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책 한권이 좋으면 그 작가의 전작주의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작가가 소개하는 책은 일단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이고 보았다.
그러다보니 불후의 명작이나 고전 반열에 오른 책들은 출판사나 역자만을 달리하여 중복되는 것도 생겨났고,
급기야 고미숙의 '윤선도평전'같은 경우는 중복 구입하고 친구가 보내주고 하여, 세권이나 됐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책들을 모아 나란히 꽂던 우리 아들('어부사시사'라는 시조 제목만을 기억하는 이과 출신)로 하여금
4부가 어디있냐고 묻는 황당 시츄에이션을 연출하게 만든 모자란 엄마가 되기도 했었다.
책을 머리 속에 집어넣었을 때 지식이고 감동을 마음에 담았을때 양식이지,
그냥 쌓아놓았을때는 종이조각이고 쓰레기더미일 뿐이라는걸 알면서도,
책을 읽는 속도가 예전만 못하다.
책을 읽어내는 속도가 책을 들이는 속도에 한참을 못 미치는걸 깨달은 순간,
아니 그전부터 삶을 홀쭉하게 만들기 위하여 내린 처방은 '세 권 버리고 한 권 들이기'인데,
이쯤 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읽을만한 책들이 그리 많지않다.
예전 전작주의자 시절 읽었던 '한정원의 '지식인의 서재'가 좋아서 구입해 두었던 '명사들의 문장강화'를 읽었다.
책을 읽는 속도가 예전만 못한 것은,
장르 불문하고 수중에 넣으려고 했었고 막무가내로 읽으려고 했었던 예전과는 달리,
책과 책 사이의 여운을 즐기기 때문인 것 같다.
책은 그것이 허기든 허영이든 무엇인가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사명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채 시동이 걸리기도 전에 집어던져서는 가슴이 뻐근해져오는 충만감은 느껴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내가 명사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문장 강화의 절실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은 어떤 문장 강화 과정을 거쳤고, 어떤 책읽기를 택했는지를 엿보고 싶었나 보다.
한 친구는 500쪽 이상의 두꺼운 책이 내용이 부실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하던데,
만약 두꺼운데도 불구하고 '별로'이면 베어넘겨진 나무에 대한 미안함까지 끌어 안아야 하니 그건 위험천만이다.
명사들의 문장강화
한정원 지음 / 나무의철학 /
2014년 11월
"누구나 다 명품을 갖고 싶어 한다. 평생 죽을 때까지 누구라도 명품을 다 갖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명품이 되면 내가 가진 것이 다 명품이 된다."(141쪽)
소설가 김홍신이 한말이다.
이런 마인드로 쓰여진 글이라면 명품일 수밖에 없고, 제대로 읽기만한다면 나도 명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ㅋ~.
그러면서,
글도 사람과 같이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뜻을 머금고 풍부해지며 깊어진다. 글쓴이의 관심사에 따라, 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글의 향기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글을 쓰는 사람과 그의 글이 세월과 함께 여물어가는 셈이다.(173쪽)
라고 하는데, 그래서인가 나도 이제 나이 지긋한 글들이 좋고,
나보다 젊은 사람이 썼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의 세월은 견디어 검증은 거쳤으면 좋겠다.
책 속의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 위지'를 인용하여 "독서백편 의자통(讀書百遍義自通)"이라고 하여,
'글을 100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통한다', '어려운 글도 많이 읽으면 그 뜻을 깨우치게 된다'고 하였으며,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보를 인용하여 "독서파만권 하필여유신 (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 '책 1만 권을 읽으면, 신들린 듯이 글을 쓸 수 있다'고 하였다.
글을 100번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그리하여 문리가 트이지 않고 배길 수 없겠지만,
두보 시대 책 만드는 기준으로 책을 만권씩이나 구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두보 시대 독서법으로 만권을 다 읽어낸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그 시대에 책 만권을 읽어낸 사람이라면,
두보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신들린 듯 글만 쓸 수 있는게 아니라,
(이미 신의 경지에 이르러) 무엇이든지 쉽게 뚝딱 아닐까?
암튼,
그동안 들인 책들을 읽느라고,
한동안 알라딘 서점에 책 주문을 미뤘었다.
그러면서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그런 책들이 없다고 자위를 하곤 했었는데,
그런 나의 의지를 한꺼번에 꺾는 책이 나와주셨다.
게다가 그 책은 서재이웃 玄님의 책이다.
(충동)구매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논어쓰기
임종수 엮음 / 문사철 /
201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