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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
강레오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평점 :
사실 강레오가 누군지 잘 몰랐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박선주랑 결혼한 남자가 강레오라는 요리사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쿡방이 대세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요즘 인기있는 요리사들의 면면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이곳에서도 남동생이 요리사라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남동생이 요리사여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이런 요리사들이 나와서 방송하는 걸 보다 보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면이 보이는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뒷모습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난 남동생을 내 동생으로서는 인정하지 않지만,(맨날 맞먹으려 들어서, ㅋ~.)
요리에 대한 신념이랄까, 음식과 재료를 대하는 태도에는 존경을 표한다.
식약동원(食藥同原)이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남동생이 하는 음식을 먹게 되면,
없던 기운도 솟아나고,
아프던 곳도 말끔하게 나아지는 걸 경험하게 된다.
사람을 낫게 치유하는 사람을 요리사가 아닌 의사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면,
남동생은 요리사가 아니라 의사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제격일 것 같다.
언젠가 '진짜사나이'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샘킴이라는 쉐프가 나왔다가,
훈련 도중의 어깨 부상으로 퇴교조치를 받은 것을 스치듯 봤었다.
어디선가는 훈련 중의 부상으로 목디스크가 됐다고 보도를 했던데,
훈련 중의 부상이 원인이라는건,
요리사, 셰프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도의 노동자라는 걸 몰랐을때나 나올 수 있는 진단명이지 싶다.
요즘 쿡방이 대세이고, 그래서 인기 쉐프가 등장하고 하지만,
그걸 좋게 보는 사람도 있고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어렸을때부터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려던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자신의 영역에서 장인이나 달인 소리를 듣게 되기까지,
겉으로 보이는 외모나 나이와는 별개로,
나름 수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다.
그걸 강레오는 '1만 시간의 법칙'으론 부족하다고 얘기한다.
1만 시간이 되기위해서는 하루 3시간씩 잡아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는 20대 때 하루 3시간이 아니라 18시간씩 주방에서 일을 했고,
일주일에 96시간 이상 일을 했으니, 2년도 안걸린 셈이란다.
그러니 '1만 시간을 보냈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때 경험한 다양한 조리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식재료에 대한 세세한 배려와 이해다. 창조적인 분야가 대부분 그렇듯 요리에서도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대물림하는 기준과 기본이라는 게 있다. 코프만 셰프로부터 배운 기본이란 재료에 대한 기본을 뜻한다.
어떤 요리든 궁극의 맛은 궁극의 재료에서 나온다.ㆍㆍㆍㆍㆍㆍ
재료를 잘 안다는 건 음식 맛을 최적의 상태로 끌어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ㆍㆍㆍㆍㆍㆍ달걀은 어떻게 포장해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고 버섯은 어떻게 보관해야 땅에서 갓 따낸 상태에 가까운 맛을 낼 수 있는지 등등. 요리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식재료들을 각각의 특성에 맞게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조리해야 궁극의 맛을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흐트러지지 않는 기본을 갖추는 일이다.기교나 개성은 그 다음에 스스로 쌓으면 된다.(53~54쪽)
가장 멋졌던 것은,
요리사가 되려면 여러 가지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감각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겠지만,
타고난 것보다는 노력을 통해 발전시킬 수시킬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고 얘기하는 부분이었다.
요리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란 한마디로 그냥 '게으른'사람이란다.
게으름과 무책임함이야말로 요리사의 가장 큰 적이라고 얘기한다.
비단 요리만 그럴까?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가장 놀라웠달까, 생경했던건, 둘다 독신주의자였다는 거다.
그리고 본인은 본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각자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상대방의 일과 생활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으며,
시간이 맞을 때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단다.
생활비도 반씩 나눠 내고 적금도 따로 들고 집 구할때도 절반씩 부담한단다.
그러면서, 박선주를,
훌륭한 뮤지션이자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며 음악을 할때 가장 멋있는 사람이라고 애기하고 있다.
매사에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이야기할 줄 아는 능력이 존경스럽다. ㆍㆍㆍㆍㆍㆍ(162쪽)
고 얘기한다.
상대방의 일과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
내 개인적인 생각은 같지 않지만,
부부의 개인 사생활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고~--;
암튼,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언급한 '진지, 드셨습니까'와 관련,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음식을 잘 먹는다는 것은 삶의 가치에 관한 문제이고,
그런 의미에서 비싸게 과하게 많이 차려먹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반찬 하나를 두고 먹더라도, 여럿이 아니라 혼자 먹더라도,
먹는 행위에 어떤 가치를 두고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라고 한다.(18쪽)
부모가 뭘 먹느냐에 따라 아이가 먹는 음식의 수준도 달라진다면서,
진짓상을 차려 먹을 줄 아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도 끼니가 아닌 진지를 들 테고,
끼니만 때우고 사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도 끼니를 때울 줄밖에 모를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먹은 게 진지인지 식사인지 끼니인지를 알아야 음식의 가치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21쪽)고 한다.
그런데, 부부가 상대의 일과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과,
부부라는 것이 오랜 세월 따로 살던 사람이 만나 같이 사는 것이니 만큼,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더라도,
자기가 좀 힘들더라도, 배려하는 것은 상반된 얘기인 것 같다.
부모가 뭘 먹느냐에 따라 아이가 먹는 음식의 수준도 달라진다는 얘기는,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니까,
그렇게 어울려 살면서 어른을 공경하고 아이는 존중하게 되고,
나이와 가족내의 직분에 맞는 역할을 터득하고,
그리하여 역할에 맞는 행동까지를 아우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각자 다른 일을 하더라도,
가족이, 부부가... 상대방의 일과 생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얘기를 나누고,
같이 고민하고 염려하고 배려하고 격려하고 응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것들은 타인의 일이 되고,
상대방의 일과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무미건조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음식의 가치를 구분해 낼 수 있다는 말은 내게는 인간이 가지는 가치를 구분해 낼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리고 인간의 자리에 자연을 바꿔 적용시켜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좋은 식재료를 재배하는 것과 좋은 요리를 하는 것이 별개의 일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고,
유기농 농장을 세워 농사꾼이 될 준비를 하는 건 특별한 계획이라고 할 것도 없다면서,
남들이 불러주는 셰프라는 타이틀과 상관없이 평생 요리하는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더 업그레이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267쪽)고 하면서 끝을 맺는다.
한기지 아쉬은 점이 있다면,
좋은 식재료에서 자연으로 의미를 확장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그가,
인간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을 좋은 식재료를 요리하는 주체로 따로 떼어 얘기하는 것이다.
유기농 농장과 로컬 푸드의 상관관계 이해가 가지만,
외국 품종을 가져와 널리 보급하는것,
예를 들면 다품종 식재료를 유기농으로, 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대규모가 되는 순간 기업적인게 될텐데,
최첨단 방식으로 직접 재배하여 브랜드화하는 그것들이,
질 좋으면서 동시에 환경을 생각하는 유기농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벤처농업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는 해도,
요원해 보이는데,
부디...나 혼자만의 기우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