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번역에 대한 글을 많이 올린 듯싶다. 사실 이런 글들은 번역된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일들로부터 보통 시작된다. 이런 경우 대개 원문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책을 도서관에서 찾을 때도 있고, 인터넷 검색을 할 때도 있으며, 내가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은 사기도 한다. 원문(영어)으로 된 문장을 보면 속이 시원하다. 이해 안 되는 것이 번역문의 문제인지, 내 지식의 한계 때문인지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얘기해 보면 십중팔구는 번역문의 문제였다. 사실 우리나라는 누구에게 잘못됐다는 지적을 하기가 어려운 사회 중 하나이다.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면서 딱 떨어지게 ‘틀렸다’라는 얘기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너무 술에 물탄 듯 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지적해서 당장 고치거나, 또는 다음번에 반영해서 더 낫게 하면 사회 전체를 위해 좋을 터이다. 문제는 어떻게 지적하느냐와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다. 정답은 없겠지만, 그냥 프로페셔널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일하다가 이건 저렇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듣는 사람은 그 의견이 합리적이면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반대로, 생각해 보고 합리적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경험한 번역본의 유형을 써 본다.
- 번역본인지 모르겠는 경우.
1) 최고의 번역일 수 있다. 예전에는 직역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말로 자연스러운 번역이 최고이다.
2) 윤문을 기가 막히게 해서 잘 읽히지만 오역투성이인 경우도 있다.
- 직역 때문에 자꾸 되읽어야 되는 경우. 번역을 정확히 했음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번역가가 자연스러운 우리말에 신경 쓰지 않으면 이렇게 되기 쉽다.
-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종종) 나오는 경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의 원문을 찾아보면 오역인 경우가 많다. 오역의 정도와 개수도 천차만별이다. 비교적 간단한 문장임에도 잘못 번역된 것도 있고, 역자가 배경지식을 이해하지 못해 문맥을 살리지 못한 경우도 있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올바로 번역하기 힘들 때가 많다.
- 문맥에 맞지 않아 찾아보면 역자가 저자의 뜻을 왜곡한 경우. 왜곡이 의도적인지 몰이해로 인한 것인지는 역자만 알 것이다.
- 번역문은 괜찮은데 용어의 선택이 이상한 경우. 각 분야마다 외국어 단어들이 어떻게 우리말로 번역되는지 통용되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굉장히 이상하고, 그 분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지식을 주게 된다. 인명이나 지명의 우리말 표기는 어렵지만 나름 기준이 있는 듯싶다. 용어나 인명, 지명들 모두 출판계에서 통일하여 사용하면 좋겠다. 출판계 공용 용어 사전이나 인명, 지명 사전이 있으면 좋겠다.
많은 경우, 한 권의 책에 위의 유형들이 섞여있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에는 감수자가 있기도 한다. 하지만 감수자가 있음에도 용어 사용의 잘못이나 오역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번역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다. 그 자체로 번역가의 글 솜씨를 드러내는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편집자의 역할도 있다. 출판계의 사정을 정확히 모르지만, 편집자란 출판하는 글을 읽어보고 ‘편집’하는, 그래서 글을 더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연히, 오타와 비문 교정에 더해 오역도 걸러내야 할 것이다. 내가 종종 이해하지 못하겠는 것은, 명백한 오역처럼 보이는 문장을 편집자들이 왜 그냥 두느냐이다. 과학서적의 경우는 과학적 지식이 있으면 잘못된 문장처럼 보이는 것들을 비교적 명확히 찾아낼 수 있다. 편집자도 물론 각자 전공 분야가 있을 것이고 모든 분야의 서적을 다 명확히 이해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본인의 전공과 관심 분야에 맞춰 분야별 전문 편집자가 책임을 가지고 책을 편집하여 출간하길 기대한다.
번역가 이희재의 번역에 대한 두 번째 책이 출간됐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됐다.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번역을 위한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읽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