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몰려오는 잠을 쫓기위해 커피를 들이붓고 살았었다.

커피를 하도 마셔대서 내 몸이 피가 아니라, 커피로 이루어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커피 덕분에 몰려오는 잠은 피할 수 있었지만, 항상 쓰린 속 때문에 얼굴을 찡그려야 했다.

내가 중국의 미인 '서시'정도의 용모라면 찡그린 얼굴을 트레이드 마크인양 내세운다지만 그도 아니고...

손발은 거무죽죽 식은땀이 나고 심지어 수전증 환자처럼 달달 떨어댔다.

이제 세월이 흘러 커피로 잠을 쫓지 않아도 되는데, 여전히 커피가 들어가면 말똥말똥이다.

될 수 있으면 커피, 코코아, 초콜릿 등을 멀리 하려고 하는데...

어느새 중독인지, 있으면 안 먹고도 잘 지나갈 수 있는데, 없으면 불안한 것이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가 내게 커피 선물은 끊이질 않는데,

작년에는 그 진한 유럽 커피를 두 블럭이나 보내주신 분이 계셨었고,

철철이 녹차를 가져다주시는 분이 계시고,

누군가 커피 취향이 똑같다고 기분 좋아하자 엊그젠 족히 1년은 먹고 죽어도 좋을 만큼의 커피를 보내주셨다.

 

 

 

 

 

 

 

 

 

 외로워서 완벽한.
 장윤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3월

 

이 책은 제목이 예뻐 아무 생각없이 집어들었다.

때문에 내용이나 문장이 이토록 내 마음에 들지는 미처 몰랐다.

저자 '장윤현'이 누구인지 몰랐고, 제목 '외로워서 완벽한'을 좀 촌스러워서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책을 펼치고, 책날개 안쪽에서 이 책의 저자 '장윤현'이 장윤현 감독이라는 걸 알았다.

난 '접속'을 시작으로 '텔 미 썸띵' '황진이''가비'까지는 봤고, '썸'은 못봤다.

다작을 내는 감독은 아니지만,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호감가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좋았다고 영화대본을 직접 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데,

글까지 좋아야 한다는 법은 없는데...글도 영화만큼이나, 아니 영화보다 훨씬 좋았다.

 

그걸 두고 장윤현은 <프롤로그>를 빌어 이렇게 겸손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때는 느낄 수 없던 자유도 있었다. 영화는 절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ㆍㆍㆍㆍㆍㆍ그런데 문자는 달랐다. 원래 계획보다 더 길어진 문장, 더 디테일한 설명, 더 근사해 보일 법한 문구 등을 맘껏 써도 예산 초과라 비난하는 이가 없었다. 멋졌다. 영화를 만들 땐 느끼지 못한 자유를 아마 나는 과하게 누렸던 것 같다. 문장을 다지고 깎아나가는 과정보다는, 속에 있는 말을 맘껏 외치는 자유만 취한 듯도 싶다. 송구할 따름이다.(12쪽)

 

그건 커피였다. 그동안 내가 마셔왔던 커피와는 달랐지만 분명히 커피였다. 쓴맛과 달콤한, 전혀 다른 두 맛이 과하게 섞여 있었지만 맛있었다. 나의 첫번째 부다페스트 커피였다. 문득 볼에 닿는 햇볕의 따스함이 느껴져 카페 창밖을 내다봤다. 맑은 하늘이 보였다. 그제야 내가 처음으로 부다페스트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봄이었다. 아직 쌀쌀했지만 햇살 속에서 따뜻한 부다페스트의 봄이 느껴졌다.(25쪽)

 

 쓴맛을 왈칵, 듬뿍 안겨준 뒤에 아주 인색하게, 아주 잠깐 달콤한 맛으로 윌해주는 에스프레소는 인생을 참 많이 닮았다.(34쪽)

 

이쯤만으로도 책 제목인 '외로워서 완벽한'은 커피를 마시기에 필요충분 조건이라는 걸 알겠다.

평범한 커피조차 그렇게 집중해서 마시니 참 맛있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게 만약 커피가 아니라 술이었다면 <가비>라는 영화가 과연 존재했을지 모르겠다.ㆍㆍㆍㆍㆍㆍ하지만 그날 A씨 앞에서 마셨던 게 술 대신 커피여서 나는 앞에 놓인 음료를 한 모금 한 모금 공들여 음미할 수 있었고, 같은 수준의 교묘하고 욕심에 찬 말을 내뱉지 않고 꿀꺽꿀꺽 함께 삼킬 수 있었다. 그날 꿀꺽 삼킨 말, 커피 잔에 슬며시 버리고 녹여서 함께 마신 내 말이 <가비>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된 것이다.(50쪽)

그렇다.

술이라면 대담하고 용감무쌍해질수는 있겠지만, 욕심에 찬 말을 내뱉지 않고 끌꺽꿀꺽 함께 삼킬 수는 없었을 게다.

그러니 나도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술이 아니라 커피를 마셔야 하리라.

 

지치고 힘든 일이 넘쳐날 때,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 웅크려 숨고 싶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거울을 향해 웃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완벽히 즐거워 보이면 나는 안심한다. 내 스트레스와 상처가 다른 이에게 전염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아무에게도 내 슬픔을 떠넘기는 일은 없을 테니까.(53쪽)

이 사람, 참 나랑 닮았다.

나도 지치고 힘들고 또는 사람에게 상처 받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 웅크려 숨고  싶으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거나,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한 후 거울을 향해 웃어본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웃어보일 수 있으면 적어도 안심을 한다.

내 슬픔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일 따윈 없다는 거니까.

누군가는 보이지도 않는 글에서도 감정을 읽어내던데,

얼굴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어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위 글의 역의 논리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거울을 향하여 웃어보일 수 있다는 건 내 감정을 조절하여 상대방을 대할 수 있다는 거다.

적어도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속으로 스트레스와 상처로 몸부림치더라도 다른 이와 글에까지 전염시키지 않고...겉으론 웃으며 사람을 대하고 글을 쓸 수는 있다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커피를 즐기는 이에게 반가움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잠시나마 내게 기대어 쉴 공간을 만들어주는, 자투리 여유를 제공하는 커피 한 잔. 그 작은 만족감에 기대는 이가 비단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발견하면 즐겁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커피에 살짝 기대어본다. 설탕을 타지 않는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즐기는 사람들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길 꿈꾸며ㆍㆍㆍㆍㆍㆍ.(67쪽)

 

그래서 수많은 종류의 커피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커피를 이미 즐기고 있었다는 이가, 그리고 그 사실이 그리도 반가웠나 보다.

당근, 진한 유럽 커피는 아니다.

에스프레소는 접수 불가다.

에스프레소라면 물을 듬뿍 부어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야 하겠다.

 

그래도 취향은 독특한지라,

로스팅은 아니어도 홀빈을 갈아서 블랜딩, 드립 정도는 내가 직접하고 싶은데,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포터블로 가지고 다니는 커피 중에서 내게 '가장'이라고 생각하던 것이었다.

물론 그이가 물을 한강수로 부어 먹는지, 설탕과 프림으로 죽을 만들어 먹는지 까지는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암울한 시대든, 행복한 시대든 사랑은 매한가지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사랑은 서로 몸의 온기를 나누고, 마음의 창고를 열어 마음을 부비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다. 사랑은 결국 영과 육의 허기를 채우는 것인 셈이다.(139쪽)

 

사랑은 영과 육의 허기를 채우는 거란다.

난 둘 중 하나에 구태어 비중을 둔다면 육이 아니라, 영이지 싶다.

전에도 지나가며 얘기했었지만, 개인적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이른바 소울 푸드(soul food)라고 생각하는 음식은 차(tea)이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차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반가움을 느끼게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차나 커피를 선물하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차와 커피가 마음을 표현한다는 걸 나는 몸소 느꼈었지만,

그래서 내겐 무엇보다 따뜻하고 큰 위로가 되기도 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로제 역할을 하는지 어떤지의 예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조지오웰의 <위건부두 가는길>과 영화 <블루>가 그 중 하나이다.

조지오웰은 그들이 좀 더 싸고 건강에 좋은 채소나 과일, 오렌지 주스 대신에 차와 설탕에 많은 지출을 하는 것에 크게 놀란다. 하지만 그는 곧 사람의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공산 노동자, 게다가 일감이 줄어 실업자가 된 사람에게 건강한 식생활이란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은 건강하게 더 오래 살고픈 마음조차 상실한 상태다.ㆍㆍㆍㆍㆍㆍ그 옛날, 커피와 차는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로제였다.(143쪽)

<1984>에서도 했었던 커피에 대한 언급을 <위건부두 가는 길>에선 위와 같이 하고 있다.

저 표현이 1984에서처럼 real일지 몰라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삶도 커피도 real이려면 다 씁쓸해야 한다는 말이 되려나? 끙~--;

 

영화 <블루>의 주인공 줄리도 마찬가지이다.

이 화상 치료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의 고통에 대한 은유 같다. 너덜거리는 화상 상처에서 새 살이 돋아나려면 먼저 그 환부를 긁어내는 아픔을 정신으로 견뎌내야 한다. 마음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의 깊은 상처를 바로 보고 그 부위를 정확히 가늠해내야 한다. 그 과정은 매우 아프고 힘들다. 그러나 그 과정을 묵묵히 견뎌내야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146~7쪽)

줄리는 타인의 온기를 빌려 상처가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남자 곁을 떠난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아프고 견디기 힘들다. 무정한 이별 커피까지 남긴 뒤 그곳을 벗어난 줄리의 그 다음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급하게 걸어 나가던 중, 갑자기 돌담에 손등을 들이대 긁어나간다. 손등과 손가락 마디가 드르륵, 피나게 돌담에 긁힌다.

 줄리가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 때 택한 두 가지 방식은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방법 중 고른 것이다. 어떤 모습의 자신이라도 사랑해줄 것이라 믿는 사람의 온기에 기대보는 것, 또 스스로를 상처내서 그 생생한 아픔으로 먹먹한 가슴의 통증을 잠시나마 잊는것. 어른이 고통을 다루는 방법은 그 두 가지 정도뿐이다. 타인에게 고통 전가하기, 떼쓰기는 통하지 않는다.ㆍㆍㆍㆍㆍㆍ엄살을 피우지 않고 똑바로 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 어른스럽고 나은 치유 방법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부작용은 따른다. 상처에 매달려 진을 빼고 난 뒤엔 감정마저 푸석하고 거칠어지기 십상이니까. 상처를 긁어내는 과정에서 유연한 마음까지 뭉텅 떨어져나가 버린 듯, 약간은 괴팍하고 무뚝뚝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150~151쪽)

오래전 봤던 영화가 잊혀지지 않는 것은 급하게 걸어나간 줄리가 돌담에 손등을 들이대 긁어나가는 저 장면 때문이었다.

손등에 상처를 내서 그 통증으로라도 가슴 먹먹함을 이겨내 보려는 노력으로도 읽혔고,

보이지 않는 가슴의 통증을 손등의 상처로 형상화시켜 보려는 마음으로도 읽혔다.

우리는 상처를 눈으로 보아야만 아픈 줄 아는 경향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가슴이 아프고 쓰린 것으로 상처를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슴에 상처 입은 사람의 상처를 긁어내는 과정에서 유연한 마음까지 뭉텅 떨어져 나갔다고 한것으로 말이다.

암튼, 상처 입고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커피랑 관련되어 떠오르는 영화나 음악, 장소가 좀 더 있다.

짐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도 그 중 하나인데 이 책에서도 살짝 언급되고 있다.

기억나는 걸 얘기해 보자면, 이기팝과 톰 웨이츠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흑백 필름이다.

"금연해서 좋은 점이 뭔지 알아?"

"한 대쯤은 괜찮다는 거지."

 

또 하나, 바흐의 커피 칸타타.

 

Aria, 'Ei, wie schmeckt'
(아, 커피가 얼마나 달콤한지)

 

Ei! wie schmeckt der Coffee süße,
아, 커피맛은 정말 기가 막히지. 
Lieblicher als tausend Küsse,
수천 번의 키스보다도 더 달콤하고,

Milder als Muskatenwein.
맛좋은 포도주보다도 더 부드럽지.

Coffee, Coffee muss ich haben,
커피, 난 커피를 마셔야 해.
Und wenn jemand mich will laben,
누가 나에게 한 턱 내려거든, 

Ach, so schenkt mir Coffee ein!
아, 내 커피잔만 가득 채워주면 그만이예요.

그리고 워낙 유명한 곡, Bob Dylan의  'one more cup of coffee'

 

옛날에 대학로에 커피 칸타타라는 커피전문점도 생각난다.

난 이 무렵부터 원두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었는데, 깡통에 든 folgers 커피를 내려마셨었는데...

이 곳의 헤이즐넛 향에 넘어가 한때 커피를 향으로 마시던 때가 있었다.

 

커피잔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제각각이었는데, 커피잔만으로도 인테리어가 되는 것이 독특하고 참 예쁜 가게였다.

그런 의미에서 전에 이 책은 본전 생각나는 것이 좀 그랬다.

잔을 사진으로 찍어 올린 것도 아니고 저 표지처럼 잔잔한 일러스트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장윤현의 <가비>가 나오기전까지...

뭐니뭐니해도 커피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바로 이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이 영화를 두 번째 본 후로부터 문득문득 건조한 황사가 불어올때쯤이면 이 영화가 생각났고, 다시 꺼내 볼 때마다 사막의 모래 바람이 마음을 휩쓸었다. 사람이 그리워졌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건조해진 혀를 묽은 아메리카노로, 뜨거운 에스프레소로 적셔야 했다.(72쪽)

 

내게도 바그다드 카페 같은, 야스민의 커피포트 같은 마음이 있다면 좋겠다. 상대 마음의 농도를 헤아리고 내 마음을 진하게 내리거나 혹은 연하게 물을 타 표현하고 싶다. 내가 만든 영화에도 그런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삭막하고 건조하기만 한 삶에서 당신 마음에 꼭 드는 커피 한 잔 같은 영화를, 때로는 따뜻하고 연하게 마음을 감싸고 때로는 독하고 진하게 머리를 깨우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하여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면, 내마음 당신 마음에 맞추어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이다. (75쪽)

 

 영화가 자유로운 상상과 개성 있는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쩌면, 그것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의 무의식이 감독의 무의식에 반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고 위로하는 능력 역시 내 무의식 저편에 감취진 상처가 자극받는 데서 출발한다. 상처 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옳다.ㆍㆍㆍㆍㆍㆍ그리고 끝내는 내가 과연 다른 사람을 치유할 만큼의 상처를 받은 행운을 누린 적이 있기나 한지를 고민하게 만들어버린다. 차마 그 고민에 선뜻 대답할 수 없을 때, 나는 영화 속 바그다드 카페의 사람들이 부럽다.(82~83쪽)

 

O.S.T.'calling you'로 유명한 '영화 <바그다드 카페>

이 영화를 장윤현 감독은 상찬하고 있고, 자신의 영화 <가비>도 그럴 수 있기를 저와 같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와 영화 <가비> 그리고 영화 <가비>의 원작이 된 책<노서아 가비>까지를 두루두루 본 나로서 한마디 하자면, 책 '노서아가비'와는 또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two thumb up해줄 수 있겠다.

 

예전에는 공감이나 소통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간접 경험만으로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젠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독서 따위의 간접 경험으로 안되는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사람의 삶이나 사랑 따위 본인이 고스란히 겪고, 통과하고, 경험해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고

때문에 공감하거나 소통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걸,

때문에 위로나 치유 따위는 더 더욱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겠다.

 

나는 도락의 절정이 그런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탐닉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는 아예 끝까지 가버리지 않는 것, 아슬아슬한 경계선 안쪽에 멈춰 서서 그 끝을 아련히 그리는 경지가 더 윗길이라 여긴다. 무리하면 닿을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손을 거두어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즐김의 최고 경지가 아닐까.(204쪽)

 

토메크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랑은 가만히 지켜봄으로써 생겨나는 것, 때때로 질투심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것, 그러다 어느 날엔가는 슬퍼하는 그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문득 고백할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랑은 명사지만 누군가에게 고백하거나 전달할 때는 '사랑하다'라는 동사로 쓰인다. "사랑해." 그래서 그건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 당신에게로 움직여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ㆍㆍㆍㆍㆍㆍ

그렇다면 커피 한잔 나누고 싶은 마음, 왜 사랑이 아니겠나. 어여쁜 당신을 위해 원두를 곱게 갈아 뜨거운 물로 커피 한잔 내려주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그렇게 향긋한 커피로 당신의 지친 몸을 녹이고 위로하고 싶을 때, 그리하여 당신에게로 움직이는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역시 사랑에 빠진 순간일 것이다. (238~239쪽)

 

내가 그를 영화감독 장윤현 말고도, 작가 장윤현으로 인정하게 된 건 바로 이 구절 때문이다.

이 사람, 참 세세한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묘한 재주가 있다.

그들은 커피의 이름이며 특징을 떠나 네가 가장 맛있는 방식으로 마시라고 말하곤 했다. 내 입맛대로 남의 취향을 조절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바로 사람을 대하는 기본자세임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남과 다른 내 취향을 인정해주는 것을 넘어, 그것을 세세히 기억해주기까지 할 때 우리는 감동하게 된다.(272쪽)

 

끝으로, 장윤현 감독의 <가비>의 모티브가 된 김탁환의 <노서아 가비>를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김탁환의 다른 작품만큼 완성도가 높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심심풀이 땅콩이나 킬링타임용으로 한번 쯤 읽을만 하겠다.

 

'하여, 당신에게 커피는 무엇인지요?'

하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난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책과 더불어, 수선 내지 않는 친구쯤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여기서 친구라고 딱 못 박을 수 있는 그것이 아니라,

너무 거창하게 이름 붙이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좋은...그런 소박한 어떤 것이지만,

내게 있어서,

나에게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그토록 의미가 남다른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김탁환의 글답게 수려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바로 전에 읽은 장윤현의 감동에 비하면, 울림은 약하다.

사랑하는 사이에 왜 그런 거리를 두느냐고 묻는 이도 있겠다. 그러나 사랑은 사랑, 습성은 습성이다.

 

이 검은 액체가 전하의 혀끝에 닿는 순간을 상상하며 내 모든 감각을 깨우고 또 깨웠다. 사랑보다도 더 짙은…… 어떤 '지극함'을 배우고 익히는 나날이었다. (131쪽)

 

누군가 홀로 외로워하는 것을 보면 그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남을 웃게 만들 작은 재주가 있다면 그 재주를 몰래 쓰고 시치미를 떼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146쪽)

 

내가 전하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이반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그건 내가 사기꾼이기 때문이다. 사기꾼은 진실해선 아니 되고 정직해선 아니 되고 일이 끝난 후 같은 곳에 머물러서도 아니 된다. 삶의 원칙을 바꾸면 큰 낭패를 보는 법이다. (192쪽)


따냐에게 뭔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삶을, 사랑을...너무 일찍 알아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열차게 살다보면 삶의 원칙 따위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며,

때문에 삶의 원칙을 바꾸었기로 큰 낭패를 보는 법 따위는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난 책 속의 그녈 보며,

아직은 삶이나 사랑을 몰라도 되겠지...
그렇게 젊고 아름답고 건강할 때는그딴 걸 몰라도 되겠지...
그딴 건, 좀 더 자기 자신에게 구질구질하고 구차해질 때에나 필요한 거겠지...
지독히 외로워서 꺼이꺼이 허리를 접고 울어버릴 수밖에 없을 때에나 필요한 거겠지...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비틀면 이 모두가 다 부질없는 일이지 싶기도 하다.
내가 그대가 아니고,그대가 내가 아닌데...누가 누굴 이해할 수 있겠으며,

내가 그대가 아니고,그대가 내가 아닌데...상황의 펼쳐짐이 그림처럼 선명하더라도,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닐진데, 보는 것만으로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봄이고, 좀 꾸물거리는 저녁이다.

이런 날 따뜻한 커피 한잔이 오히려 산뜻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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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30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3-30 19:06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길게 쓰시다니...
추천값은 긴 글을 읽은 제가 받고 싶어지지만...
그래도 읽는 이보다 글쓴 이가 더 힘어들었겠으니 추천 눌러야 하겠죠? - 당근...

"거울을 향하여 웃어보일 수 있다는 건 내 감정을 조절하여 상대방을 대할 수 있다는 거다.
적어도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거다."

좋은 글 보고 갑니다.

프레이야 2012-03-30 21:13   좋아요 0 | URL
님, 오늘 이곳에 하루종일 봄비가 내렸어요. 목련화가 만개해 비에 흠뻑 젖었어요.
창 밖으로 그걸 바라보며 블루베리 머핀과 함께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었어요.
이런 날은 정말 커피 한 잔이 술 한 잔보다 낫지요.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 바그다드 카페, 저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에요.
노서아 가비,에서 김탁환이 커피를 정의한 문장들이 새삼 떠오르네요.
커피는 아내같은 애인이다, 이런 게 있었죠. 무슨 말일까 알쏭..
근데 한의사가 제겐 커피가 맞지 않다고 딱 끊으라고 했는데 못 끊는다지요.^^

blanca 2012-03-30 21:26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힘들때는 커피를 더 많이 마셔요. 속이 너무 쓰려서 끊어보다가 또 마시고 그렇게 참다 마신 커피는 더 소중해요. 제가 예전에 커피를 끊으려 하니 어떤 분이 " 이 좋은 걸 왜 끊어?"라고 반문했던 게 생각나요.

cyrus 2012-03-31 00:09   좋아요 0 | URL
저도 커피를 좋아해요. 요즘에는 공부할 때 단맛이 강한 카라멜 마끼야또를 많이 마시게되요,
커피도 너무 자주 마시면 위장에도 좋지 않다는데 거기에 단 커피만 마시게 되면 도리어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알면서도, 자주 마셔요 ^^;;


rosa 2012-03-31 11:33   좋아요 0 | URL
하여 제게 커피는 따뜻함이고, 행복이고, 여유로움입니다.^^
어제처럼 비 오고 바람 많이 부는 날에는 한 잔의 커피가 전해주는 따뜻함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거든요.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는 절로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게 되고
바쁜 와중에도 커피 한 잔을 먹기 위해 준비하는 그 시간과 커피가 부글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의 뿌듯함이 좋습니다. 잠시나마 여유를 만끽할 수 있으니까요.
근데 전 쓰고 찐한~ 커피 좋아해요.^^
장윤현 감독의 책은 나중에 꼭 챙겨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샘 2012-03-31 15:04   좋아요 0 | URL
ㅎㅎ
'책과 음악과 커피가 있는 카페' 하는 방송 하나 하시죠^^
예전에 뭐, 방송반 하셨더더니, 케이블 정리만 확실히 배우신 건 아닌 듯...
멋진 페이퍼네요.
왠지 과거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어주는 느낌이랄까...

하늘바람 2012-04-01 11:50   좋아요 0 | URL
저도 속상하고 지칠땐 이불 뒤집어 쓰고 자는데~ 누군가는 잠이 오냐고 하지만요.
커피를 소재로 이렇게 길고 멋진 글을 쓰시다니 참 대단하세요 책과 음악과 영화와.블루의 줄리엣비노시, 바그다드 카페 참 좋아했는데. 모두 혼자본 영화라 더 와닿았는데 말이에요.
이상하게 저도 님께 커피를 선물하고 싶더라니. 그런데 일년드실 커피가 있으시다니~ 부러운데요.
전 요즘 커피를 자제하고 있어서 꾹꾹 참느라 죽을 지경이긴 합니다만.
오늘 같은날은 창 넓은 카페에서 김 모락모락 나는 커피 마시고 싶네요

2012-04-26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