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 많이 컸죠
이정록 지음, 김대규 그림 / 창비 / 2013년 8월
평점 :
몸이 가뿐하고 그리하여 마음이 상쾌해지고는 아마 모든 사람의 로망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고...
같은 몸이 가뿐해지고 마음이 상쾌해지는 현상을 가지고도,
시인과 凡人은 다른 결과를 예측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몸이 가뿐한 게, 동시가 솟아오를 거 같아."
ㆍㆍㆍㆍㆍㆍ
"마음이 상쾌한 걸 보니, 두세 편 어깨동무하고 찾아오려나 봐."
ㆍㆍㆍㆍㆍㆍ
동시를 만난 뒤로, 동시가 올 때의 몸 상태를 알게 되었어요.
ㆍㆍㆍㆍㆍㆍ
혼자 가는 오솔길이 아니라 함께 가는 들길이 되었답니다.(5~6쪽, 머리말' 중에서)
오랜 변비로 시달리고 있는 나는,
'몸이 가뿐 마음이 상쾌'...이런 문장을 만나면 당근 '쑤욱~' 시원하겠다...
내지는 날개가 없어도 날라가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날개가 솟듯 동시가 솟아 오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난 혼자인것을 성가시지 않고 홀가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어깨를 떠걸어 의지가 되는 어깨동무를 마음이 상쾌하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오솔길을 외롭지만 고고해서 운치있다고 애써 생각했던 나에게,
더불어 함께 하는 '들길' 소중함을 조곤조곤한 어조로 담담히 읊조리고 있는데,
이게 마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처럼 들려 정겹다.
암튼,
"사람마다 오장육보로되 놀부는 오장 칠보인가 보더라. 어찌하여 칠보인가 하니 심술보 하나가 왼편 갈비 밑에 주먹만하게 딱 붙어있어..."하는 판소리 <흥보가>의 한대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욕심을 줄이고 내려놓기가 참 힘든 존재 임에 틀림이 없고,
이렇게 힘든 욕심을 내려놓아 몸이 가뿐하고 마음이 상쾌해지는 법을 터득한 그가 부러울 따름이지만,
다시한번 얘기하지만 이건 凡人의 영역이 아니니,
탐욕 덩어리라는 소리를 듣기 전에 내려 놓으련다.
가을 운동회
노랗고 쪼그만
배추 속잎
하나하나 차올라
속이 꽉 찬
배추 한 통 되지요.
배춧속 같은
우리들 웃음
끝없이 울려 퍼져
하늘까지 꽉 찬
배추 한 통 되지요.
동시란 어린이가 읽는 시이고,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쓰여진 시이지만,
어린이만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린이도 어른도 같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 시를 읽는데, 언젠가 만났던 알라딘 서재 이곳의 ㅅ님이 생각났다.
그때는 봄으로 가는 길모퉁이였는데, 이 시는 '가을 운동회'란 제목이다.
시인의 다른 동시들은 읽는 연령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읽히고 해석이 가능한데,
그리하여 전연령을 아우르는 시이지,
결코 동시라는 한정으로 가두는게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 시만큼은,
분명 어린이가 읽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이고 단어들이지만,
어린이의 시선으론 여간해선 가을 운동회랑 배추를 연결시킬 수가 없지 싶다.
내가 사람들 지나다니는 전시용 화분의 배추('봄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를 보고도,
ㅅ님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꽃이라고 생각했듯이 말이다.
동시도 마찬가지이다.
아니다, 동시여서 더더욱,
'어린이라면'이 아니라 '어린이로 돌아가' 경험하고 느낀걸 옮겨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거야>페이퍼 링크
<꽃으로 말해줘>길들여진것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는 것 사이의 관계-리뷰 링크
어린이가 읽어도 좋고,
어린이로 돌아가고픈 어른이 읽어도 좋겠다.
아니다, 동심을 닮고픈 어른이 읽어도 좋겠다. ^^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내가 한권의 시집을 읽는게 아니라...
온갖 공감각을 사용하여 흡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긍정적인 에너지 조각조각 부스러기들을 얻어오는것 같고,
그리하여 어느새 내게도 긍정에너지가 스미고 물드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시에 나오는 사람들도 하나 같이 시인표 사람 좋은 웃음을 빼닮았다.
'원 플러스 원'에선 민지 민정이가 서울 이모랑 마트에서 까르르 웃고,
'훌라후프 돌리는 별'에선 아빠가 엉덩이를 빼며 웃는다.
'꼴등 아빠'에선 '나처럼 눈웃음은 백 점'이어 주시고,
'닭발'에선 '통닭'을 시켰다며 아줌마에게 애교웃음을 날린다.
암튼 웃음의 형태와 이름은 다르지만,
내겐 '속 좋은 듯 허연 이를 한껏 드러내고 눈꼬리에 자글자글 주름을 만들어가며 웃는' 시인과 시인의 어머니 표 웃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ㅋ~.
그래서 사람들이 창작의 고통을 산고에 비유하고, 작품을 자식에 비유하나 보다.
작가는 돈 굳어 좋겠다.
친자확인소송 비용 따윈 들이지 않아도,
읽으며 어떤 형태로든 웃음 웃게 되거나 무한 긍정 에너지가 솟아오르면,
딩근 시인의 작품이니 말이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하는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소박하되 찬찬히 그 안에서 한단계 한단계 밟아나가는 꿈을 가르친다.
하긴,
이런건 어찌 이해해야 하나 모르겠다.
서울에선 생일잔치를 숯불갈빗집에서 하지 않는다.
햄버거 집 같은 패스트푸드점이나 패밀리래스토랑 같은 곳에서 한다.
이런 걸 옛날에 해학이라고 배운거 같은데...ㅋ~.
숯불갈비
숯불갈빗집에서
생일잔치를 했다.
양념 갈비에
물냉면도 먹었다.
입가심으로 수박이 나왔다.
수벅도
고기 구워 먹었나?
이쑤시개 물고 있다.
눈사람
눈사람은 살빠지면 죽는다.
햇살 다이어트가 가장 위험하다.
참 잘했어요.
선생님은 일기장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꽝꽝 찍어 준다.
"얘들아. 안 볼 거야."
일기를 훔쳐보지 않는 건
좋은 일이지만,
강아지 잃어버려서
엉엉 울었다, 밑에도
"참 잘 했어요."
자전거 타다 넘어져서
피가 났다, 옆에도
"참 잘했어요."
칭찬이 너무 많은
담임 선생님께,
"참 잘했어요."
언제 한번, 우리도
박수 쳐 보나?
이 시는, 요즘 내가 이모티콘을 쓰면서 느끼던 한계를 같이 느끼게 해주었다.
이모티콘이 참 편리하고 간편하지만,
내 감정과 상황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다만, 카카오톡의 대화에서 읽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을때...빨리 편하게 사용하는 이모티콘을 닮아서...
웃으면서 눈물이 났다.
분명, 이 시들에서 화자는 다른 사람인데...난 시인의 어머니를 만나는 듯 착각이 드는 구절이 있다,
반가웠다.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선생님이 빨간 글씨 써 놓았다.
-- 그건, 어머님들이 하느님을 업어 주는 거란다.
('생강밭 하느님' 부분)
할머니는 내편
"왜 자꾸 틀리니?"
엄마가 꾸중하면,
"어미야, 걔도 틀니니?"
시인이 아무리 얘기하여도 동시를 쓰는 마음은 모르겠고,
동시를 읽는 마음은 내내 기쁘고 행복했었다.
다음 작품은 '동화'라고 한다.
동화 읽는 마음은 어때야 할지 모르겠지만,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