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간다 창비시선 366
이영광 지음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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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이영광의 시는 힘들었다.

요번에도 여름에 쓰여진 시를 가을이 지나 겨울의 초입에서 읽어냈으니 말이다.

 

이영광이 힘든 것은 시가 어려워서이거나, 읽기 어렵게 쓰여져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인데,

읽다보면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게,

그게 제대로여서...또 다른 날 보고 있는 듯 느껴져서이다.

죽음, 어둠, 슬픔 따위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것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시인의 이러한 행태를 '자발적 유폐'라고 명명한다.

때로 나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고 싶어지는데, 그걸 내 '스스로 따시킨다'하여 '스.따.'라고 부른다.

 

이건 내가 감히 시인이랑 영혼의 색깔이나 냄새가 비슷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벙어리 심정은 벙어리가 안다'고,

그의 심정을 알겠어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었다는 말이다.

 

이 시집은 앞에서부터도 읽고, 중간에 아무곳이나 펼쳐서 거기서부터도 읽고, 뒤에서부터 읽기도 했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문구는 책 맨 뒷장 '시인의 말'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사람은 정말, 질 수 있는 걸까.

 

이 문장을 시인이 어떤 뜻으로 썼는지 모르겠지만, 내 맘대로 중의법, 반어법으로 읽었다.

 

죽음, 어둠, 슬픔 따위가 주된 정서였던 시인은 아마 '꽃이 피고 지다'의 '지다'와 연관하여 '질 수 있는 걸까.'로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

피고 지는 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또 피어나는 걸로 윤회를 떠올릴 수 있고,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나 절망 속에 피는 꽃처럼,

희망을 함께 얘기해도 좋은게 아닐까?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널을 뛰어,

'등에 와 얹히던 손길'에 무게를 실어 보았고,

'봇짐을 등에 지다'의 연장선 상에서 '등에 짊어지다'로 생각하고 읽어보았다.

 

하느님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는 말이 생각 났고,

산은 등에 진 등짐의 무게로 오른다던 누군가의 말도 생각이 났다.

이쯤 되고 보면,

사람은 정말, 등에 거뜬히 질 수 있지 않을까?

 

'저녁은 모든 희망을'이란 시는 제 11회 미당 문학상' 을 받은 작품이다.

이 시집에서 또 만나게 되는데,

위의 두 '지다'와 비슷하면서 다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와의 해후가 반갑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 이 영 광 -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
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
그는 병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
가만히 멈춰 있기죠
그는 병들었다, 하지만
나는 왜 병이 좋은가
왜 나는 내 품 안에 안겨 있나
그는 버르적댄다
습관적으로 입을 벌린다
침이 흐른다
혁명이 필요하다 이 스물네 평에
냉혹하고 파격적인 무갈등의 하루가,
어떤 기적이 필요하다
물론 나에겐 죄가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벌 받고 있지 않은가, 그는
묻는다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
변혁에 대한 갈망으로 불탄다
새날이 와야 한다
나는 모든 자폭을 옹호한다
나는 재앙이 필요하다
나는 천재지변을 기다린다
나는 내가 필요하다
짧은 아침이 지나가고,
긴 오후가 기울고
죽일 듯이 저녁이 온다
빛을 다 썼는데도 빛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안 된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치료해준다
그는 힘없이 낫는다
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는 무장봉기를 꿈꾸지 않는다
대홍수가 나지 않아도
메뚜기 떼가 새까맣게 하늘을
덮지 않아도 좋다
나는 안락하게 죽었다
나는 내가 좋다
그는 돼지머리처럼 흐뭇하게 웃는다
소주와 꿈 없는 잠
소주와 꿈 없는 잠

물론 이 시에서는 '죄를 짓다'대신 '죄가 있다'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뭐, 동어 반복을 피하기 위한 것쯤으로 생각하면 상관없다.
(사실, 해석이야 어떻든 간에, 내 멋대로, 내 마음대로이지...어떤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니 상관없다, ㅋ~.)

전에도 얘기했지만, 죄를 지어 받는 벌마저도 비교 대상이 없을때는 형벌인줄 모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 가만히 멈춰 있기죠'에서 반의법을 읽어내지 않더라도,
'혁명'과 '기적'과 '변혁'과 '천재지변'은
희망의 다른 이름일거다.
그러니,
사람은 정말, 질 수 있는 걸까. 여기에 죄를 대입시켜 봐도 좋겠다.
사람은 정말, 죄를 질 수 있는 걸까.

세한

 

네가 참아버린 말을 나는 찾는다

네가 잊어버린 말을 나는 믿는다

설사하는 몸으로 변비를 견디듯

너를 쓰러뜨린 말들을 꼭 사랑할 것이다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병원에

있었다, 다디단 중독들을 버무려

이 병실에서도 약을 짓는다

나으려 하지 않는 병에게,

웃고 있는 형제들에게 전하고 싶다

 

인간답게, 짐승답게 으스러지도록 사는 허망의

하염없이 하염없이 희망에 대해

희망의 꿈 같은 사슬과 채찍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생각되지 않았다

 

추운 날엔 살을 쓰다듬고 뼈를 만진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캄캄한 내장들을 주물러도 본다

몸은 안 좋을 것이다

몸은 안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슬픈 몸은 기쁨의 失禁을 안다

되었다, 헛되었지만 되었다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

슬픈 몸은 숱한 사랑의 말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유독 슬펐는데,

유독 마음에 와 닿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이란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긴 하지만,

시인은 말이 희망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처 입히는 것 또한 말을 통해서...라는 걸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리하여 네가 참아버리고 잊어버린 말들 찾고 믿고 사랑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약을 짓는 행위를 통해서이다.

살을 쓰다듬고 뼈와 내장을 만지고 주무르는  행위를 통해서이다.

그러면서 몸에서 기쁨을 잃어버리고 금지(失禁)하는 걸로 스스로를 유패시킨다.

하지만 유패시키고 유배시키는 걸로 끝나지 않고,

몸과 말의 공존과 화해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게 '헛되지만 되었다'와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라는 사실이 슬펐다.

 

이 시에서는
사람은 정말, 질 수 있는 걸까.

로 바꿔 생각해보았다.

 

'구름과 나'라는 시에서는,

배설, 카타르시스를 떠올렸다.

'참고 싶은 것은, 다 참아낼 수 없는 것'이고,

참아냈던 건 참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참아야 했던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눙치는 이 시인을 어쩔 것인가?

부디 그가,

침입한 그곳으로 문 닫고 사라지지 않고,

울고 싶을 때 참지 말고 울기를 기대해본다.

사람은 정말, 사라질 수 있는 걸까.

 

'한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에선 '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진다'고 하였다.

사람은 정말, 지워질 수 있는 걸까.를 대입시켜 보았다.

 

내가 언급한 시들 말고도 여러 시를 가지고 '질 수 있을까'놀이를 해보았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부디 '이기다&지다'의 그 '지다'는 적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도들

 

해장국집에 들어가 술을 시켰는데

잔을 두개 가져다준다

저는 소주를 세병 마신

한 사람입니다

이상하다는 듯 남자가 잔 하나를

도로 가져가버린다

나는 내 반쪽이 찢겨나가는 것 같다

한 사람일 수도,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있지만

<모닝와이드>는 삼월 찬바람에 쓸리는

독도를 보여준다 독도만 가면

깃발 흔들고 만세 부르고 사진 찍는

민족 문인들이나 기자들이 있겠지

업소 출신이 업소에 안 가듯

나는 독도엔 안 간다

소주잔에 떠다니는 내 심장을 본다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돌투성이 국토 너머

망망대해를 본다

모든 홀몸은 분쟁 중이고

모든 홀몸은 부유 중인데

독도는 어디에 있는 섬인가

독도는 어디에 없는 섬인가

투사처럼 비쩍 마른 밥집 남자는

소주잔에 담아간 심장을 가져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독도들'이란 시가 제일 좋았다.

'한 사람'의 '한'을 숫자 '1'이 아니라, '어떤'으로 바꿔보면 덜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진다.

'민족 문인나 기자'들 상징성이나 대표성을 부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홀로 의미있어 질 수 있다.

 

나무는 간다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제에 가득 죽음에 뚫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

  고문받는 몸뚱이로 나무는 간다 뒤틀리고 솟구치며 나무들은 간다 결박에서 결박으로, 독방에서 독방으로, 민달팽이만큼 간다 솔방울만큼 간다 가야 한다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걸음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녹아 없어지는데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

나무가 나무에게로 가버리고 깊이 사라져버리듯이, 나는 당신에게로 가서 번지고 스며 물들어버리고 싶다.

 

뭐니 뭐니 해도, 이런 단어 바꾸기 놀이의 절정은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나무는 간다'에서 '간다'를 가지고 바꾸었을 때이다.

'움직이는 것'도 '간다'지만 '미치는 것'도 '간다'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움직여서 흠뻑 빠져버리는 것을 가지고 난 훅~ '간다' 라고 한다.

 

옛날에 이런 시인과 시집을 만났으면 '아흑~--; 죽음이야'라고 했을텐데,

이젠 '훅~간다'라고 표현하게 생겼다.

 

새로운 내 스타일대로 이 시집을 평해보자면, '지려가든 가지나 말지~(,.)'쯤이 되겠다.

아니다, '가려거든 지지나 말지~'가 더 '훅~간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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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3-11-26 12:21   좋아요 0 | URL
'스따'란 표현 너무 좋은 데요. 저도 그 판국이네요 ㅎ
양철나무꾼님 잘 지내시죠 ㅎㅎㅎ
죄송해요 ^^;;;; 살아 돌아올려고 책 샀어요. 오랜만에 ㅋ

양철나무꾼 2013-11-26 12:27   좋아요 0 | URL
어머머, 이게 누구예요~?
(,.)<----심드렁, 왕삐침의 이모티콘.


책이 생명물?
그렇다면 말씀만하세요.
루쉰P님이 돌아오신다면,
제가 그까잇거 책쯤 얼마든지 제공할 의향있습니다여.

근데, 진짜 반갑다.

감은빛 2013-11-26 13:07   좋아요 0 | URL
사람은 정말 질수 있을까?
저는 매일 지고 삽니다.
아내에게 지고, 사장님께 지고, 거래처 부장님께 지고.......

시를 안 읽은지 제법 되었네요.
집에가서 시집 한번 들춰봐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3-11-28 14:29   좋아요 0 | URL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잖아요.
매일 지고 산다고 말하시지만,
지는게 이기는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듯~^^

북극곰 2013-11-26 14:56   좋아요 0 | URL
이런 리뷰를 보고는 항상 시집을 한 두권 끼워서 사기는 하는데 잘 안 읽게 되네요. 아직은 저는 뭔가 읽어내는 데에 급급한가봐요.
저는 일단 나무꾼님 이런 글로 대신할래요. ^^

알라딘에서 댓글 달고 있으니 너무 좋아용 핫~!

양철나무꾼 2013-11-28 14:31   좋아요 0 | URL
저는 뭔가를 읽어내는 것보다는,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쉼이고 휴식이예요.

한마디로, 책으로의 도피쯤 되겠죠, ㅋ~.

yamoo 2013-11-26 17:52   좋아요 0 | URL
저는 자신에게 맨날 깨지는 걸요~

전 시는 읽지 않지만, 그냥 뭐...나무꾼님의 글로 대충 때울랍니다~ㅎ
전 그냥 닥치고 추천입니다~^^

양철나무꾼 2013-11-28 14:33   좋아요 0 | URL
저는 맨날 넘어지고 부딪혀 제 자신을 깹니다, ㅋ~.
시를 잘 안 읽는 yamoo님이나,
님이 읽는 어려운 책들을 못 읽는 저나,
각자 취향으로 생각하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