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 the Universe Changed: How Galileo's Telescope Changed The Truth and Other Events in History That Dramatically Altered Our Understanding of the (Paperback, Rei Sub)
Back Bay Books / 1995년 9월
평점 :
품절


마지막 장인 10장을 읽기 전에는 몇몇 부정확한 과학적 사실들로 인해 별 4개를 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10장의 마지막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별 3개로 생각이 바뀌었다. 10장에서 저자는 본인의 과학철학을 피력하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신화나 과학이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상대주의이다. 


과학의 모든 활동에서 이론이 전제된다는 것은 맞는데, A라는 이론과 B라는 이론을 인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자연이라는 제약이 있다. 우주에서 관찰되는 지구가 둥그런 것을 보고서도 지구가 네모나다고 전제하는 이론을 펼칠 수는 없다. 


중세에서 근세로 오면서 어떻게 유럽이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는지에 대한 문화사적, 과학사적 이야기는 나름 재미있게 읽었지만 저자의 극단적 상대주의 과학론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과학사 책으로는 나름 괜찮지만 과학철학 책으로는 별로이다. 저자가 다루는 '구조'(세계관)에 대해 좀 더 합리적 의견을 제시하는 과학철학 책으로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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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본 모든 내용을 정리하며 버크의 과학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마지막 장(10장 '끝없는 세계들')을 읽고 있다. 버크는 과학적 데이터의 해석 뿐만 아니라 무엇을 관찰(측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학 실험과 도구의 설계 자체를 규정하는 '구조(structure)'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서 '구조'란 세계관이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본은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문단 앞의 두 문장도 함께 인용한다.)


... 투시 기하학은 무형 물질계의 상호 작용을 측정하려는 신학적 규칙에 도전했다. 19세기의 기하학은 역사에 대한 성서적 기록을 제거했다.

  대부분의 경우 각 구조는 과학계 자체와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 의해 발생된다. 흔히 변화에 대한 압력은 학계의 외부로부터 온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최초의 우주 구조는 다른 구조적 작업 안의 전체적인 실재 형태를 자리 잡게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에는 이것들이 연구의 영역을 규정한다. 그 뒤 이런 연구 영역은, 전체 구조가 수용할 수 없고 따라서 변화를 발생시키지 못하는 변칙을 조사할 전문적인 형태를 요구한다. 그러나 판단 체계뿐만 아니라, 이론과 발견, 방정식, 법칙, 절차, 도구들이 조사 결과를 평가하는 데 이용되며, 이들 모두는 맥락과 구조의 모든 부분에 의해 규정된다. (492~493 페이지)


맥락이 잘 닿지 않는 번역문은 역자의 이해 정도(또는 피곤함?)를 반영한다. 이전 글에서는 주로 원문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했는데, 이번 글에서는 번역의 문제를 지적해 놓고자 한다. 과학의 본질에 대해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 The use of perspective geometry challenges the theological rules for interaction with the intangible physical world by making it measurable. Nineteen-century geology does away with the biblical record of history.

  In most cases, each structure is generated by circumstances that are not directly related to the scientific field itself. Often the pressure for change will come from outside the discipline. Whatever the cause, however, it will be seen that the initial cosmological structure sets the overall pattern of reality within which other structures work. They, in turn, defines the areas of research to be covered. These areas demand specialist forms of investigation that then discover anomalies which the overall structure cannot accommodate, and so change occurs. But the theories, discoveries, equations, laws, procedures, instruments, as well as the judgemental systems used to assess the results of investigation, are all defined by their context, all part of the structure. (pp. 330-331)


먼저 처음 두 문장의 오류를 지적한다. 번역문은 "투시 기하학은 무형 물질계의 상호 작용을 측정하려는 신학적 규칙에 도전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투시 기하학"의 원문은 "perspective geometry"이다. 이 부분은 3장에서 논의한 '원근법'에 대한 얘기이다. "투시" 기하학이라고 하면 뭔가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원문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이렇다: "원근법의 사용은 손에 닿지 않는 물리적 세계를 측정가능하게 함으로써 이에 대한 신학적 규칙에 도전했다." 측정가능이 중요한 단어이며 원근법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번역문은 이 부분을 완전히 뺐다. 그 다음 문장 "19세기의 기하학은 역사에 대한 성서적 기록을 제거했다."에서는 역자가 단어를 잘못 봤다. "기하학"에 대응하는 원 단어는 "geology"이다. geometry가 아니다. 문맥을 봐도 '기하학'일리가 없지 않은가? 진화론을 논의하는 8장에서 지질학에 의해 성서적 역사가 어떻게 도전 받는지를 설명한 바 있다. 그러므로 "19세기의 지질학은 역사의 성서적 해석에 종말을 고했다."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 다음은 '구조'가 어떻게 과학 연구에 영향을 미치고, 또 구조 내에서의 이상 현상(anomaly)에 의해 바뀌는지를 논의하는 부분이다. (토마스 쿤의 '패라다임'이 저자가 얘기하는 '구조'이다.) 역자는 단어를 잘못 이해해서 이 '구조'의 변화가 과학계 밖에서 오는 것처럼 번역했다: "흔히 변화에 대한 압력은 학계의 외부로부터 온다." 하지만 원문은 그렇게 의미하지 않았다. 앞의 번역문에 대응하는 문장은 "Often the pressure for change will come from outside the discipline."인데, 여기서 "discipline"은 과학의 '분야'를 의미하는 것이지 과학계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interdisciplinary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원문의 의미는 A라는 분야의 구조 변화가 B라는 다른 분야에 의해 촉발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대륙이동설을 설명하며 비슷한 얘기를 이미 했다. 지구 해저면의 자기장에 대한 연구가 결국 대륙이동설을 확증한 예이다. 좀 더 맥락을 살리면 다음처럼 되겠다.


"대부분의 경우, 각 구조는 과학 자체와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종종 변화를 추동하는 것은 다른 과학 분야에서 온다. 어떻게 만들어졌든 우주적 구조는 실재의 전체적 양상을 규정하며, 이 속에서 다른 구조들이 작동한다. 이 구조들은 각각의 분야에서 어떤 연구를 수행할지 결정한다. 각 분야에서는 전문적 연구들이 수행되는데, 이 연구들이 전체 구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異常) 현상을 발견하면 결국 변화가 촉발된다. 하지만 이론, 발견, 방정식, 법칙, 과정, 측정도구 뿐만 아니라 연구의 결과를 평가하는데 사용되는 판단 체계는 모두 구조의 일부로서 각각의 맥락에 따라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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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하여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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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전효과에 대한 설명에서 오류가 눈에 띄어 기록해 놓는다.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란 금속에 빛을 쐬어 주었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광전효과는 빛의 입자성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 현상이다. 


  1905년의 또 다른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에 대해 설명했다. 플랑크가 말한 바대로 빛은 에너지 단위들의 묶음 형태로 도달한다. 이것들은 금속판과 충돌해 전자들을 방출시키는데 빛이 발생하는 빈도에 따라 많은 수의 전자들이 방출되었다. (444 페이지, 밑줄 추가)


"빛이 발생하는 빈도"란 말은 '빛의 진동수'를 잘못 번역한 말이다. 원문은 이렇다.


  In another of his 1905 papers Einstein explained what was happening. The light was arriving in packets of energy units as described by Planck. These knocked electrons out of the metal, and as the frequency of the light rose, so too did the number of electrons released. (pp. 199-200, 밑줄 추가)


버크는 '빛의 진동수가 증가함에 따라 방출된 전자의 수도 증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관찰된 광전효과는 그렇지 않다. 빛의 진동수가 증가할 때 증가하는 것은 방출된 전자의 에너지이다. 빛의 에너지(또는 광양자의 에너지)가 진동수가 증가함에 따라 증가하고(플랑크의 가설), 전자가 이 에너지를 받아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광전효과이기 때문이다. 방출되는 전자의 수는 빛의 진동수와는 관계가 없다. 


그 밑에는 드 브로이의 기여에 대한 설명이 있다. 


  1927년에 루이 드 브로이는 용감하게 난국에 맞서서 광자, 즉 빛의 묶음들을 두 개의 바늘 구멍 사이로 동시에 통과시키는 실험을 했다. 그것은 간섭을 통한 빛의 파동 운동설을 확립하기 위해 토머스 영이 한 세기도 전에 이미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광자들은 마치 파동처럼 서로를 간섭했다. (445 페이지)


다음은 원문이다.


  In 1927 Louis de Broglie took the bull by the horns and carried out an experiment in which photons, or light packets, were sent, one at a time, through the double pinhole system which Young had used more than a century before to establish the wave motion of light through interference. The photons interfered with each other as if they were waves. (p. 300)


드 브로이는 보통 '물질파'를 제안한 이로 기억된다. 물질(입자)이 파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파동인 빛이 입자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물질파 가설을 설명하는 대신 드 브로이가 1927년 광자를 한 개씩 보내는 간섭실험을 했다고 언급하지만, 혹시나 인터넷을 찾아봐도 이런 내용은 없다. 뭔가 저자가 단단히 착각한 듯 싶다.


근·현대물리학 부분(9장)으로 오면서 저자의 설명이 좀 길을 잃는 느낌이다. 번역본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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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파동 만들기'에 두 전류 도선 사이에 작용하는 힘에 관한 앙페르의 실험을 기술하는데, 힘의 방향 설명에 오류가 있다.


  1879년 앙드레 앙페르는 전류가 흐르는 두 가닥의 전선을 나란히 놓았을 때, 전류가 같은 방향으로 흐르면 전선들이 서로를 밀쳐 내고, 전류가 반대로 흐르면 잡아당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기는 자기력을 띠었고, 자기력은 전기적이었다. 그렇다면 전자기 현상이란 양전기와 음전기를 가진 '미립자'가 자기력을 만들어 내는 작용을 말하는 것일까? (419 페이지, 밑줄 추가)


위의 글은 두 평행한 도선에 흐르는 전류가 같은 방향이면 척력, 다른 방향이면 인력이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전류의 방향이 같으면 인력, 다르면 척력이 맞다. 두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쿨롱의 힘과 연관하여 혼동한 듯 싶다. 쿨롱의 힘은 두 전하의 부호가 같으면 척력, 다르면 인력이다. 


원문에도 같은 오류가 있다. 


  In 1879 André Ampère put two live wires next to each other and saw that when the currents ran in the same direction the wires repelled each other and when the currents went in oppsite directions the wires were attracted. Electricity was magnetic and magnetism was electrical. Was the electromagnetic phenomenon a 'molecule' on which positive and negative electricity acted to produce magnetism? (p. 281, 밑줄 추가)


번역서의 마지막 문장인 "전자기 현상이란 양전기와 음전기를 가진 '미립자'가 자기력을 만들어 내는 작용을 말하는 것일까?"는 언뜻 잘 이해가 안되는 원문을 의역한 듯 싶은데, 사실 원문을 왜곡했다. 원문의 뜻대로 번역하자면 "전자기 현상이란 양전기와 음전기가 작용하여 자기력을 만들어내는 '미립자'인 것일까?"가 맞다. 무슨 뜻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저자인 버크는 과학사와 문화사에 정통한 듯 싶지만, 과학에 대한 내용을 기술할 때 부정확해 보일 때가 있다. 위의 글이 그런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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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낡은 테이프, 피아노, 풋풋함, 추억, 노래, 마음, 라디오, 길거리, 말들, 미안함, 부러움, 그리움, 울음, 웃음, 하염없이... 바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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