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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너무 좋아서 오랜만에 책에 띠지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읽었다.
그 유명한 '테스'를 쓴 고전작가 '토마스 하디'가 쓴 것이라는데 제목부터 낯설었다.
책표지에 이 동네 유명인사이신 로쟈 이현우 님의 해제라고 광고하고 있었으며,
'국내 정식 완역본'이라는 노란 색 돌출 글씨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러브 스토리' 라는 <가디언>의 문구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책이 나오자 마자 집어들었다.
처음 해제를 읽을때만 해도 '재밌겠다, 재밌겠다~'를 연발 했었는데,
본문으로 접어드니, 웬걸~--;
문장이 시적이고 아름답기는 한데,
배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인지,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종 잡을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서 공부하면서 읽느라 한참 걸렸다.
보통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이나 찾아보고 싶은게 생기고,
그리하여 다른 책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좋은 책읽기라는 느낌이 들고 뿌듯한데,
이 책은 읽으면서 참고서나 백과사전을 찾아 공부해 가며 읽어야 해서,
책 읽는데 걸리는 시간도 늘어지고 그래서 부담스러웠다.
물론 러브스토리로 접근해서 읽는다면 얼마든지 가볍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읽어서는 소설의 매력이랄 수 있는 개연성이나 핍진성을 정당화하기 힘든고로,
작가에 감정이입을 하려다 보니,
오래된 세월과 언어와 문화와 역사가 만들어 내는 차이를 극복하려는 공부가 필요하였다.
이 과정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원래 까다롭고 뾰족한 친구라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만들어서 스트레스 받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거였다.
"작가의 느낌을 살려내기가 참 어려운 문장이다.
한문장을 아주 길게 쓰는 작가인지라...문장을 자를 수도 없고,
역자의 고뇌가 눈에 보인다.
한글처리가 거의 불가능한 표현들을 쓰는 작가인데,
그 고뇌를 모르는 너에게 무시받기 딱이다.
번역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차이이며,
언어와 문화, 역사의 벽이기 때문에 넘기가 불가능하다."
'고뇌를 모른다'는 소리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소리처럼 들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하였는데, 본문을 몇장 읽지도 않아,
남자 주인공인 가브리엘 오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급기야 속상했던 마음이 북받치고 말았다.
wear를 무조건 '옷을 입다'로 해석하는 부분과 관련,
입던 옷처럼 편안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으로 보는게 낫지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더 타당한걸 놔두고 구태여 저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
고 하자,
"역자들도 머리 맞대고 고민하다가, 정답을 못내고 저리 결론을 지었을 거다."
라고 하길래,
공손하게 의견을 구하려던 것도 까먹고,
"오크가 옷으로 자신의 결함이나 감출 그런 캐릭터더냐?
한 사람이 끝까지 번역을 했으면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도 파악이 안됐겠나?"
해가며 툴툴거리고 말았다.
그제서야 친구는 마지 못해,
좀 까다롭다 싶으면 생략한 군데군데 이빠진 번역이라고 하면서도,
'번역하기는 어려워도 번역해 놓은 거 평하기는 쉽다'면서 말을 아꼈다.
글처럼 그 사람의 자아를 잘 반영하는 것도 없지 싶다.
작가의 그것이 해석되고 번역되는 과정에서,
시대, 문화, 역사, 언어의 특성 등 그 작품을 그 작품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만 틀어져도 의미가 바뀌어 버릴 수 있다.
예전에 강신주가,
조삼모사 고사는 원숭이가 원하는 대로 저공이 원숭이를 대접해주는 긍정적인 얘기인데,
우리가 잔꾀나 술수에 관한 고사성어로 잘못 알고 있다고 했었던 게 떠오른다.
새를 너무 아낀 나머지, 새에게 자기처럼 사람 대접을 해서 죽여버리는 노나라 임금처럼 말이다.
원서를 대조 하는 것은 이렇게 친구가 질색팔색하는 문제이니 차치하고라도,
영국의 역사와 성경에 대해서 좀 알아야 책이 작가의 의도에 가깝게 읽힐 것 같다.
그리고 밧세바 에버딘과 가브리엘 오크라는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바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책을 읽다보면 밧세바와 가브리엘은 성경에 나오는 이들 마냥 이름대로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은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에 따라 종교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피의 숙청이라 할 정도로 대대적이고 가혹한 처형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역사와 성공회, 가톨릭, 청교도 따위의 상관 관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볼드우드를 청교도 적인 특성에 비유하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고,
ㆍㆍㆍㆍㆍㆍ우선 그의 목소리는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낮고 조용한 억양이었다. 강렬하고 깊은 의미가 겉으로는 간단하게 표현되었다. 침묵은 때로 육신에서 분리된 채 떠도는 영혼으로서 스스로를 보여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그런 면에서 침묵은 말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다. 마찬가지로 말을 적게 하는 것이 많이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전달할 때가 자주 잇다. 볼드우드가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을 말했다.(209쪽)
말없이 비난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말보다 침묵이 훨씬 호과적인 수단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같다. 이들은 혀로는 할 수 없는 강력한 말을 눈으로 한다. 또한 창백한 입술에서는 한쪽 귀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이 나오는 법이다. 두 경우 모두 말이라는 통로를 비껴간 위엄에서 멀어졌다는 기분에 느끼는 고통 때문이리라. (331쪽)
트로이를 영국과 프랑스적인 성격을 반반씩 가지고 있는 인물로 묘사하는 것, 등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밧세바는 지금 외롭고 불행했다. 사실 결혼 전만큼 외롭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외로움과 현재의 외로움을 비교한다면 마치 동굴 속의 고독과 산 속의 고독을 비교하는 것 같았다.(475쪽)
"이런! 나를 모욕하지 말아요, 부인. 이 여인이 비록 죽기는 했으나 나한테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당신보다 더 소중하다고. 만약 악마가 당신의 얼굴과 그 저주스런 교태로 나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와 결혼해야 했을 거요. 나는 당신이 내 앞길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결코 없어. 그 일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물어보시오.ㆍㆍㆍㆍㆍㆍ"
"결혼식을 올렸다고 해서 진짜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니지. 나는 도덕적으로도 당신의 남편이 아닌 거야."(489쪽)
다음은, 스무 살의 밧세바를 처음 보고, 스물 여덟의 가브리엘이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이다.
"반반한 처녀네요"
"그렇지만 완벽하진 않소."오크가 대답했다.
ㆍㆍㆍㆍㆍㆍ
"허영심이죠."(24쪽)
나의 스무 살 무렵을 돌이켜볼때,
스무 살이면 충분히 완벽하지 않고,
vanity, 허영심이나 자만심이라 불리우는 것들을 가지고 있어도 좋을 무모한 나이였지 싶은데,
너무 야박한게 아닌가 싶다.
반면 가브리엘 오크를 향하여선,
ㆍㆍㆍㆍㆍㆍ지성과 감성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남자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젊은 혈기 탓에 지성과 감성이 뒤죽박중 섞여 충동적인 성격이었으나 그 시기는 지났고, 그렇다고 아내와 가족 때문에 또 다시 그것들이 뒤섞여 편협한 성격을 형성할 상태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스물여덟 살의 총각이었다. (19~20쪽)
이렇게 너그럽게 얘기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 소설을 쓸 무렵 30대 초반이었던 토마스 하디가 가브리엘 오크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 탓이 아닌가 싶지만,
이름처럼 천사도 아니고 성인군자도 아닌, 그냥 나이 서른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라고 생각하면 좀 답답하다.
(여기서 '좀'은 '아주'와 바꿔 쓸 수 있겠다.)
밧세바의 성격묘사도 일관되지 않다.
치마를 입은채로 말을 탈 정도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가 하면,
농장을 직접 운영할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하면,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여자치고는 참신하게도 충분히 생각한 다음에야 할 말을 입밖으로 내는 사람이었다. 생각을 마친 뒤에야 자기 의견을 전달하기 위한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45쪽)
한창 때라 생기 넘치는 여자로서는 특이하게도 그녀는 항상 상대방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기 말을 시작했다. 가격에 대해 논쟁할 때면 판매하는 사람이 대개 그러하듯이 자기가 제사한 가격을 굳게 고수했으며, 여성의 필연적인 속성대로 끊임없이 상대방의 가격을 깎았다. 하지만 그녀의 단호함은 완고함과는 달라서 융통성을 동반했으며, 가격흥정을 하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데가 있어 인색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150쪽)
상대방이 말이 마칠때까지 귀를 기울이고, 충분히 생각한 다음 입밖으로 내어 문장을 만든다고 했었는데,
발렌타인데이라고 하여, 섣불리 카드를 보내는 설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사람은 맥아 제조소 주인이었다.
태어난 해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어른으로서의 무게중심을 잃지 않는다.
"저는 자연스럽게 묻은 먼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뭐가 묻었는지 알면 상관없어요." 잔을 받은 그는 깊숙이 담긴 내용물을 3센티미터 넘게 마셨고 적당한 때에 다음 사람에게 잔을 넘겼다. "그렇지 않아도 할 일 많은 세상인데 제 이웃에게 설거지하는 수고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크는 술을 크게 한 잔 들이켜고 난 다음 가빠진 숨을 고르고는 촉촉해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리분별이 있는 사람이로군." 제이콥이 말했다.(96쪽)
"굽은 사람이 오래 버티는 법이다."(109쪽)
경지에 이르면, 지극함에 이르면, 오히려 간결해진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다음 구절은 언젠가 내 친구를 빗대어 얘기했던 '낭중지추'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미 인정받은 장점을 스스로 강조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을 우스꽝스러워 보이도록 만들기에 충분한가 보다.
스스로의 존재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 보였다. 꽤나 짓궂은 짐작이었지만 바라보는 자가 그 짐작을 대체로 사실로 느꼈기 때문에 모욕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천재의 어조에 이례적으로 실리는 강한 음색과 같이 평범한 사람을 우스꽝스러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이미 인정받은 장점을 스스로 강조하는 것이다.(39쪽)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지어낸 것도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부분은 나이 서른 무렵에 쓰여졌다고는 믿기 어려운 '깊이'이다.
그녀의 분명한 결점은 반박하는 일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반면 뭔가를 좋아하는 일에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물체는 흡수하는 빛이 아니라 거부하는 빛 때문에 색을 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반감과 적대감은 전문적으로 고찰되는 반면 선의는 결코 그 사람의 특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246쪽)
vanity, 허영심 또는 자만심은 밧세바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그런 밧세바에게 자만심을 버리는 것, 즉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가장 아프게 찌르는 고통일텐데,
상대방 앞에서 이렇게 무모할 정도로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을 향하여 무장해제를 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겠다.
ㆍㆍㆍㆍㆍㆍ"그리고 좋건 나쁘건 내가 그러기로 한 진정한 이유는, 아직 누구한테도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약속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가브리엘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요." 밧세바가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자만심과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이렇게 말한다는 건 하느님만이 아시겠지요. 그 때문에 마음이 슬프고 괴로워요. 나는 그 사람의 미래를 내 손안에 쥐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 사람의 앞날은 전적으로 내가 그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아, 가브리엘. 내가 지고 있는 책임만 생각하면 몸이 떨려요.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573쪽)
가련한 밧세바는 이제 가장 아프게 찌르는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632쪽)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겠고,
난 이 부분을 읽으며 펑펑 눈물을 쏟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지만,
이 부분의 해석도 좀 어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성경이나 불경 따위를 인용할 때는 성경의 본문을 그대로 옮겨주는게 관례인걸로 알고 있는데,
원서를 나름 해석하다 보니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문장이 되어 탄생했다.
ㆍㆍㆍㆍㆍㆍ두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겪은 친구 사이에 간지러운 말이나 따사러운 말은 새삼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그들의 애정은 우연히 첫 만남을 가진 이후 거친 성격을 아는 것부터 출발하여 엄하고 단조로운 현실 틈바구니에서 피어나 자란 것이기에, 아주 나중에야 겨우 알게 되는 견고한 애정이었다. 공동의 것을 함께 추구할 때 발생하는 이 우의(친구애)가 남녀 간의 사랑에 더해지는 일은 드물다. 남자와 여자는 일반적으로 노동이 아닌 쾌락을 통해 서로 엮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한 환경이 마련됨으로써 관계가 진전될 때, 이렇게 여러 가지가 뒤섞인 감정은 죽음만큼 강한 유일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그 뜨거운 사랑은 아무리 많은 양의 물로도 끌 수 없고, 홍수로도 삼킬 수 없다(구약성서 아가 8장 7절 인용- 옮긴이). 이것과 비교하면 흔히 애정이라 불리는 정열은 사라지는 수증기만큼 덧없는 것이다.(639쪽)
이 책에는, 음식과 술은 기분을 북돋아준다고 나온다.
적당한 음식과 적당한 술이겠지만 말이다.
적당한 음식과 술은 힘없는 사람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줘서,
육체의 복음에 비유되고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복음은 뭘까?
종교인이라면 신의 사랑을,
연인간이라면 남녀간의 사랑을 얘기할테지만,
난 그보다는, 책과 그림과 음악을 영혼의 복음이라고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책과 그림과 음악이 내게 그런 것은 아니고,
나에게 와서, 내 영혼의 복음이 되어준 것들이여, 메리 베리 땡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