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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집회에 참여했었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유령들
유모차 느리게 지나가는 지팡이 짚은 노인 자전거
를 타고 가는 젊은 학생들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 비
둘기들 최루탄 죽어서 해안으로 밀려온 밍크고래 백
일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날아서 대양을 건넌다는
새들 사기꾼의 얼굴 선의와 악의가 겹치는 회색의
지점에 비는 내리고 지중해애서 물이 빠져 죽은 사
람들이 이 독일의 도시를 걸어다녔지 저 성당 앞에
서 죽은 채 뻗어 있는 지빠귀 좀 봐. 그 옆에서는 이
봄의 매발톱꽃이 피어나는데 국회에서는 난민 때문
에 드는 돈은 누가 부담할거냐고 묻는다
그러니까 조금 더 나은 삶을 꿈꾸다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이 21세기의 일입니다
가축을 실어나르는 배로도 쓰이지 못하는 배를 타
고 지중해를 건너다가
울었던 울음은 에볼라의 열로 죽었습니다
왜 밍크고래는 해안으로 죽은 채 걸어왔을까요
사천여만 원에 낙찰되어 대한민국 국고에 귀속되
었을까요
밍크고래는 대한민국과는 아무 상관없이 살다가
죽었다는데요
빛을 집어먹는 무언가가 봄저녁에 꽃잎을 지게 하
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운다
그래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
우리가 함께 살았던 별은 그때 폭발해버렸다고
가끔 바람이 심어놓은 씨앗에서
우리 별에 살던 매발톱꽃이 피어나기도 하지
그러다 봄 어둠 속에서 별들이 지네
별들이 많다고 쓰다가 이생에 다시 만날 사람들의
숫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더러 만
나보지도 못했던 유령들도 있어서 누군가 영혼의 물
을 따라주자 나는 그걸 눈물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네
새벽이면 내게서 나간 새들은 울었고
새 없는 내 속에는 공허를 집어 먹는 괴물이 새들
의 날갯짓을 울음으로 들었다
서울역에서 열린다는 박사모 집회에 질 수 없노라고 결의를 다지느라, 자초한 일이었다.
조심을 한다고 했는데도,
붐비는 곳에서 발을 헛딛었는지, 뒷 사람에게 밀렸는지 허리를 삐끗했다.
집에서 쉬면 나으리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웬걸, 허리가 더 아픈거다.
그니가 환자들에게 얘기할때는,
원래 그런거다, 사흘째가 더 아픈거다, 해가며 영혼 없는 소리를 잘도 지껄였는데,
그니가 아파보니 쉽게 이러쿵 저러쿵 내뱉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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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가 근무하는 곳은 주택가 안으로 들어가 있는 곳이다 보니,
급성기보다는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동네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오셔서는 너나없이,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꽂아서 라도 침은 될 수 있는 대로 한번에 많이 ,
주사 한방, 약 한 봉지로 깔끔하게,
낫게 해달라고 떼를 쓰시는데,
그럴때 그니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더 아프지 않으면 낫는 거지." 정도였다.
이때 환자들의 반응도 제각각인데,
간혹 거짓말을 해서라도 환자에게 희망을 주어야지,
사실대로 얘기해서 맥 빠지게 하면 어쩌냐고 정색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관계만 상호적인게 아니라, 말도 상호적인 것이라서,
그니가 환자들에게 하는 "더 아프지 않으면 낫는 거지." 따위가 영혼 없는 말이듯,
환자들의 이런 대구를 들으면 맥이 빠지는건 그니도 마찬가지였다.
오전엔 그럭저럭 이를 물고 버텼는데,
오후로 접어들며 '악~!' 소리가 나게 아프자 약이 올랐다.
완전 대대적인 손해인데, 이럴 경우 어디에다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되는건지 딴지가 걸고 싶어졌다.
엄밀하게 따지면 국가 탓, 아니 길라임의 잘못이긴 한데,
이걸 서류로 만들어 사건 신청하고 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도 같고~--;
속상해서 씩씩거리고 툴툴대다가,
이러저리 들춰보던 '애노희락의 심리학'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애노희락의 심리학
김명근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10월
의사들은 사람의 생리, 병리에 대해서 일반인보다는 훨씬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서 말하자면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밝혀진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아직도 원인과 정확한 치료법을 모르는 병이 아는 병보다 훨씬 더 많다. 그저 이렇게 하면 호전되는 경향이 높다는 정도를 알고 있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남들은 다 좋아지는데, 내 가족만 안 좋아지면 의료인의 실수나 업무 태만이라고 단정하고 가서 따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따져야 소용이 없다. 의료인도 왜 그 사람만 치료가 안 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과학이니 의학이니 하는 것들이 대단히 발달한 것처럼 떠들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반인들이 그나마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환자가 의사의 주장을 따라와주고, 대중이 과학자의 견해를 따라와줄 때,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그런데 확실하면 따라가고 아니면 말겠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상대의 불안감을 줄여주려고 거의 확실한 것처럼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또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면 솔직하다고 평가해주지 않고 실력이 없다고 평가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자본주의의 최대 병폐의 하나인 지나친 광고가 모든 사람을 과장에 익숙하게 만들어 놓았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면, 듣는 사람은 그 내용보다도 한두 수쯤 낮춰서 평가한다. 그런 경향에 맞춰주려다 보니 모든 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모르는 것이 없는 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처럼 가장을 하게 된다.
세번째는 추가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 받으려면 거의 다 알고 있고, 이것만 해결되면 다 될 것처럼 말해야 하니까 또 그런 부분이 부추겨진다. 자본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세한 과학적 내용을 설명하고 가치를 이해시키는 것은 어렵다. 게다가 요즘은 그 투자자본이 대중을 상대로 주식 공모를 해서 만든 자금인 경우도 많다. 인간 유전자 지도만 만들어지면 인간의 모든 질병이 순식간에 정복될 것처럼 과장이 되었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임상에 바로 정용할 수 있는 기술로 바꾸는 데는 아직도 수십 년을 기다려야 될 것이다. 게놈 프로젝트가 엄청난 수준의 돈 먹는 하마였고 수십 년 후에나 이윤이 나온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고서는 필요한 자금을 모을 방법이 없었기에 과장이 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논리에 대한 환상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다. 논리란 중요한 가치이고 중요한 능력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신의 영역을 넘볼 만한 것은 아니다. (148~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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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욜밤, '그것이 알고싶다'를 졸면서 봤다.
흥미로웠다면 내려앉는 눈꺼풀을 빨래집게로 집어올리면서 라도 봤을텐데,
저널리즘 프로그램을 표방하는데 명확하게 집어내지 못하고 변죽을 울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원한게 아니라 껄적지근하다고 해야 할까?
'의료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차움병원 원장을 향하여 분노가 치밀었는데,
시초는 그가 아니고, 분노의 표출구 또한 그 곳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추스리느라 애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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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의 시들은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요번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의 시인의 말은 이렇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다음 역을 향하여
2016년 가을 허수경
시집의 제목 중 '누구도'라는 단어를 두고 생각이 많았다.
'아무도'라는 단어로 치환하여도 말은 되지만,
그리되면 부정의 색깔이 짙은 것이 희망 따윈 없는 것이 된다.
희망 한줌을 위하여 '누구도'라는 긍정의 단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가 희망과 긍정의 다른 이름임을 알겠다.
허리가 아파서, 가 결코 아니라 왠지 센치해져서 눈물이 한방울 나오려 하는데,
허수경의 시 한구절을 떠올리며,
더러 만나보지도 못했던 유령들도 보지도 못했던 유령들도 있어서 누군가 영혼의 물
을 따라주자 나는 그걸 눈물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네
라고 읊조리는데,
퀭한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따라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