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인들은 쌀밥(cooked rice)의 찰진(sticky) 식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의 애틀란타 올림픽 때의 일이다. 한국 대표 선수들은 현지에서 제공하는 쌀밥에 적응하지 못했다. 끈기가 없는 쌀밥인지라 영 입맛이 나질 않았다. 선수단은 끈기 있는(sticky) 식감의 쌀밥을 제공해달라, 고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사실 이 요구는 주최측인 미국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쌀이 주식이 아닌 서구인들에게 밥 맛은 주요 관심사도 아니고 그들은 그런 쌀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미국인들에게, '어딜가나 쌀밥이 다 그렇지 뭐 (끈기없는 밥알들이 각자놀며 부스러지는), 찰진(sticky) 식감을 주는 밥이 어딧나?', 대략 이런 정도인데 이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밀가루가 주식이라 할수 있는 서구인들은 한국인들이 어떤 쌀밥을 주식으로 하고있는지 잘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인들이 솥으로 막 지어낸 쌀밥을 한 술 뜰때  느끼는 그 쫀득한 맛의 기쁨을 그들이 어찌 알수 있으랴. 대한 민국은 국내산 쌀을 공수해 선수들의 식단에 제공했다 (멥쌀도 찰기가 도는 밥맛을 내는 쌀이 바로 대한민국 쌀이다.)




[인간에게 마음을 빼앗긴 물의 요정 루살카는 자신의 아름답고도 사랑스러운 감정에 겨워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에 빠져버린 상대는 인간이다. 혼자 끙끙 앓고 있다가는 참으로 답답한 심정을 표현 할 방법이 없자 달이 뜬 밤에 달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한다. 이 노래는 달에게 부치는 그녀의 고백이다. 원어는 체코어이고, 영어 제목으로는 Song to the Moon 이라고 바꾸었다. 하프를 타는 손 마디 마디에 물의 요정이 물을 가르며 튕겨내는 듯한 전주가 정말 영롱하다. 

아, 루살카는 이름도 유명한 드보르자크에 의해 탄생한 오페라이다. 내용은 인어 공주에 버금가는 스토리를 가졌다. 어쩌면 더 비극적이고 슬픈 드라마 일지도 모른다. 루살카의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극 중 인물인 보드니크가 "인간은 죄악으로 가득 차있지!! 라고 말하자, 루살카는 반박한다, "인간은 사랑으로 가득 차있어!!! 라고. 정말 루살카의 말이 맞는 말이길....] 



각설하고, 사실은 찰진 쌀밥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악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 일이 이렇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국산 쌀밥이 주는 그 찰진 느낌의 성악가들이 있다. 성악가는 대부분 찹쌀아니냐, 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적인 견해일 뿐인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 가득 들어있는 그런 편견 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견해는 지극히 사적이지만 작은 진실성을 아주 약간은 담겨있기에 하는 말이라고 너른 양해를 구할 뿐이다. 오로지 사적인 견해에 따라 그 찰진(sticky) vocal을 가진 성악가가 누구냐 하면 바로 Lucia Popp 이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일정하면서도 찰지게 음을 뽑아내는 루치아 폽은 노래를 한 번 들으면 잊기가 쉽지 않다. 그녀의 소리는 내게 왠지 다른 차원의 소리로 들린다. 탄성있는 마법의 소리 말이다. 머릿 속으로는 끊어지지 않는 그래프를 연상시킨다.  또한 시적 용어가 아닌 물리적 용어로 사용할 때의 일련의 '텐션(?)' 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사실 그녀의 보컬을 나의 언어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너무 나도 아름답다....' 이런 표현은 아주 아주 진부하다. 마치 꿈속에서 들어본 듯한 소리.... 이 표현은 더 진부하다. 아... 수필 '산정무한'에서 정비석이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갈겨쓴 외마디가 떠오른다!! "언어란 얼마나 졸한 것이냐....". '산정 무한'에서는 실제로 언어가 졸한 것이 맞다. 그러나 나는 나의 언어 한계가 졸한 것이다. 어쨋든 루치아 퐆의 보컬을 나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ㅠㅠ 


안타깝게도 루치아 퐆은 환갑이 채 되지 않은 93년에 돌아가셨다.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남긴 음원들이 많이 있다. 당시의 음질은 최근 녹음된 음원들 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좋은 상태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느낌을 주는 가수가 있다. 박혜상은 루치아 폽이 그러하듯  마치 누에가 일정하게 실을 잣듯이 흔들림 없는 보컬을 뽑아낸다. 
박혜상의 소리는 자신의 안으로 파고들지 않고 밖으로(청자를 향해) 쭉쭉, 시원하게 퍼져 나간다. 고음의 딜레마를 극복한 것인가, 아니면 타고나기가 그러한 것인가! 담백하게 잣은 매끄러운 실은 고스란히 청자들의 눈에 들어온다. 청아함은 덤이요 안정감은 특징이다.


바이오그래피는 박혜상이 거장 혹은 전설들(리처드 보닝, 마릴린 혼, 르네 플레밍 ) 과 마스터 클라스를 가졌다고 쓰고 있다. 루치아 폽이 살아있어 그녀와 마스터 클라스를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커다란 아쉬움이 남는다.

sticky vocal 루치아 퐆에게 끝없는 경의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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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1-09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서구에서는 ‘찰지다‘는 느낌을 ‘끈적끈적하다‘ 라고 번역할 것 같네요. 찰진 목소리와 끈적끈적한 목소리는 하늘과 땅 차이군요.
인도 여행 중에는 날아다니는 밥알을 카레로 잡아 먹었습니다. ㅎㅎ

차트랑 2025-11-09 12: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잘 지내셨지요?
오랫 만입니다. 그리고 정말 반갑습니다!

그렇잖아도 말씀해주신 ‘찰지다‘ 를 어떤 표현으로 할까 고민을 꽤나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 고민을 이토록 경쾌하면서도 정확하게 찔러주는 분이 나타나실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표현 선택의 후보로 glutinous, chewy가 있었습니다.
고민하다가 두 가지 이유로 sticky를 선택했는데요.
한 가지는 애틀란타 올림픽 당시 해당 기사를 낸 현지의 언론이 sticky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그 현장 기사를 대한민국 기자가 소개를 하면서 sticky 라는 표현을 인용하여 기사를 냈다는 점이었습니다.

주식이 밀가루인 서양인들의 입장에서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glutinous 가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잘 아시다시피 밀가루, 귀리, 보리등에 함유되어있는 성분입니다.
그러나 쌀에는 들어있지 않은 성분인지라 선뜻 glutinous를 선택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건 순전히 저의 입장입니다^^
글루텐 알러지 반응로 황천길에는 3번 다녀왔고, 가볍게는 수도 없는 경험을 해서인지
글루텐에게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sticky는 정확한 표현이냐, 하면 그렇지도 못한듯 합니다.
접착제가 먼저 떠오르는 표현이면서도 감정적 유대 관계에 더 어울리는 표현이기 때문이고
더불어
말씀해주신대로 끈적하다는 함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찰기가 도는 쌀밥이 끈적한 것이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지 않겠어요? ^^

딱 떨어지는 마땅한 표현을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닌 경우들이 있는듯 합니다.
‘찰지다‘도 그렇구요.


한글은 영어보다 훨씬 더 다양한 표현을 가지있어서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시는 분들 참 애쓴다 싶습니다.


저의 서재에 왕림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잉크냄새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