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Contact> 소설을 읽고 있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도 본 적이 있는데, 영화와는 세부 줄거리와 호흡이 확실히 다르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을 적자면, 주인공인 엘리와 아빠가 함께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보거나 엘리가 아마추어 무선 통신을 하며 아빠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책에는 없다. 영화는 책보다 좀 더 감성적인 부분이 강조되어 있고 내용도 압축되어 있다.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또 영화에서 엘리는 외계신호 탐색을 위한 연구비를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어느 억만장자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오지만 소설에서는 미국과학재단의 연구비를 받아 연구하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엘리의 연구가 연구자원의 낭비라고 질시하는 동료 천문학자들이 소설에는 나온다.
외계신호를 처음 받는 순간의 영화장면이 지금도 기억나는데, 소설에서도 조금 다르지만 나름 긴박하게 그려지고 있다. 사실 소설 <콘택트>는 내가 30여 년 전에 읽으려다 포기했던 책이다. 책을 버리지 않았나 싶었는데 찾아보니 아직 있더라. 1985년 11월 20일 초판 발행된 길한문화사 간이다. 거의 40년 전에 번역된 책이다. 세이건의 원서도 85년에 발행됐으니 미국 발행과 거의 동시에 번역된 것 같은데, <코스모스>의 성공에 기대어 나름 괜찮게 팔리리라 출판사는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이건의 팬인 내가 읽다가 괴로워 포기했으니 아마 출판사가 별 재미는 못 봤으리라 생각한다.
원서로 읽으며 예전 번역서는 어떻게 번역했나 가끔 들춰보는데, 역시나 번역이 별로이고 종종 맥락이 없다. 내가 읽다가 포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SF는 과학적, 기술적 내용을 정확히 번역해야 함을 다시금 절감한다. 30여 년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는 많이 발전했으니, 다시 번역, 출판된 책은 이 초판 번역보다 더 나으리라 기대한다. 당시는 인터넷도 없었을 때이니 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가거나 아니면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이해하고자 한다.
소설을 보면 자전하는 지구 위에서 외계신호를 끊김 없이 수신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인도는 언급되지만 한국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당시 우리나라의 위상이다. 전혀 존재감이 없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참 격세지감이다.
외계신호를 받아서 처음 검증하는 소설 속 장면을 다음에 옮겨 둔다.
Briskly she entered the control area and approached the main console.
“Evening, Willie, Steve. Let’s see the data. Good. Now where did you tuck away the amplitude plot? Good. Do you have the interferometric position? Okay. Now let’s see if there’s any nearby star in that field of view. Oh my, we’re looking at Vega. That’s a pretty near neighbor.”
Her fingers were punching away at a keyboard as she talked.
“Look, it’s only twenty-six light-years away. It’s been observed before, always with negative results. I looked at it myself in my first Arecibo survey. What’s the absolute intensity? Holy smoke. That’s hundreds of janskys. You could practically pick that up on your FM radio.
“Okay. So we have a bogey very near to Vega in the plane of the sky. It’s at a frequency around 9.2 gigahertz, not very monochromatic: The bandwidth is a few hundred hertz. It’s linearly polarized and it’s transmitting a set of moving pulses restricted to two different amplitudes.”
In response to her typed commands the screen now displayed the disposition of all the radio telescopes.
“It’s being received by 116 individual telescopes. Clearly it’s not a malfunction in one or two of them. Okay, now we should have plenty of time baseline. Is it moving with the stars? Or could it be some ELINT satellite or aircraft?”
“I can confirm sidereal motion, Dr. Arroway.”
“Okay, that’s pretty convincing. It’s not down here on Earth, and it probably isn’t from an artificial satellite in a Molniya orbit, although we should check that. When you get a chance, Willie, call up NORAD and see what they say about the satellite possibility. If we can exclude satellites, that will leave two possibilities: It’s a hoax, or somebody has finally gotten around to sending us a message. Steve, do a manual override. Check a few individual radio telescopes—the signal strength is certainly large enough—and see if there’s any chance this is a hoax; you know, a practical joke by someone who wishes to teach us the error of our ways.” (pp. 56-57)
"sidereal motion"이란 말은 처음 봤다. 찾아보니 항성의 움직임(또는 항성과 함께 움직임)을 말한다. 항성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는 항성시는 sidereal time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기술적 용어가 나온다. 전파신호의 세기를 나타내는 jansky도 그렇다. 10^(−26) W⋅m^(−2)⋅Hz^(−1)을 말한다.
약 40년 전으로 돌아가면, 당시의 번역문은 이렇다:
활기있게 그녀는 통제구역으로 들어가서 중앙본부로 다가갔다.
⌜안녕, 윌리 스티브. 데이터를 보여 주세요. 좋아요. 거리측정 도면은 어디에 있죠? 좋아요. 간섭계의 위치는 있죠? 자, 그 지역에서 어떤 근접한 별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이럴 수가, 직녀성이 보이는군요. 정말 이웃에 가까이 위치해 있군요.⌟
그녀의 손가락은, 이야기하면서도, 키보드를 펀치하고 있었다.
⌜단지 26 광년만 떨어져 있군요. 전에도 그것을 관측한 적이 있지만, 결과는 항상 부정적이었읍니다. 나의 첫 번째 알렉시오 조사에서 그것을 보게 되었어요. 절대강도는 얼마나 되죠? 홀리 톨리도, 당신들도 FM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을 겁니다.⌟
⌜알았어요. 우리는 직녀성 근처에서 아주 가깝게 미확인 국적불명기를 발견했읍니다. 그것은 일정하지 않지만, 약 9.2 기가헤르츠의 주파수를 보이고 있읍니다. 주파수폭은 수백헤르츠 정도입니다. 그것은 직선형태로 편광하면서 두 가지 다른 진폭으로 한정된 일련의 파동을 전달하고 있읍니다.⌟
⌜116개의 망원경에 의해 그것이 수신되고 있읍니다. 확실히 그 중 한 두 개는 고장나지 않은 정상적인 것이겠지요. 우리는 수많은 시간축선이 있읍니다. 그것은 별과 함께 움직이고 있나요? 혹시 어떤 전자정보위성이나 항공기일 가능성은 없나요?⌟
⌜나는 항성의 움직임이라고 확신합니다, 애로웨이 박사.⌟
⌜좋아요, 다소 확신적이군요. 그것은 지구로 떨어지지는 않을 거에요. 우리가 점검하였지만, 혹시 모리나와 궤도의 인공위성으로부터 온 것일 가능성은 없나요. 윌리, 기회가 있으면 NORAD에 전화하여 인공위성일 가능성에 대해 문의해 보십시오. 만약에 인공위성이 아니라면, 두 가지 가능성만 남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장난이든가 아니면 결국 우리에게로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주위를 방황하는 것입니다. 스티브, 개개의 망원경들을 점검하세요—신호의 강도가 확실히 강해졌다—이것이 짓궂은 장난일 가능성을 살펴보세요. 누군가가, 우리에게 우리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는 못된 장난을 칠 수도 있읍니다.⌟ (73~74 페이지)
난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가 대단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더 나아질 부분이 많이 있다. 오늘날의 감성으로 시도해본 내 번역이 다음에 있다. 40년 후 언젠가, 내 번역도 누군가에겐 위의 번역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활기차게 통제실로 들어온 그녀는 주 제어판으로 갔다.
“윌리, 스티브, 좋은 저녁. 데이터를 봅시다. 좋아요. 진폭 그래프는 어디 있나요? 좋아요. 간섭측정 위치는요? 오케이. 자, 이 시야 안에 무슨 별이 있나 봅시다. 아, 베가군요. 꽤 가까운 이웃이에요.”
그녀는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계속 키보드를 두드렸다.
“봐요, 겨우 26광년 떨어져 있어요. 전에도 관측한 적이 있지만 결과는 항상 부정적이었어요. 내 첫 번째 아레시보 관측에서도 직접 살펴봤지요. 절대 세기는 얼마에요? 맙소사, 수백 잰스키군요. FM 라디오에서도 신호를 잡을 수 있겠네요.
오케이, 우린 하늘에서 베가 근처로부터 미확인 신호를 받고 있어요. 주파수는 약 9.2기가헤르츠이지만 아주 단일주파수는 아닙니다. 대역폭은 수백 헤르츠에요. 선형편광되어 있고, 두 개의 진폭으로 제한된, 진행하는 펄스가 송신되고 있습니다.”
그녀가 입력하는 명령에 따라 이제 스크린에는 모든 전파망원경의 배치가 나왔다.
“116개의 개별 망원경이 수신하고 있네요. 분명 한 두 개 망원경의 오작동은 아닙니다. 오케이, 이제 꽤 많은 시간기선(time baseline)이 있겠네요. 신호가 별과 함께 움직입니까? 아니면 엘린트(ELINT) 위성이나 항공기에서 온 신호일 수도 있나요?”
“항성과 함께 움직임을 확인했습니다, 애로웨이 박사님.”
“오케이, 꽤 확실해 보이는군요. 지구로부터의 신호는 분명 아니고, 몰니야(Molniya) 궤도에 있는 인공위성 신호도 아닌 것처럼 보이네요. 물론 확인해봐야겠지요. 윌리, 시간되면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에 전화해서 인공위성 가능성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보세요. 인공위성을 배제할 수 있다면 이제 두 가지 가능성만 남겠네요. 짓궂은 장난이거나, 아니면 누군가 드디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스티브, 수동조작으로 전환해서 몇 개의 전파망원경을 살펴보세요. 신호의 세기는 충분히 큽니다. 짓궂은 장난일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누군가 우리 방식이 잘못됐다는 교훈을 주려고 벌이는 실제적 농담의 가능성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