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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말해줘
버네사 디펜보 지음, 이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전 ㅅ언니를 만나 인사동 거리를 누비고 다닐 때 길거리 빈 화분에 피어있는 초록색 식물을 보더니,
"배추네~."하셨다.
속이 꽉찬 배추들은 수없이 봤었지만, 잎들을 헤벌레하게 벌리고 있는 배추는 본 적이 없는지라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얼마전 김장을 하러 시댁에 갔다가...모든 배추들은 잎이 옆으로 헤벌레하게 벌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때맞춰 잘 묶어주면 그동안 보아오던 속이 꽉찬 야무진 배추가 되는 것이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면 잎이 옆으로 헤벌레하게 벌어지는 것이었다.
ㅅ언니가 말했던 배추는 돌보는 이 없어 입이 옆으로 헤벌레하게 벌어진,
겨울 눈밭에 내팽겨쳐진 `봄동`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속이 꽉 차지 않고 헤벌레하게 벌어져 영 볼품 없다 생각 했던 것도 잠시,
돌봐주는 이 없어도 자라나는 생명력에 가슴이 뜨거워졌었다.
봄동아, 봄똥아
- 황 상 순 -
봄동아,
볼이 미어터지도록 너를 먹는다
어쩌면 네 몸 이리 향기로우냐!
오랜만에 팔소매 걷고 밥상 당겨앉아
밥 한 공기 금세 뚝딱 해치운다만
네가 봄이 눈 똥이 아니었다면
봄길 지나는 그냥 흔한 풀이었다면
와작와작 내게 먹히는 변은 없었을 게 아니냐
미안하다만 어쩌겠냐
다음 생엔 네가 나를 뜯어 쌈싸 먹으려므나
살찐 뱃가죽 넓게 펴 된장 바르고
한입에 툭 쳐 넣으려므나
봄의 몸을 받지 못한 나는 구린내만 가득하여
너처럼 당당하지 못하고
다른 반찬 밑에 엎드려 얼굴 가리며
아마 죽은 듯 숨어 있겠지
그렇겠지? 봄동아, 봄똥아.
그리고 이제 난 헤벌레하게 벌어진 배추를 볼 때마다 ㅅ언니를 그리워한다.
`속이 꽉 차지 않아 볼품이 없다`가 아니라, `가운데가 노란 게 여느 꽃보다 예쁘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꽃을 좋아한다는데, 난 꽃이 별로다.
꽃도 살아 숨쉬는 생명체인데,
잘 키우거나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나 혼자 잠깐 보고 좋자고 꺾어들이는 것도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어린왕자를 들먹이지 않아도 길들인 것엔 책임을 져야 한다.
나 말고 귀하게 오래 넉넉하게 대접받는 곳에 가서 그렇게 예쁘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편과 연애할때도 꽃다발 선물로 몇번 싸웠고,
이제 축하하거나 기념할 일이 있을때, 으레 남편은 꽃다발 대신 작은 화분을 선물한다.
한동안 리뷰 쓰기를 주저했었다.
왠만한 리뷰는 다 페이퍼로 돌렸었다.
(이유는 각자 상상에 맡겨 두고~)
이 책은 별점에 기여하고 싶어 일부러 방향을 리뷰로 잡았다.
별 다섯개를 꽉꽉 눌러 채우지만, 그래도 부족하고 아쉽다.
이 책은 내게 그런 의미이다.
번역가 이진 또한 `존 버든`의 `658, 우연히`로 만났던 그 번역가이다.
흐드러지지 않지만, 단정하고 소박한 것이 넘치지도 않는다.
`존 버든`이라는 작가와도 그랬지만,
이 작가 `버네사 디펜보`와도 잘 어울린다.
물론 그동안 내가 혀를 내둘러가며, 아드레날린을 내뿜어가며...읽던 장르소설 같지는 않다.
하지만 소소한 감동으로도 가슴이 뜨거워 질 수는 있는 것이고,
말이나 글처럼 직접적인 방법이 아닌,
꽃이라는 간접적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을 전달할 때 차(tea)를 이용하지만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빅토리아는 태어나면서부터 고아다.
거칠고 폭력적인 성격 때문에 여러차례 입양 거절을 당하고 보육원을 전전한다.
그녀의 이름 `빅토리아`는 빅토리아 시대에 연인들끼리 사랑을 나누는데 꽃말을 사용하던데서 유래했단다.
열 살때 엘리자베스라는 독신녀에게 입양될 뻔 하는데,
엘리자베스는 그녀 자신도 부모로부터 소외당하고 하나뿐인 친구이기도 한 언니로부터 배신당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꽃과 포도밭을 벗삼아 자신도 고독하게 살고 있어서,
여러차례 입양 거절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빅토리아의 마음이 어떨지를 이해한다.
엘리자베스는 빅토리아에게 말이나 글처럼 직접적인 대화를 하는 직접적인 방법 말고도,
꽃말로 대화하는 간접적인 방법이 있음을 가르쳐준다.
때로는 이 간접적인 방법이 진심을 왜곡시키지 않고 전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엘리자베스와 빅토리아는 그렇게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며,
그렇게 그렇게 조금씩 단절됐던 세상과 소통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사랑에 서툰 두 사람은 결국 오해로 틀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다시 보육원을 전전하던 빅토리아는 열 입곱이 되어 더 이상 보육원에 머물 수 없어지자,
보육원을 나와 독립하게 되고,
그후 어떻게 서로 간의 오해를 풀고 상처를 쓰다듬고 보듬어 안게 되는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보다 입양이나 보육시설이 한참 앞서 발달한 나라에서도 이런 모순과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래도 그 나라는 꾸준히 나아지려고 노력한다는 점 또한 놀라웠다.
페퍼민트 - 따스한 느낌
왜 있잖아, 좋아하는 사람 앞에 있을 때 간지러운 것 같은 그 느낌.(87쪽)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페퍼민트를 두고 따스한 느낌이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페퍼민트의 멘톨 성분은 차갑고 가벼운 성질을 지녀서 상체의 열을 내리고 몸 밖으로 쉽게 열을 내보내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
오일 형태로 발랐을때 2차 반응으로 화끈한 느낌이 들 수는 있지만(멘소레담 로숀 처럼), 그건 따스한 느낌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증오를 의미하는 꽃이 무언지 가르쳐줄 수 있어. 하지만 싫다는 말은 좀 모호해. 증오는 열정일 수도 있고 냉정일 수도 있거든. 사람에 대한 혐오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어. 그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꽃도 가르쳐줄게."(104쪽)
"엉겅퀴는 어디에나 있어.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를 괴롭히나 보다."(108쪽)
지금껏 나는 오직 꽃말에 대해서만 정직했다. 꽃말을 두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내 삶에는 더는 아름다운 것도, 진실한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151쪽)
우리는 모두가 자신을 숨긴 채, 타인에게 자신을 속이고(어떤 면에선 스스로에게도 비겁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늘을 향해 한점 부끄럼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기 내면의, 본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는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내면의 깊은 상처 때문에,
혹은 세상에 소외당하고 배신당해서 스스로 세상과 단절할 요량으로 세상을 속이고 살고 있다면,
그것은 죽음과 마찬가지 아닐까?
혼자, 살아 있다는 것은 죽음과 뭐가 다를까? 고독하고 외롭긴 마찬가지 아닐까?
"아줌만 왜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ㆍㆍㆍㆍㆍㆍ
"그러는 넌 왜 없니?"
"난 친구가 싫으니까요."
ㆍㆍㆍㆍㆍㆍ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미소는, 마침내 번지기 시작한 미소는 오직 안도의 미소였다.
"다행이구나! 난 네가 있어서 행복하거든. 사실은 네가 내일 학교도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네가 집에 있으니 정말 좋더라. 이제 너도 마음을 조금 열었고. 넌 처음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보였어. 솔직히 네 마음을 빼앗은 포도가 좀 질투가 나긴 하지만 네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걸 지켜보는 게 참 흐뭇하단다."(160~162쪽)
"내가 나를 못 믿어. 우리가 함께하는 삶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내가 망치고 말 거야."(184쪽)
이 책을 읽으면서 슬펐던 것은,
비록 한순간이지만, 그리고 좋은 쪽으로 나아지는 과정이지만...
꽃으로 하는 얘길 상대방이 듣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시 얘기하면, 공감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얘기이다.
마음을 닫아걸고 공감과 소통을 거부한 자와는 당연한 것이니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마음을 열고 공감과 소통을 절실히 원하는 데도, 비껴가는 경우가 있다.
또는 비껴가고 마주치지 말자고 다짐을 하는데도 헛되게 공감과 소통이 쓰나미처럼 몰려올때도 있다.
사랑이나 연민이라는 게, 그렇게 교통사고처럼 맞닥뜨리는 그런 감정이라지만 읽는 내내 답답하고 안쓰러웠다.
"상관없어."
내가 말했다.
좋은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왠지 경멸조로 들렸다. 그랜트의 얼굴이 시무룩해졌고 나는 화가 치밀었다. 그랜트에게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나는 늘 말투와 어감을 적절하게 조절할 줄 몰랐다. 나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어색한 사과의 몸짓이었다.(206쪽)
위 경우는 나도 종종 저지르는 실수인데, 나와 타인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났는데도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랄때도 있었다.
빅토리아는 어색하지만 노력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다가간다.
ㆍㆍㆍㆍㆍㆍ그들은 계산대에 몸을 숙이고 자신들의 고민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걸 한마디로 정의하려 애썼다. 나는 그들에게 구체적인 설명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들은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 들였다. 그들과의 상담은 슬프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으며 그러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희망적이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보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내게 너무도 낯설었다. 왜 그냥 포기하지 않는걸까.(217쪽)
빅토리아는 엘리자베스와 같이 있었던 기간 동안,
오해로 틀어지고, 그로 인해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가지 것들을 배우기도 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는 법도 배웠고,
꽃으로 대화하는법, 그러니까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으로 마음을 전하는 법도 배웠고,
사람과의 사이에서 신뢰나 지켜야 할 규칙, 약속 등 인간 관계도 배웠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 사람에게만 맞춤인 꽃다발을 만들어주는 법도 배웠고,
무엇보다...꽃과 더불어 상담하고 꽃으로 치유 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ㆍㆍㆍㆍㆍㆍ넌 마치 미안하다는듯 그 꽃을 내게 내밀었어. 나한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네가 만든 부케는 내 평생 보았던 그 어떤 부케보다 완벽했는데도 말이야. 그 순간 바로 알았지. 네가 너 자신을 가치 없다고 느끼고 있단 걸. 용서받을 수 없는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걸."
"이 세상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결함을 지닌 사람이 오직 너뿐이라고 생각해? 몸이 부서질 정도로 상처받은 사람이 너 하나뿐인 것 같아?"
"다른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었어. 결함이 없는 사람. 아니면 결함을 잘 숨기는 사람을. 하지만 그 누구도 너처럼 꽃을 다룰 수는 없을 걸. 빅토리아, 넌 정말 재능을 타고났어. 꽃을 만질 때면 너의 모든 것이 달라져. 얼굴도 부드러워지고 시선은 한곳에 집중되지. 그런 손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꽃을 다루는 네 손은 아주 조심스러워. 그걸 처음 본 날을 잊을 수가 없어. 작업 탁자에서 해바라기를 꽂던 넌 전혀 다른 아이 같았어(348쪽)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내어보이는 것,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어보이는 것은 더 쉽지 않다.
타인을 내 안에 들이지도 못하고, 내 상처를 내어 보이지도 못하면서,
`나를 받아들여 달라, 어루만져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의 그것이 나와 똑 같은 상처가 아니면 소통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말 뿐인 치유와 위안이 될뿐이다.
하지만 나와 똑같은 상처를 지녀 느끼게 되는 치유와 위안은 어느샌가,
나를 속속들이 너무 잘 알아 파헤쳐지는 부끄러움과 낯뜨거움으로 바뀌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나의 고통과 고독을 너무 잘 아는 그 타인과 나와의 관계는 `상처`로 연결된 것이기에,
타인의 상처를 거울 삼아 자신의 상처로부터 빠져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 순간순간 바라보고 각인하여 그 상처를 극복하고 망각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는 그런 사람도 있다.
"사람은 다 변해. 하지만 사랑은 변하지 않아. 가족도."(253쪽)
ㆍㆍㆍㆍㆍㆍ나는 웃었지만 눈물은 더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그 눈에 담긴 조건 없는 용서, 검열되지 않은 사랑이 두려웠다. 그랜트처럼 아기도 내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나는 내 아기가 산사나무 가지를 들고 다니며 편안하게 웃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줄 수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줄 수는 없었다. 나의 독성이 아기의 완벽함을 오염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것은 내 몸에서 흘러나갈 것이고 아기는 굶주린 아기 특유의 게걸스러움으로 그것을 삼킬 것이다. 나는 지금껏 내가 알았던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너무도 간절하게 내 딸로 사는 위험에서 내 딸을 구해 주고 싶었다.
`이끼는 뿌리없이 자란다.`(363쪽)
내 딸을 바라보는 동안 한때 나 자신이 결코 느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사랑이 나를 채웠다. 나는 장미 정원에 돌아왔을 때 그랜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끼가 뿌리 없이 자란다면 엄마의 사랑도 뿌리 없이 자랄 수 있으리라. 내가 딸을 키울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내 생각은 틀렸는지 모른다. 아무 연고도 없이, 그 누구도 원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도, 어쩌면 다른 사람들처럼 열정적인 사랑을 줄 수 있으리라.(387쪽)
암튼,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또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 본다.
분명히 누군가는 어디로 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짬뽕공 같다고 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길들여진 것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하는 어느 시점을 지나게 되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때가 도래한다.
하지만 길들여진 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 사이에 인과관계가' 꼭'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길들이고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그 길들이고 길들여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런 책임 소재와 관계가 어긋난 불우한 시기를 보냈다고 하여,
내가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자연이라고 불리우는 햇살이나 바람이나 공기 따위의 넉넉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낌없는 나무처럼 넉넉하게 내어줄 수가 있는 것이니,
두려워 말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줄 수는 없었다`따위의 말은 하지 말고,
try to(이거보다 명확하게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우리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ㅠ.ㅠ)해보자.
왜 이현주 목사님의 이 시가 생각나는 지 모르겠다.
밥 먹는 자식에게
- 이 현 주 -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