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우주는 어떻게 끝날까’라는 제목이 붙은 장에서, 영원한 우주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펼친다. 사실, 현재 가속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영원히 팽창하며 서서히 열적인 죽음(얼음 속에서 끝나는 우주)을 맞이할지, 아니면 팽창이 멈추고 다시 수축해서 파국(불 속에서 끝나는 우주)으로 끝날지는 아직 모른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의 다른 책이 나와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영원한 우주에는 목적이 있거나 없을 수 있다. 만약 아무런 목적이 없다면 이 우주는 부조리absurd하다. 왜 이 모든 것이 아무런 목적 없이 존재한단 말인가? 만약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이 목적이 이루어지거나 또는 이루어지지 않거나이다. 만약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우주는 헛되다futile. 만약 목적이 이루어진다면 목적이 이루어진 이후의 우주는 의미가 없다pointless. 요약하자면, 영원한 우주는 (a) 부조리하거나, (b) 헛되거나, (c) 결국 무의미하다.
저자는 이 논지가 완벽하다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목적이 왜 한 번으로 성취되고 끝나는지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어쨌든 이러한 논지를 영원한 '삶'에 대해 적용해보고 싶어졌는데, 마찬가지의 논리를 따른다면, 영원한 삶은 (a) 부조리하거나, (b) 헛되거나, (c) 결국 무의미하다. 하지만 실존주의는 인간의 삶이 부조리하다고 진작 얘기하지 않았던가? 목적 없이 태어나는 것이 인간이므로.
원래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영원한 삶이 주어진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어차피 부조리한 인간의 삶, 영원하던 영원하지 않던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다. 목적 없이 태어났지만 삶에서 목적을 찾았다고 할 경우는 뒤의 두 가능성에 해당될 수 있겠다.
위의 논지를 살펴보면 유한한 인생에서도 한 번에 이루어버리는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은 매우 무의미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계속 완성해 가는 삶이 좋은 삶이다. 이것이 결론! 날마다 불완전한 삶을 사는 사람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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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끝나는'은 생명(또는 사물)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주 자체는 어찌 됐든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