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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논쟁이다 - 과학 vs 과학철학, 경계를 묻다
장대익 / 반니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화는 좋은 것이다. 대화가 겉돌고 논점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이 집중해서 들어주기만 하면... 관점과 관심사의 차이를 인정해 주기만 하면... 대화 또는 논쟁을 통해 설득 당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들었다. 그래도 상대방의 관점을 알고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자기의 주장을 점검할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양자이론은 세계를 완벽하게 기술하는가, 혹은 양자이론은 완벽한가'의 일부. 과학자인 김상욱 교수의 말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양자역학을 이해할 때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고자 했습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유진 위그너는 심지어 양자역학은 의식을 가진 생명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측정의 주체, 그러니까 인간과의 관련이 야기하는 많은 개념적 문제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이 괴로워했죠. 인간이 관여되면 자연법칙이 주관적이 되거나 유심론 같이 마음이 개입하게 될 여지까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인간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결어긋남 이론이라 불리는 거죠. 이 이론은 정량적 예측을 주기 때문에 실험으로 정확히 검증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결맞음을 잃어가는, 간섭무늬를 잃어가는 시간까지도 모두 계산하고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말에 전자 한두 개로 직접 간섭무늬를 보는 실험들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론적인 예측을 실험으로 모두 검증할 수 있었죠. 현재 대개의 물리학자들은 결어긋남 이론을 양자측정에 대한 해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결어긋남이 단순히 해석을 보완하는 차원의 이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크게 보면 코펜하겐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코펜하겐 해석이 갖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들어있습니다. 새로운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이겠죠. 하지만 정량적인 이론이고 여기에는 인간의 인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 인간이 없는 것을 과학자들이 좋아하는지 물어보셨는데,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요? 인간은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잖아요. 과학의 역사는 끊임없이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어내 온 역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도 수많은 별의 하나에 불과하고,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 뜬 것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고 등등 말이죠. 사실, 과학자로서 인간이 그 이론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더 불편합니다. (118~119 페이지)
과학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하는 일이 '객관적'이길 바란다. 외계인이 과학을 해도 똑같은 이론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의 과학에 인간이라는 종의 인식과 사고체계, 생리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은 '0'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의 '객관적'이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의 '객관적'도 있다. '재현가능한reproducible'의 의미에서이다. 과학이 '객관적'이어야한다고 할 때, 전자가 아니라 후자일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