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문화사, 과학사를 논하는 제임스 버크의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근대의 과학혁명에 대한 부분에서 갈릴레이의 업적을 논하는 부분을 읽고 있는데(5장), 부정확한 기술이 있다.
갈릴레이가 자신의 몰락을 가져올 24쪽짜리 논문을 쓴 곳이 바로 피렌체였다. 그보다 한 해 전에 그는 리페르헤이라는 네덜란드인이 '보는 도구looker'라는 것을 새로 발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1611년 가운데 무렵까지 그 보는 도구, 즉 망원경의 배율을 천 배로 높여 사물을 30배나 가깝게 볼 수 있도록 개선했다. (218 페이지, 밑줄 추가)[1]
밑줄 친, 배율이 1,000배가 되면 사물이 30배 가깝게 보인다는 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본문은 배율의 제곱근에 따라 사물이 가깝게 보이는 것처럼 잘못 기술하고 있다(1,000의 제곱근이 약 30). 하지만 배율은 크기(길이)를 통해 정의되며, 배율이 30배라면 길이가 30배 크게 보이는 것이고 30배 가까운 거리로 사물을 가져오는 것이다[2]. 본문은 배율이 마치 면적으로 정의되는 것처럼 기술했는데(물체를 30배 가까이 가져오면 면적은 1,000배 커진다), 이는 오해이다. 갈릴레이가 사용했고 요즘에도 아마추어들 천문가들이 종종 사용하는 굴절식 천체망원경의 배율은 대개 30~100배 정도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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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 It was there in Florence that Galileo wrote the twenty-four pages which were to begin his downfall. In the previous year, he had heard of a new 'looker' invented by a Dutchman called Lippershey. By mid-year he had developed it to the point where his looker-telescope would magnify a thousand times and make things appear thirty times closer. (원서 p. 147) 원서에서도 마찬가지의 오류가 보인다(밑줄 친 부분). 한편, 번역문의 오류도 보이는데 "By mid-year"를 1611년 가운데 무렵까지"로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By mid-year"는 "그보다 한 해 전"의 중반까지를 말하며 문맥을 보면 "그보다 한 해 전"은 갈릴레이가 피렌체로 간 1610년의 한 해 전인 1609년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 "갈릴레이가 자신의 몰락을 가져올 24쪽짜리 논문을 쓴 곳이 바로 피렌체였다. 1609년에 그는 리페르헤이라는 네덜란드인이 '보는 도구looker'라는 것을 새로 발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해 중반까지 그 보는 도구, 즉 망원경의 배율을 높여 사물을 30배 가깝게 볼 수 있도록 개선했다."
[2]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배율은 각도를 통해 정의된다.
[3] 렌즈를 추가해서 배율을 100배 이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사물의 크기는 그만큼 더 커지지만 망원경의 흔들림에 매우 민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