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림을 만날 때 - 개정판
안경숙 지음 / 휴앤스토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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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본다는 것.

그림을 느낀다는 것은 참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림에 대한 이해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왠지 그림에 따라오는 설명을 듣고, 읽고 그대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 정답인듯한..

그런 미련스러움을 당연히 받아들일 때도 있다.

어렵게 느껴지면 그림을 안 보면 되겠지만.. 참 묘한 것이 그림이 어렵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면 들여다보고 싶어진다는 말이다.

 

어쩌다 접하는 명화를 보면 어떻게 느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것은 정해진 룰이 없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느낌, 생각, 감성이 정확하지만, 그림을 많이 접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게 맞는 건가..라는 물음은 스스로에게 퍼붓고 있기도 하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

연인의 그림을 보면서 사랑스러움을 떠올 리 수도 있고. 때론 그들이 과연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결론을 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림을 위해 일시적으로 포즈를 취한 모델일 수도 있겠다는 시비조의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다.

보이는 그림은 하나지만, 그것을 느끼는 감성은 수십 가지로 존재하고 있을 텐데, 왜 답을 정해놓고 그 틀에 맞춰 그림 감상을 하려고만 했을까..

 

이런 의미를 생각하고 볼 때 <삶이 그림을 만날 때>는 내가 그림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가에 대해 저자와 책 그리고 독자 간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그림을 사랑해온 사람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림이란 연구해야 할 부담스럽고 묵직한 대상이 아니라 기쁠 때나 슬플 때 또는 힘들 때도 함께하는 삶의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림 속에 담긴 희로애락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용기를 얻고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 이거다.

그림은 그것을 보고 나에게 느껴지는 희로애락의 느낌.. 오롯이 나만의 느낌..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삶이 그림을 만날 때>에는 80여 점의 명화가 있다.

그림을 보면서 그것을 통해 느끼는 저자의 생각을 독자들은 느릿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그림 속에 녹여진 삶의 이야기를 저자의 글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삶을 기억한다는 것, 삶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것, 때론 타인의 삶을 느껴본 다는 것이 그림을 제대로 느끼는 방법이 아닐까.

저자가 말했듯이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닌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동반자이다.

 

<삶이 그림을 만날 때>를 읽어가면서 잠시 쉬어가는 휴식의 의미를,  나와 그대와의 이야기를, 그리고 무심코 지나치던 주변 자연의 이야기를, 음악의 이야기와 진한 삶의 이야기가 있다.

기도하는 마음, 절망에 빠진 삶, 감사하는 삶의 이야기가 명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단다.

 

그림을 잘 모르는이라고 해도 어쩌다 우연히 전시관에서 그림을 접할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뚫어져라 본다. 그림에 대한, 화가에 대한 사전적 정보가 없다고 해도 내 발길을 잡는 그림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림이 주는 의미를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그 그림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은 그림의 본성과 나의 본성이 이어지는 교감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림을 잘 몰라서, 또는 전시회를 가는 것이 쑥스러워서 알고 싶은 그림 이야기를 멀리하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권해보고 싶다.

또는 잘 모르는 그림이지만 그것을 그렸던 화가의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들 역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떤 화가의 그림이던지 그 모든 것은 삶 속에서 이루어졌던 이야기를 한 폭에 오롯이 담아낸, 삶의 압축일 수도 있는 이야기일 테니까,

어느 누군가의 삶일 수도 있는, 또는 지금 나의 삶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 그림으로 표현되었을 테니까.

 

바쁨에 잠시 잊고 있던 삶의 진득한 모습을 그림 속에서 그리고 이 책 속에서 찾아가는 시간을 추천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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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7일 완성 손글씨
유제이캘리(정유진) 지음 / 진서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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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글씨 쓸 일이 종종 있어서.. (뭐.. 거의 손글씨를 썼지만) 글씨체가 예쁘다는 얘기를 잘 들었었는데..
일하면서 늘 컴퓨터를 사용하고, 작은 메모나 기타 내용도 모두 컴퓨터를 이용해서 사용하다 보니까 글씨가 영 엉망이다.
글씨가 힘도 없고.. 미끄러진 듯, 술 마시고 취한 듯 이리 비뚤 저리 비뚤..
어느 곳에서 손글씨를 쓸 일이 생기면 첫 글자는 왜 이렇게 모양 빠지게 써지는지..
단어 한두 개의 필체로 가끔 민망할 때가 있다.

언젠가 유행하던 캘리그라피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뭐. 일부러 시간까지 내서 그걸 배워야 하나라는 생각에 그저 잠깐의 관심만 두었었는데.. 이참에 아주 유익한 책 하나 발견했다

<왕초보 7일완성 손글씨>
초보라는 말도, 7일 완성이라는 말도 그리고 손글씨라는 말이 눈에 확 띄었다.
혼자서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기회인데 내가 이걸 마다할 리가 있나..
열심히 따라 해봐야지..
그래도 기본은 있으니까(??) 잘 따라 하면 예쁜 글씨체를 다시 만나겠지

우선 글씨를 예쁘게 잘 쓰려면 자세가 중요하단다.
아.. 이런 이거 아주 기본인데..
매일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잠깐잠깐 글씨를 쓰는 나를 유심히 체크해보았다.
역시나.. 자세가 영 아니다..
연필 쥐는 법부터가 틀렸다..
아뿔싸.. 이런 기초적인 것부터 흐트러졌으니 글씨가 나올 리가 있나..

<왕초보 7일완성 손글씨>는  유제이 서체를 기본으로 한다.
하나하나 연습하는 칸이 있어서 정말 정말 오랜만에 글쓰기를 해본다.
참.. 새록새록 하다
칸에 맞춰서 옅은 밑그림을 따라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좀 더 나만의 색을 가진 글씨체가 있었으면 한다.
다른 다른 필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독특한 서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에 대한 노하우를 <왕초보 7일완성 손글씨>에서 일러준다.
조금 더 길게 하던지.. 좌우의 방향이라든지.. 가로획과 세로획의 쓰임새 등을 따라 하다 보면 내 맘에 드는 아주 예쁜 서체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획의 모양에 따라 서체도 달라지지만 글자의 크기와 폭에 따라서도 예쁜 글씨, 개성 있는 글씨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흘린듯한, 아님. 약간은 비껴쓴듯한 글씨도 나름의 개성을 충분히 보여주는 서체 연습으로 악필로 변하고 있는 내 서체에도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숫자와 영문도 나름의 글씨체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연습을 하면서 습득을 했다.

 <왕초보 7일완성 손글씨>를 연습하면서 유제이 서체를 접한 것도, 연습 따라 하기도 참 재미있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유제이 서체를 모방해서 내 글씨체에 약간의 멋을 덧입힌다면 어떨까?
미운 글씨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자획을 약간 길게 뺀다든지 모음의 크기를 다르게 한다든지 해서 나의 글씨체로 만들어가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무엇보다도 제대로 자세를 잡는 것은 꼭 기억해야 할 것 같다. 펜을 단단히 쥐고 글씨를 쓰는 것도 중요하다.
글씨체를 탓하기 전에 내가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 자세부터 체크하고 글씨 연습을 하면 충분히 예쁜 나만의 서체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한자 한자 연습할수록 나도 유제 이서 체 비스름하게 나온다.. 히힛~ 기분 좋다..
사각사각 써지는 글씨가 참 좋다.. 음.. 무슨 멋진 문장을 써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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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까불어보겠습니다 - 어차피 나와 맞지 않는 세상, 그냥 나답게!
김종현 지음 / 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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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다는 것...

난 나답게 인생을 만들어왔을까?

어느 누구나 어떤 삶을 살고 싶다.. 미래는 어떻게 할 것이라는 그림을 분명 가졌을 것이고. 그것을 향애 열심히 달린다. 하지만 매번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을 강요받는 기로에 있다는 천편일률적인 표현을 또 줏어댄다.

좋은 직장, 좋은 친구, 성실한 남편, 야무진 아내, 예쁘게 말 잘 듣는 아들, 딸로서의 선택이 항시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대부분의 이들은 선택 아닌 선택을 해야만 그다음 순서로 나갈 수 있을 것 같고. 그 어쭙잖은 선택을 위해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찾아내고, 때론 무게감 없는 과정을 경험하기도 해야 한다. 매번 똑같은 지겨운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과정이겠지만 말이다.


'착하다'는 본래 타인이 한 개인에게 내리는 평가의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착해지지 않는다. 나 자신이 아닌 남에게 착하다는 평가를 듣기 위해 하기도 싫은 착한 행동 등을 억지로 하는 것이다.(P50)

그런데 우습게도 타인에 대해서 이런 게 문제다..라고 꼬집으면서 정작 나의 선택에서는 아주 당연한 듯,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인 양 무심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맞는다는 모호한 당연지사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무의식적 행동일까?


그런데 <한번 까불어 보겠습니다>를 읽을수록 .. 아.. 나는 나답게 산다는 것을 잊어버렸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뒤를 이어오는 잊힌 내 미래에 대한 아쉬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속상함?? 때론 그때 그랬었더라면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라는 자기변명을 떠올리고 앉았다. 내면의 어느 부분을 톡톡 건드리는 것이다.


...그보다는 조용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하루를 온전히 즐기고, 인생에 대해서 솔직히 고민하고, 혼자 있을 때는 나지막한 허무와 우울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는 이들과 만나고 싶고, 하루를 나누고 싶었다. 다행히도 이런 삶을 영위하는 데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대신 그보다 더 갖기 어려운 맑은 영혼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영혼을 갖고 싶고, 그런 영혼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P39) 

저자는 구석진 동네에서, 티도 안 나게 책방을 운영한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고, 내 마음대로 꾸미고, 내 방식대로 꾸려가는 저자다운 책방이라고 한다. 그 고집스러움이, 우직함이, 때론 똥고집이 부럽기도 하고, 이 무슨 똘**?? 라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자신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한번 까불어 보겠습니다>를 보면서 단 하나, 나를 표현한다는 것, 나를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의문을 역으로 나에게 해본다.


뭐..그렇다고 내 삶이 후회스럽게 느꼈다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50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완전 100% 만족의 삶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잘 살아왔고 내 삶을 잘 꾸려왔다.

내가 <한번 까불어 보겠습니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나를 되돌아보는 것. 나만의 모습을 내가 찾아보는 것.. 그런 느낌을 공유하는 책이라고 할까?


마음대로 문 열고 마음대로 문을 닫고, 누가 찾아주기보다는 내가 먼저 판을 펼치는 그런 공간..'퇴근길 책 한 잔'이라는 곳(저자가 운영하는 책방의 이름이다)이 참 궁금해진다. 마치 그곳에 들러서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괜한 아는 척을 하다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내 것..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내가 갖고 싶었던,,, 해보고 싶었던,,, 그 무엇을 시작하게 하는 틈을 주지 않을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속에 각자의 생각과 취향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것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직장 상사와의 대화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감춘 채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일이 많고. 가족들 사이에서는 그 역할에 따라 약한 모습도 감추어야 하고 또 자기 목소리를 낮추기도 한다는 것. 우리는 매일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숨구멍'같은 공간 (P65)

그래.. 맞다.. 숨구멍..

우린 이게 필요한데, 뭐가 필요한지조차 모르고 헐떡거리면서 달려간다. 정확한 목표라도 있어서 달리는 중이라면야 힘듬도 고단함도 외로움도 그럭저럭 달래가면서 가지만, 어디 인생이 그런가? 정해진 목표도 불분명하고, 이 얄팍한 삶의 기준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그로 인해서 달리는 내내 방향을 틀어야 하니 나라는 존재는 참 피곤스럽게 살고 있다.

내가 선택해놓고 또 내가 숨 막혀 죽겠다고 헐떡이고 아우성을 쳐대는 꼬락서니가 상상된다.

조그마한 숨구멍이라도 있다면 힘껏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재정비하는 그 무엇은 꼭 필요조건이데.. 미련한 인간들은 이것을 찾지 못해 여기 기웃, 저기 기웃대고 있단다.

숨구멍..

참 정확한 표현이다.

우린 이 숨구멍을 찾고 싶다.

잠깐의 숨돌림으로 나를 찾고 내 삶을 다시 닦아서 반짝이게 할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깊은 물음을 던지는 시 한 편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사회가 그렇게 주입하려고 하는 정해진 답이 아닌, 스스로가 묻고 찾아낸 답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답은 개개인의 고유한 것이며, 당연히 어느 것도 오답이 아니다. 그저 각자의 답을 찾아 살아가고 그것이 서로의 고유성으로 인정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정해진 가치의 틀에 두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를 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너른 광장에 서서 각자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면 된다

어찌어찌 삶을 살림하다 보면  '나'의 존재는 뒤로 미뤄둘 때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존재감에 대해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꿈틀거리지 않나 싶다. 엉뚱한 취미생활을 찾겠다고 헤맨다던지, 하던 일에서 일종의 개김을 한다던지, 때론 아무것도 안 하고 무기력감으로 며칠을 보낸다던지 등의 행동이 나올 때가 있다.

난 이런 것이 한편으로는 살아있다는 증거이지 싶다.

목숨을 부지하는 그런 삶이라기 보다는 '나'란 존재를 찾아가려는 무의식중의 내면의 발악이라고 할까..


누구나 나를 찾으려고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단지 그것이 스스로 나를 위함을 찾는 것인지. 타인에 의해서 나를 만들어가는 것인지에 대한 깊이는 독자 스스로 알아내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이 행동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었구나.. 그래도 나를 찾으려고 내가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구나.. 그러면서 나에게 토닥토닥을 해주게 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공감의 결과라고 하고 싶다.

<한번 까불어 보겠습니다>는 정해진 틀에서, 흔히 말하고 인식하고 있는 굴레.. 포지션.. 당연히 해야 하는 책임감.. 의무감 속에서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한 번은 말해 볼 수 있는 자신감을 표현한다.

내가 작가처럼 약간의 똘끼(ㅎㅎ오해 마시길.. 난 이 말이 아주 순수하고 신선하게, 나의 고집스러움이 느껴지기 때문에...)를 부리는 배짱은 없다. 하지만 내 삶에 알게 모르게 정해졌던 보이지 않는 룰에 대해 조금은 벗어나고, 계획을 틀어버리는 나름의 과감성을 진행하고 있는 요즘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참 칭찬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생각 중에서 내가 공감하는 부분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생각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내가 과연 잘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하게 하지만. 작가와 공감되는 부분을 확인하는 이상 그래도 나와 같은 방향을, 같은 시선을 가진 이도 있다는 든든함을 얻었다.


톡 쏘는 한마디 글이 참 시원했다.

난 이 책을 우리 아이들에게 추천 할하려고 한다. 20대 청춘을 시작한 아이들이, 기회가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색깔을 지닌 멋진 그런 젊은이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청춘은 도전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과연 내가 이 아이들에게 도전의 싱싱함을 제대로 가르쳐줬을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가르치고, 보여준 모습은 사회에 잘 적응하는 모나지 않았지만 나만의 색이 옅어진 그런 모습이 더 크지 않았을까??


청춘들도 그렇지만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책을 권한다.

조그만 구석에서도 '나'란 존재는 반드시 있으니까. 그리고 작은 모습이라도 '나'를 찾는 그 재미는 참 쏠쏠하니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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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서영인 지음, 보담 그림 / 서유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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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이라는 지명에 괜한 아는 척을 하고 싶은 책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불광동과는 제법 떨어진 동네가 망원동이지만. 한강 북쪽의 동네 이름이 들리면.. 그리고 중간지점인 신촌과 합정동을 끼고 이곳에 언급되는 곳이면 괜한 반가움이 생긴다.

고향은 아니지만 망원동에 정착을 하면서 그 동네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밟아보고, 느끼는 작가의 담담한 이야기이다.

마라토너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하고. 문학평론가. 한국문학 연구자. 대학 시간강사. 번역가란 타이틀을 가진 작가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하루하루 담담하게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모습과 평범한 일상이 그려진다.


지금 이 시간 내가 살아가고 있는 복닥복닥 한 골목길을 정감있게 들여다본 기억이 있을까??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을 읽으면서 나도 얼마 전부터 정착을 하게 된 우리 동네를 떠올려본다.

가진 재산이 고만큼만 있어서 고만고만한 집을 찾고, 그 집에 정착을 하면서 나도 이 동네 주민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찾아보게 되는 백반집도 맥줏 집도 그리고 이웃한 편의점과 목욕탕도 어쩜 나처럼 그렇게 알아가고 찾아갈까라는 공감을 하게 된다.


기억에 남아있는 오래된 동네 모습은 회색빛 시멘트 담장이 떠오르고, 울퉁불퉁하게 깔린 깨진 보도블록이 떠오른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에는 어깨가 서로 맞닿게 되는 골목의 넓이가 그렇고, 반듯하지도 않은 그저 생겨먹은 그대로 만들어진 골목길이 그렇다. 이런 장면을 떠올리면 무수히 세뇌되었던, 힘들었던 가난의 시절을 먼저 떠올린다.


예전에는 가난의 모습이라서 일부러라도 피하고 싶었던 그때의 것들이 이젠 오히려 흑백의 여유를 찾는 그런 트렌드로 자리 잡는가 보다. 가난이라는 이름보다는 여유로움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발전과는 멀었을 그곳이 생각되고, 언급되고. 찾아가는 곳이 된다. 올망졸망 모인 주민들이 보이고, 휘적휘적 휘어진 골목길이 있고. 때론 아직도 여전한 초라함이 오히려 여유의 한 면으로 보는 그런 시선이 참 신기하다.


망원동이라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명에 왜 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책 속에 녹아있는 흑백의 그곳을 떠올리곤 했다. 작가의 주관적 사회 통념은 접어두고, 작가가 언급하던 그곳의 모습만 기억하게 된다.

나는 그렇다. 작가의 경험을 담담히 써 내려간 글 속에서 굳이 사회적 이슈나 사회적 이견들은 말하고 싶지 않다.

언급했듯이 전혀 연관성이 없는 동네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익숙하다는 그 지명과 그 지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푸근함? 편안함? 익숙함을 독자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어느 드라마에서 봤던 좁은 마당과, 덜컹거리는 마루 유리창과 열어놓은 마룻바닥으로 비추는 따뜻한 햇볕... 또는 마당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늘어진 빨랫줄,, 찾아오는 이가 성큼 들어서도 낯설지 않게 열려있던 대문..

나는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을 읽으면서 이런 모습이 떠올려졌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감성은 나와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언급한 망원동의 모습에서 나는 이런 예전의 느낌.. 어릴 적 느낌을 고스란히 떠올려보는 그런 시간이 되어서 좋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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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
엘리자베스 버그 지음, 박미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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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혈육이 가장 든든하고, 가장 믿음직하다는 말이 무색한 세상에 살고 있다. 참..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 어디서든 나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피로에 지친 나를 감싸주는 가족이 없다는 것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상은 오히려 가족이 없는 것이 더 좋은 그런 지경의 일도 간혹 보여준다.

하지만 이렇게 변하는 세상에서도 우리는 가족의 사랑. 그 속의 따뜻함. 그리고 끈끈한 사랑을 늘 갈망한다.

어쩌면 이 감정은 이후의 미래가 오더라도 변하지 않는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아서씨는 진짜 사랑입니다>는 세상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서로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고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가는 그런 소설이다.

힘없는 노인, 가정과 학교에서 소외된 청소년, 오직 자기만의 주장만을 하는 수다쟁이 할머니라는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서서히 엮어가는 소설이다.

사랑이라는것. 특히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이 꼭 혈연이 아니더라도 남에게도 충분히 주고 받을 수 있는 따스한 감정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얼마전 아내를 죽음으로 떠나보낸 85세 아서 씨의 일과는 무덤덤하다. 약한 몸을 이끌고 정원을 가꾸고. 말 안듣는 고양이 고든을 챙기고 작은 도시락을 챙기고는 아내의 무덤으로 가서 하루의 절반을 보내고 온다.

할일 없는 노인의 하루 때우기의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또는 변화도 없이 느릿하게 지나는 하루겠지만, 아서 씨는 이 시간을 결코 허튼 시간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무엇을 한다는 것. 더구나 나의 아내 놀라를 떠올리고 그녀의 주변에 함께 누워있는 이들의 생을 떠올려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초라한 하루는 아니다.

고즈넉한 무덤을 배경으로 한 아서 씨의 하루 일상은 의외의 모습이다. 죽음과 슬픔으로 음산할 것 같은 무덤이 기억의 존재를 확인하는, 그리고 따뜻한 추억을 재생하는 그런 장소로 보여지는 부분이 그렇다.


이런 변화없는 일상 속에서 아서 씨는 매디라는 매디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고교 졸업을 앞둔 매디는 아버지와 살고 있지만 단둘뿐인 이들은 오히려 더 남남같다. 배려도 없고 이해도 없다. 너무 냉랭하고 무관심하다. 엄마의 부재, 아내의 부재라는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아빠도 딸도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매디의 아빠는 자신만의 슬픔이 먼저인 사람이다. 미성년자인 딸을 챙길 여력조차 없는..못난, 약한 그런 아빠이다. 이런 아빠의 부재로 매디는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는 돌봄을, 배려를 받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사랑을 찾았다고 한다. 단지 잠깐의 쾌락조차 자신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느닷없는 미혼모라는 선택으로 매디는 일상의 모든 것에 변화를 갖게 된다. 남들은 음침하다는 무덤에서 아서 씨를 만나고, 그를 통해서 따뜻함을 배워간다.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고, 스스로 귀한 사람임을 깨우치게 된다.

잠깐의 쾌락으로 얻은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미혼모로 다닐 학교를 알아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늙어가고.. 서서히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나이 많은 노인과 왕따를 당하고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매디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간다. 나이 많은 이의 지혜를 필요로 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젊은이의 손길을 필요로 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아서 씨의 이웃 수다쟁이 루시까지 가족의 틀에 함께 동참하게 된다.


루시 역시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프랭크를 어렵게 만나지만 그녀의 사랑은 딱 거기까지였다. 남은 루시는 세상을 버리는 듯 했다. 사는 의미를 못찾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못찾았다. 죽지 못할 뿐이었고, 늘 부지런을 떨었던 살림은 온갖 악취가 풍기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간다.

이웃해 있던 아서 씨는 루시를 돌아본다. 늘 보이던 자리에 앉아서 시시콜콜 참견을 하던 루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아서 씨는 루시의 현관문을 두드린다.


매디가 아서 씨의 집으로 들어오고 루시도 강제적으로 아서 씨 집으로 들이닥친다. 매디의 새 생명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들은 가족이 되었다. 아서와 매디. 그리고 루시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고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이들이지만, 이 세 사람의 관계는 혈연의 그것보다 더 따뜻함을 보여준다. 가슴속의 공허한 부분은 서로의 존재로 채워진다. 소외 되었던, 타협을 못했던 모습은 타인을 돌아보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루시는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갖게 해준 아서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깨달았어요.

행복이 뭔지...

혼자 앉아서 내 집을 바라봤어요.

현관의 낡은 의자가 눈에 띄더군요.

괜히 서글퍼지더라고요.

볼품없이 낡아 빠진 의자가

내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동안 겉으로만 좋은 척,

괜찮은 척하면서 살았어요.

남들뿐 아니나 나 자신도 속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몇 주 지냈는데.

참 행복했어요.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왠지 행복이 곁에 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나 자신을 참 많이 속이고 살고 있다. 그저 좋은 척, 아닌 척 아주 멋진 인생을 사는 척을 하면서 남들에게 나의 겉모습만 보여준다. 나는 이렇게 행복해..라는 타이틀 아래서 말이다.

하지만 행복이 과연 그것일까?

어쩌면 늘 행복하자라고 하면서 엄한 곳에서 찾고 있지 않을까?


행복이라는 것은 나와 또 다른 이들, 어느 누구에서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먼저 우기기보다는 너를 조금 더 생각을 해주고. 너의 상황을 먼저 바라봐 주는 것... 거기에서 행복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전혀 남이었던 아서와 매디 그리고 루시가 소소한 행복의 마음을 알아가고. 그 마음으로 인해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찾는 그런 행복이 아닐까?

거창하게 판이 짜인 그런 행복보다는 누군가를 위해 생각을 해주고, 움직여 준다는 것.. 이것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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