하지 못했다. 행동하는 자의 용기는 너무나도 고결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절친이여, 고맙소, 그대를 사랑하오.........


수많은 저항 시인들의 처절한 시와 김대중이 남기 저서 '행동하는 양심으로'는 당시 학생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는 자신의 음흉한 야욕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홍위병들을 이용하고자 했던 모택동이 젊은 대학생들에게 뿌려댄 '모택동 어록'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택동은 올바른 양심을 자신에게서 도려낸 음모론자 였고 사기꾼이었다. 모택동이 가진 것은 오로지 탐욕, 그 자체였다. 그러나 김대중은 차원이 달랐다. 올바른 양심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것이다.


탐욕의 도구로 이용당했던 홍위병들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올바른 시대 정신을 장착하고, 스스로를 지성인이라 여기며 그 앞을 막아서는 경찰들과 대치했다. 곤봉으로 얻어 터진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학생들은 그토록 아름다운 민주화를 쟁취하기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경찰은 쫒고 학생들은 쫒기었다. 학생들은 서로 연대하여 시위하고 숨고 숨겨줬다. 이때 김아무개는 홍길똥 이라는 별명을 가진 행동주의자 였다. 당시 경찰에 쫒기던 김아무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났다가는 사라졌다. 그리하여 홍길똥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것이다. 정작 본인이 홍길똥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썬그라스 사건으로 욕을 바가지로 잡순 그 냥반이 바로 그 시대의 홍길똥이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그러다 잡히면 모진 고문을 받다가 죽기도 하고, 대다수는 군에 강제 입대를 해야했다.


시인 조태일도 민주화를 외쳤다.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학생들과 함께했다. 조태일 시인은 강연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시대정신'을 알리고 피력하는 것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절친도 조태일 시인의 집 전화 번호를 알고있었다. 통화는 저녁, 강연을 해주실 수 있으시냐는 문의 전화였다. 
절친 말로는
이 쪽에서 여보세요~!  하면
전화를 받은 시인이 저 쪽에서
'네, 조~오 테일 입니돠!' 라고 했다고 한다.


이때 옆에서 대화에 끼어든 누군가가
 '아냐 쉑갸~  내가 전화하면 시인이 그러셔, 조~오털입니돠~!! 라고 쉑갸ㅡ!' 라며 강한 어조로 조오테일을 반박했다. 조태일 시인의 성씨가 '디'씨가 아니길 천만 다행이다.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는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조오 테일이든, 조오털이든 그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시인은 저녁이 되면 늘 쐬주에 밥을 말아먹고 계셨다는 점이 중요했다.
밥에 취한 것인지 소주에 취한 것인지 전화를 받는 시인의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인의 정신은 '술권하는 사회'의 주인공과는 달리 정신이 온전했다. 사회가 시인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지만 그는 온전한 정신으로 시대 정신이 살아있는 작품들을 남겼다. 또 그러나 시대를 염려하며 자신의 삶을 불태운 시인은 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환갑을 넘기지도 못하고 불록하셨다. 이것은 시대의 환경탓인가 아니면 조오테일 자신의 무능력 탓인가.




그렇게 나의 절친은 민주화의 주역으로 성장했고 나는 군역으로 시간을 보냈다.
병장 만기 제대 후 3학년으로 복학을 하고 절친을 다시 만났다. (어떤 유명한 국회의원이 전국민에게 송출되는 어떤 자리에서 손가락 꼽으며 일병, 이병, 삼병, 병장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순간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선배들이 목숨을 희생해서 얻어낸 민주화 안에서 군 면제를 받은 냥반이었다. 계급의 순서도 틀렸고 삼병은 또 뭐냐 대체?)


어째거나
그 친구는 4학년, 동기 여자들은 죄다 졸업을 하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지만 절친은 입대 문제로 군대를 왔다갔다하면서 세월을 보내다보니 졸업이 늦어졌던 것이다.
학교생활을 그렇게 같이 하게 되었다.
인연이 질기군~!
그 친구는 입버릇 처럼 내게 말했다, '아놔~ 사람들은 왜 다들 내가 죽은줄 알지??? '
그만큼 허약한 친구였던 것이다. 그런 친구가 소위 운동은 대차게 했다. 결국 리스트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자신을 숨겨달라고 했다. 명예의 전당, 즉 블랙리스에 올랐으니 수배의 전당에는 자동 올랐던 것이다. 잡히면 친구가 끝장이고, 숨겨줬다 들키면 둘다 끝장이다. 한하운의 시집과 정현종의 '시의 이해'를 죽어가던 절친에게 넘겨주던 순간에는 손이 벌벌 떨렸지만, 이번에는 두 손이 아니라 심장이 벌벌 떨렸다. 


절친은 시대 저항이라는 죄를 지었고 나는 은닉죄를 지을 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친이 아니던가.
절친을 숨겨주고 두문 불출, 몆날 며칠을 함께 지냈다.
삼양 라면의 주주들은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덕분에 둘다 삐쩍 골았다.


천만 다행히도 경찰은 나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막 제대하고 복학한 내가 너의 절친인지 경찰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라며 친구에게 허세를 부렸다.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던가...


그렇게 치열한 시대를 지나온 절친은 졸업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았다. 시는 여전히 쓰고 있었고, 고향의 어느 촌스럽고 허름한 도회지 건물 한 켠을 세얻어 영어를 가르치며 먹고 살고있다. 아, 글쓰는 것도 가르친다고 했다. 절친에게 나는, 글쓰는 것도 가르치고 배우냐? 기냥 자기 멋대로 쓰면 되는거지,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때는 내가 맞았고 지금은 내가 틀렸다ㅠ.



그의 젊은 시대는 시인에게 소주에 밥을 말아먹게 했고, 학생들에게는 민주라는 이름을 목놓아 부르게 했다. 학생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청춘을 보다 더 아름다운 '민주화'라는 이름을 위해 썼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는 아마도 나의 절친과 그 동료들이 대신 싸워줬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나는 비겁한 놈이었으니까.....


그도 시인이 되었고, 이제는 저항할 상대가 없어져서인지 자신과 어린 시절 이웃집 순이를 바라보는 시를 썼다. 그리고 생각한다. 시대가 시인과 학생들이 저항하게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라고. 그런 이 친구가 정말 마음에 든다. 허파가 허름한 절친이여, 버얼써 죽었어도 별 이상할게 없는, 나의 사랑하는 절친이여!!! 부디 나를 앞세우고 내 뒤를 띠라 오시게나!!!


이 페이퍼는 '죽어가는 친구에게 준 책'과 관련하여 ' 댓글을 달아주신 어느 분께 다음 시리즈도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고 댓글로 일종의 약속을 해놓고는 그 약속을 저버린 일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본인께서는 어쩌면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분과는 서로를 아는 바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지키지 못할 댓글을 드렸으니 이참에 이행함을 알려드리고 싶다. 또 물론 그 분께서는 이 글을 읽지 못할 수도 있다. 별스러운 스토리는 아니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뜻으로 그 알라디너님께 별스럽지 않은 이 글을 드린다. 저는 늘 비겁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올바른 양심이 아주 조금은 남아있습니다. 


어느 날 공영 방송인 KBS가 공영 방송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판단을 내리자, 그날로 테레비를 내다 버리고 수신료 납부를 거부한 것을 보니 비겁한 제게도 약간의, 아주 작은, 정말 작은 약간의 올바른 양심이 남아 있는게 분명합니다. 하오니 행여 읽어주신다면 깊은 고마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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