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이란 한 마디로 만화책인데, 얼마 전 이런 멋진 그래픽 노블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로맹 위고라는 프랑스의 젊은 작가가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에 그림을 입힌 것이다. 하드커버에 판형이 큼(220*297 mm^2)에 유의하면 좋겠다. 길이는 대개 150페이지 내외(<구름 저편에>는 104페이지)이니 한 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다. 매우 사실적이고 정확한 세계대전 당시의 비행기 그림을 감상하면서 한 시간 정도를 즐길 수 있겠다. 마치 영화감상 하듯이... (물론 영화--움직이는 그림--은 아니다.) 세계대전이 배경이니 나름 연대에도 신경을 썼을 텐데도 불구하고(아닌가?), 묘사된 연도, 시기 등이 역사적으로 맞는지 갸우뚱할 때가 있다. 옥의 티? 하지만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닌 만화책이다. 항공기와 세계대전에 관심 있는 분들은 그저 즐기시길... 그것으로 충분하다. 


























스토리, 그림, 나오는 비행기 등등을 고려한 개인적 순위: 수리부엉이 > 에델바이스의 파일럿 > 앤젤윙스 > 구름 저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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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19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엔젤윙스를 읽었는데 그림이 우아~로맹 위고가 대단하다는! 어릴때부터 비행기를 봐온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는!

blueyonder 2019-02-19 19:25   좋아요 1 | URL
네 로맹 위고 자신이 비행기 매니아라는 사실이 단박에 느껴집니다!

레삭매냐 2019-02-19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라 로맹 위고의 책들이 저희 동네
도서관에 세 권이나 비치되어 있네요.

내일 당장 가서 빌려다 읽어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blueyonder 2019-02-19 19:39   좋아요 0 | URL
네 즐감하세요~^^
 
아톰 익스프레스 - 원자의 존재를 추적하는 위대한 모험 익스프레스 시리즈 1
조진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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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과 함께 원자를 찾아가는 흥미로운 여정을 그리고(문자 그대로!) 있다. 멋진 과학사 책이자, 과학이 어떻게 진보하고 만들어지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살짝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다시 한 번 기립 박수를~!


살짝 아쉬운 점? 방정식 등호 앞 뒤와 단위 앞에 한 칸씩 띄지 않은 것, 온도를 나타내는 문자로 T를 썼다가 t를 쓰는 점, 칠판에 써 있는 식을 대충 그린 것,... ㅎㅎ


책의 마지막 부분 인용:

이 모든 과정을 보면 각자 다른 성향과 믿음을 품었지만 결국 이들[과학자들] 모두의 마음속에 같은 믿음 하나가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우주가 어떤 법칙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이다.


'우주에는 인간의 의지나 희망과 관계없이 작동하는 법칙이 있으며, 그 법칙은 본질적으로 단순할 것이다.'


하지만 우주가 법칙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그것은 믿음의 문제인 셈이다.


이들 모두가 인정하는 F=ma라는 뉴턴의 식은 F=0이면(즉 외력이 0이면) 운동량이 보존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진리인가? 이조차 진리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원자와 함께했던 고된 여정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어쩌면 원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여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본 것이다. 우리의 가능성을 보는 동시에 한계를 본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참된 실재를 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완전히 신뢰할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가 참된 실재를 보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377~378페이지)

상당히 미묘하고 머리가 아프고 어쩌면 가당치 않은 마지막 질문을 던져본다. 


원자는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그것을 발견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과학자들이 원자를 존재하게끔 만들어낸 것인가?


어떤 이들은 절대적으로 옳은 참된 세계는 우리의 인식과 별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이들이 감각 가능한 세계를 탐구하는 이유도 궁극의 참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함이며, 도달하기 힘들지라도 그 참된 세계에 끊임없이 다가갈 수는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에 기초한 불굴의 노력이 원자의 발견이라는 찬란한 성과에 닿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원자는 원래부터 있었고, 분명하게 발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볼츠만,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은 이에 동의할 것이다.


다른 견해를 가진 과학자도 있다. 푸앵카레는 참된 실재는 알 수도 없고 알 바 아니라며, 인간의 정신이 만든 창조물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뉴턴의 운동법칙 F=ma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할 수 없으며 실재의 우주와 무관한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이 만든 창조물이라고 생각했다. F=ma 같은 법칙들은 일종의 규약인 것이고, 이 규약으로부터 유추한 원자도 본질적으로 우리가 만든 창조물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규약은 인위적이며 쓰임의 영역이 비좁다. 그런데 규약으로서의 법칙은 너무나 유용했기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했다. 법칙은 실재가 아니지만 생산적이라는 주장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37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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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2-10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앙카레 말에 동의하지만, 그의 말도 열린 상태로 놓여야지 그의 말이 참인 것 같습니다. ^^

blueyonder 2019-02-10 18:56   좋아요 1 | URL
네, 모든 것이 100% 맞거나 100% 틀리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한 건가요? ^^) 인간은 흑백 논리를 좋아하지만, 세상이 그리 단순하지 않으니 흑백 논리에 빠지려는 유혹에 항상 저항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우주비행사란 진정한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 눈을 떼지 못하고 봤다. :) 우주 공간에 나가면 인간이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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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논쟁이다 - 과학 vs 과학철학, 경계를 묻다
장대익 / 반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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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좋은 것이다. 대화가 겉돌고 논점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이 집중해서 들어주기만 하면... 관점과 관심사의 차이를 인정해 주기만 하면... 대화 또는 논쟁을 통해 설득 당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들었다. 그래도 상대방의 관점을 알고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자기의 주장을 점검할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양자이론은 세계를 완벽하게 기술하는가, 혹은 양자이론은 완벽한가'의 일부. 과학자인 김상욱 교수의 말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양자역학을 이해할 때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고자 했습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유진 위그너는 심지어 양자역학은 의식을 가진 생명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측정의 주체, 그러니까 인간과의 관련이 야기하는 많은 개념적 문제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이 괴로워했죠. 인간이 관여되면 자연법칙이 주관적이 되거나 유심론 같이 마음이 개입하게 될 여지까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인간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결어긋남 이론이라 불리는 거죠. 이 이론은 정량적 예측을 주기 때문에 실험으로 정확히 검증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결맞음을 잃어가는, 간섭무늬를 잃어가는 시간까지도 모두 계산하고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말에 전자 한두 개로 직접 간섭무늬를 보는 실험들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론적인 예측을 실험으로 모두 검증할 수 있었죠. 현재 대개의 물리학자들은 결어긋남 이론을 양자측정에 대한 해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결어긋남이 단순히 해석을 보완하는 차원의 이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크게 보면 코펜하겐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코펜하겐 해석이 갖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들어있습니다. 새로운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이겠죠. 하지만 정량적인 이론이고 여기에는 인간의 인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 인간이 없는 것을 과학자들이 좋아하는지 물어보셨는데,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요? 인간은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잖아요. 과학의 역사는 끊임없이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어내 온 역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도 수많은 별의 하나에 불과하고,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 뜬 것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고 등등 말이죠. 사실, 과학자로서 인간이 그 이론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더 불편합니다. (118~119 페이지)


과학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하는 일이 '객관적'이길 바란다. 외계인이 과학을 해도 똑같은 이론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의 과학에 인간이라는 종의 인식과 사고체계, 생리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은 '0'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의 '객관적'이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의 '객관적'도 있다. '재현가능한reproducible'의 의미에서이다. 과학이 '객관적'이어야한다고 할 때, 전자가 아니라 후자일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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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1-29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네 맞습니다. 과학은 후자 의미로 재현가능한 ‘객관적’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상호주관적’이란 개념을 사용한다는 글을 본적 있습니다. ^^

blueyonder 2019-01-30 23:53   좋아요 0 | URL
‘상호주관적‘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1-30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QBism: The Future of Quantum Physics>는 <양자역학의 미래, 큐비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제목 자체는 괜찮은데 책 설명이 과장광고의 혐의가 짙다. 앞면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큐비즘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라고 쓰여 있다. 책의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00년이나 지속된 양자이론의 역설과 수수께끼를 해결한 큐비즘! 빅데이터가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까지 접수하다!” 책을 끝까지 읽었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본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 큐비즘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까? 큐비즘은 양자역학의 의미 해석에 관한 이론-주장-이다. 양자역학 계산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큐비즘이 새로운 기술을 가져다줄까?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을 따지자면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출판계가 어렵다고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내용을 호도해서 책을 사게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실용적 내용은 0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이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처음에 살펴보면서 번역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오역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역본도 오역 논란이 있다고 들었다. 문학작품은 더욱 번역이 어려울지 모르겠다. 스타일도 중요할 것 같고...  하지만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적어도 지식을 잘못 전달하거나 이해가 불가능하게 번역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문장이 길면 자르고, 심지어는 말을 넣어서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옆에서 훈수만 두는 입장이 가장 쉬울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지적질’이라도 해서 좀 더 나아지길 바라면 안 될까. (잘난척한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눈에 띄는 몇 부분을 다음에 적어 놓는다. 불편하신 분은 여기서 그만 읽으시면 좋겠다.)


머리말에 있는 내용이다.

 

Quantum mechanics has colored my view of the world—QBism has transformed it. (원서 6페이지)


여기서 “it”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당연히 “my view of the world”이다. 하지만 번역서는 이렇게 옮겼다:


양자역학은 내 세계관에 물을 들였고, 큐비즘은 그러한 양자역학을 변화시켰다. (번역서 13페이지)


과장광고를 위해 일부러 이렇게 번역했는지, 도대체 의도를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런 의도 없이 역자가 그냥 이렇게 이해했는지도...


무지개 색은 로이 G. 비브가 말한 것처럼 빨, 주, 노, 초, 파, 남, 보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무한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색으로 되어 있다. (번역서 18페이지)


로이 G. 비브는 Roy G. Biv이다. red, orange, yellow, green, blue, indigo, violet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실제 있는 인물이 아니다.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보’라고 무지개 색을 외우지만 영어는 머리글자를 따서 이렇게 외우는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The rainbow does not consist of the colors red, orange, yellow, green, blue, indigo, and violet recalled by the mnemonic Roy G. Biv but of infinite, uncountable number of hues. (원서 12~13페이지)


“mnemonic”(기억법)이란 단어가 있는데 왜 이걸 이렇게 번역했을까...


“8장 가장 간단한 파동함수”의 일부분이다:


  예외적 점인 양극에서는 중첩도 없고 위상도 없다. 양자역학의 불연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양자 조화 진동자와 실제 원자의 에너지 준위들이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불연속적이고 셀 수 있는 것처럼 전자의 스핀을 포함한 다른 많은 측정은 한 큐비트당 2개의 셀 수 있는 수로 제한된다. 양극은 실제 세계의 이미지를 고정한다. 이걸 모두 합쳐서 비트로 표현한다. (번역서 84페이지)


잘 이해가 되시는지? 원문은 이렇다:


  The exceptional points, the poles, which are not superpositions and don’t have a phase, reflect the discreteness of quantum mechanics. Just as the energy levels of quantum harmonic oscillators and of real atoms are discrete and countable, rather than continuous, many other measurements, including the sense of an electron’s spin, are restricted to a countable number of values—two for a qubit. The poles anchor the image in the real world. Taken together, they are represented by a bit. (원서 93페이지)


문장이 길면 끊어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렇게 번역하면 어떨지?


  양쪽 극은 예외적 지점이다. 이 지점들은 중첩된 것이 아니며 위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지점들은 양자역학의 불연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양자조화진동자나 실제 원자들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하며 셀 수 있는 것처럼, 전자 스핀의 방향을 포함한 많은 측정의 결과는 셀 수 있는 개수로 제한된다. 큐비트의 경우는 이것이 2이다. 이 양쪽 극은 실제 세상의 표상이다. 이 둘을 포괄하여 1개의 비트로 나타낼 수 있다.


“양극”은 전자의 스핀 파동함수를 나타낸 구의 북극과 남극을 말한다. “양극”이라고 붙여 쓰니 “양극, 음극”의 양극과 혼동될 우려가 있다. “양 극” 또는 “양쪽 극”이라고 쓰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양자 조화 진동자와 실제 원자의 에너지 준위들이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불연속적이고 셀 수 있는 것처럼 전자의 스핀을 포함한 다른 많은 측정은 한 큐비트당 2개의 셀 수 있는 수로 제한된다.” 원문이 한 문장이라고 한 문장으로 번역했는데 너무 길다. 여기서 “전자의 스핀을 포함한 다른 많은 측정은 한 큐비트당 2개의...”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양극은 실제 세계의 이미지를 고정한다.”라는 문장은 그냥 직역일 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역자가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이렇게 옮겨 놓으면 무성의할 뿐이다. 


번역서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될 때, 나의 지식 부족을 탓하곤 했다. 원서와 비교해보면 종종 번역의 잘못됨으로 인해 이해가 어려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특히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수를 붙여서라도 부족한 번역으로 인한 지식의 미전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수하시는 분들은 기왕이면 원서를 읽어서 번역본과 비교하시길... 번역본에서 말이 되더라도 오역한 경우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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