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평전 - 시대의 양심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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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이 기대했던 것만큼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

'전기'체 특유의 장황하고 화려한 수사로 쓰여져서 이미지가 반감된다고 해야할까.

내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친구가,

평전은 글을 안 쓰는 사람의 경우 필요하지,

신영복 님은 당신의 글로 충분하다고 하는거라.

리영희 선생 같은 경우야, 말년에 편찮으셔서 글을 못 쓰셨으니 그나마 평전이 선방을 한 것 같다.

 

암튼, 전기 특유의 화려하고 장황한 문체가 기선을 제압하며 설레발을 치는데,

신영복을 죄다 읽은 나로서는 겉도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수수하고 잘 손질된 깔끔한 옷을 입는 스타일이신 분한테,

예우를 한답시고,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꿰매서 만든 트레이닝복(일명 츄리닝)을 입혀드린 꼴이라고나 할까?

 

글의 곳곳에서 인용하는 것이, 빼대가 신영복 님의 책들이고,

가끔 '신영복 함께 읽기'같은 책을 인용하기도 한다.

 

책의 처음부터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와 닮거나 다르다고 하는데,

인용을 하고자 한 의도는 충분히 짐작하겠지만,

신영복 님은 신영복 님일뿐, 그람시와의 비교 자체가 무색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서울대 졸업'인 그의 출신 고등학교는 '부산상고'로 노무현 전대통령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뭐, 특별한 까닭에서가 아니라,

한층 더 친근하고 푸근하게 와닿았다고나 할까?

 

책 전체에 감옥에서 썼던 안부편지가 주로,

나머지도 신영복 님의 저작들이 인용되는데,

이 안부편지들은 나중에 책으로 묶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신영복 산문'이라는 장르를 개척하였단다.

그런 신영복을 일컬어 소설가 조정래는 이렇게 말했단다.(86~87쪽)

그이의 글의 마력과 매력은 뜨겁고 강하고 아픈 이야기를 낮고 조용하고 부드럽게 하는 데 있다. 그러면서도 뜨거움을 자각케하고 정의로움을 일깨우며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건 단순히 글재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고 진솔한 사색의 열매여서일 것이다. 그이는 웅변과 글이 어떻게 다른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삶과 길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조정래, '세번째 봉우리', '신영복함께읽기'재인용)

 

정재승과의 대담집, 한구절인 이런 구절은 많은 걸 생각케한다.

제가 무기징역 받고 추운 독방에 앉아 있을때, 왜 자살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심각하게 고민했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거든요.

가장 큰 이유는 햇빛이었어요. 그때 있었던 방이 북서향인데, 하루 두 시간쯤 햇빛이 들어와요. 가장 햇빛이 클 때가 신문지 펼쳤을 때 크기 정도구요. 햇빛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내일 햇빛을 기다리느라 안 죽었어요.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비록 20년의 감옥 속 삶이었지만 결코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것과 비교한다면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ㆍㆍㆍㆍㆍㆍ

또 한가지 이유는 내가 자살하면 굉장히 슬퍼할 사람들이 있었어요. 부모, 형제, 친구 ㆍㆍㆍㆍㆍㆍ자기의 존재라는 것이 배타적 존재서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린왕자』를보면 리비아 사막에 비행사가 불시착하잖아요.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모래톱을 파서 무덤을 준비합니다. 그 대목에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죠. 너만 조난자인가. 너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은 조난자가 아인가.

  우리 삶이란 게, 존재성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저도 근대적 교육을 받았기에 사고방식도 근대적이었죠. 같은 무기수이면서도 다른 재소자를 일단 타자화했어요. 딱 거리를 두고 분석을 해요. 죄명, 형기, 출신, 학력 등 한마디로 대상화하는 거죠. 겉으로는 친절하지만요. 나중에 알았지만, 제가 5년간은 왕따 였어요. 특별하게 따돌리진 않지만,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지 못했던 시기였죠. 그 후 그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 정재승 대담,'손잡고 더불어',재인용, 92쪽)

아무래도 이 책은 취지는 좋았지만,

신영복 님의 그것들이 궁금하면 신영복 님의 책들, 그리고 '신영복 함께 읽기' 정도, 내지는 신영복 대담집 '손잡고 더불어'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신영복 선생님 2주기 추모 형식으로 만들어진거라면 모를까,

신영복 선생님의 다른 책들을 읽고 다른 형식으로 접한 사람들이라면,

선생님에 대한 의미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고,

김삼웅님에 대한 소회가 반감될 수는 있겠다.

 

신영복 님의 저작이야 다들 여러가지 방법으로 알 것이고,

신영복 님의 번역인 '사람아, 아 사람아'와,

신영복 님이 유세종 님과 같이 번역한 '루신전' 정도를 더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좋은 사람은 다시 봐도 정겹고, 좋은 책은 다시 볼때마다 곱씹을 구절이 생긴다.

오늘은 1977년 6월 8일자 아버지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라는 이 구절이다.

 10년. 저는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은 서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할 것입니다.(124쪽)

내가 이런 저런 욕심을 줄이고 미니멀라이프를 살겠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이렇게 쉽고 응축되었으면서도 단정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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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1-31 16:03   좋아요 0 | URL
일단 깜짝 놀란것은 양철나무꾼님은 신영복 선생님의 저서를 다 읽으셨군요.
저는 아직도 많이 남았어요. 신영복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말이 무색하군요.
이 평전 나온 것 보고 선생님 저서를 다 못 읽었으니 이것만이라도 챙겨 읽어야겠다 결심했었는데,
양철나무꾼님 페이퍼 읽고 나니, 선생님 저서를 찾아 읽는것이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글로 그대로 드러날테니까요,
단정한 글을 쓰고 싶다는 양철나무꾼님 결심이 마음에 딱 와닿네요.
저는 어떤 순간에도, 유머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이라,
단정하고 웃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많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8-02-02 09:37   좋아요 0 | URL
저는 신영복 님의 저서도 다 읽은 것 같고, 번역본도 제법 읽은 것 같아요.
‘강의‘ 같은 것은 한권짜리지만 만만치가 않아,
지금도 곁에 두고 심심할때마다 넘겨보곤 합니다.
당신의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당신의 큰 뜻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암튼 뿌듯해 하고 있습니다~^^

단정한 글은 부단히 노력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웃긴 글은 코드를 읽어야 하는지라,
아무래도 똑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웃긴 글 쓰는건 그래서 언감생심,
읽는 것은 좋아합니다.

제가 읽으러 열심히 드나들테니,
웃긴 글 마니 써주세요~^^

박균호 2018-01-31 18:55   좋아요 0 | URL
<검사내전>이란 책 재미납디다. 일독을 권해드려요. 항상 건강하시고...

양철나무꾼 2018-02-02 09:41   좋아요 0 | URL
추천 감사합니다.
지금 ‘나폴리 4부작‘에 목매고 있어서 새 책을 들일 여력은 없는데,
또 님을 향해선 마냥 팔랑귀란 말이지요~^^

님도 건강하시고, 건필하셔야 합니다~ㅅ!

책읽는나무 2018-01-31 18:58   좋아요 0 | URL
저도 신영복님의 책을 먼저 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나무꾼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생각했네요.
자꾸 사서 쟁여놓기만할뿐...이젠 진짜 읽어야겠다.라고.....^^
저도 단발머리님처럼, 단정하지만 자꾸만 웃긴 글을 좋아해서 그런지?
저도 결국엔 글이 웃기게 변하더라구요.
저도 차분하고 단정하게 글을 써보리라!마음은 먹었는데 쓰다 보면.....^^
그래도 전 단정한 글을 읽는 것은 무척 좋아합니다.
단정한 글 많이 써주세요^^

양철나무꾼 2018-02-02 09:59   좋아요 0 | URL
전 김삼웅 님도 좋고, 신영복 님도 좋아요.
제가 범접할 수 없어서 그렇지 단정한 글도 좋고, 웃긴 글도 좋고요.
게다가 책읽는 나무 님처럼 예쁜 글, 다정한 글도 좋고 말이죠.
근데 뭐니 뭐니해도,
이곳에서 알라딘 이웃들 마실 다니면서 글을 읽고 글을 쓰고 하는게 제일 좋아요~^^

순오기 2018-01-31 20:42   좋아요 0 | URL
최근 격주로 만나 신영복 선생님 글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함께하는데 그 깊이와 감동으로 먹먹해집니다~ 신영복 선생님 자체로 훌륭한 삶의 교본 같은 분이시죠!♥

양철나무꾼 2018-02-02 10:34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은 부지런하실 뿐만 아니라 열정적이신것 같아요.
님의 그런 삶을 배울 엄두는 못 내고 부러워만 할 뿐입니다.
신영복 님도 물론이지만,
전 순오기 님을 먼저 배워야 할텐데 말예요~--;

페크pek0501 2018-02-01 12:53   좋아요 0 | URL
신영복 님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팬이 되었고 그 다음에 선택한 책이 <담론>이었어요.
저에겐 글의 깊이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해 주셨던 작가였죠.
더 많이 글을 쓰셔야 했는데...

양철나무꾼 2018-02-02 10:42   좋아요 0 | URL
페크 님, 그러셨군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담론‘도 물론 좋았지만,
전 개인적으로 ‘강의‘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 아직도 ‘강의‘를 옆에 두고 이리저리 넘겨다보고 있는 걸 보면 말예요.
깊이는 말할 처지가 못 되고,
전 가끔 읽게 되는 님의 글을 보면 단정하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그걸 님께 배우고 싶어요~^^

북극곰 2018-02-02 09:40   좋아요 1 | URL
친구 분이 하셨다는 ˝평전은 글을 안 쓰는 사람의 경우 필요하지,신영복 님은 당신의 글로 충분하다˝ 이 말에 공감하게 되네요. ˝수수하고 잘 손질된 깔끔한 옷을 입는 스타일이신 분한테,예우를 한답시고,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꿰매서 만든 트레이닝복(일명 츄리닝)을 입혀드린 꼴˝이라는 게 어떤 건지도 완전 알것 같아요.

저도 집에 있는 신영복 선생님 책을 좀 펼쳐봐야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2-02 10:49   좋아요 0 | URL
님의 이 댓글을 보니, 제가 친구를 잘 두긴 좀 잘 둔것 같습니다~^^
좋은 친구는, 좋은 스승과 더불어 삶을 풍성하게 해주죠.
그런 의미에서 신영복 님도 좋은 스승일 수가 있겠고,
좋은 책도 좋은 스승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8-02-02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2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5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5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