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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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정이라고 하면 별볼일 없는 듯 여겨지다가도,

포장이 멋지다고 하면 그럴 듯 하다.

 

이 시집을 읽는 내내 한숨이 새어나왔는데,

그녀는 '내 시는 당분간 허공을 맴돌 것이다'라고 했는데,

시 속의 허공이 구천은 아닐진대,

치열하고 독기어린 어조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예전의 그녀를 돌이킬 수만 있다면,

실종신고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들면 사람이 더 간소하고 단출해지고 소박해지려는 건 알겠는데,

그리하여,

하고 싶은 일도,

하고싶은 말도,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

이쯤되면 남은게 고갱이가 아니라 쭉정이다.

 

어쩌면 산다는건 조금씩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걸어온 삶이라는 여정에 미루어보면,

그녀에게서 고갱이를 빼앗은 것은 동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축복같은 일이고 잠자코 감사해야할 따름이지만,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시인은 시로...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다.

이제 환갑을 막 지난 시인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데 서툴다.

그래서 '보고싶다'를 말로 하긴 남우세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  말이 비린 이유는 '날 것'이어서가 아니라,

근원이 바다여서가 아닐까?

 

그러고보니 나도 매번 '보고싶다'고 발음하려 들때면,

촉촉하고 물기를 머금은 것이 물비린내가 날 둣하니 말이다.

 

우르르 몰려가는 건 구름만이 아니고,

보고싶은 마음도 구름을 따라 우르르 몰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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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8-06 11:12   좋아요 0 | URL
다들 기대만 못하시다는 말씀이...

양철나무꾼 2016-08-08 13:54   좋아요 0 | URL
무관심보단 악평이 낫지 싶은데...
그래도 이런 평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결코 유쾌하진 않습니다~--;

페크pek0501 2016-08-06 11:24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저를 보고 말한 첫 한마디가 ˝보고 싶었어.˝였어요.
그 말 들으니 더 반갑더군요. ˝나도.˝라고 대답했죠.
흔한 말 같으나 흔하게 사용하지 않죠.
우리는 이런 말을 너무 아끼는 게 아닐까요?

양철나무꾼 2016-08-08 13:58   좋아요 1 | URL
전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랑해`라든지 `보고싶어`라든지 따위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에 아주 인색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사랑해`라든지 `보고싶어`라고 하면 `나도`내지는 ;동감이야`이러고 말았는데,
한살 한살 나이가 먹으니 빈말이어도 자주 하고 싶은말, 자주 듣고 싶은 말이 되어버렸다는~--;

살아갈 날이 결코 얼마 남지 않았다 싶으니,
아끼는건 차치하고,
인색한 건 좀 그렇더라구요~^^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는다는 말도 있으니,
이젠 더 열심히 사용해봐야겠어요~^^

pek님, 귀한 댓글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clavis 2016-08-06 13:47   좋아요 1 | URL
실종신고..합시다.

양철나무꾼 2016-08-08 14:00   좋아요 1 | URL
실종신고, 어디다 내야 하나요?
근원부터 제거해야할텐데,
요즘 우리나라의 실정을 봐선 멀고도 험난하단 생각이 드는군요~--;

cyrus 2016-08-06 20:40   좋아요 1 | URL
이번에 나온 최승자 시인의 시집이 유언, 묘비명을 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살아계신 분에게 해선 안 되는 생각이지만요.

양철나무꾼 2016-08-08 14:06   좋아요 1 | URL
옛날엔 그냥 정신질환 정도로 분류했었는데,
요즘은 스키조프레니아라고 명확하게 병명을 언급하더군요.

거슬러 오르고 올라가면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회한이라고 하는데,
저라면 그니를 향하여,
모래성을 쌓으면서 계속 무너지는 모래를 향하여 넋놓고 앉아있는 그니를 향하여,
˝당신은 열심히 하지 않았어, 그리고 모래만 나쁘대~!˝라고 툴툴거리고 싶어지더군요~--;

암튼 같은 시집을 읽어도 님처럼 우유를 만드는 분도, 저처럼 독을 만드는 사람도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님의 리뷰ㅡ 아주 멋졌어요~^^

[그장소] 2016-08-16 18:59   좋아요 1 | URL
손글씨는 양철나무꾼님이 더 좋은데요!^^
이 시집을 아직여서 뭐랄순 없는데 그래서 말안듣는 아이처럼 봐야지..싶어지네요~^^
저도 독인지 우유인지를 맛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