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of Everything: (astrophysically Speaking) (Paperback)
Katie Mack / Scribner Book Company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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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 때, 우주를 생각해 보는 것은 왠지 모를 위안을 준다. 무한할지도 모를 우주에서 인간과 인간 사회란 존재는 '영'이란 값에 수렴하니까, 일상 생활 속의 모든 것을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케이티 맥의 <The End of Everything>은 우주가 어떻게 끝날 지에 대해 현대 우주론이 알려주는 바를 적은 책이다. 저자의 명랑함이 글에서 느껴지는데, 브라이언 그린의 <The End of Time>의 가벼운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1]. 현재까지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우주의 끝은, 가속 팽창이 지속되어 차갑게 식으며 아무런 구조도 남지 않는 것이다['열 죽음(heat death)']. 끝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우주는 지속된다. 마치 우주가 영원한, 차가운 잠(죽음?)에 빠지는 것과 같다. 그린도 그렇지만 맥도 이러한 전망에 좀 허무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꼭 우리가 무언가를 남기고 누군가는 이 무언가를 전달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맥도 동료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는데, 나도 이러한 관점에 동의한다.


맥이 동료(페드로 페레이아Pedro Ferreira)에게 묻는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우주에 남기는 유산(legacy)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괜찮아?"

동료의 대답: "응, 아무렇지도 않아. 난 우리의 일시성(blip-ness)이 아주 마음에 들어... 예전부터 이런 생각에 끌렸지. 모든 일들은 덧없어. 변화이고 과정이지. 여행(journey)이야. 어디에 도착하는지 누가 신경 써, 안 그래?"[2]


덧없는 것일수록 그만큼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피었다가 사라지는 들꽃이 그만큼 더 아름답고 애틋한 것이다.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보다도.


사실 우리가 우주에 대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저자도 인정하지만, 현재 관측 데이터를 달리 해석하거나 새로운 데이터가 나오면 현재의 표준적 우주 모형이 알려주는 것처럼 보이는 '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파열(big rip)'이나 '대반등(big bounce)'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는 '진공 붕괴(vacuum decay)'가 일어날 수도... 우주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암흑 에너지, 암흑 물질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실험과 관측을 통해 이 문제에 관해 가까운 미래에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란 낙관론을 유지하지만...


힘들 때면 고개를 들어 별을 보자. 별이 잘 안 보이는 밝은 도시에서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는 것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삶에서 점차 별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더불어 자연에 대한 경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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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는 그린이 논의하는 빅히스토리적인 부분(진화와 인간의 역사 등)은 전혀 없으며 우주론에 대한 논의 자체도 간략한 편이다.

[2] 원문은 다음과 같다.

  "So it doesn't bother you that we ultimately have no legacy in the universe?" I ask him.

  "No, not at all," he says. "I very much like our blip-ness... It's always appealed to me," he continues. "It's the transience of these things. It's the doing. It's the process. It's the journey. Who cares where you get to, right?" (p.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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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6-2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넘 좋아요!👍

blueyonder 2022-06-26 15:54   좋아요 0 | URL
무슨 레거시를 남기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뭘 꼭 남겨야 해? 하는 말이 제겐 위로와 공감이 되는 것이지요. ^^
 


톰 크루즈가 <탑건: 매버릭>으로, 36년 만에 해군 조종사로 돌아왔다.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그를, 그의 미소를 보며 내 얼굴에도 번지는 미소를 어쩔 수 없다.


<탑건: 매버릭>의 줄거리는 오락 영화 이상은 아니지만, 포기를 거부하고 예전 모습 그대로 사는 조종사 매버릭으로서의 그를 보는 것은 왠지 모를 짠함이 있다. 세월은 흘렀고 시대는 변했어도 여전히 '마지막'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분투하는 매버릭을 보며, 내 자세도 다잡는다.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가 영화를 소개하며 "항공에 대한 연애 편지"라고 언급했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항공기 좋아하는 분들, 2시간을 그냥 즐기시길.


중년의 그대, 인생은 톰 크루즈--또는 피트 "매버릭" 미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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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6-2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 크투즈의 작품은 거의 영화관에 가서 본 듯 해요.
탑건도 당연 가서 봐야죠~~

blueyonder 2022-06-20 15:56   좋아요 1 | URL
저는 지난 토요일에 가서 봤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시길... ^^

바람돌이 2022-06-21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지 팬심으로 볼 영화!!! ㅎㅎ

blueyonder 2022-06-21 10:56   좋아요 0 | URL
오로지 팬심(+ 비행기)입니다! ^^
 















저널리스트인 에릭 와이너의 철학입문서이다. 느린 여행의 상징인 기차를 타고 가서 철학자들의 흔적을 찾으며(그래서 제목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이다), 그 자신의 상념, 그가 이해한 철학자의 논설과 철학자의 삶에 대해 얘기하는 방식이다. 머리말을 보며, 그의 글솜씨와 재기발랄함, 주제의식이 매우 마음에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쇼펜하우어까지 읽은 지금, 처음의 인상이 조금 바랜 느낌이다.


별 결론을 짓지 못하고 넘어가는 헨리 소로의 장에서 조금 실망했다면, 쇼펜하우어의 장을 시작하며 언급하는 도플러 효과에 대한 언설에서 평가가 한 단계 내려갔다. 그는 도플러 효과가 '청각적 착각auditory illusion'이라고 이야기한다. 도플러 효과가 인간의 귀가 일으키는 착각이라고? 기계로 측정해도 다가오는 차로부터 나오는 소리(예: 사이렌 소리)의 진동수가 커지는데?


  The whistle hasn't really changed pitch. It is an auditory illusion known as the Doppler effect. The motion of the train has conspired with my susceptible brain to make it sound as if the whistle's pitch had changed. I had misperceived reality. (p. 77)


위의 언설은 그의 자연과학에 대한 단견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가 풀어내는 철학자의 철학도 어정쩡하다. 소로나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 얘기하긴 하지만 비교적 짧으며 깊은 생각을 풀어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같은 철학 초심자보다는 깊다.) 그가 각 철학자의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하는지도 의문이다. 


... While I see more clearly here, in my own private Walden, I do not have a visual epiphany, the "single expansion" Thoreau achieved. I am disappointed, but take solace in the words of--who else?--Henry Thoreau. Seeing requires not only time but distance, he tells me. "You cannot see anything until you are clear of it." (p. 75, "How to See like Thoreau"의 마지막 부분)


  I share Schopenhauer's melancholy but not his pessimism. There's a fundamental problem with his glumness: it presupposes perfect knowledge, something we humans are incapable of possessing. We may suspect we are living in the "worst of all possible worlds," but do we know for sure? Pessimism requires a certainty I lack, and for that I am grateful. (p. 91)


솔직히 이쯤 되면 그가 왜 쇼펜하우어를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 때문에? 쇼펜하우어가 좋아했던 로시니의 음악을 들으며, 스카치 위스키 마시며 목욕하는 것으로 장이 끝나는데, 여기서 "How to Listen like Schopenhauer"의 교훈을 얻는 것인지.


재기발랄함과 글재주 외에 인생에 대한 '지혜'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읽기를 당분간 멈추기로 했다. 너무 기대가 컸던 듯. 나중에 다시 이 책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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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6-0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는데 블루얀더님은 영문으로 읽으시는 군요!! 저도 처음처럼 재밌지는(?) 않고 좀 실망도 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아서 계속 읽고 있어요. 저는 지금 간디편을 읽었어요. 사실 시몬 베유편도 전 좀 실망했어요. 그건 그런데 쇼펜하우어를 고른 이유는 처음 그가 밝힌대로 구글링 해서 고른거라 그런 거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ㅎㅎㅎ

blueyonder 2022-06-02 16:33   좋아요 0 | URL
기대가 커서 실망하는 것이지 여전히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아요. 깊이와 재미 모두 갖춘 책은 정말 찾기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즐거운 독서 하시기 바래요~~
 
Churchill (Paperback, Reprint)
Johnson, Paul / Penguin Group USA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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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저자의 처칠에 대한 흠모의 글. 영국을 패배에서 구한 위대한 정치가라는 평이 흘러 넘친다. 처칠이 없었다면 영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을까. 한 인물이 역사에서 맡은 역할이 그렇게 큰가. 히틀러를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다. 처칠에 대한 찬사가 우리의 이순신 장군에 비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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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ler's Scientists: Science, War, and the Devil's Pact (Paperback)
존 콘웰 지음 / Penguin Group USA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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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부역했던 폰 브라운과 하이젠베르크의 예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연 내가 그 위치에 있었다면 그들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누구도 장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판단을 내려서 후세에 교훈이 되도록 하는 것이 역사가가 할 일이다. 이 둘이 나치당에 가입하지 않았고 히틀러를 적극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그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악행에 눈감았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저자는 피력한다.


궁극적 질문은 이것이다. 과학은 가치 중립적인가. 과학자는 연구 결과가 어떻게 쓰일지 생각하지 않고 연구만 하면 되는가. 결국 과학자도 사회 속에 존재하므로, 그의 연구 결과가 어떻게, 누구의 이익을 위해 쓰일지 항상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숙고해야 한다. 양심에 비추어 올바르지 않다면 연구를 그만 두어야 한다. 모범으로는, 독일의 원자폭탄 연구가 걱정했던 것처럼 진전되지 않아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연합국의 맨해튼 계획에서 사임한 조지프 로트블랫Joseph Rotblat의 예가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나치 치하의 독일처럼 박해나 처형의 위협이 없더라도 당장 연구비가 끊어지거나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다면, 과연 양심에 비추어 올바른 일이 아닐 때 그 연구를 그만 둘 수 있을까. 무기 관련 연구뿐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 연구가 책에서 예로 거론되는데, 상업적 이익을 낼 수 있는지에 연구의 초점이 많이 맞추어져 있는 요즘의 세태에 비추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독립적 과학자 그룹이 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개인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노력할 수 있느냐에 있다. 과학뿐만 아니라 자신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그만 두어도 용인될 수 있는 사회, 우리가 그런 사회를 가꾸어 가기를 희망한다.


  The greatest pressures on the integrity of scientists are exerted at the interface between the professional practice of science and the demands of the fund-awarding patrons. At every stage of this narrative, from Fritz Haber’s decision to promote poison gas to Max Planck’s decision to raise his arm in a Nazi salute, to Paul Harteck’s acceptance of a chair made vacant by a dismissed Jew, to Heisenberg’s decision to accept Hans Frank’s hospitality in Cracow, to Wernher von Braun’s use of slave labor, we have seen the pressures of hubris, loyalty, competition and dependence leading to compromise. In the final analysis the temptation was a preparedness to a deal with the Devil in order to continue doing science. 

  The Faustian bargains lurk within routine grant applications, the pressures to publish for the sake of tenure and the department’s budget, the treatment of knowledge and discovery as a commodity that can be owned, bought and sold. Handling these pressures and realities is inseparable from the difficult task of being a good scientist today. (p. 462)

  Will scientists today, in an increasingly crisis-ridden world, in which they are ever more dependent on payments to pursue their vocations, behave like the fellow travelers under Hitler – the Heisenberg, Weizsäckers and the von Braun – taking benefits from the government and the military, while claiming that as individuals they are aloof from society and politics? Will they argue that they are not in any way responsible for the uses to which their knowledge and discoveries are put? Or will they take part in bringing down the barriers that insulate defence research from public scrutiny, criticism and influence?

  There is an urgent need today for scientists who are not only skilled practitioners in their disciplines but who possess a highly developed grasp of politics and ethics, who are prepared to question, probe, expose and criticize the trends of military-dominated science. Under Hitler, the dissident scientists risked imprisonment and death; but at least, in the early days of the regime, it was possible to emigrate in the hope of doing science under more benign political auspices. Today the dissident does not risk imprisonment or death, but in the globalized domains of science and technology there are no oases of irresponsible purity into which a scientist can retreat. The best defence against the prostitution and abuse of science is for scientists to unite in small and large unofficial constituencies, to create communicating communities of scientists who, in Joseph Rotblat’s words, are ‘human beings first and scientists second’. These constituencies could provide the pluralist checks and balances that alert the public to irresponsible exploitation of science that poses threats not just to the American ‘homelands’, but to societies and peoples everywhere; to the environment, to peace, to human rights and to nature itself. (pp. 466-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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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5-20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치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단 생각에, 그들을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lueyonder 2022-05-21 08:26   좋아요 0 | URL
지금 이런 사회에 사는 것도 모두 선열들의 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