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반양장) - 완결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기의 세기 200년을 지난 이후의 시대를 그린다.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해야 할지, '스페이스 무협지'라고 해야 할지, 엄청난 시간을-거의 우주의 끝까지- 다루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주가 '암흑의 숲'이라는 저자의 전제에 선뜻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다루는 물리적 상상력이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틀린 것도 보인다. 예컨대, 광속 추진이 그것이다. 질량이 있는 물체는 어떻게 해도 광속에 도달할 수 없다. 라그랑주 점(Lagrange point)에 대한 이해도 잘못 되어 있다. "태양과 지구의 인력이 서로 상쇄되며 0이 되는 (380페이지)" 곳이라고 나오는데, 전에 지적했듯이[1] 라그랑주 점은 태양과 지구 중력의 합이 그 지점에 있는 물체가 느끼는 원심력과 평형을 이루는 곳이다. 그래서 태양 주변을 지구와 함께 공전할 수 있는 것이다. 


옮긴이 주가 종종 과학 용어를 설명해 주지만, 혼란스러운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몇 년 전 항로를 이탈한 운반 우주선이 가속 궤도로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가속된 입자 빔과 충돌한 적이 있어요. 초고에너지의 입자가 우주선과 충돌하며 2차 입자 샤워*가 발생해 우주선과 우주선에 실려 있던 100만 톤 넘는 광석이 순식간에 기화됐죠." (585 페이지)

여기서 우주선은 spaceship이다. '2차 입자 샤워'를 설명하는 옮긴이 주는 이렇다: "우주선이 공기 또는 물질 중에서 원자와 충돌해 입자를 방사상으로  발생시키는 현상." 옮긴이 주에 나온 우주선은 cosmic ray이다. 이 둘을 한자 없이 이렇게 쓰면 옮긴이 주의 우주선을 spaceship으로 오해하기 쉽다. 


잘못된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기록을 위해 하나 더 적는다. 명왕성과 그 위성인 카론의 궤도에 대한 설명이다.


명왕성의 10분의 1 질량을 가진 카론이 명왕성과 중행성계처럼 동일한 질량중심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655페이지)

중행성계란 "쌍성"의 행성 버전으로 생각된다. "쌍성"이란 두 개의 질량이 비슷한 항성(별)이 자신들의 질량 중심을 궤도의 중심으로 삼아 도는 시스템이다. 질량 중심은 움직이지 않고 이 주변을 두 별이 도는 것이다. 별의 질량이 동일한 경우 질량 중심은 두 별을 이은 직선의 중점中點이 되고, 질량 차이가 커질수록 질량 중심은 질량이 큰 별 쪽으로 이동한다. 극단적으로 두 별의 질량이 차이가 나면 질량 중심은 질량이 큰 별 안에 위치하게 되고, 이 경우 질량이 큰 별은 거의 움직임이 없고 질량이 작은 별이 질량이 큰 별을 도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카론의 질량은 명왕성 질량의 10분의 1로, 극단적으로 질량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명왕성도 두 물체의 질량 중심을 도는 운동을 보이게 된다. 위의 번역문의 문제는 "동일한 질량중심"이라는 문구이다. 뭐가 동일한 것인지? 질량 중심은 두 물체 사이에 하나가 존재한다. 제대로 번역하자면 "명왕성의 10분의 1 질량을 가진 카론이 명왕성과 중행성계를 이루어 그들의 질량 중심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가 될 것이다.


마지막에는, 우주가 '열린' 우주이냐 '닫힌' 우주이냐를 생명체가 결정짓는 얘기가 나온다. 이 부분을 역자는 이런 식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그는 대우주가 원자 하나만큼의 질량 차이로도 밀폐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개방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796 페이지)


우주가 영원히 팽창하느냐, 언젠가는 팽창을 멈추고 수축하느냐를 나타내는 용어는 열린 우주와 닫힌 우주이다. "밀폐"와 "개방"이라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트집 잡기는 여기까지 하겠다. 2권보다 조금 지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주의 끝까지 가는 저자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3권에서는 현대 우주론의 수수께끼인 암흑물질의 정체에 대한 저자의 답이 나오기도 한다.


청신이 삼체 3부를 관통하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성성을 정형화시킨 것 같아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요즘과 같은 양성 평등의 시대에... 


아쉬움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읽을만 했다. 시간이 많은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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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blog.aladin.co.kr/746092183/10439998


  지금 사람들은 알고 있다. 끝나지 않는 축제는 없으며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31 페이지)

... 만약 세상이 손가락 하나 튕기는 사이에 재가 되어 날아갈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종말이라는 것도 풀잎을 따라 굴러떨어지는 이슬방울처럼 평온하고 담담해야 한다. (360~361 페이지)

  남학생이 물었다. 

  "남은 아이들은 죽나요?"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는 죽어. 일찍 죽느냐 늦게 죽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506 페이지)

  40억 킬로미터 밖 은빛 묘지를 보며 위드널도 만감이 교차했다.

  "사실 말입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멸망이란 잘못된 말이에요. 그 무엇도 정말로 파괴할 수 없고 소멸시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해요. 물질의 총량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니까. 각운동량도 여전히 존재하죠. 그저 물질의 조합 방식이 변하는 것뿐. 카드를 다시 섞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생명은 스트레이스 플러시* 같아서 카드를 한 번 섞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521~522 페이지)

... 태양 공전 가속기의 건설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이 다시 쓰이는 계기가 되었다. 서기 시대 사람들은 초끈 이론*을 매우 앞선 이론으로 여겼다. 그들은 그것이 22세기의 물리학이라고 생각했다. 태양 공전 가속기가 건설된 후 드디어 초끈 이론을 실험으로 직접 검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사실로 검증된 부분보다 뒤집힌 부분이 훨씬 많았다. 삼체 세계가 알려준 것들도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삼체 문명이 도달한 기술적 수준을 고려하면 그들의 기초 이론이 그 정도로 틀릴 수는 없었다. 그들이 기초 이론 분야에서 인류를 속였다고밖에는 해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Ice가 위기의 세기 말에 내놓은 이론모델은 태양 공전 가속기를 통해 증명된 몇 안 되는 이론 중 하나였다. 그가 동면에서 깨어났을 때 물리학계는 다시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었다. 덕분에 그는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높은 명성을 얻은 뒤 10여 년간의 연구를 거쳐 물리학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625 페이지)

  192년 전 딩이 박사와의 마지막 작별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석양이 내려앉는 오후, 두 사람이 지하 도시에서 지상으로 나와 차를 몰고 사막으로 향했다. 딩이는 사막을 걸으며 사색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은 강의실 대신 사막에서 수업을 해서 학생들을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이 별난 습관을 이렇게 해석했다.

  "난 황량한 곳이 좋아. 생명체는 물리학에 방해가 되지."

  쾌청하고 바람도 없는 날이었다. 초봄의 공기가 싱그러웠다. 딩이와 Ice가 모래 언덕에 누웠다. 석양이 화베이(華北)사막을 감싸고 있었다. Ice는 구불구불 이어진 모래 언덕이 누워 있는 여자의 실루엣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이것도 딩이가 일깨워준 것이었다) 그날은 겉으로 드러난 뇌처럼 보였다. 어지럽게 접히고 고랑이 파인 뇌가 금빛에 휘감겨 있었다. 다시 하늘을 보니 우중충한 구름 사이로 오랫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 나와 있었다. 막막했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 같았다.

  딩이가 말했다.

  "지금 내가 하는 얘기는 혼자만 알고 있게. 내가 돌아오지 못해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네."

  "그럼 돌아와서 얘기해 주세요."

  딩이를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었다. 그때 그는 승리의 환상과 환희에 도취되어 있었고 딩이의 이번 항해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먼저 내 질문에 대답해 보겠나?"

  딩이가 Ice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석양이 내려앉은 사막을 가리켰다. 

  "양자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것이 확정적이라고 가정할 때, 초기 조건을 안다면 그 후 모든 시간 단면의 상태를 계산해낼 수 있지. 만약 외계의 과학자가 수십억 년 전 지구의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오늘날 이 사막이 존재한다는 것을 예측해낼 수 있을까?"

  Ice가 대답했다. 

  "당연히 그럴 수 없죠. 이 사막의 존재는 지구가 자연적으로 진화한 결과가 아니니까요. 사막화를 일으킨 건 인류 문명이고 문명의 행위는 물리학의 법칙으로는 예측할 수 없잖아요."

  "좋아. 그런데 우리와 우리 동료들은 어째서 물리학의 법칙만으로 현재 우주의 상태를 해석하고 우주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거지?"

  Ice는 깜짝 놀랐다. 지금껏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물리학의 범주를 넘어선 일이 아닐까요? 물리학의 목표는 우주의 기본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잖아요. 인류가 지구를 사막화시킨 건 물리학으로 계산해낼 수 없지만 역시 법칙에 따라 진행되었겠죠. 우주의 법칙은 영원히 불멸하니까."

  딩이가 갑자기 괴상한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634~635 페이지)

  박물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묘비는 자신을 위해 만드는 것이다. (66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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