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애인이 상급학교에 진학하신 후, 휴일이라도 집에 있는 걸 볼 수 없다.

학교에, 학원에...뭐 그리 바쁘게 움직이는지,

마땅히 할일이 없어진 난 방바닥에 누워 이리저리 떼굴거리다가 보면, 낙동강 오리알이라도 된듯 처량맞게 느껴진다.

 

엊그제 저녁 그러니까 날씨도 꾸물거리고 기분도 꿀꿀하고 하여,

남편과 목욕탕에 갔다가 'ㅁ면옥'이라는 설렁탕집에 들려 양곰탕을 먹었다.

남편은 연애할때 이후로 잘 안하던,

밥을 말고 파를 적당히 넣고 소금간을 하는 풀서비스를 제공해 주셨는데,

문제는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파를 안먹는 바람에,

남편이 부어준 파를 하나 하나 골라내야 했다.

남편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겉으로는 파를 골라내며 번거롭게 되었다고 툴툴거리다가,

이렇게 예쁘게 생긴 '하트파'도 발견하게 되었으니,

제대로 기분전환이 되어주셨다, ㅋ~.

 

어제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손석희의 목소리를 잠을 깨우는 기상송쯤으로 가족들과 아침밥을 먹는데, 낙동강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아들~, 잘 들어봐봐.

 저기도 엄마랑 똑같은 심정의 사람이 또 있나보다~."

아들은 가뜩이나 작은 눈이 잠에서 덜 깨, 거의 달라붙어서는 나를 간신히 쳐다본다.

"엄마, 4대강 사업 문제점 얘기하고 있는건데...

 엄마랑 4대강 사업이랑 뭐가 이심전심인데...?"

"지금 낙동강 오리알 어쩌구저쩌구...기러기 아빠처럼, 오리알 엄마 얘기하는 거 아냐?"

"무슨...?

 4대강 가운데 낙동강의 칠곡보가 물받이공이 주저앉아 보가 붕괴될 위기라는 거잖아~."

"......--;"

"난 엄마 엉뚱한 소리하는데, 보가 붕괴되는게 아니라 멘탈이 붕괴될거 같음~--;"

하는데, 나는 아무소리 못하고 밥그릇에 코를 박는 수 밖에~--;

 

나는 가방에 김선우를 주섬주섬 집어넣고 출근 준비를 하는척 할 수밖에 없었다.

가방에 집어넣은 책은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이었다.

 

 

 

 

 

 

 

 

 

 물의 연인들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ㆍ이어서 하늘 여기저기를 찢어 놓듯이 번개와 천둥이 쳤다. 손바닥의 담쟁이들이 엽맥을 곤두세우고 소스라쳤지만 괜찮았다. 너와 함께였으므로. 너는 주방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장관이야, 저런 자국! 번개 친 자리들, 하늘은 죄다 기억할 게 틀림없어.

  지구가 생긴 이래 모든 번개 친 자리들을?

  너는 내게 다가와 으깬 감자와 야채에 크림소를 얹은 샐러드를 한 입 넣어 주며 물었다.

  물론이지, 상처잖아.

  꽃일 수도.

  전선처럼 바지직거리는 꽃잎을 단?

  짜릿해. 안드로이드가 된 것 같아.(10쪽)

프롤로그부터 이렇게 감각적으로 시작한다.

책 뒷표지의,

'여기, 강을 파괴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한 물방울로부터 한 물방울에게로"흐르는 사람들이 있다.

 매혹의 정염과 관능적 미학이 살아 숨 쉬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그녀, 사랑을 노래하다.'

라고 되어있는걸 새삼 인용할 것도 없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다.

그냥도 충분히 재밌게 읽히는데,

4대강을 돋을새김하여, 주제를 무겁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작가 김선우가 4대강 반대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이 이를 전달하려고 일부러 쓰여진 글이라고 생각한다면,

작위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될테고,

그러다 보면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비껴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했었다.

그냥 매혹과 정염과 관능적 미학이 살아 숨쉬는 사랑을 노래한 책이라고 해도...

충분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사랑해. 말해줘. 사랑한다고 말해 줘.

빗방울처럼, 아주 작게 속삭였던 것 같다.(11쪽)

숨이 막힐 것처럼 감미로운 비린내가 둘의 몸에서 동시에 피어오를 때면, 너와 함께 마지막까지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강물처럼. 삶이. 사랑이.

윤허하다, 라는 말은 훨씬 뒤에 떠올랐다. (12쪽)

 

  살살 움직여 줘. 아프지 않게. 상처가 많으니까. 물처럼 흐를 수 있게.(139쪽)

 

아ㆍㆍ! 탄성이 나오는 와이강을 모두들 굽어보았다. 무위암에서 내려다보는 와이강은 자궁 속 태아를 감싸듯 와이산과 산자락 마을들 감싸며 흐르고 있었다. ㆍㆍ우리의 몸이 저렇게 흐르는구나, 강물이 흐르듯 피가 흐르는 존재가 생명이구나, 싶은 통찰이 푸른 하늘의 황금빛 햇빛처럼 찰나에 쏟아졌다고나 할까.. 푸르고 희고 검고 붉고 노란, 가장 원초적인 색들이 가장 적절하게 제 기운들을 풀고 당기며 흐르는 강. 사람들이 흔히 풍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지되어 있는 적막한 화면이 아님을 유경은 이곳에서 처음 알았다. 흐르는 풍경, 흐르는 색들, 흐르는 물결, 흐르는 모래들, 흐르는 새들, 꽃들, 풀들, 흐르는 바람ㆍㆍ 몸들ㆍㆍ 흐르는 인생ㆍㆍ.

   어떤 앎은 그런 식으로도 오는 것이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벅찬 마음이 유경과 요나스를 똑같이 훑고 지날 때ㆍㆍ.

  이렇게 아름다우니 누구든 이곳에서 마음 내려놓고 쉬면 병 같은 거 나을 수밖에 없지!

  맞아요, 할머니. 나도 잘 흘러가야 할 것 같아요. 사랑해야 하니까요.

  사랑해야 하니까.

  그의 입을 통해 처음 나온 '사랑'이라는 단어였다.

  약사여래는 여전히 와이강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요나스, 이제 어쩌지? 약사여래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경이 입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린다.(197~198쪽)

 

4대강 얘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치유와 사랑을 지니고 있는 것이...바로 강과 물의 속성인데 말이다.

그래도 '작가의 말'을 빌어 '영롱한, 하나씩의 물방울인 우리들'이라고 해주어서 좋았고 고마웠다.

 

암튼 소설은,  

프롤로그

 

 

번개 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아프다

천둥 친다, 나는 여전히 당신이 아프다

 

번개 친 후 천둥소리엔

 

사람이 살지 않아서 좋았다

 

이렇게 시작하는 연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먼저번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의 소설 버전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아무도 살지 않아서 좋았다

 

번개 친다, 끊어진 길 보인다

 

당신에게 곧장 이어진 길은 없다

그것이 하늘의 입장이라는 듯

 

번개 친다, 길들이 쏟아내는 눈물 보인다

 

나의 각도와 팔꿈치

당신의 기울기와 무릎

당신과 나의 장례를 생각하는 밤

 

번개 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아프다

천둥 친다, 나는 여전히 당신이 아프다

 

번개 친 후 천둥소리엔

 

사람이 살지 않아서 좋았다

소설은 우리에게 잘 흘러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잘 흐른다는 것은 막히거나 넘침없이 제대로 흐른다는 것이고,

그건 사랑이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일게다.

난 이 흐름을 '소통'이라고 슬쩍 바꾸고 싶다.

 

물의 속성이 흐르는 것이지만,

바꿔 말하면 흐르는 것이 막히게 되면 차고 넘칠 것이고,

차고 넘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순리를 역행하는 것 쯤이 될 것이다.

순리를 역행한다는 것은 '불통'이다.

순리를 역행하고 불통이 되는 순간,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마수의 그것으로 변하고 만다.

상처 또한 묵직하고 치명적이다.

 

마지막의 김연수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린 파괴에 파괴로 맞서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물의 속성처럼 흐르는 것이 막히게 되면 차고 넘치겠지만, 흐르면서는 씻기고 떠내려갈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기에 사람이기도 하겠지만,

또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기 때문에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소통과 불통이, 상처와 치유가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바꾸어 말하면, 사랑이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물이 나가온다면,

상처를 활짝 열고 물에 내맡기고 볼 일이다.

잘 정화된 물이어서 상처를 씻고 소독을 해서 아물게 할지,

곪게해서 덧나게 할지는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그리고 곪더라도 결국 옹이라는 훈장을 남긴다.

 

분위기를 바꾸어, 스스로 불통을 도모한 이가 있어 옮겨본다.

스스로 꿰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멋지다, ㅋ~.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이지누 지음 / 알마 / 2012년 8월

 

 

더구나 아늑한 것은 물론 고요하기까지 하니, 산중 선방이 따로 없다. 굵은 바람에 서로 부딪히는 나무들을 선실에서 사용하는 간당 틀로 삼아 선에 들고 다시 나갈 때까지 아처럼 고요한 곳에서 말을 그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더냐. 명나라의 운서 주굉(1535~1615)스님이 말하지 않았던가. 세간의 술이나 식초 따위들은 갈무리해둔 지 오래될수록 맛이 좋은 법이라고 말이다. 그 까닭은 단단히 봉해 깊이 넣어두므로 다른 기운이 스며들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서 주굉스님은 옛 선사의 말을 전한다. "20년 동안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런 후에 어찌 부처를 이루지 못할 것이냐"고 말이다. 그말을 전하며 주굉스님도 한마디 거든다. "아름답다, 이 말씀이여!"

  외롭고 높으며 쓸쓸한 정령치 마루의 마애석상틀 앞에서 열네댓 차례쯤 머물고 대여섯 밤을 자고 난 후에야, 나는 주굉스님의 마지막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어느 날부터는 이곳에 부처님을 뵈러 오는 것이 아니라 말을 멈추러 오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녕 몰랐다. 말을 멈추려면 생각부터 그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대뜸 말은 멈췄지만, 그것은 단지 말할 상대가 없는 것일 뿐 나 스스로 말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 뿐 말은 내 속에서 풍선처럼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웃자란 말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날부터 마치 종기처럼 흉측한 모습을 하고 겉으로 돋아났으니, 그 무슨 꼴불견이었을까. 그렇게 진세塵世를 떠돌다 다시 이곳으로 향하기를 예닐곱 차례, 그때서야 깨달았다. 말을 그친다는 것은 곧 남을 향한 것은 거두지만 나를 향한 것은 더욱 넓고 깊게 펼쳐야 하며, 내 속에서 생각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삭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단순한 진리조차도 산중 선방이 고요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깊이 참구해 급히 깨달으라고 했거늘, 스스로를 깊이 참구하기에 고요함보다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고요할 때에는 고요함도 모르고, 또한 고요하지 않음도 모르는 법이다. 움직임에 다다르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전의 고요함을 아는 것 아니겠는가. 진세에 머물지 않았다면 이 고요함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지 못했을 터이니, 아! 나에게 이곳에서 맞닥뜨리는 고요는 참으로 넓고 깊은 선물이자 아름다운 것이다.(90~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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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1-21 03:51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대로 굳이 4대강에 대한 비판 같은 것을 떠올리지 않아도 글이 참 좋네요. 김선우 시인이 4대강도 그렇고, 강정 문제도 그렇고 관련해서 좋은 글들을 많이 썼긴 하지만요. (참..이제 그분은 푸른기와집 떠나시면 그뿐입다만, 그가 망가뜨린 이 산천은 도대체 어찌 되려나요?)

프레이야 2012-11-21 09:17   좋아요 1 | URL
상급학교 진학한 애인과의 대화가 늘 재미나요. 전 그런 애인도 하나 없고 ㅎㅎ 하나밖에 없는 재치있는 애인과 하나밖에 없는 애정돋는 남편분과 오늘도 행복하게요.~~~ ♥

파란놀 2012-11-21 09:55   좋아요 1 | URL
오늘도 즐겁게 예쁜 이야기를 빛내는 하루 누리셔요

루쉰P 2012-11-21 11:30   좋아요 1 | URL
아,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그 시가 너무 좋네요. 노래는 지금 듣고 있어요. ㅋ 애인과 아들과 사이좋게 사시는 게 전 그게 정말 무한한 사랑인 듯 보입니다. ㅋㅋㅋ
아 근데 노래 부르는 가수 예쁘네요. ㅎㅎ 오전 근무가 여유가 있어 ㅋ 이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요. ㅋㅋ

감은빛 2012-11-21 11:42   좋아요 1 | URL
책 뒷표지 문구에 대한 말씀들 저도 공감합니다.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문구 하나 때문에 부담스러워 이 책을 외면할 이들도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양철님의 일상이야기 늘 재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