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복날이라고 이런저런 인사치레의 문자와 메일 들을 받았는데,

양은 냄비 속에 예쁜 강아지 얼굴이 담긴 그림 문자가 인상 깊었다.

그때 사석원의 '꽃을 씹는 당나귀'를 보던 중이어서,

그중에서도 '복날, 생애 마지막으로 짖어 볼까나'를 보던 중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엽기적이란 느낌과 더불어 만감이 교차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석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 좋은건 조금 좋은대로,

많이 좋은건 많이 좋은대로,

좋다고 설레발을 치고 다니지만...

아주 좋은건 꼭꼭 숨겨두고 나 혼자 몰래 슬그머니 훔쳐보듯 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와도 나눠갖고 싶지 않다.

 

 

 

 

 

 

 

 꽃을 씹는 당나귀
 사석원 글.그림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06년 6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석원을

내가 또 아주 좋아하는 손철주가 책머리에 '이 책에 부쳐'라는 글을 써 거들었으니,

이 책은 내게 '킹왕짱' 아주 좋은 책이 되시겠다.

'이 책에 부쳐'를 조금만 옮겨보면 이렇다.

 

'찰나의 황홀'은 '영원'이 부럽지 않다.

그리하여 기꺼이 눈먼다.

손철주 미술칼럼니스트, '학고재'주간

 

 ㆍㆍㆍㆍㆍㆍ

  나는 사석원의 그림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 그것은 '영원을 부러워하지 않는 찰나의 황홀'이다. 사석원은 나에게 말했다. "나에게 내일은 없어요." 무슨 게송이나 읊조리는 투로 '그림 그리는 건달'의 적막 또는 행복을 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그는 적막에 싸여 색칠로 올인 하고 행복에 겨워 붓질로 밤새운다. 그에게는 내일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없다. 있다면 오직 그리는 순간만이 있을 따름이다.

  ㆍㆍㆍㆍㆍㆍ그 순간 그는 '내일은 없어요'가 아니라 '죽어도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섬광처럼 명멸하는 황홀, 영원과 맞바꿔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환각, 그 황홀과 환각을 부르는 극소량의 미약을 사석원은 캔버스에 살짝 뿌려놓는다. 그의 미약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즐거이, 서둘러, 눈먼 지지를 보낸다.

ㆍㆍㆍㆍㆍㆍ

 몇 순배 소주잔이 돈 뒤 묻고 답했다. 그림 그릴 때 떠오르는 작가가 따로 있는가. "어릴 때부터 반 고흐를 모사해서 그런지 색감이나 터치, 마티에르에서 그의 영향이 남은 것 같다. 형태는 피카소가 좋고, 동물을 그릴 때는 치바이스(劑白石)가 떠오른다." 치바이스가 그랬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두 손이 있다지만 사람들 가려운 곳 긁어주기가 가장 어렵더라.' 감탄할 만한 작가는 있는가. "이우환 선생의 내공이 대단하더라. 김종학 선생의 새를 보고 놀랐다. 나의 새는 발랄하기만 한데 그의 새는 애처롭다. 그 그림 앞에서 의기소침했다." ㆍㆍㆍㆍㆍㆍ사는 고통과 세상의 모순을 그려볼 생각은 없나. "세상은 뭐라 해도 아름답다. 억압과 독재 속에서도 별은 빛나더라."(6~13쪽 부분 발췌)

 

내가 킹왕짱 좋아하는 이 책의 제목은 '꽃을 씹는 당나귀'이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글씨로 '우울한 당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마술 같은 그림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내가 킹왕짱 좋아하는 책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선뜻 권하기가 좀 망설여지는 이유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 또한 치명적이고,

그림에서 풍겨나오는 유혹의 아찔함도 치명적이고,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도, 그가 빚어내는 글을 통해서라면 치명적으로 바뀌어 버린다.

 

일단 그를 알게 되면,

그가 만들어내는 마법에 '푹~'빠져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손철주를 빌리지 않더라도 제대로 홀리게 된다.

 

그런데, 내가 '홀리다'라는 한순간의 꿈같고 야릇한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건,

그의 책을 보는 동안 '잠깐'이지 '내내' 마법이 지속되지는 않아서이다.

깨어나보면 마법이나 꿈이었던 듯, 일상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평생 마법이나 꿈 속인양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되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 아닐까?

현실에 단단하게 발 딛고 있을때 마법이 놀라운 것이되고, 꿈이 황홀한 것이 되지 않을까?

우울이 바닥과 뽀뽀를 할 정도로 참담해 본 사람만이, 마음이 치유되는 기쁨을 제대로 흠뻑 누릴 수 있듯이 말이다.

난파를 당하고 상처를 입어 후회하지만,

배는 또다시 항구를 향해 항해를 계속한다.

굳은 의지 때문이라고?

아니다, 심각한 건망증 때문이다.(39쪽)

늘 난파당하고 상처만 입는 사람이라도,

난파에서 구조되고 상처를 치료 받아, 치유되어본 경험이 없다면 상처를 덤덤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프지 않은게 아니라, 남들도 그정도쯤 아프리라고 생각하고 견뎌낸다.

그런 의미에서,

상처 따윈 받지 않고 단조롭게 살거나,

상처를 받으나 고통을 인식조차 못하고 무미건조하게 살기보다는,

감정이 끝에서 끝으로 치닫기를 밥먹듯 해서 bipolar라는 소리를 듣고 살더라도 풍성하고 입체감 있게 사는 삶을 택하겠다.

 

난파 당하거나 상처가 깊을 때는 분명 고통스럽고 힘들테지만.

상처를 치료받고, 마음이 치유되는 기쁨 또한 온몸으로 통과하듯 느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처도 힘이 될테고,

그런 의미는 상처를 치료받고 마음이 치유되는 기쁨일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테니까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때론 심각한 건망증이 은혜로운 축복일 수도 있는 것이고,

때론 좋은 기억력이 지독한 형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장미꽃 백 송이

_달밤

 

난 살면서 장미꽃 백송이를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다.

휴, 아무래도 인생 헛살았다.(45쪽)

그런 의미의 연장선 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예쁘고 고운 것만 눈에 들어왔었다.

현실을 왜곡하고 굴절하더라도,

눈물 그렁그렁 달린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왠지 멋드러져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본질은 없는 화려하고 현란한 수식에 눈이 멀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땅바닥에 발디디지 않은 현실은 사상누각이라는 걸 알겠다.

누추하더라도 경험하고 체화하여 내것으로 받아들였을때만,

소박하고 수더분한 일상이 되는 것이다.

 

혹자들은 사석원의 그림을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이라고 폄하한단다.

그 혹자들을 향하여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고 감동받아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묻고 싶어진다.

축하카드가 됐건 땡큐카드가 됐건 마음이 담긴 카드를 보내거나 받아본 경험이야말로

춥고 모진 세상을 따뜻하게 건너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걸 경험하지 못한 걸테니,

그들을 향하여 혀를 끌끌 차고 싶어진다.

 

암튼, 그의 꽃들이 너무 예뻐 친구에게 꽃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난 실체적인 꽃은 가꿀 자신이 없는 위인이다~ㅠ.ㅠ)

'꽃그림도 그려보고 하겠지만~'하면서 되게 튕긴다.

그러면서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혹시 알아 30년 뒤에 내 그림이 자기 팔자를 고쳐줄지~, ㅋ~.

아무리 둘러봐도 파랑새를 찾지 못해

통닭을 파랗게 칠했다.

아쉬운 대로 쓸 만하다.

 

_파랑새와 소녀

 

아주 소중한 존재라도 놓칠 때가 많아.

너무 가까이 있으면 더욱 그래.

가까이 있는 건 더 안 보이나 봐.

지금껏 엉뚱한 곳에서

바보 같은 꿈만 꾸고 있었으니ㆍㆍㆍㆍㆍㆍ.(49쪽)

그래서인지 요즘은 내곁의 작고 누추하고 소박한 일상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파랑새를 날려 보내고 울 것이 아니라,

내 그릇이 통닭을 담을 여건 밖에 안되면,

기꺼이 통닭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여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꾸 의심하고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 발명이란게 가능하고 세상은 좀 나아지는 걸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통닭에 만족하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에서 세상의 어떤 아트는 출발할테고,

만족과 수용의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가짐과 시선을 익혀가면서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느끼는게 어떤 아트가 아닐까?

효도란 어른들과 오래오래 수다 떠는 것

 

 

싱싱한 생선회 같은 맛은 아니야. 쫄깃한 맛은 없거든. 똑 쏘는 짜릿한 맛도 없고, 상큼하게 입맛을 돋우지도 않고, 매콤한 양념을 넣은 칼칼한 맛도 없고, 자르르 윤기 흘러 군침을 삼키게 하지도 않고. 어떤 맛인가 하면, 넉넉히 물 부어서 푹 끓인 누룽지탕에 곰삭은 젓갈을 얹어 먹는 맛이랄까. 유별난 맛은 없어도 질리지는 않잖아. 뱃속도 편하고.

도대체 그게 무슨 맛이냐고? 뭐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아오신 이야기 맛이지.(59쪽)

그런 의미에서 어떤 아트는 유별난 맛은 없어도 질리지 않고 뱃속이 편한 그런것이 아닐까?

적어도 내가 추구하는 아트는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의 그림도 그렇지만, 그가 쓴 글을 보고 있으면 겸손해진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마리앙토와네트적 사고는 하지 않게 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발상 자체가 인간 중심적 사고의 단적인 예가 아닐까?

사람의 목소리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건 우리가 사람의 목소리만을 해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때 새의 입장에선 사람의 목소리는 아무 의미없는 것이다.

 

발상을 조금만 전환하여 인간 중심의 단조로운 사고에서 탈피하면

의미있는 것의 기준이 충분히 바뀔 수도 있다.

세상은 획일된 의미를 부여하기엔 훨씬 다채롭고 버라이어티하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다 인간의 삶만큼은 의미있는 것이 되고,

그렇게 되면 마냥 겸허하고 넉넉해진다.

 

새들의 울음소리에는 왜 귀 기울이지 않나.

_새와 염소

 

뉴스에 나오는 사건만 사건이 아니다. 맑게 갠 하늘도 사건이고 붉게 노을 진 하늘도 사건이다. 지난 수천억 년 동안 똑같은 풍경은 한 번도 없었고 또 앞으로 수천억 년이 지난다 해도 똑같은 풍경은 단 한 번도 없을 테니까. 그런 걸 사건이라고 받아들일 때 세상은 신비롭고, 그런 세상에서 사는 인생이 즐거운 법이다.

 

 

피카소처럼 새들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사람의 목소리만 의미 있는 게 아니라고 깨닫게 될 때, 세상은 아름답고 그런 세상에서 사는 인생이 행복하다. 모두 모두 만세, 만만세다.(61쪽)

 

오늘은 누굴 붙잡고 석양주를 마실까.

_황혼

 

 

평생 앞을 보지 못했던 헬렌 켈러가 그랬지. 만약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날엔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자신을 돌봐준 선생님과 마주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고. 석양은 매일 봐도 언제나 감동적이야. 신이 내린 축복이고 선물이지. 그런 기쁜 순간에 그냥 갈 수 없잖아.

대포 한잔 어때?(65쪽)

 

그의 모든 글들이 시에 가까운 격을 지녔고 그래서 더 감동적이지만,

이 글이 유독 내 마음에 와닿은 이유는 이현세의 '해질무렵 한걸음만 딱 더 걷다보면'이 연상되어서이다.

 

섬에 사는 당나귀

_동백꽃과 당나귀

 

 

섬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사람도, 강아지도, 물새도, 망아지도 모두들 똥구멍을 조심해야 한다.

바람 때문이다. 어찌나 드센지 똥침보다 더 무섭게 파고든다.

몸속으로 바람이 들어오면 간지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한참을, 아주 한참을 뛰어다녀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심하병도 난다.

그러나 그런 바람도 아무한테나 가지는 않는다. 자기가 좋아해야지 바람을 넣는다.

섬에선 바람이 왕이다. 바람이 싫어하면 섬에선 너무 외롭다. 더 이상 섬에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니 너를 열어봐. 굳게 닫힌 너 자신을 활짝 열어 바람을 맞아봐.

바람과 네가 한 몸이 될 때 넌 비로소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이 작은 섬에선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제주는 에로틱해서 좋다. 바람과 바다가 어쩜저리도 진하게 몸을 섞을까. 온종일 그러고도 모자라 밤새도록 부둥켜안고 요동친다. 두 점만 먹어도 후끈거린다는 제주 해삼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그러니 제주 여자는 제주를 떠나지 않는다. 비실한 육지 사내론 성이 안 찰 테니까. 평생 본 것이 으르렁대는 음란한 바다와 바람의 성난 욕정인데 바보인가, 뭐가 아쉬워 육지로 나갈까. 그래서 제주엔 여자가 많은가 보다.(185쪽)

이 두편의 글들은 완전 죽음이다.

어떻게보면 해탈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한껏 에로틱한 것이 섹쉬하기까지 하다.

음란하면서도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다였으면 예술적이라고 하기 민망할텐데 말이다.

힘있고 역동적인것이 화끈하기까지 하다, ㅋ~.

 

왕중왕

_호랑이와 모란

 

 

어느 더운 여름날 동물원 구경을 갔다.

호랑이가 보였다. 호랑이가 동물 중의 왕이라면서? 그런데 너무 놀랐다. 그 누렇고 커다란 이빨을 가진 무서운 호랑이 옆에 나무가 버젓이 서 있는 거다. 나무는 아주 용감했다. 호랑이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자 잎사귀까지 흔들어대며 깔깔 웃는 거였다. 호랑이는 얌전히 나무 옆에 엎드려 있었다. 그 모습이 매우 비굴하게 보였다. 그렇게 힘센 나무가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동물원의 '짱'은 바로 그 나무였다.

그래서 호랑이 대신 하루 종일 나무만 바라보다 왔다.(91쪽)

이 글은 바라보는 시각이 신선하다.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빛 바래기 시작한 인생은 다시 반짝거릴 수 있고,

글은 양념을 친 듯 재밌어지는 예인 것 같아서 좋았다.

 

나는 짜다. 씀씀이가 인색하다는 얘기다. 한번 내 손안에 들어오면 그걸로 끝이다. 모두 내 것이다. 엄청난 욕심이다.

음식도 그렇다. 맛난 음식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도로 내보내기가 아깝다. 어떻게든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더니 그만 변비에 걸렸다. '자업자득.'

우여곡절 끝에 욕심을 버리기로 맘먹었다. 힘을 준다. 용맹정진이다. 숨죽이며 기다린다. 해ㆍ탈을 기다린다.(101쪽)

이 글에선 의학적 조예까지 느껴진다.

변비치료의 제 1원칙, 욕심을 버리고 붙잡지 말고 다 내어주자, ㅋ~!

만화방창萬化方暢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_좋은날

 

 

일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한다고?

그렇다면 그것들과 더불어 놀 줄도 알아야지.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거든.

놀자, 한바탕 징하게 놀아보자.

즐거운 인생을 위하여!

 

 

만화방창 : 봄이 되어 만물이 한창 자라남(115쪽)

이 글도 좋다.

일도, 사람도, 세상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즐겁고 신 나게 놀면 좋은날은 도래한다는 듯 하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고 사랑도 잘한다, ㅋ~.

 

술 마시고 필름이 끊겨봤다면

드디어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 거지.

 

술 마신 밤

 

그린 그림이 우쭐해서 한잔.

그린 그림을 잊으려고 한잔.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재기를 다짐하는 한잔.

그러니 그림 그리는 한 끊임없이 한잔.(143쪽)

 

나도 그림을 그리고 안 그리고를 떠나서 적어도 술 한잔은 할 수 있어야 할텐데 싶은 마음이 들게 한 글이다.

필시 자아도취 수준이지만,

난 열정도, 재주도 어느정도 갖추었는데...'끊임없이 한잔'이 안 되어,화가로서 자격미달에, 함량미달이다.

요밑에 고독해야 화가는 진정한 행복을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선 무난히 합격점인데 말이다, ㅋ~.

난 은근 스스로를 따 시키는 걸 즐기는데, 자발적인 유폐생활 속에서 자유로운 삶이 실현된다는 거랑 일맥상통한다.

ㆍㆍㆍㆍㆍㆍ

지금껏 나는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따라서 늘 혼자 일하다 혼자 노는 게 하루의 일과다. 말을 배우기 전부터 지금까지 주로 외톨이였다. 외톨이의 고독이 좋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몰려오는 고독을 사랑한다. 고독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겐 행복이니까.

화가의 길은 고독해야 된다고 믿는다. 화가가 외톨이라는 건 숙명이다. 외톨이가 될 때 비로소 화가는 진정한 행복을 가질 자격이 생긴다. 외톨이만이 자유롭기에 그렇다. 자유롭지 못한 화가는 불행하다. 자발적인 유폐생활 속에서 자유로운 삶이 실현된다. 유폐기한이 지나면 훨훨 날다가 때가 되면 다시 유폐다. 나는 평생 그렇게 살 것이다.(149쪽)

나와는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세상은 비로소 내게 다가온다.

 

 

기분 나빠도 머릿속에선 받아들여야지 그러는데, 실제로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30년 넘게 사귄 친구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다.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안 보게 될 때도 있다.

오히려 별로 보지 않았던 사람은, 나와는 다른 면이 많아도 꽤나 너그러이 인정해주고 자상하게 배려해준다. 그러나 오래 사귄 친구나 가족에겐 나 좀 봐달라는 투정을 즉각즉각 부린다. 참지 않고 심술을 내는 것이다.

그런 어리광은 나이 든다고 적어지는 게 아니리라. 나는 그렇지 않은데 남들은 모두 잘못됐다는 식이면 천상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153쪽)

이건 언뜻 외톨이라는 의미로 읽혀,

언뜻 그래서 외롭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난 낯을 가린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낯을 가리지만, 일단 내 안에 들이고 난 후에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다.

아니 믿을려고 노력한다.

내편을 향하여서는 감추지 않고 내어보일 수 있고,

나와 달라도 조건이나 토달지 않고 감싸안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은, 옷을 고르는 취향과도 비슷하다.

난 좋은 걸로 용도에 맞는 몇 벌 이상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반면,

누군가는 좋은 옷 자체가 사치라며 싼 걸로 여러벌 구입해서 자주 바꿔 입는 걸로 기분 전환을 한다.

어느 쪽이든 취향과 개성의 문제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의 문제는 아니지 싶다.

 

사석원의 그림은 당나귀나 새도 좋지만, 꽃도 좋다.

당나귀나 새와 꽃이 같이 있는건 더 좋다.

난 그동안 어쩌다가 받게 되는 꽃선물이 별로였다.

이건 꽃 자체가 좋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잘 키우거나 돌볼 자신도 없으면서 나혼자 보고 좋자고 들이는 건 직무유기라는 생각에서였다.

근데, 이런 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잘 보관할 수 있을 것 같고, 돌볼 수 있을 것 같고,

소위 길들일 수도 , 길들인것에 대해 책임을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석원의 그림에 등장하는 당나귀나 새나 꽃이라면 무한 애정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딨어? 널 부르고 있잖아.

_붉은 튤립

 

<록키>라는 영화는 실베스타 스탤론이라는 무명 배우를 단번에 스타로 만든 히트작이다. 주인공 록키는 별 볼일 없는 삼류 복서. 우연히 기회를 얻어 챔피언에 도전하게 된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끝까지 버틴 록키는 시합이 끝난 링에서 애인의 이름을 외친다. 어눌하지만 비장한 목소리로 절규하는 그 모습이 참 오랫동안 기억났다.

 

당신은 누군가를 그렇게 애타게 불러본 적이 있는지. 부르고 또 불러서 널 사랑한다며 와락 껴안아본 적이 있는지. 으스러질 만큼 껴안고는 "널 사랑해, 죽도록 널 사랑한다"라고 고백해본 적이 있는지. 시간이 별로 없다. 인생이란 그리 길지 않다. 심장이 타버릴 만큼 장렬하게 사랑해보고 사라지자!(167쪽)

이런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해본적도...

목청껏 외쳐 불러본 적도...없는 것 같다.

화끈하고 열정적이고 그래서 단도직입적이었음 졸겠다.

그 누군가와 나 사이에 사랑하는, 죽도록 사랑하는 마음들로 가득 차서

중간에 다른것들이 끼어들지 못했으면 좋겠다.

 

 

 

너를 만나기 전엔 난 우는 법을 몰랐는데ㆍㆍㆍ

_반달

 

 

함께 있고 싶은 남자,

지켜주고 싶은 여자가 되기까진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란 다름 아닌,

희생과 인내가 범벅이 된 사랑의 아픔.(169쪽)

 

위의 글, 반달은 밑의 글 보름달과 묘한 대구를 이룬다.

솔직히 반달의 그림과 글은 좀 형이상학적이어서 제목 반달을 보기 전까지는 의미가 모호했다.

사석원의 그림 중에서 내겐 가장 어려웠다.

보름달

 

내 소원은 오직 한 가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갑자기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174쪽)

 

글은 보름달처럼 풍성하진 않지만,

보름달을 두고 저렇게 염원하는게 갸륵하고 가상해서...

만약 내가 만남과 이별 따위를 관장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들어줄 것 같다.

당근 난 만남과 이별 따위는 관장하지 않고,

그래서 어떻게도 할 수 없으니,

저 기도에 마음을 보태 염원하는 수밖에 없다.

부디, 제발, 적어도 '갑자기' 이별하지 않게 해주세요, 네에~?

 

이런 글과 그림을 구사할 수 있는 사석원이, 그의 이 책이 진짜 예쁘고 맘에 든다.

그런 그의 '마무리 하는 글'은 더 예쁘기만 하다.

 

ㆍㆍㆍㆍㆍㆍ

이 책이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있을 멋진 꿈과 사랑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그리하여 우리들의 신나는 인생을 부추기는 친구가 되길 바랄 뿐이다. 모두들 힘을 내자.(213쪽)

 

사석원과 '함께'라면 좀 더운 여름이지만,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덥다고 땀 흘리고 주저앉아 버리기엔 쫌 신나는 인생이지 않은가 말이다.

볕이 있어 덥고 땀나지만,

빛이 있어 밝고 환하지 않은가 말이다.

 

 

 

 

 

 

 

사석원과 더불어,

내가 또 아주 좋아하는 손철주의 새 책이 나왔다.

세상에 읽을 책들은 넘쳐 나고,

책만 읽기엔 세상은 재미난 일로 가득하다.

사석원 뒤에 줄 서는게 빠를까, 아님 손철주 뒤에 줄 서는게 빠를까?

꽃그림을 그려달랬더니 30년 뒤 운운하며 튕기는 친구 뒤에 줄 서는게 가장 빠르겠다, ㅋ~.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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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7-25 16:37   좋아요 0 | URL
39쪽 인용문을 읽고 그 다음 부터는 휘리릭 내려 읽었어요..........
저도 홀린듯 장바구니에 이 책을 폭 담았습니다.^^

양철나무꾼 2012-07-25 16:5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마중물님~^^
전에도 댓글 남겨 주셨었는데...
답방 했었는데 빈 서재여서 인사를 못드렸었어요.

이제 알라딘 서재에 재미 좀 붙이셨어요?^^

근데, 죄송해서 어쩌죠~--;
품절인 책을 이렇게 부추겨서~.

그림, 나중에라도 사진으로 몇장 찍어 올려보죠, ㅋ~.

2012-07-25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6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7-25 22:21   좋아요 0 | URL
나에게 내일은 없어요.
죽어도 좋아요.

아..옛그림..저는 르네상스 그림을 좋아하고 양철님은 옛그림을 좋아하시는 구나..(깨달음) 전에도 이런 책을 여기서 봤어.. 저는요, 그런 문자 보내는 사람도 같이 죽여버릴 거예요!(단호)

양철나무꾼 2012-08-07 18:07   좋아요 0 | URL
단호하신 아이리시스님~!

그런 생각을 해요.
소나 돼지나 닭이나 개나...뭐가 다르다는 건지~.
어쩜 인간 중심의 독선적인 사고가 아닐까 싶어요.

그들이 중심이 되면,
그들은 어쩜 '단호'한 우리의 입장에 허를 찌를지도 몰라요~ㅠ.ㅠ

오늘 말복인데, 보양식 드셨어요?^^

책읽는나무 2012-07-26 11:27   좋아요 0 | URL
30년뒤에 꽃그림 그려주는 친구 뒤에 줄을 서시는 것이 빠를 정도라면??
음~~
더운 여름에 힘을 낼 수 있는 작가라면??
음~~
믿어도 되는 거죠?ㅋㅋ
넘 더워요.지금!
얼음을 입에 물고 있어볼까?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석원이랑 함께 하라는거죠?지금..^^
눈이 시원하면 마음도 시원해질 것같네요.
일단 보관함에 담습니다.정말 줄 빨리 서야겠어요.ㅋ

양철나무꾼 2012-08-07 18:12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에 소나기가 내려서 그럴가요?
아님, 오늘이 말복이면서 입추여서 그럴까요?
아님, 얼음을 입에 무셨다는'책~나무'님의 댓글 덕분일까요?
그럭저럭 견딜만해요, ㅋ~.

전 오늘 기필코 '초계탕'을 먹어야 하겠습니다.
30년 뒤 꽃그림 그려주겠다는 친구 뒤 말고,
오늘 초계탕 먹여주겠다는 친구 뒤에 줄 서려구요~^^

말복인데, 님도 보양식 드셨겠죠?

글샘 2012-07-26 16:10   좋아요 0 | URL
저도 사석원 그림 참 좋아하는데요~ 글도 참 멋지네요~
속이 뻥~ 뚫린 사람 같아 보입니다.

손철주는 '옛 그림 보니 옛 생각 난다' 보신 분이라면 리바이벌 느낌이 날 겁니다.
데자뷰인데... 좀 말투가 다르달까? 암튼 그래요. ^^

양철나무꾼 2012-08-07 18:17   좋아요 0 | URL
사석원은 그림 빨, 글 빨 다 멋지잖아요.
근데 '막걸리 연가'까지 쓰신 분이 술은 혼자서 드신대서 말빨이 어떤지는 모르겠어요~--;

손철주의 '옛그림~'에선 글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면,
요번 책에선 '말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느낌이랄까?
암튼, 그를 통과하면 말이 됐든지 글이 됐든지...성찬이지 싶어요.

말복인데 말이죠~^^

꿈꾸는섬 2012-07-27 16:5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킹왕짱이라니, 꼭 찾아봐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2-08-07 18:19   좋아요 0 | URL
우와~, 꿈섬님이다.
방가,방가~.헤에~^_____^

여기 소개한 책들 다 좋아요.
카톡 보니, 현수는 무럭무럭이더군요~^^

차트랑 2012-07-31 12:30   좋아요 0 | URL
효도는 어르신들과의 수다에 있다....
이거 참 공감가는 말씀이로군요..

요즘은 날이 무척 더워 어르신들께서 힘들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력이 약해지실 수도 있는 계절인지라
자주 문안인사를 드려야 할 때 인 것 같아요.

몇년 전 프랑스에서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 옆에서 숨을 거두신 어르신들의 사례를
보도한 적이 있어 기억이 납니다.
특히 덥거나 특히 추울 때
어르신들께 좀더 신경을....

전화는 울리라고 있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들어 저도 어르신들께 안부를 여쭈어야 겠다 싶습니다.
한동안 서재에 결석하는 바람에
인사를 못드렸습니다.

더위 날,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세요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2-08-07 18:22   좋아요 0 | URL
전화는 울리라고 있는 것이라는 논리라면 말이죠~--;
제 폰은 '캔디폰' 수준이 되셔서 말이죠.

올해는 유독 더운것 같은데,
그 더위가 게다가 9월까지 계속 될 거라네요~.

님도 더위에 기운 잃지않도록 맛난것도 적당히 드시면서 체력안배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