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오버리Richard Overy는 영국의 전쟁사가로서,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Russia's War>이라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에 관한 그의 책이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폭격전을 다룬 그의 <The Bombing War>를 근래 읽었는데, 최신 사료를 이용하여 기존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역사학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최근작인 <Blood and Ruins>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2차 세계대전이 1차 세계대전부터 이어오는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번역가 이희재는 그의 책 <번역전쟁>에서 1차 세계대전은 떠오르는 강국 독일을 견제하려는 영국의 군산복합체(그리고 그 배후의 ‘금벌’)가 일으켰다는(또는 유도했다는) 시각을 얘기한 바 있다. 결국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얼마 없던 식민지를 모두 잃은 독일은 다시 한 번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에 합류하기 위해 식민지가 필요했는데, 이미 세계는 선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등이 거의 나눠가진 후였다. 독일은 그 해결책을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힘이 미약한 주변의 유럽국가들에게서 찾았다. 핑계는 거기에 독일계 주민이 거주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오스트리아, 그다음엔 체코, 그리고 그 다음 목표가 폴란드였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은 선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 프랑스와 후발 제국주의로 도약하려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 간의 싸움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오버리의 주장이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둔 국가들 간의 전쟁이므로 세계대전으로 번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독일은 자신들이 점령한 국가의 백성들을 식민지인으로 (당연히) 가혹하게 취급했다. 이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이 취했던 방식이기도 했다. 차이는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프리카나 중동, 아시아 등에서 인종이 다른 식민지인을 가혹하게 다뤘던 반면, 독일은 유럽에서 동일 인종의 유럽인들을 식민지인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선발과 후발 제국주의 통치 모두에 인종주의가 배경으로 깔려있지만, 독일의 인종주의는 좀 더 좁은,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다. 유럽에 식민지를 세우자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적 착취의 구조이다. 선발 제국주의가 후발 제국주의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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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툭 나온 구절인데, 문득 마음에 와 닿는다. 때는 1940년대, 동명관을 운영하는 우두머리 기생 숙향이, 떠돌아다니다 찾아온 추평사의 아들 동삼에게 하는 말이다. 


  "법도 따지는 양반들 별거 아니다. 화신 백화점 옥상에서 돈을 다발로 뿌려봐라. 양반들이라고 뒷짐만 질 것 같니? 아서라, 겉으로는 체신 차리는 사람일수록 실속은 더 차리느니. 내 이날 이때까지 오만 사내를 다 겪어봤지만 양반일수록 더 개차반이더라. 서푼 값어치도 없는 게 양반님네 법도니라. 진짜 사내는 사람을 보지 출신을 따지지 않느니." (123 페이지)


'양반'이란 요즘으로 치자면 사회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는 사람을 일컫겠다. 권력자, 부자, 소위 사회지도층,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국회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중앙부처 공무원, 검사, 의사, 교수, ... 이들의 법도란 무엇인가? 실속을 가리기 위한 명분인 건가? 


비슷한 얘기를 최근 직접 들은 적이 있어서 세상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인간에게 너무 기대를 하는지도. 물질이 있어야 먹고 사니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욕심이 욕심을 부르는, 누가 봐도 과한 경우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고 김대중 대통령 말씀처럼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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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진리'이며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진실된 도구라는 생각이 18세기부터 19세기에 들어서며 깨지기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 이유로 이 책에서 드는 것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자연은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기술되며, 이것이 '수학이 자연의 언어이며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낳게 된 큰 이유였다. 수학을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칸트조차 유클리드 기하학이 인간 인식의 기본이며 이를 통해 객관적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자연에 대응되지 않지만 모순이 없는 새로운 수학 체계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수학의 진실성에 흠집을 냈다. 수학이 자연에 대응하는 진리의 체계라는 주장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나중에 일반상대성 이론의 기술을 위해 쓰인다는 반전이 있기도 하다. 수학이 원래 우리가 생각했던 '진리'가 아니라는 증거는 이후에 계속해서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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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1
조세래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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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과 일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바둑 고수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여목과 그의 제자 추평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결과 승부의 이야기인지라 무협소설의 느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바둑이라는 주제로 그 속에 얽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잘 펼쳐냈다. 구성도 나름 긴박하고 디테일도 살아 있어 잘 쓰여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둑에 관심이 있는 이에게는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히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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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자연이 따르는 법칙을 기술하는 '진리'이며 이렇게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은 수학자라는 것이 17세기 뉴턴 역학의 성공이 강화한 서구의 '믿음'이었다. 하지만 자연 법칙대로 운행하는 우주 속에서 하느님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져갔다. 18세기에 이르자, 흄 등은 인간의 지식은 오직 (상대적) 감각으로부터 오며 이의 단순한 요약이 자연법칙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즉, 객관적 자연 법칙은 없다는 극단적 회의론을 펼쳤다. 여기에 맞선 철학자가 칸트였다. 칸트는 세상 그 자체를 알 수는 없지만, 인간에게 고유하게 주어진 틀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이용하여 자연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우주가 수학적이며 수학을 통해 하느님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His [Kant's] doctrine that what mathematics asserts is not inherent in the physical world but comes from man's mind should have given pause to all mathematicians. Are all our minds pre-fabricated so as to make the same organization of our sensations, and is that organization of spatial sensations necessarily Euclidean? How do we know this? Unlike Kant, mathematicians and physicists still believed in an external world subject to laws independent of human minds. The world was rationally designed and man merely uncovered that design and used it to predict what would happen in that external world. (p. 77)


"수학적 진술이 물질 세계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칸트의 언명은 모든 수학자들에게 숙고의 시간을 선사했어야 한다. 우리 마음은 정말 감각들을 동일하게 조직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공간적 감각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가?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칸트와 달리 당시의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외부 세계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독립된 법칙의 지배를 받음을 여전히 믿고 있었다. 세계는 이성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인간은 단지 그 설계를 알아내고 이용하여 이 외부 세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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