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남들은 두개, 세개를 다 가진 듯 보이기도 했다.
하날 포기해야 다른 하날 얻어가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지는 얼마 안됐다.
두 손에 쥐고 있다가 넘어져서 코가 깨져보고 나서야 얻은 깨달음이다. 

지난 주말 지독한 고뿔을 핑계로 시댁 김장을 한주 늦추고 김광진 콘서트도 포기하고, ㅅ님을 만났다.
처음, 보디 가드를 두 분씩이나 대동하고 나오셔서 나를 살짝 놀라게 하셨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매력적인,
게다가 경쾌한 목소리와 씩씩한 걸음걸이를 가진 분이셨다.

ㅅ님의 매력에 흠뻑 취한 난, 뾰족굽 롱부츠 신은 것도 잊은채 팔짱을 끼고 골목골목을 팔랑거리며 꿈꾸듯 춤추듯 날라 다니고 뛰어 다녔다. (마음만~^^)
종로3가에서 만나, 인사동 거리를 누비고, 쌈짓길을 배회하고, 조계사를 안내하고,
다시 인사동 거리를 누비고, 찻집에서 수제 빙수를 먹고, 다시 종로3가까지.

실은 ㅅ님을 보자 생각난 단어가 바로, '과사상비(過思傷脾)'였다.
'과사상비'란,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비위를 상한다"는 뜻으로...
생각을 줄이기 위해서는 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면 걷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다.
'수족사말주비위(手足四末主脾胃)'이다.
팔 다리는 비위가 주관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비위를 움직이고자 할 때 손 발을 움직이는 것이 좋은데,
걷는 것이 손 발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겠다.
 
왜 우리는 남들보다 먼저 아파하면 안 되나?
남들보다 먼저 아파해서 세상이 병들었음을, 썪어빠졌음을...고통이 오기전에 미리 예언하면 안 되나?

     
        파리와 더불어
                  
                      - 김수영 -

다병(多病)한 나에게는
파리도 이미 어제의 파리는 아니다

이미 오랜전에 일과를 전폐해야 할
문명이
오늘도 또 나를 이렇게 괴롭힌다

싸늘한 가을바람 소리에
전통은
새처럼 겨우 나무그늘 같은 곳에
정처(定處)를 찾았나 보다

병을 생각하는 것은
병에 매어달리는 것은
필경 내가 아직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비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저 광막한 양지 쪽에 반짝거리는
파리의 소리 없는 소리처럼
나는 죽어가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나도 잘,,,못하는 일이지만,
나는 ㅅ님이 간혹 고통이 오기 전에 미리 아파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던 차에...
최규석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보내주셨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
  최규석 지음 /
  사계절출판사 /
  2011년 11월

세상은, 불평불만하지 말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이야기들로 차고 넘친다. 그래도 예전에는 삶의 고통을 견디는 굳건한 의지, 앙다문 이빨 정도는 허용해 줬지만 요즘에는 그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요새 떠도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고통조차 웃으며 견뎌야 한다. 아니 애초에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고통을 고통이라 여기는 부정적 태도를 갖는 순간 우주의 에너지는 당신을 못 보고 지나칠 것이다. (4쪽, 작가의 말 中) 

고통조차 웃으며 견디라신다.
아니,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단다~ㅠ.ㅠ

"요 근래에는 나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괴롭긴 했어. 하지만 나는 곧 이것이 단순한 고통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이 고통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나는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게 되었어. 그리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만하며 살았는지 반성하게 해서 겸손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지. 또한 이 고통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무한한 용기가 샘솟아 더 이상 무엇도 괴롭거나 두렵지 않게 되었지. 이 고통은 아마도 내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일 거야."
 개구리들은 모두 그를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들도 고통을 선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민한 개구리는 고통을 참을 수도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냄비를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바보들아,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 뿐이라고!"(냄비 속의 개구리 中)

'우물 안 개구리' 와 '냄비 속 개구리'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한참 다르다.
우물과 냄비라는 주어진 환경부터가 그렇다.
우물은 쉽게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것이고,
냄비는 마음만 먹으면 폴짝 뛰쳐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나도 쿨하게 인정할 수 있었음 좋겠다. 

ㅅ언니를 따라 팔랑거리며 걸은 나도, 過思傷脾 手足四末主脾胃이다.

오늘(12월 3일)은 지난 주에 미뤄둔 김장을 하러 시댁에 내려가야 하는데, 광화문 광장에 10만 인파가 모인단다. 
내가 서유기에 나오는 오공이여서 뽑은 털의 개수만큼 둔갑이 가능했음 좋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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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3 0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1-12-03 11:34   좋아요 0 | URL
문득 ㅅ언니가 나에게도 친숙한 언니로 다가옵니다. ㅎ
저도 님이랑 팔랑거리며 춤추듯 꿈꾸듯 인사동 거리를 날아 다니고 싶어요~~~
평일엔 언제 가능하신거예요?

2011-12-04 22:30   좋아요 0 | URL
흠 손과 발을 휘두르며 많이 뛰고 걸어야겠군요. 후후
ㅅ언니를 생각하던 차에, ㅅ언니로부터 책이 왔다는 대목이 왠지 좋아요. 그리고 이 대목에서, 양철님은 참 정이 많으시지 하는 생각을 또 하고..

프레이야 2011-12-03 21:33   좋아요 0 | URL
몸은 다 나으신거에요? 오늘 김장하러 가셨겠네요.
김장을 해도 되실 정도로 나으신거에요?
그나저나 뜨거운 것이든 차가운 것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이거만 되어도 마음속 소란스러움이 많이 사라지겠지요?^^

cyrus 2011-12-03 21:43   좋아요 0 | URL
김장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실거 같아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몸 건강에 유의하셨으면 좋겠어요. ^^

하늘바람 2011-12-04 10:11   좋아요 0 | URL
ㅅ언니가 누군지 알것같아요.
^^
지독한 고뿔은 좀 어떠세요?
인사동을 팔짱끼고 다니셨다니 넘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